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
   ―모리스 블랑쇼 『기다림, 망각』에 의한



   당신은 기다리고 있군요.―반짝이고 있어요.―회피하고 있습니까?―반짝임 속에 있어요.―물비늘이 돋는군요. 이제 곧 어둠이 오겠군요.―반짝임은 위태롭네요.―당신은 어둠을 기다립니까?―아니요, 여기 반짝이는 시간에 머물고 싶어요. 반과 짝 사이에 어느 것이 빛나는 쪽이고 어느 것이 어두운 쪽인가요?―곧 모두 어둠이 될 겁니다.―나는 다만 여기 이 시간의 어두운 쪽에 있고 싶어요. 빛과 어둠이 끝없이 몸을 바꾸는 이곳. 끝없이 어두운 쪽으로만 몸을 옮기며.―당신은 기다립니까?―나는 분주하고. 지연시키고 있어요.―기다림이 끝났습니까?―반과 짝 사이가 한없이 길어지면 좋겠어요. 어두운 쪽으로 몸을 옮겨 다니기엔 사이가 너무 짧아요.―초조하군요?―반짝이고 있어요.―어두운 쪽은 반짝임 안입니까, 반짝임 바깥입니까?―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려 하고 있어요.―그 사람은 죽음을 기다립니까?―그 사람은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아요.―확신합니까?―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어요.―기다림은 언제나 아무것도 기다립니다.―이 물가를 떠나고 싶지 않아요.―왜 당신입니까?―의사가 말했어요. 곧 죽음이 찾아올 것입니다. 대기하세요.―왜 기다립니까?―내겐 선택권이 없어요. 의사는 내게 선택하라고 했죠. 그 사람의 목숨을 연명할지 말지.―당신은 선택했나요?―내겐 선택권이 없어요.―당신이 연명을 선택하지 않은 건 확실하군요.―다른 쪽을 선택했더라도 나는 대기했을 거예요.―그랬다면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시간이 그 사람 안에서 연명했겠습니다?―죽음만이 기다림을 끝냈을 수 있어요.―누가 기다립니까?―그 사람은 아닙니다.―죽음은 당신에게 오지 않습니다.―죽음은 그 사람을 끝낼 겁니다.―죽음이 기다림의 의지가 없는 사람의 기다림을 끝낼 수 있습니까?―나는 이 물가를 떠나고 싶지 않아요.―죽음이 당신에게 오지 않아도 당신의 기다림은 끝납니까?―눈이 부시군요.―밤이 당신의 눈을 덮칠 겁니다.―반과 짝 사이 반짝과 반짝 사이 거기 있고 싶을 뿐.―사라지고 싶은 겁니까?―반짝임 속에서 다만 내가 보이지 않고 싶을 뿐.―사라지진 못합니까?―내겐 선택권이 없어요.

***

   당신은 기다리고 있군요.―양손에 짐을 들고 공중전화부스 앞에서 붙박이로 서서.―지루하진 않은가요. 얼굴이 일그러져 있군요.―나한텐 기다림밖엔 남지 않은 것 같아요.―그는 오지 않습니까?―적어도 여섯 시간 동안은.―왜 여섯 시간입니까?―몰라요. 왜 여섯 시간인지는.―그럼 한 시간이어도 상관없고 일 분이어도 상관없지 않습니까?―이건 실제니까요. 이건 내가 임의로 바꿀 수는 없어요.―당신은 과거입니까?―현재입니다. 여섯 시간 안에서.―여섯 시간은 여섯 시간이어야 하는군요. 하지만.―나는 여섯 시간 동안만 기다립니다. 여섯 시간 동안만은 여섯 시간 동안 끝나지 않아요. 여섯 시간 동안 안에 갇혀서 영원히 기다림을 반복하는 것만 같이.―기다리는 그는 왜 오지 않습니까?―모릅니다. 알아도.―그가 다른 사람과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겁니까?―모를 겁니다. 알아도.―그가 다른 사람과 육체를 맞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척하는 겁니까?―모른다는 것도 내 의지는 아닙니다. 그저 여섯 시간 동안 그가 없음을 견디고 있는 겁니다. 그가 여기 없다는 사실만을 나는 알 겁니다. 여기 이 시간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은 나는 몰라요. 아직. 줄곧 아직이기만 할 겁니다.―그가 다른 사람과 육체를 맞대고 있는 동안 당신을 잊었습니까?―영원히 그를 알 길은 내게 주어지지 않아요. 알아도.―그에게 육체만 남은 시간은 여섯 시간인가요?―모릅니다. 내 여섯 시간만 놓여 있어요. 공중전화 부스 앞이며. 그에게 닿지 않아요. 사람들은 지나가고. 나는 양손이 무거워요. 무겁다는 느낌만 있지 내 양손에 무엇이 들렸는지는 잊었어요.―그가 마침내 오겠습니까?―그런 생각이 지워집니다. 기다리는 이유가 희미해지고 그의 얼굴이 희미해지고.―그와 당신은 어떤 관계입니까?―몰라요. 모르게 되었어요. 모를 거예요. 그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어요.―그는 당신의 아들입니까?―몰라요. 나는 엄마인가요? 아빠인가요?―당신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오전의 햇빛이 오후의 햇빛으로 바뀌는 동안 얼굴은 흘러내리고.―내 얼굴도 기억나지 않아요. 당신은 여기 있나요? 여기 이 여섯 시간 동안?―내겐 질문만 있습니다. 내 대답은 당신에게만은 가지 못합니다.―당신은 오고 있나요?―나는 오지 않습니다. 여섯 시간 동안. 끝내 오지 않는 자입니다.―당신이 어쩌면 그인지 모르겠군요. 언젠가는 올 건가요?―아니요. 나는 가지 못합니다. 당신은 없거든요. 이미. 처음부터 이미인 채.―여섯 시간만 남겠군요.―여섯 시간만. 내가 끝내 없더라도.―그러니까 당신은 기다리고 있군요.―내가 기다리는 사람에게 영영 없었다는 사실과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영영 없다는 사실.―기다리다니.―나는 여섯 시간에 감염되었습니다.―여섯 시간 속엔 당신이 있나요?―여섯 시간 이후에 당신은 있습니까?―결국 승리할 겁니다. 기다림만이.―기다립니다.

