1

   탄야는 여자가 입혀준 팬티를 곧장 벗어 던졌다. 그러고는 작은 엉덩이를 흔들며 젖은 타일 위를 질주했다. 여자는 포기한 듯 바닥에 내팽개쳐진 팬티를 주워들고 마당을 휘 둘러보며 누구를 향해서랄 것도 없이 웃어 보였다. 나는 시선을 거두었다.
   종일 콘도의 사무실을 지키며 소일하는 여자는 문득문득 자리를 털고 일어나 탄야의 아랫도리 단속을 했다. 탄야는 뒤뜰의 화단이나 콘도 앞 좁은 길목, 때로는 수영장 곁에서도 아무렇게나 오줌을 싸댔다. 개미가 줄지어 지나가는 흙바닥에 발을 벌리고 주저앉아 잡초며 돌멩이를 오래 뒤적이기도 했다. 대놓고 싫은 기색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여자의 팬티 입히기도 그저 지겹게 반복되는 시늉에 그쳤다.
   소피는 세 시 무렵 어김없이 돌아왔다. 손에 든 봉투에서 맥주와 탄산수병이 서로 부딪혀 짤랑댔다. 여자는 소피가 오는 것을 확인하곤 플라스틱 테이블을 펼쳤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풍경이었다. 그들은 지금부터 맥주를 마시기 시작해 저녁이 되면 음식을 좀 사다 먹고, 이후에는 태국산 싸구려 위스키에 얼음과 탄산수를 섞어 마시며 내내 시간을 보낼 것이었다.
   선배드 곁에 와서 선 소피가 수영복 밖으로 드러난 내 어깨를 찰싹 때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안 더워?
   소피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작열하는 태양을 눈짓했다. 나는 파라솔의 철제 기둥을 손끝으로 두드리며 웃었다.
   며칠 전 술자리에 함께한 이후로 소피는 내게 부쩍 살가웠다. 종일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로비에서 책을 뒤적이던 나는 처음으로 소피의 술자리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소피가 여자의 엄마일 것이라 믿었다. 소피는 늘 짧은 청바지에 민소매 차림이었지만, 웃는 모양으로 잘게 쪼개어진 주름과 아래로 축 늘어진 가슴이 나이를 짐작게 했다. 탄야는 소피를 친할머니처럼 따랐다. 소피는 탄야의 숱 없는 머리를 오래 빗어 양 갈래로 묶어주었고, 탄야도 낮잠 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칭얼대며 술이 올라 벌게진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소피는 장기 여행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이 콘도의 유일한 태국인 주민으로, 여자와는 그냥 친구 사이라고 했다. 그날 에어컨 바람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좁은 사무실에서 어깨를 맞댄 채 술을 마시는 동안 나는 몇 가지를 더 알게 되었다. 