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지는 물기. 니마는 눈물을 닦았다. 챔발로 음계처럼 떨어져내리는 은행잎들 햇빛을 과장하며 이민자 거리 깊이로부터 낙엽이 밀려오는 케밥 가게 야외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었다. 한입도 대지 못한 치킨버거 옆으로 의지가지없는 청소년들이 전동 킥보드를 타고 지나가고. 요 요 요. 카운터에서 팔라펠과 차이를 받아온 딜러 두 명이 니마 뒷 테이블에 앉아 떠들기 시작했다. “흰둥아 어제 내가 누굴 만났는지 알아?” “내가 어떻게 알아 씹새야” 차이로 입을 헹군 그들은 팔라펠 접시 위에 암페타민을 뿌리곤 코로 빨아 들이켰다. “세 시였나 네 시였나 밤새 오데사에서 아버지와 로데오를 구경하고 있는데 누가 초인종을 누르는 거야 난 제이데커일 거라고 생각했지 그 또라이가 아니면 그 시간에 어떤 미친 새끼가 초인종을 누르겠어? 동기화하고 있던 로데오 기억도 지겹고 약을 주면 또다른 과거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우리 미래 형사님 비위나 맞춰 드려야겠다 싶어서 문을 열었는데 현관에는 아무도 없더라고 그냥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지 현관 센서에 불도 안 들어와 있었으니까 그래서 문을 닫고 다시 기억을 동기화하려는데 이번엔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는 거야 나는 바지에서 아이폰을 꺼내 확인했지 내 아이폰에는 아무 전화도 걸려오지 않았어 계속 이어지는 벨 소리가 과거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걸 깨닫고서, 내가 다시 관자놀이에 칩을 붙이니 벨 소리가 뚝 끊기더라고 그때부터 소름이 끼쳤지 그 과거의 시대에는 휴대폰이 없었고 벨 소리가 끊긴 동시에 여보세요 라며 내 등 뒤의 화장실에서 어떤 남자가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려왔거든 나 말곤 아무도 없어야 할 내 집 내 화장실에서 모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는데 존나 도저히 움직일 용기가 안 나더라고” 울음의 꼬리처럼 붉게 물든 눈가에 맺혀 있는 눈물을 마저 닦고서 니마는 고개 숙여 빨대로 콜라를 빨아 마셨다. “그렇게 내가 꼼짝도 못하고 있자 내 집의 화장실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브라이언 맥나잇이 걸어나온 거야” 잇몸 구석구석 발라둔 암페타민 때문에 딜러들의 발음이 점점 뭉개졌다. “알몸의 브라이언 맥나잇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에게 걸어왔어 난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 경기장에서 아버지와 로데오를 구경하고 있는데 어떻게 지금 우리집 화장실이 보이는 건지 오줌을 지리며 칩을 떼버리고 고개를 여기저기 돌려봤지만 아무리 돌려봐도 그 기다란 형광등 같은 걸 출렁거리며 알몸의 브라이언 맥나잇은 어디에서나 내 정면으로 걸어왔어” “브라이언 존나 누구라고?” “브라이언 맥나잇 몰라?” 떠들던 딜러가 말을 멈추곤, 잠시 심호흡했다. 그리고는 브라이언 맥나잇의 노래 한 소절을 불렀는데 마비되어 살짝 비틀린 그의 입술 밖으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어찌나 감미로운지 석양이 설탕 가루처럼 번져왔고 탠저린 향기를 터트리며 온 자리의 그림자를 길게 빼내 사물들의 존재를 다독였다. 낙엽 아래 숨어있던 아기 참새들이 날아와 그의 어깨에 내려앉아 노랫말에 귀 기울였고, 그릴에서 칼로 얇게 잘라낸 양고기 조각들이 하나하나 모여들더니 하얀 양으로 환생하는 그래픽에 휩싸인 케밥 가게 주인 록만은 감자튀김에 케첩을 묻혀 쟁반에 시를 적었다.

