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유재는 방바닥에 앉아 허리를 수그리고 있었다. 양손으로 발을 잡은 채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모습이 커다란 고양이 같았다. 유재는 집요하게 발바닥을 살피는 중이었다.
   “아직도 안 나왔어?”
   유재가 그제야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양말을 벗어 현관문 앞에 놓인 세탁용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외투와 남방, 청바지를 차례로 벗어 오직 옷을 걸어두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의자에 얹었다. 유재는 다시 내게서 등을 돌리고 발바닥을 들여다봤다.

   그제 저녁에 유재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나를 불러 자신의 발바닥을 좀 보라고 말했다.
   “가시가 박혔어.”
   우리는 오래된 빌라에 함께 살았는데, 방바닥에는 건물이 지어질 당시의 유행대로 목재 장판이 깔려있었다. 거기서 나무 부스러기가 조금씩 떨어져 나왔다. 그런 작은 부스러기가 발에 박힌 모양이라고 유재는 말했다. 다만 내 눈에는 가시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때만 해도 나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유재는 답답해하면서 아주 작은 가시라고 진지하게 다시 설명했다. 오른발로 딛고 설 때면 통증이 있다고, 가시가 살갗 안쪽을 파고든다고.
   “그럼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안 돼. 요즘 병원이 얼마나 위험한데.”
   위험이라면 코로나바이러스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유재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에 대해, 코로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고 또 죽일 것인지 한참 떠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 기세에 질려서, 그렇다면 병원에 가지 않아도 좋으니 발을 가만히 내버려 두라고 말하자 이번에는 가시를 뽑지 않는 일의 위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피부에 박힌 가시를 그냥 두었다가는 피부가 괴사할 수 있다고, 그렇게 되면 발바닥의 일부를 도려내야 한다고 유재는 말했다. 그리고 구글에서 검색한 온갖 끔찍한 이미지를 내게 보여주었다. 그런 대화가 이틀 동안 반복됐다. 어젯밤에 유재는 한층 더 심각해져서, 가시가 박힌 곳에 얇게 썬 감자를 붙이고 베이킹소다를 뿌리는 등 인터넷에서 찾아낸 방법을 두 가지나 시도해보았지만 효과가 전혀 없었다고 투덜댔다. 그리고 오늘밤에는 눈썹을 다듬을 때 사용하는 작은 칼로 발바닥의 살갗을 조금씩 베고 있었다. 나는 유재가 엑봄증후군의 초기 증상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엑봄증후군이란 내가 오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낸 단어로, 자신의 피부 속에 기생충이 산다고 믿는 일종의 망상증을 뜻했다. 다만 유재는 가시가 박혔다고 주장했을 뿐이고, 바닥재에서 자잘한 나무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오는 것은 사실이니까, 어쩌면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작은 가시가 유재의 발바닥에 박혀 있을지도 몰랐다.
   “좀 보자.”
   나는 유재 앞에 마주 앉아서 유재의 통통한 발을 들어올렸다. 열십자 모양으로 벌어진 상처가 보였는데, 상처 안쪽에 피가 고여 있었다. 나는 유재가 자신의 몸에 그렇게 깊고 집요한 상처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가시가 더 깊게 들어갔나봐.” 유재가 말했다.
   “이제 그만 해. 가시가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유재의 발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유재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 다시’ 해볼 작정이라고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유재의 발바닥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유재는 이를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얼빠진 표정으로 일어서서 반창고를 찾았다. 가시를 뽑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나머지 아픈 것도, 발에서 피가 나는 것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정말로 문제는 가시가 아닐지도 몰랐다.
   “오늘 영화 볼까?”
   내가 말했다. 우선 유재의 관심을 가시가 아닌 다른 것으로 돌리는 게 우선일 것 같았고, 그런 데에는 영화만 한 것이 없었다.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마다 영화를 한 편씩 보곤 했는데, 둘 다 그 시간을 좋아했다.
   “좋아.”
   유재가 커다란 반창고를 발바닥에 붙이며 대답했다. 나는 유재에게 영화를 좀 골라 달라고 부탁한 다음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유재와는 글쓰기 수업을 듣다가 알게 되었다. 성 소수자 인권단체에서 FTM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수업을 열었고, 나와 유재는 수업에 참가했다. 수업은 두 달 동안 진행되었다. 처음 한 달 동안에는 수강생 모두가 이런저런 산문집을 함께 읽었고, 나머지 한 달 동안에는 돌아가면서 각자가 쓴 글을 발표했다. 유재는 맨 마지막 순서였다.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거나 요즘의 생활에 대해서 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유재는 프랑스에서의 나날에 대해 썼다. 글 속에서 유재는 자유로웠다. 유재는 ‘앙투안’이란 새로운 이름을 가졌고, 매일 자전거를 타고 마로니에 나무가 심긴 공원을 돌아다녔다. 동네 주민들과 친구가 됐고, 멋진 애인도 사귀었다. 유재는 매일 밤 애인과 함께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 히어로물도 블록버스터도 아닌, 유재의 말에 따르면 정말 영화다운 영화들을 관람했다. 언어 장벽이나, 인종차별 문제, 이주에 드는 비용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 글은 판타지 소설이기도 하거든요.”
   유재는 자신의 글을 낭독한 다음 그렇게 덧붙였다. 나는 유재의 에세이가 마음에 들었다. 그가 글을 낭독한 다음 쑥스러운 표정으로 수강생들을 둘러보았을 때에는 귀엽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수업이 끝난 뒤 가진 뒤풀이 자리에서 나는 유재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 자리가 파할 즘 유재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유재는 흔쾌히 번호를 알려주었다. 서로 친구가 되는 자리였으니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법도 한데, 유재가 내 핸드폰에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동안 나는 왠지 들떠 있었다. 글쓰기 수업이 종강한 다음날부터 우리는 거의 한 달 동안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처음에 우리는 함께 들었던 수업에 대해서 얘기했다. 수업의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 참여자들이 발표한 글 중 가장 좋았던 글과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글을 말했고, 나중에는 잠들기 전에 잘 자라는 인사를 하게 됐다. 우리의 대화는 예전의 삶으로까지 번져나갔다. 나는 곧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유재와 함께 수강했던 글쓰기 수업에서조차 글로 적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유재에게 털어놓았다. 스무 살에 남성 호르몬 투여를 시작한 것부터,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 공부한 것, 그리고 그때껏 누구와도 성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다는 것 등을 나는 유재에게 모두 말했다. 유재와 대화할 때면 솜과 천으로 만들어진 한없이 푹신한 세계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감각은 유재를 한 달 만에 다시 만났을 때에도 변함이 없었다.