저녁이면 콘도로 돌아와 자연스레 술자리에 합석하는 남자는 여자의 남편이 아니라 남자친구라는 것, 소피가 밤중에 불콰하게 취한 채 애타게 전화를 걸어 찾는 사람은 그녀의 미국인 애인이라는 것―여자는 그가 바람둥이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콘도의 주인은 싱가포르 사람으로, 여자가 여행사에서 일할 때 손님으로 만나 친구가 되었으며 아시아 곳곳에 이런 건물이 여럿 있는 부자라는 것, 콘도의 이름 ‘리틀 선샤인’은 탄야를 유독 예뻐했던 그가 아이를 위해 붙였다는 것.
   여자는 집주인이 가끔 이 콘도의 존재를 잊어버린다고 하며 웃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나는 여행자의 특권으로 두 번 자문하는 대신 기꺼이 이 이상한 관리인 가족을 받아들였다.
   한 층에 여섯 호씩, 모두 열여덟 개의 방을 가진 자그마한 콘도였다. 주차장을 겸하는 마당 구석에 낡은 선배드 몇 개와 수영장이 있었다. 자유형으로는 네 번, 접영으로는 두 번 팔을 휘두르면 벌써 반대쪽 끝에 닿는 작은 수영장이었다. 불순물로 부연 물이 푸른색 타일 위로 흐릿흐릿 일렁였다. 여자나 그녀의 남자친구가 담배를 피워 물다 뜰채를 가져와 나뭇잎 같은 부유물을 건져내곤 했다. 수영 후엔 거품을 내 샤워를 해도 몸에서 염소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염소의 독한 냄새는 세균을 죽이면서 생겨나는 것이라던데, 그렇다면 리틀 선샤인의 수영장 물에는 죽여야 할 세균이 언제나 넘쳐나는 모양이었다.
   대부분의 주민은 수영장을 사용하지 않았다. 한 쌍의 독일인 노부부와 내가 종일 선배드를 차지하고 시간을 보냈다. 노부부는 서로 대화가 없었다. 할머니는 한 시간에 두 번쯤 물에 몸을 담근 채 서서 팔다리를 크게 흔들며 독창적인 운동을 했고, 할아버지는 벌건 반점이 번진 맨살을 햇볕 아래 내어놓고 낮잠을 잤다. 그리고 남는 시간 동안 모로 누워 각자 책을 읽었다. 나 역시 그들 곁에서 종일 책을 읽고 몸이 뜨거워질 때만 잠깐씩 물에 들어갔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숙소였다. 장기 투숙 할인, 최대 예산, 그리고 수영장 옵션을 입력하자 선택지가 큰 폭으로 줄었다. 수영장이 커 보이도록 앵글을 조절해 찍은 사진과 깔끔하게 정리된 객실 사진을 보면서도 기대는 없었다. 그런 것에 속지 않을 만큼은 여행 경력이 있었다. 숙소의 상태는 숙박비에 비례할 따름이었다. 나는 지도로 콘도의 위치를 확인했고, 도보로 시내까지 나갈 수 있다는 이유로 리를 선샤인을 선택했다.
   예상대로 방은 지저분했다. 바닥에 깔린 흰색 타일 틈마다 오래 묵은 때가 끼어있었다. 한 칸짜리 냉장고에서 밤잠을 설치게 할 만큼 거대한 소음이 났다. 침대의 매트리스는 딱딱했고 수압이 낮아 화장실의 변기 물에 늘 누런빛이 돌았다. 하지만 나는 불평하지 않았다.

