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飼養)



   조금씩 나눠 먹으려 쌀을
   플라스틱병에 소분한다
   바닥으로 쌀알 몇 개가 떨어져 흩어진다

   쌀의 표면에서 빛이 반사된다
   흰빛을 새는 바라본다
   밥솥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갓 지어진 밥을 공기에 담아 식탁에 올린다
   새는 바닥에 떨어진 쌀을 주워 먹는다

   어떤 티베트인들은 아낌없이 내어줄수록 다음에
   더 좋은 삶을 살게 될 거라고 믿는다
   그들은 죽은 몸을 새들에게 내어준다
   장의사가 천을 걷어내고
   시신에 새들이 모여들 때
   할머니를 잃은 아이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본 적 있다

   도정을 하지 않은 알곡은 길게는 몇천 년 동안 살아있다는데
   죽은 쌀이 담긴 플라스틱병 무더기

   삶이 멋대로 가을이 되어
   새를 먼 곳에 묻고 돌아온 저녁
   나는 배가 고프지도 않으면서
   죽은 쌀알들을 깨끗이 씻어
   물속에 눕혔다
   그리고 불에 올려놓고 그것들이
   다 타서 숯이 될 때까지
   생각했다 땅에 묻힌 새가
   땅벌레들과 구더기들에게 파먹히는 일을

   더 나은 삶도 더 나쁜 삶도 없이
   플라스틱처럼 영원히 살면 좋을 텐데
   새는 이곳을 떠나버렸고 꿈속에선
   너무 환한 빛을 등져 얼굴을 볼 수 없는 누군가가
   죽은 나를 수확해갔다

   잠에서 깨어나자 베개 위에서 조금씩
   부서지는 빛이 보였다





   죽음 연습



   창밖으로 나무들이 흔들린다 아일랜드인들이 어두운 펍 안에서 흑맥주를 마신다
   이곳은 더블린의 나무들로 만들어졌다 나무들은 긴 역사를 가진다 1845년 아일랜드에
   감자마름병이 돈다
   베케트는 원하지 않는다 이런 걸 이따위 것들을 그는 펍을 나간다
   흑맥주를 나는 마신다
   손은 맥주잔을 투과하지 못한다 세계는 그런 확고함으로

   흑맥주만 아니면 돼 베케트는 아일랜드를 떠난다 나는 아직 더 마실 수 있고 잊고 잊어서 베케트는 프랑스어로 글을 쓴다
   흑맥주 흑맥주
   잔은 조금씩 투명해진다 반투명해진 잔이 좌우로 늘어난다 손이 잔을 통과한다
   함락된 파리에서 베케트는 비밀문서를 나른다 아일랜드는 참전하지 않았다 게슈타포가 베케트를 쫓는다
   잊을 수 있다 잊을 수 있다 리베라시옹
   리베라시옹 드 파리
   서치라이트가 베케트를 덮친다

   그들은 무대 위에서 기다린다
   잎사귀가 마른다 나무는 가문비나무였다가 쌓여있는 썩은 감자 무덤이었다가 아사한 농부들의 시체 더미였다가 죽은 사람을 걸어놓는 형벌나무였다가
   나무는 나무여서
   베케트는 체포당하지 않는다

   쓰러진 맥주잔을 일으켜 세운다
   창밖 나무에 흰 두개골이 걸려있다 영혼이 있다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는 어두운 돌 같은 것이라 믿는다 나는 눈을 감고 천천히 흑맥주를 안에 채워 넣는다
   더 더 그리고 더 자라난 나무가 흰 두개골을 부순다
   두개골 내부의 어둠이 흩어진다
   이만 가지 베케트가 말한다
   다시 잔을 채운다 취한 돌들이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잔다 기다리지 않은 것들이 이방인들처럼 들이닥칠 것이다
   베케트는 바람이 몹시 부는 안식일 전날
   태어나고

설하한

이 모든 게 교환된다는 게 끔찍해져서, 나는 새의 깃을 잘라내었다.

2020/04/28
2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