   바나나나무가 열린 공터에서
   야구를 치던 아이들은 낡은 수첩을 줍는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미래가 적혀있는 수첩을 읽고 순식간에
   다 살아버리고
   아이들의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온다 우리들의
   부모들이 가여운 아이들은 승용차 안에서 생애보다 긴 눈물을 흘리고 아픔 없이 부모들이 자살하길 바라는 아이들이 차에서 내려 부모들의 손을 잡아주며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 물으니
   부모들이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삼키며
   흐느낀다 마치

   투명한 덮개로 덮어진
   케이크
   케이크 가게 진열대에 비친
   흘러내리는 표면의
   몇 초

   눈물로 가득 찬 코를 풀고 니마는 휴지를 살폈다. 소리 내 콜라를 빨면서 양상추 눅눅한 치킨버거도 까먹으면서 슬슬 떠날 채비하는 딜러들의 기척을 느끼며 휴대용 휴지 봉투 한가운데 적힌 휴지 회사 이름을 읽었다. Floralys. 보랏빛 그물이 되어 떨려오는 어둠 아래 눈알이 탱글탱글해진 딜러들이 새하얀 불빛으로 각성되어가는 거리를 향해 떠나가자, 중고차 안에 숨어 공간을 해킹하고 있던 본사의 추적자들이 케밥 가게 코너를 돌아 미래로 돌아갔다. Floralys. 장미색 새틴 커튼 사이로 눈부신 해변이 펼쳐지고 있었다. 얇게 휘어지는 빛의 곡선들 이름 모를 꽃이 담긴 유리 꽃병이 커튼 앞에 놓여 있던 창가를 떠올리며 니마는 그곳이 언제 어디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카불, 우르미아, 이스탄불, 로도스, 아다세비치, 함부르크 너무 많은 도시로부터 기억만큼 정체 없는 바람이 몰려오고 Floralys, 니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헤드폰을 꼈다.

   루카스 학인 윤, 동양인은 중국계 아니면 일본계로만 생각할 줄 아는 딜러들이 제이데커라 약칭하는 북한계 형사는 한 달 전에 실종됐다. 뛰어난 수사관이었으나 과거로 파견된 그가 약물 중독자가 된 사실을 알고 있는 동료 형사들은 정식 수사 도중 그간 그의 데이터들이 전부 공개돼, 팀 전체가 내부 감사를 받게 될까 니마를 찾아와 조사를 의뢰했다. 그들은 기억동기화칩을 과거의 약물과 교환하던 루카스가 이미 약쟁이들에게 살해당했거나 약에 취한 채 시간 이동 중 세포 단위로 찢겼을 거라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부패한 동료들이 정확히는 루카스의 죽음, 먼저 발견하는 이에 의해 영원히 함구될 수 있는 기억의 데이터를 본사의 추적자들보다 앞서 찾고 싶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니마는, 어반아웃피터스 매장 피팅 룸 안에서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십 대들이 장난으로 사서 입다 반품한 못생긴 니트 조끼를 껴입고서 눈빛도 돈도 없는 이가 헤드폰을 끼고 서 있었다. 거기 염병 무슨 문제가 있는지 피팅룸 밖에서 아르바이트생이 묻자 니마는 가격표 덜렁거리는 니트를 껴입은 채 피팅 룸을 나와 돌아다녔다. 시즌 오프 세일을 맞아 지하에 모여든 온갖 젊은이들이 좆같이 못생긴 니트 조끼로도 봉인되지 않는 니마의 우울한 기운을 튕겨내며 그들의 시끄러운 기분을 유지했고 니마가 그 우울함만이 그에게서 그의 존재를 허락해준다는 듯이 그런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않을 동안 한 남자아이가 말을 건네어 왔다. “여기선 도청당하지 않겠죠?” 