2

   우선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실망할 일은 없고 드물게 만족할 일이 있었다.
   여행에서뿐만 아니라 생활을 하는 데도 그런 태도가 어느덧 기본이 되었다. 몇 해 전 한 문예지로 데뷔한 뒤로 나는 전업 작가 생활을 시도하고 있었다. 소설을 쓴다고는 했으나, 방 안에 앉아 인터넷을 떠돌며 시간을 죽였다. 입사 지원서며 대입 자소서를 닥치는 대로 받아 첨삭했고, 학생부종합전형에 제출할 독서 포트폴리오를 비슷비슷하게 만들어주고 돈을 벌었다.
   한겨울이나 한여름에 비행기 표를 끊는 것은 대학 시절 방학에 맞춰 여행을 떠나던 습관 때문이었다. 일 년 동안 모은 적금을 깨고 여행지를 골랐다. 비행기에서 내려 첫 숨을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벅차던 순간이 있었다. 혼자 걷다 못 견디게 쓰고 싶어져선 숙소에 틀어박혀 소설을 완성하던 밤들이 있었다. 여전히 짐을 챙길 때 노트북과 구상 노트,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볼펜을 챙기기는 했지만 좋은 것을 써 올 것이라는 다짐이랄까 기대랄까 하는 것은 먼 얘기가 된 듯했다.
   중부의 섬 따오를 거쳐 온 길이었다. 넉넉히 한 시간이면 오토바이로 구경을 마칠 수 있는 작은 섬이었다. 관광객이 많은 곳은 아니었다. 따오 근처에 넓은 백사장으로 유명한 섬이 있었다. 개발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던 따오는 그 덕에 깨끗한 바다를 찾아 돌아다니던 젊고 가난한 다이버들의 차지가 되었다. 지금은 각국의 다이버들이 정착해 숍을 운영하며, 역시 싼 가격에 다이빙을 즐기려고 찾아온 자국의 젊은 여행자를 맞았다. 작은 실수도 큰 사고로 이어지는 다이빙의 특성 때문에 여행자들은 모국어를 쓰는 강사를 선호했다. 따오의 숍들에는 다이버의 출신국을 알리는 국기가 저마다 붙어 있었고, 때문에 지구촌 테마파크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한국인 강사에게서 다이빙을 배우며 보름을 보냈다. 아침이면 숍으로 가 장비를 점검하고 잠수복으로 갈아입었다. 사람들이 모이면 작은 모터가 달린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갔다. 다이빙에서 중요한 것은 평정이었다. 호흡에 신경을 집중하고 차분히 부력을 조절할 것. 맑은 물속에서 산소통의 공기를 빨아들이고 내 쉬는 숨소리만이 선명했다.
   오후 동안은 느리게 산책하고 식당이나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멀리 바다가 더없이 맑게 빛나는 섬 전체에 조용히 무거운 소문이 떠다녔다. 건너 숍 수영장에서 한 관광객이 익사했다는 소문이었다. 다이빙 강습을 위해 설계된 수영장은 수심이 깊었다. 마침 장대비가 내리는 통에 오래 익사자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 일어난 다른 죽음도 있었다. 섬에서 오래 살아온 다이버들은 관광객들과는 달리 그 죽음에 한층 마음을 쓰는 것 같았다. 스웨덴 다이빙 숍 앞에 사진과 꽃, 맥주와 말보로 담배 따위가 놓인 추모 공간이 마련되었다. 섬에서 십 년을 살며 일했고 잠수병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뒤에도 강습을 계속해왔다는 그는 밤중에 숙소에서 목을 맸다. 식당에서 만난 옆 테이블 손님이며 마사지샵 종업원들이 목소리를 낮춰 소식을 전해주었다.
   숙소에 머물 때면 옆방의 젊은 호주인 커플의 교성을 들어야 했다. 그들은 늘 수영복 차림으로 모래를 잔뜩 묻힌 채 바다에서 돌아왔고, 문을 걸어잠그기가 무섭게 서로를 안았다. 나는 천장을 바로 보며 누운 채 모래와 소금기가 까슬까슬한 살결을 생각했다. 그리고 불현듯 섬을 떠나는 차편과 숙소 정보를 찾아보았던 것이다.