   내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유재는 침대에 노트북을 가져다놓고, 그 앞으로 맥주와 과자, 땅콩을 담은 쟁반을 옮겨놓고 있었다. 영화를 볼 준비였다. 우리는 침대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영화를 재생시킨 다음, 이것저것 먹고 마시다가 양치도 하지 않고 잠들어버리곤 했다.
   “영화는 골랐어?”
   내가 묻자 유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 헤드에 기대앉은 유재는 조금 전보다 기분이 풀어진 것 같았다.
   “응, 『아가타와 끝없는 독서』”
   “그게 제목이야?”
   “응, 프랑스 영화야.”
   유재가 프랑스 영화를 고르다니,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영화를 보던 우리의 나이트 루틴은, 지난가을 우리가 함께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조금 학구적인 성격을 띠었다. 우리는 프랑스어 실력을 키우고, 프랑스 문화를 익혀보자는 취지에서 프랑스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가끔은 한국어 자막도 켜지 않은 채 힘겹게 영화의 내용을 따라잡기도 했다.
   “오늘은 조금 지루한 거 볼 거야.” 유재가 말했다. “마지막에 봤던 거 기억나지? 그거보다 더 지루할 수도 있어.”
   그러나 유재와 마지막으로 봤던 영화가 나는 떠오르지 않았다. 젊은 게이 커플이 등장하는 영화였다는 것, 그리고 연인 중 하나가 원피스를 입은 채 자전거를 탔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났다. 아마 끝까지 보지 못하고 잠들었던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유재가 고른 프랑스 영화를 대부분 끝까지 보지 못했다.
   “지루하면 잘 거야.”
   내가 말했다. 유재가 영화를 재생시켰고, 화면 가득히 프랑스어가 인쇄된 종이가 보였다. 나는 화면에서 아는 단어를 찾으려다가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진정되어 어학원이 다시 개강한다고 해도 더는 프랑스어를 배우지 않을 테니까.