니마는 헤드폰을 벗고 레이싱팀 재킷을 입은 남자아이와 매장을 걸었다. “알잖아요 그들은 서로 서로의 반려견처럼 사랑했어요” 남자아이 즈엉은 미술관 거리의 딜러이자 루카스의 정보원이었다. “그러다 남자친구가 루카스가 가져온 기억동기화칩의 부작용으로 아기처럼 옹알이만 하게 되자, 루카스는 더 약물에 의존하게 되었죠 딜러들의 무전기에 매일매일 제이데커를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그 새끼가 또 나타났다’ ‘개새끼 제이데커가 또 다 털어갔다’ ‘누구든 저 새끼가 갖고 있는 칩들을 훔쳐 오면 내 플스를 주겠어’ 청바지 몇 개를 골라 자기 허리에 갖다대어보며 즈엉은 “내가 그를 직접 본 건 두 달이 조금 넘어요 새벽에 우리집에 찾아온 그에게 더이상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니 그는 마지막 부탁이라며 찾아야 할 사람이 있다 말했어요 근데 그 니트 입고 어디 갓난 아기 생일 파티라도 가세요?” 빈티지 청바지를 계산한 즈엉과 함께 거리로 나온 니마의 눈앞에서 건물 하나가 폭파되며 무너져 내렸다. 이명으로 갈라지는 거리 뛰쳐나온 사람들의 두 발이 땅에서 떠오르고 비명보다 높이 하늘을 채운 아스팔트 빛깔 불길 뒤로 또다른 포탄들이 한낮의 가시광선을 통과하여 날아와, 발이 다시 땅에 닿기 전에 온몸을 잃어버리는 사람들. 잿빛에 휩싸인 채 살이 타오르는 냄새처럼 번져 오른 불빛들이 미끄러지듯 가까이 다가오며 폭스바겐, 토요타가 되어 니마를 지나가고 “괜찮아요?” 물안개 낀 가로등과 2층, 3층 창 하나하나마다 넘치도록 주홍 불빛 흘러내리는 어반아웃피터스 매장 앞에서 좆같이 못생긴 니트 조끼를 껴입은 니마가 무릎 꿇고 앉아 헛구역질했다.

   민트 토사물 색상의 이어컵 울트라손 시그니쳐 DXP. 스카치테이프로 칭칭 감긴 헤드폰에서 크라우트록 재생됐다. 노조 파업에 의해 운행 중단된 전철역에서 돌아나와 억지로 버스에 탄 이들이 한데 끼여 내쉬는 가쁜 숨에 차창 밖으로 흐려지는 시간들, 기울어진 얼굴들 사이에서 니마는 또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다른 곳으로 업데이트되지 않게 하기 위해, 소리 내 음악을 따라 흥얼거렸고, 처음 출발할 때부터 비어 있었으나 음치로 모자라 드럼에 맞춰 주먹 쥔 손까지 흔들어대는 니마의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았다. ‘루카스가 찾고자 하는 사람은 미래에서 추방당한 난민이었어요. 루카스의 말에 따르면 미래에 남아있는 난민의 연인이 기병대에서 꽤나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본사에서 그를 이용해 기병대를 압박하고 싶어한다 했죠, 하지만 루카스는 모르겠어요 방금 잃어버린 사랑의 빈자리를 사명감으로 채우고자 하는 건지 연인을 잃은 이들끼리의 동질감 때문인지 본사 몰래 그를 찾아내 본사로부터 도망치게 해주고 싶어했죠.’ 시장바구니를 품에 안고서 잠든 노인과 맨 뒷좌석에 눕다시피 앉아 패딩을 흘리며 낙서처럼 키스하는 커플만 버스에 남아 있을 때. 배터리 다 닳은 헤드폰이 꺼지고 버스 문밖으로 내린 니마는 협곡에 서 있었다. 희망의 전염병처럼 멀리 얼룩져오는 은하수 아래 눈 쌓인 산길을 앞서 걸어가는 이들이 비틀거리며 멀어져 갔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눈 밟는 니마의 발자국 소리가 숲을 흔들고 나무의 눈을 털어내며 니마에게로 돌아올 때마다 니마는 내장까지 울려퍼지는 소리의 여백에 자신의 영혼은 이미 오래전에 흩어졌고 단지 육체라는 이미지가 세계를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눈길에 쓰러져 누워 구멍 난 신발을 양손으로 틀어막거나 부르튼 입술로 뭐라 속삭이는 이들을 보살필 기력 없이 니마가 덜덜 떨며 앞선 행렬을 따라 걸을 동안 사람들의 귓등 위로 잔인하게 내려앉는 눈송이들에서 웅얼거림이 들려왔다. 천천히 이마 위로 떨어져내리는 웅얼거림을 집중하여 바라볼수록 눈의 예리한 결정이 확대되고 파랗고 차가운 다이아몬드 형태의 불빛들 얼굴 위로 맺혀와 래퍼 차림의 남자들이 랩 틀어놓은 금은방 거리가 펼쳐졌다.