3

   저 사람이랑 이야기해 봤어?
   여자가 턱짓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한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로비를 지나고 있었다. 내 옆방에 머무는 이로, 여자에 따르면 한국 사람이었다. 온통 뜨겁고 눅눅한 날씨에도 그는 늘 긴 셔츠 차림이었다. 포마드로 깔끔하게 넘긴 머리 스타일이 언뜻 나이 들어 보였지만, 눈길에 어린 장난기와 입꼬리에 붙은 볼살이 앳되었다. 동안이라 해도 서른은 되지 않을 듯싶었다. 나는 소피가 섞어준 하이볼을 마시며 발을 까딱거렸다. 탄야가 휴대폰을 찾느라 허리께에 달라붙어 내 바지 주머니를 온통 헤집었다. 나는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로 주머니를 가볍게 두드려 보였다. 아이가 태국어로 재잘거리며 불만을 표했다.
   그는 석 달째 콘도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주민들 대부분이 직업이나 신분이 명확지 않은 외국인이었고, 마약 거래 문제로 경찰이 들이닥친 일부터 술 취한 주민 간의 싸움까지 크고 작은 사고를 여럿 겪어온 탓에 여자는 은근히 동태를 살피는 일에 이골이 난듯했다. 남자는 미리 불러둔 택시에 곧장 올라탔다.
   아마도 섹스 투어리스트.
   내 말에 소피가 웃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매일 죽은 듯 방에 머무르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차려입고 길을 나서는 사람이니 지나친 오해도 아니다 싶었다.
   태국 오는 남자들, 전부 섹스 투어리스트.
   소피가 타령을 하듯이 리듬을 붙여 중얼거렸다.
   리틀 선샤인에서 나는 하룻밤을 같이 지낼 여자를 데리고 숨어들어오는 주민들을 자주 마주쳤다. 노후 이민이나 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왔다던 사람도, 여행을 하며 일을 한다는 프리랜서와 디지털 노마드도 마찬가지였다.
   태국을 찾은 것은 네 번째였다. 여행자 거리와 호텔, 관광지를 바쁘게 오갈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 여행에서였다. 여행자 거리에 있는 바에서도 거리낌 없이 여자를 사곤 하는 서양인들과 달리, 한국 사람들은 보다 으슥한 장소에 모였다. 한 번 알아채자 원치 않아도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젊은 직장인은 물론, 내 또래나 보다 어린 대학생까지도 길거리에서, 클럽에서 여자와 흥정을 했다. 몇 번의 검색 끝에 짧은 성관광이 한국 커뮤니티에 널리 퍼진 문화임을 알게 되었다. 게시판에는 한국에서부터 미리 데이트 어플을 깔고 여자와 약속을 잡는 법이며, 한국인의 취향에 맞는 서비스를 하는 업소 추천과 하룻밤에 적당한 금액 정보, 물 좋은 클럽의 이름이 넘쳐났다. 성관광이라고 하면 중년 남성이 비행기에 골프채를 싣고 날아가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일탈하는 일을 떠올렸던 내게는 신선한 일이었다. 외국어 의사소통에 거리낌이 없고 자유여행에 익숙한 세대가 새로운 시장을 열고 있었다.
   태국 사람들은 젊은 한국 사람 오래 돌아다니면 나쁜 일 한다고 생각해. 뉴스에 많이 나와.
   여자는 겜블, 일리걸, 하고 덧붙였다. 불법 도박사이트 이야기인 듯했다. 태국에 서버를 둔 도박사이트에 대한 뉴스는 한국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돈을 엄청 많이 벌걸. 좋은 오피스텔에 살고 있겠지.
   나는 낡고 자그마한 리틀 선샤인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술에 취한 소피가 사무실 밖으로 나가 외벽에 기댄 채 울며 전화기를 붙잡고 통화를 시작했다. 여자의 남자친구는 막 손가락을 빨며 졸기 시작한 탄야에게 조심스럽게 기저귀를 채웠다. 소피가 사다 놓은 위스키병은 모두 비어있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콘도를 나섰다. 검게 젖은 아스팔트 위로 콘도 간판 불빛이 누렇게 부서졌다. 주변은 온통 주택가였다. 낮은 단층 주택과 빌라가 이어졌다. 사방에 놓인 부서진 보도블록 조각이 자꾸만 걸음을 막고 헐거운 슬리퍼를 벗겨냈다. 부족함 없이 쏟아지는 볕과 비를 맞고 자란 남국의 가로수가 거대한 뿌리를 뻗어내며 보도를 망가뜨렸다. 나는 길 끝의 슈퍼마켓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카운터에 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던 아이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얼굴에 졸음과 피로가 잔뜩 어려 있었다. 아이의 머리 위쪽으로 진열된 리큐어가 보였다. 나는 수입 브랜드의 위스키를 살까 망설이다가 그만두고 소피가 늘 마시는 태국 브랜드의 것을 골랐다. 아이가 병 위에 쌓인 먼지를 손끝으로 털어내고 비닐봉투를 뜯어 술을 담아주었다.
   돌아와 보니 사무실의 불은 꺼져있었다. 유리창 안쪽으로 먹고 마신 것이 그대로 어질러진 테이블이 보였다. 나는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했다. 닫힌 소피의 방 문고리에 술이 담긴 비닐봉지를 걸었다.