***

   당신은 기다리고 있군요.―나는 기다리고 있지 않아요.―잊어버렸습니까?―잊은 적도 없어요.―잊었다는 것도 잊었군요.―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었다면 나는 기다린 것도, 잊은 것도 아니네요.―그가 왔습니까?―왔었어요.―그가 와서 당신의 기다림은 끝이 났습니까?―나는 그를 기다리지 않았어요.―왜 왔습니까, 그는? 당신이 기다리지도 않았는데.―몰라요. 나는 그를 신랑이라고 불렀어요.―당신은 신랑을 기다렸습니까?―나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어요.―왜 그를 신랑이라고 지칭했습니까?―내겐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런 느낌이었어요. 신랑 말고는.―그가 당신의 신랑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까?―기다리지 않아서 얼굴을 간절하게 떠올리긴 힘들군요.―신랑 같았군요.―그는 내게 엄마라고 부르더군요.―그를 낳았습니까?―나는 아무도 낳지 않았어요.―아무도 낳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겁니까?―낳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에요. 잊지 않은 것뿐이지요. 나는 잊지 않아요.―당신은 과거가 없습니까? 잊지 않은 것은 과거가 아닙니까?―그것은 현재일 뿐이지요.―왜 당신의 현재는 내 현재에서 먼 것입니까?―당신의 현재는 어디인가요? ……여하튼 과거는 아니에요.―느낌이 꼭 과거와 연루되는 것은 아닙니다.―느낌은 그럼 미래인가요?―어쨌거나 아무도 낳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은 게 아니라 잊지 않은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맞아요. 아, 맞아요, 그가 슬픈 표정을 짓더군요. 그러자 순식간에 신랑이 사라졌어요.―신랑이 잊혀졌습니까?―아니요. 신랑이 없어진 자리에 그가 나타났어요.―그렇게 불쑥, 어디로부터 그는 나타납니까?―나타남 이전에 그가 어디 있었는지 알 수 없어요. 불쑥은, 모르기 때문에 불쑥이겠지요. ……그가 내 밑을 닦아줬다더라고 요양보호사가 말해줬어요.―그건 요양보호사의 기억입니까?―아니요, 요양보호사는 전해 들은 얘길 내게 전할 뿐이었죠.―당신의 기억일지 모르겠군요. 당황했습니까?―느낌이 남아 있지 않아요. 내 기억일 리 없어요.―그가 당혹스러워했나요?―당혹은 이미 지나간 듯 보이더군요.―그걸 어떻게 압니까?―그의 표정이 당혹 이후의 표정 같았어요.―그는 슬퍼합니까?―아마도…… 그가 신랑이 아니어서?―슬픈가요?―아니요. 예감은 있어요.―예감은 슬픔과 관계하나요?―몰라요. 하지만…… 눈이 푸지게 내리는 날이 떠올라요. 눈이 너무 많이 내려 무궁화 울타리가 쓰러질 듯 하얀. 무궁화 울타리인 줄도 모르게. 길은 지워지고. 날 어둡고. 그런 무서운 오후.―왜 무섭다고 표현합니까?―그냥 그럴 것 같은 예감.―내 어머니에게서 들은 기억이 납니다.―당신 어머니의 기억인가요?―확실치 않습니다.―내 몸에서 무엇이 빠져나갈 것만 같은 날씨. ……그날 당신은 당신 어머니의 몸을 빠져나왔나요?―확실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머니의 미래를 탯줄처럼 달고 여기로 내쫓겼다는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예감 속에서 나는 누군가를 낳을까요?―확실치 않습니다.―그럼 그는 신랑일 수도 있겠군요.―확실치 않습니다. 내 어머니에게로 어머니로서의 시간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지금 여기서 유일하게 확실합니다만.―유일하게 당신은 잊혀졌나요?―확실치 않습니다.―당신은 왜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죠?―확실치 않습니다.―그는 누구인가요?―확실치 않습니다.