   유재가 프랑스 행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데에는 이런저런 이유가 함께 작용했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프랑스에서 지낼 비용이 마련되었다는 것이었다. 작년 6월 유재는 아버지의 사망보험금을 수령했는데, 제법 큰돈이었다. 유재는 그 돈으로 함께 프랑스에서 한 해를 보내면 어떻겠냐고 내게 물었다. 한 해가 어렵다면 여섯 달만, 그마저 힘들다면 한 계절만이라도 좋다고 했다. 여기보다 더 친절한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를 한번 겪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즈음 유재는 법원에 성별 정정을 신청했다가 이를 반려당했고, 제 나름의 활로로 프랑스를 떠올린 것 같았다. 유재는 프랑스에서 지낼 수 있는 구체적인 비용을 알아보았다. 생활비와 집세, 현지 어학원 등록금을 계산했고, 어학원 사이트나 프랑스 이주민 커뮤니티에서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마르세유나 디종 정도의 도시라면 그럭저럭 한 해를 보낼만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재의 말대로 영화는 무척 지루했다. 화면 속에서 실내 풍경이 아주 천천히 지나갔고, 나중에는 바닷가의 풍경이 보였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스산한 해변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내레이션으로 쉼 없이 흘러나왔는데, 두 사람이 어디서 이 대화를 주고받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누가 이런 걸 만들었어?”
   “마르그리트 뒤라스. 원래는 소설가야.”
   “소설가인데 영화도 만들어?”
   “응.”
   예전 같으면 영화에 집중할 수 없을 만큼 영화와 뒤라스에 대해 이야기했을 테지만, 오늘 유재는 거기서 설명을 그쳤다. 화면이 천천히 바뀌며 화면 속에 중년의 여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내레이션을 전하는 사람과 같은 인물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넌 이거 다 봤지? 결말이 어떻게 돼?”
   나는 내레이션이 수다스럽게 흘러나오는 화면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몰라. 기억이 안 나.” 유재가 말했다. “뭐, 결말이 중요한 영화는 아닐 거야.”
   나는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맥주 한 캔을 다 마셨다. 영화는 계속 재생되었고, “이 고통”, “내 사랑” 등 짧고 단순한 프랑스어 구절이 귀에 들어왔다. 아주 지루한 듣기 평가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유재가 침대 헤드에 기댄 채로 나보다 먼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나는 일어나서 우그러진 맥주 캔이 놓인 선반을 치우고, 유재를 침대에 바로 눕혔다. 그리고 혼자서 영화를 계속 봤다. 유재의 말처럼 지루한 영화였다. 내레이션으로 등장하는 두 사람이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가더니, 아무런 스토리도 결말도 없이 영화가 끝나버렸다. 나는 노트북을 침대 아래로 내려놓고 수면등을 껐다. 그리고 잠시 뒤에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유재의 가시를 뽑을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방바닥에서 작고 가느다란 나무 부스러기를 뜯어냈다.