4

   여자가 내 파우치를 뒤집어 쏟았다. 캐리어 깊숙이 넣어두었던 화장품을 꺼낸 것이 얼마 만인가 싶었다. 소피가 젤 아이라이너 뚜껑을 열어 손등에 줄을 그어보았고, 여자는 립스틱을 코 밑에 댄 채 킁킁 냄새를 맡았다.
   한국 화장품 엄청 인기 많아.
   소피가 주머니에서 립틴트를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에뛰드 하우스의 스테디셀러 제품이었다.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국 청소년에게 인기가 많은 저렴한 틴트였다. 작고 주름진 입술에 신중하게 틴트를 눌러 바르는 소피를 보다 웃음이 터졌다.
   화장하고 놀러 가야 해. 너는 너무 집에만 있어.
   소피가 거듭 강조했다.
   우리 세 사람은 사무실의 타일 바닥에 주저앉았다. 화장품 파우치를 가운데에 놓고 각자 손거울을 든 채 집중을 시작했다. 탄야는 바닥에 놓인 화장품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내가 집어드는 것마다 곧장 빼앗으려고 손을 뻗었다. 나는 핑크색 립스틱을 꺼내 탄야의 입술에 발라주었고, 손끝에 묻혀내 두 볼에도 문질렀다. 탄야가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얼굴을 살펴보더니 만족스러운 듯 사진을 찍어댔다.
   익숙지 않은 화장품 탓인지, 화장을 마친 여자와 소피의 얼굴은 얼룩덜룩하고 요란했다. 나는 면봉으로 여자의 뭉친 마스카라를 털어주고, 소피의 눈두덩에 뭉친 섀도를 덜어냈다. 눈가 주름의 계곡마다 화장품의 자잘한 펄이 끼어들었다.
   여자의 남자친구에게 탄야를 맡기고 우리는 밖으로 나섰다. 여자가 주차장 구석에서 오토바이를 끌고 나왔다. 깡마르고 키가 작은 여자가 운전하기에 너무 큰 바이크였다.
   셋이? 여기에?
   내가 물었고, 여자와 소피는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바이크 위에 올라타 바싹 몸을 붙인 채 내 엉덩이가 놓일 자리를 만들어내 보였다.
    여자와 소피는 소고기 국숫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천장에 달린 거대한 실링팬이 실처럼 늘어진 먼짓덩어리와 함께 회전하고 있었다. 쿰쿰한 음식 냄새가 더운 공기에 실려 흘러 다녔다. 벽에 매달린 작은 텔레비전에서 저녁 드라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간판과 메뉴판에는 온통 태국어뿐이었다. 혼자라면 엄두를 못 냈을 식당이었다. 소피가 막 주방에서 나온 세 그릇의 국수를 나란히 늘어놓고 빨간 고추와 고수, 액젓을 나누어 넣어주었다.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국수를 먹었다.
   클럽은 식당 맞은편이라고 했다. 식당 앞에 바이크를 그대로 세워둔 채로 걸음을 옮겼다. 술집이나 식당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거리였다. 어둠 속에서 요란한 네온사인이 홀로 빛나고 있었다. 클럽 입구에 서 있던 가드는 소피를 보더니 곧장 몸을 비켜주었다. 소피는 날씬한 다리를 쭉쭉 뻗어 익숙한 듯 계단을 내려갔다. 밥을 얻어먹은 탓에 입장료를 계산하려고 가방을 뒤적이던 나는 여자의 재촉에 뒤늦게 발걸음을 옮겼다. 클럽 안은 서늘했고, 담배 연기로 온통 매캐했다.
   소피가 여자와 나를 한쪽 테이블에 앉혀놓고 바에서 맥주를 세 병 사서 돌아왔다. 우리는 맥주를 들고 병목을 서로 부딪쳐 건배했다. 클럽 안에 있던 여자 몇이 소피를 발견하고 우리가 앉은 쪽으로 왔다. 여자들은 소피처럼 늙었거나 혹은 조금 젊었다. 짧은 청바지나 치마를 입은 옷차림도 소피와 비슷했다. 아주 젊은 축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룹을 지어 저 안쪽에 따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나이 든 여자들이 소피와 이야기를 나누며 나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손을 내밀어 팔뚝 피부며 머릿결을 매만졌다.