***

   내겐 선택권이 없어요. 의사로부터 곧 소식이 올 거예요.―의사의 소식은 지연되는군요.―나는 이 물가를 떠나고 싶지 않아요.―그 사람의 죽음을 허락한 건 당신입니까?―내가 기다리는 건 죽음도 아니에요.―목적어가 탈각되었군요.―내겐 선택권이 없어요.―결국 아무것도 끝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당신을 이 초조함 속에 가두었습니까?―그 사람은 기다림을 잊었어요.―당신도 잊힌 모양이더군요.―나는 아무도 아닙니다. 그 사람에겐.―그 사람은 그 아무도 아닌 자를 기다렸다는 사실을 잊었습니까?―그 사람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기다리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아무도 잊혀집니까?―그 사람의 바깥에 나는 아직 있고, 있기만 할 거예요.―반짝일 겁니다.―반짝과 반짝 사이에 무슨 기억이 있을까요?―반짝은 늘 새로운 반짝입니까?―나는 이 물가를 떠나고 싶지 않아요. 내겐 선택권이 없어요.―당신이 기다리는 것은 오는 중일 겁니다. 끝까지. 끝나지 않은 채로.―동이 틀까요?―눈부시겠지요.―눈이 멀 겁니다.―소식이 오는군요.―어떻게 알죠?―여섯 시간이 지났거든요.―나는 여태 여섯 시간 속에 있었던 겁니까?―당신에겐 선택권이 없습니다.―나를 잊을 수 있을까요?―당신은 잊힙니다.―누가 잊죠?―잊은 사람이 사라져도 당신은 계속 잊혀집니다.―나는 계속 잊혀지는 중인가요?―잊히고 잊혔다는 사실도 잊히고. 다시 또다시. 잊히고.―잊은 사람이 잊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도? 잊은 사람도 잊힌 사람도 없이? 잊혀지는 일만 남아서?―당신은 결코 당신의 이 기다림을 끝내지 못할 겁니다.―눈이 멀어도?―여섯 시간이 지났습니다. 여섯 시간 속에 당신은 이미 없었고. 없기만 했었고.―소식이 오는군요. 너무 일러요.―너무 늦습니다.―한없이 늘어지며 도착하지는 못하며.―당신의 기다림은 끝나가기만 할 뿐입니다. 영원히 지연되며.―윤슬이 돋는군요.―눈부시군요.―눈이 멀어요.―반짝임과 반짝임 사이 어둠 속으로.―기다림 속으로.―눈부시군요.―눈이 멀어요.





   언제나 그곳에서



   그들은 박쥐를 본다

   박쥐박쥐박쥐박쥐 되뇌다보면
   힘겹고 재빠른 날갯짓 소리가
   들려요 철그덕 문갑 소리 오래
   전에 사라진 집의 낡은 박쥐
   경첩의 날갯짓 소리 녹은 안
   슬었나 몰라 박쥐박쥐박쥐박쥐
   써놓고 보면 사라진 집의 처마
   밑으로 저녁이면 쏟아져나오던
   박쥐떼가 보여요 푸르스름한
   저녁 하늘 마당을 뒤덮던 시
   커먼 것들 그을음들 어둠의
   거스러미 같은 것들 박쥐박쥐
   박쥐박쥐 그것들은 어떤 시간을
   날아서 여기로 오나 여기로 와
   우리집 현관 격자무늬로 박히나
   박쥐박쥐박쥐박쥐 같은 것이사
   본 적도 없는데요 나가는 박쥐
   떼였는지 돌아오는 참새떼였는지
   그런 것이사 분명치도 치도 않은
   데요 흩어진 그것들이 처마 밑으로
   다시 날아 기어드는 것이사 낡은
   문갑의 박쥐경첩이 헐겁게만 새끼
   치는 것이사 본 적도 없는데요 없고
   마는데요 박쥐박쥐박쥐박쥐하기만 왜
   하나 하면 밤은 진해지기만 하나 왜

   박쥐가 그들을 본다

김근

되든 안 되든 써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쓰고 회의하고 지우고 다시 쓰며 다시 회의하며 몸부림치고 있다. 이 사변적인 시는 블랑쇼의 형식을 빌린 ‘되든 안 되든’과 수많은 회의의 결과물이다. 나머지는 사변에 끼어드는 데 실패한 나머지다. 시라는 게 ‘되든 안 되든’과 회의와 실패 끝에 탄생한다는 사실에 매번 저항하면서 결국 받아들이면서, 쓰고, 살고, 있다.

2020/04/28
2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