   프랑스에서 잠시 지내보자는 유재의 제안을 수락한 건 지난해 가을에 일어난 두 가지 사건 때문이었다. 트랜스젠더 군인을 강제로 전역시킨 사건이 첫 번째였고,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대 입학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동이 두 번째였다. 한창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알아보던 유재에게도 그 두 가지 사건은 제법 큰 기폭제가 됐다.
   “여기는 희망이 없어.”
   그즈음 유재는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자신은 프랑스로 가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고, 굳이 내가 동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내가 가지 않으면 혼자 떠날 것이며, 가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유재가 그러지 못할 것을 알았다. 사실 유재는 그동안의 삶을 잘 꾸려왔다고 말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별다른 노동을 하지 않고서 부모님이 부쳐주는 생활비로 살아왔다. 제법 오랫동안 프랑스로 가고 싶다고 소망했음에도 그때껏 별다른 준비를 해놓지도 않았다. 나는 그런 유재가 아무런 연고 없는 외국에 가서 혼자서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아마 내심으로는 유재 역시 같은 생각임을, 그래서 내가 함께 떠나주길 바라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내가 프랑스에 함께 가겠다고 말했을 때 유재는 기뻐했다. 우리는 함께 프랑스어 학원을 등록했고, 등록을 마치고서는 마트에서 저가 프랑스산 와인을 사 와서 함께 마셨다. 유재는 술에 취한 채 우리가 프랑스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떠들어댔다. 우리는 에펠탑을 구경할 것이고 몽마르트르 언덕을 걸을 것이고, 일주일쯤 여유를 두고 루브르 박물관을 돌아다닐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바게트를 사러 갈 것이고, 이웃들에게는 우리를 연인으로 소개할 것이다.
   “진정해. 일 년만 있을 거니까.”
   “가보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지.”
   물론 나도 그러기를 바랐다. 유재의 말처럼 프랑스가 우리에게 친절한 나라이기를, 그래서 막상 마르세유에서 일 년을 보낸 뒤에는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되어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우리가 떠나기 전에 코로나바이러스가 먼저 프랑스에 도착했고, 우리는 프랑스에 가겠다는 계획을 접었다. 코로나가 전 세계로 번져나가는 동안, 나는 프랑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지켜봤다. 유재가 ‘조금 더 친절한 세계’라고 부르던 나라에서 일어난 혐오 사건들을 빠짐없이 찾아보았다. 아마 유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일들에 대해 한 번도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네이버 뉴스나 유튜브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알고 있었다.

   “유재야, 일어나 봐.”
   나는 형광등을 환하게 켠 다음 유재를 흔들어 깨웠다. 유재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이것 봐. 내가 가시를 뽑았어.”
   나는 유재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가시가 담긴 투명한 지퍼 백을 유재에게 건넸다. 유재는 한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입을 벌린 채 거의 텅 빈 것처럼 보이는 지퍼 백을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어떻게 한 거야?”
   유재는 내가 담아놓은 그 작은, 먼지 같은 나무 부스러기를 찬찬히 살폈다.
   “좀 찾아보니까, 잠들었을 때 가시를 뽑기가 더 쉽대.”
   유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유재의 발을 소독하고, 상처에 다시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이제 괜찮아?”
   “그런 것 같아. 안 아픈 것 같아.”
   유재는 그렇게 말하면서 지퍼 백을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
   “이제 괜찮을 거야.”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불을 끄고 다시 침대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내일이면 유재는 왼발에, 아니면 등이나 엉덩이에 가시가 박혔다고 할지 몰랐다. 아니면 가시보다 더 끔찍한 것이 제 몸에 들어갔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 다만 오늘 밤에 그는 편안할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유재의 따뜻한 몸을 껴안았다. 그리고 잠 속으로, 솜과 천으로 만들어진 포근한 세계로 떨어졌다.

※ 참고문헌
마르그리트 뒤라스 감독, 『아가타와 끝없는 독서 Agatha Et Les Lectures Illimitees』, 1981.


서장원

2020년 연초부터 봄까지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제가 보고 느낀 것에 대한 독후감 같은 글입니다.

2020/05/26
3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