   예쁘다고 하는 거야.
   소피가 웃으면서 말했다.
   여자들은 담배를 나누어 물고 불을 붙이더니 서서히 스테이지 쪽으로 각자 흩어졌다. 클럽 안에는 나이 든 태국 남자들과 젊은 서양 남자들이 뒤섞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여자들은 그들 곁에 서서 말을 걸거나 술을 청했다.
   여자와 소피가 잔을 비우라고 재촉했다. 그러고는 클럽 가운데로 나를 이끌었다. 소피는 머뭇거리는 내 허리에 양손을 올려 몸을 움직였다. 우리 곁으로 다가온 늙은 남자가 나를 뚫어져라 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내 귓전에 입을 갖다 대고 무어라 말을 걸었다. 엉성하게 성조를 흉내낸 태국어였다. 내가 한참이나 알아듣지 못하자 그가 영어로 다시 질문했다. 어디에서 왔니? 태국사람 아니니? 상황을 알아차린 소피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고 남자와 내 사이에 끼어들어 거리를 벌려놓았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때 한 무리의 남자들이 입구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클럽 안의 다른 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차림과 외모에 언뜻 시선이 갔다. 익숙한 실루엣에 눈을 가늘게 뜨자 무리 중에 섞인 남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리틀 선샤인의 한국인이었다. 여자도 그를 알아보았는지 고개를 그쪽으로 둔 채 손만 뻗어 나를 툭툭 쳤다. 그들은 클럽의 가장 큰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리틀 선샤인의 남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그에게 돈을 건넸다. 남자가 조니워커 블랙을 두 보틀 주문했다. 테이블에 얼음과 음료, 술잔이 차차 채워졌다. 기껏해야 맥주 한 병씩을 들고 돌아다니는 손님들 사이에서 본격적인 세팅이 갖추어진 그 테이블은 시선을 끌었다. 근처에 앉은 젊은 여자들이 흘끗흘끗 눈길을 두는 것이 느껴졌다. 테이블의 다른 이들은 리틀 선샤인의 남자보다도 어려 보였다. 그들이 쭈뼛대는 사이 리틀 선샤인의 남자가 술을 섞어 돌렸다.
   소피와 나, 여자는 나란히 앉은 채 반대편의 테이블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리틀 선샤인의 남자는 어쩐지 거들먹거리는 자세로 소파에 몸을 깊게 묻고 앉아 떠들어댔고, 다른 이들은 클럽 안을 어색하게 두리번거렸다. 마침내 젊은 여자들이 하나둘 그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어린 남자들은 그때마다 리틀 선샤인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거나 손을 한 번 휘젓는 식으로 지휘를 내렸다. 그에 따라 여자가 테이블에 앉거나 돌아갔다. 남자가 아직 파트너를 앉히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 몸을 기울이고 귓속말과 손짓으로 데려올 여자를 정해주었다.
   쟤가.
   여자가 입을 열었다.
   쟤가 뭘 가르치나 봐.
   그러게.
   내가 대답했다.
   선생님이네.
   내 말에 소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거를 쓰면 되겠네. 네 소설.
   소피가 덧붙였다.

