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접시가 있는 방
   ―비문증(飛蚊症)



   1

   침묵은 먹구름 되어 눈 속에 몰려와
   방의 그림자들이 젖는 시간
   이제 빨랫줄에서
   함께 흔들렸던 옷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자리에 누워 눈 감으면
   동공 속 먹구름은
   몰래 창문의 틈으로 나가
   너의 숨결을 머금고 돌아오지

   네가 사라진 눈은
   둥근 방이야
   이 둥근 방에는 붉은 나무가 있어
   벽에 걸어둔 검은 접시를 오랫동안 바라보았지

   접시가 흔들릴 때마다
   떠다니는 낙엽
   그 잎사귀 따라가다보면
   안개는 더욱 자욱하게 피어나곤 하지

   누가 방에 안개꽃을 가져다 두었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접시에 반대로 담기는 동안
   우리는 접시에 담긴 서로를
   천천히 곱씹어보곤 했어

   내가 나눠준 잎사귀는 무슨 맛이 나니?

   누굴까, 투명한 방과 밤을 흔드는 사람은
   밤새 발밑에는 터져버린 구름이 쌓였어

   2

   네가 내 눈 속에 있는 나무를 흔드는 동안
   그늘에 말려 둔 심장 오랫동안 씹으면
   조금씩 밀려오던 구름 속 비
   그때마다 애벌레들이
   눈 속에 맴돌곤 해
   눈 속에 숨겨진 비문(非文)을 찾곤 해
   사람들 속에서
   흰 안경을 쓰고 밤 속으로 스며들어
   불 꺼진 번데기가 되기로 했지
   메마른 채 태어난 나비의 날개 속엔
   환한 그늘의 비문이 숨어있을 거야
   달무늬 새겨진 접시 위
   나비가 다시 날개로 나를 덮네
   나는 이제 아무도 보지 못할 너의 언어





   유월



   낡은 가게에서 담배를 사고
   혼자 길을 걷고 있었는데
   한낮에 습한 밤꽃의 그림자가
   보랏빛 꽃이 가득한 숲으로 나를 데리고 갔어

   그곳에 우리가 심었던 등나무가 있네
   등나무 아래에서 너의 등을 생각해
   한 번도 보지 못한 너의 등을 그려보면
   나는 등이 가려워서
   누군가 등에 돋아난 가지를 잘라주었으면 했어

   등나무 꽃 아래로
   햇빛이 얼굴에 닿을 때
   눈 감으면
   너는 우거지는 슬픔

   눈뜨면 등나무 속 방에서
   푹 꺼진 연보라 소파에
   혼자 앉아
   배꼽에서 가지가 탯줄처럼
   자라는 것을 바라보고 있어
   멀리서 사랑을 나누는
   고양이의 울음
   네가 누군가와 흐린 집에 앉아
   백열등 켜는 소리
   나는 태아처럼 웅크린 채
   오래된 너를 긁어낸다

권용대

자기가 만들어 낸 그림자를 안고 버티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꿈이든, 사람이든, 사랑이든.

2018/04/24
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