   세르칸이 루카스가 살펴보고 간 장물 기록을 가져다줬지만 니마는 가게 구석으로 기어들어가 콘센트에다 충전기를 연결해 헤드폰 엠프를 충전했다. 방금 이가 부딪치도록 온몸을 덜덜거리며 들어온 니마를 약쟁이로 착각해 걸레 빤 물을 끼얹었던 세르칸의 아들 티모가 니마에게 수건을 들고 다가와 사과했다. “미래에서 온 물건은 전부 다 조사해갔어” 티모가 륙색을 꺼내와 점퍼, 운동화나 안경, 수첩, 반지 등을 쏟아냈고, 세르칸이 손짓하자 티모는 입고 있던 축구 유니폼과 손목시계도 벗어 니마에게 넘겨줬다. “루카스도 가장 먼저 그 손목시계의 데이터를 읽었지” 니마가 손목시계를 가져가자 세르칸이 말했다. “그 시계를 가져온 사람이 누구였는지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왔는데” 니마는 손목시계를 찬 우리 티모가 친구들과 술에 취해 지하철에서 큰소리로 떠들고 시비를 걸다 어느 여성에게 얻어터지는 데이터를 읽고 있었다. 두 번의 무릎 차기로 코뼈와 안와가 부서져 두 손으로 뼛조각과 코피를 받으며 티모가 지하철 구석에 쭈그려 앉아 엉엉 울고 있었다. 이어 여자 친구에게 청혼하기 위해 장물로 들어온 구형 페라리를 타고 고속도로를 드라이브하다 순찰대에 걸려 차를 압수당한 뒤, 나란히 경찰차 뒷좌석에 앉아 헤어지지 말아 달라 빌고 있는 데이터까지 보고 나자 “문제는 그 사람이 손목시계를 판 게 벌써 15년 전이라는 거야” 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자전거를 처음 배운 사람처럼 자전거 위에서 살고 있는 듯이 하루 종일 자전거에 타 있는 사람이 매일매일 이 도시의 온갖 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투명한, 극도로 투명하고 섬세해 몇 겹인지 모를 시간의 장막들이 맺혀 있는 눈동자로 혼자 풍경을 뚫고 나갈 적마다 얼굴을 감싸오는 햇빛과 종소리를 계속 뒤로 흘려내며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있었다. “미래에서 온 사람들은 여기서 급속도로 늙어 죽는다는데 구라죠?” 똥내 나는 아가리로 티모가 물었다.