   나는 어렵지 않게 그의 블로그를 찾아냈다. 치앙마이, 밤 문화, 그리고 그날 다녀온 클럽의 이름과 클럽이 있던 거리의 주소를 조합하자 가장 상단에 게시물이 떴다. 블로그는 치앙마이의 온갖 클럽이며 업소를 소개하는 게시물로 가득했다. 나는 전에도 그런 블로그를 본 적이 있었다. 치앙마이보다 훨씬 더 많은 유흥업소가 있는 방콕에서였다. 그들은 성관광을 목적으로 태국을 찾는 이들을 위해 가이드 역할을 하고 돈을 벌었다. 술집에서 바가지를 쓰지 않기 위해, 여자에게 높은 비용을 청구 당하지 않기 위해, 또는 밤거리에서 위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또 모두가 찾아갈 수 있는 그저 그런 업소가 아닌 숨겨진 로컬 업소에 찾아가기 위해 자신이 필요하다고 광고했다.
   경쟁자가 많지 않은 치앙마이에 자리를 잡은 것이 묘수였는지, 그의 사업은 나름대로 잘 굴러가고 있는 듯했다. 게시물마다 하룻밤 가이드 비용을 문의하는 댓글이 여러 개였다. 남자는 덕분에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간다는 손님의 메시지를 캡처해 후기 게시물도 여럿 작성해 두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 성실함에 감탄할 뻔했다.

5

   어느 저녁 샤워를 하던 중 팟,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전등이 꺼졌다. 온수기 역시 작동을 멈췄고 곧 찬물이 쏟아졌다.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끼며 비눗기를 대충 씻어냈다. 수건으로 몸을 감고 나오자 좁은 방안도 온통 어둠에 잠겨있었다. 에어컨이며 냉장고도 기척 없이 조용했다. 신중하게 젖은 발을 닦고 걸음을 옮겼다. 침대 위에서 휴대폰을 찾아내 플래시를 켰다. 샤워하기 전 벗어둔 원피스가 바닥에 구겨져 있었다. 나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몸에 옷을 걸쳐 입고 복도로 나갔다. 건물뿐만 아니라 동네 전체가 정전이었다. 몇 블록 떨어진 거리의 불빛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이 맞은 첫 밤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침대에 닿은 피부가 시시각각 녹아내리는 듯했다. 미처 마르지 못한 머리카락 위로 다시 땀이 배어나 축축했다. 휴대폰을 켜보니 열한 시를 좀 넘긴 시간이었다. 와이파이 역시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어젖혔다. 바깥의 공기도 덥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얼굴을 내밀고 서 있는 동안 가만가만 바람이 불어와 땀이 조금 식었다. 같은 층에도 문이 열린 방이 여럿이었다. 옆방의 한국인 남자 역시 문을 열어둔 채였다. 희미한 노트북 불빛이 복도 쪽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정적과 어둠 속에서 아득하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래층의 소피와 탄야였다. 탄야는 잠투정을 하느라 이따금 짜증스럽게 칭얼댔고, 소피는 노랫가락에 탄야의 이름을 넣어 자장가를 불렀다. 언젠가 여자에게 탄야의 이름이 무슨 뜻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럭키라고 했던가 해피라고 했던가. 맥 빠지는 대답이었지만, 여자와 내가 평소 사용하는 영어의 수준을 떠올려보면 그보다 복잡한 뜻은 전달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소피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이 러브 유
   탄야가 어린 목소리로 따라 했다.
   아이 미스 유
   소피가 다시 말하고 탄야가 따라 했다.
   아이 니드 유
   소피가 말하고 탄야가 따라 했다. 둘은 곧장 다시 아이 러브 유, 로 돌아갔다. 문장 연습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더운물에 젖은 듯 무거운 잠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었다.

정지향

함께 여름을 보낸 사람들은 같은 결을 나눠 새기게 된다고 믿어왔습니다. 각자의 마스크 속에서 보낸 이번 여름은 어떻게 기억될까요?

2020/08/25
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