   깨진 약병, 주사기들 밟으며 가로등도 인적도 없는 공원을 돌아다니던 니마는 외곽에 버려진 차 안에서 색소폰을 불고 있는 노숙자를 발견했다. 어둠과 새똥에 파묻힌 자동차 문을 열고 니마가 조수석에 앉자, 그들이 탄 차는 빈 풍경을 달리고 있었다. 헤드라이트 같이 떠나가는 색소폰 소리가, 곧 차창 앞으로 자전거 탄 사람의 윤곽을 잡아내고 이제 그들은 자전거 탄 사람의 뒷모습 주위로 색칠되듯 나타나는 도시를 주행했다. 강가와 철교와 꽃시장과 호수와 시내와 박물관과 낡은 벽들의 색깔들 잿빛들 햇빛들 양식들 창문들 지나 온갖 길을 돌아다니는 자전거를 탄 사람이 순간순간 거리와 함께 찢어지면 그들은 차를 멈췄다. 찢어진 데이터의 틈새, 아무것도 남지 않은 풍경에 머물며 그들은 자전거를 탄 사람과 자전거 탄 사람을 포함해 송두리째 이 부분의 데이터를 도려낸 누군가의 흔적을 살폈다. 색소폰 연주가 허공에 흡수되어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들은 공허에 도취되어 갔다. 누군가의 혹은 자기 스스로의 공허 안에서 니마는 자신이 살아 있다고 느꼈다. 삭제된 시간의 주차장에 앉아 이토록 편안한 살아 있음을 지속하고 싶었다. 영원히 이렇게 죽음으로 살아 있고 싶었다. 다시 파로아의 색소폰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소리만큼 희미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차창 앞의 바닥을 비추고, 눈이 얕게 쌓여있는 길바닥, 얕게 쌓인 눈길 위에 자전거 바퀴 자국이 길게 이어졌다. 아주 긴 울음처럼

   바로 그런 표정처럼 어둠을 깨트리며 하얗게 서리는 콧김 갈기 성스러운 말 두 마리가 마차를 이끌고 지나갔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놓은 인디아 레스토랑에 앉아, 니마는 몇 세기 전인지 지금인지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창밖을 바라봤다. 메뉴판을 들고 온 종업원이 니마의 찻잔에 차 따라주며 니트 조끼에 아직도 매달려있는 가격표를 힐끔거리고 ‘그들은 서로 서로의 반려견처럼 사랑했어요’ 니마의 창밖에 해변이 정지되어 있었다. 눈부신 창밖으로 해변이 멈춰있는 방안에 비굴한 고요가 흘렀다. 한 달간 산길을 걸어 국경을 넘어온 이들이 그들의 여권을 가지고 떠난 브로커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뜨고 잠에 든 이들이 이제 그들이 고향에 남겨두고 온 가족을 방문하려 하고 있었다. 그들 개개인의 인격을 초월한 슬픔이 그들의 눈가에 내려앉고 있었다. 그렇게 감긴 눈을 다시 뜰 때마다 장소가 바뀌고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터번을 쓰고 식당의 가라오케 무대에 오른 한 남자가 프리스타일 랩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장모님을 가리키며 장모님의 이름을 호명한 뒤 이름과 라임을 맞춰 이어나가는데 사실상 랩도 헌사도 아닌 그냥 박자가 억지로 있는 개소리에 불과해서 또다른 테이블의 손님은 먹던 난을 잘라 자기 귓속을 틀어막았다.
   크리스마스 화환이 걸린 레스토랑 문이 열리고 기저귀를 찬 성인 남성이 엄지손가락을 빨며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과 함께 들어왔다. 남자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테이블에 앉아 턱받이 두를 동안, 미래에서 골목으로 들어온 중고차 안에는 본사의 추적자들이 루카스의 남자친구를 감시하고 있었다. 멈춰있는 해변. 고개 돌리는 대신 창에 비친 루카스의 남자친구와 어머니를 지켜보며 니마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커리 담긴 램프와 탄두리 치킨이 루카스 남자친구 앞에 도착하고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기도하던 어머니가 탄두리를 짚어 고기를 찢어주고 귓속에 난을 집어넣었던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여전히 가라오케 무대에서 랩을 지껄이고 있는 이에게 접시를 집어던지자 멈춰있는 해변. 멈춰있는 해변 앞에 멈춰있는 꽃병. 루카스 남자친구의 기저귀가 노랗게 물들며 비명에 가까운 울음이 터졌다.

   여기저기 삭제된 손목시계의 데이터를 소리의 파형으로 복원한 니마는 지워진 데이터와 루카스 남자친구의 울음소리 파형이 동일하다는 걸 알아챘다. 루카스의 남자친구는 기억동기화칩의 부작용으로 아기가 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에게 업데이트해놓은 데이터에 봉인되어 있었다. 찾는 이를 본사로부터 숨겨주는 동시에 본사로부터 반드시 목표물이 될 자신의 남자친구를 지키기 위해 루카스가 선택한 영리한 수단이었다. 인디아 레스토랑에서 루카스 남자친구의 울음소리를 녹음한 니마가 이제 반대로 울음소리를 이미지 데이터로 변환하자, 자전거 타던 사람이 아이를 돌보고 있는 이미지가 나타났다. 먼지 하나씩 하나씩 그림처럼 부드러운 허공에 붙잡아놓으며 빈티지 가구들 사이로 볕이 넘실거려오는 마루에서 뛰어놀던 아이가 넘어지고, 자전거를 타던 사람이 카펫 바닥에서 일어나 허리 숙여 아이를 들어 안아주고 있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제자리에서 가볍게 춤추며 아이의 부모가 올 때까지 아이의 귓가에 입술을 대어 속삭임을 나누는 이 데이터를 찾고 루카스는 이 사람을 본사로부터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주름 깊이 햇빛이 배인 커튼 앞에서 아이의 볼에 코를 파묻고 아이에게서 풍겨오는 향기로도 붙잡을 수 없이 지나가버리는 창밖의 시간을 지켜보는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속임수를 동원해서 자신의 연인까지도 이용해가면서 당장 자신이 사랑에 빠져있고 그 일의 가치를 과신하고 있기 때문에 맞죠?

   울고 싶으나 울지 못하는 이들이 러닝하며 즈엉과 니마를 스쳐갔다. 안개 낀 고가교에 서서 그들은 건너편의 건물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십오 년 전 아이가 뛰어놀던 방안에서 커튼이 휘날리고 있었다. 이제 열다섯 살을 더 먹은 아이와 아이보다 다섯 배는 빠른 노화 속에서 이미 늙어 죽었을지도 모를 이를 생각하며 루카스가 이곳에 서 있었을 것이다. 즈엉은 루카스를 살해한 게 자신이 맞다고 인정했다. “그는 내가 본 적 없이 뛰어난 형사였어요 본사가 추적할 수 없도록 모든 정보를 조작한 뒤, 나를 찾아와 베이비시터가 어디에 있는지 묻더군요 자신이 지켜주겠다고 말이에요” 하지만 뛰어난 만큼 공허에 시달리고 있음도 알 수 있었다. “내 생각에 그건 거의 필연적이에요” 사건을 해결해낼수록 오히려 더 거대해지는 공허에 삼켜진 얼굴로, 금방이라도 두 눈깔로 공허의 토사물을 쏟아낼 거 같은 눈빛으로 베이비시터의 정보를 캐는 루카스에게 즈엉은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안 나지만,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고 했죠” 타고난 형사 루카스가 즈엉의 거짓말을 바로 눈치채며 또 그만큼의 속도로 들이닥쳐오는 환멸감에 잠시 눈을 감은 순간, 즈엉은 재빨리 루카스에게 그의 공허를 달래줄 약물들을 소개해주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날 찾아왔을 때는 완전히 맛이 가 있었어요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고는 자기가 가진 것을 죄다 줄 테니 펜타닐 좀 가져다 달라 애원했죠” 그날, 즈엉은 조용히 루카스를 안아줬다. 그리고 옷을 다시 입혀준 뒤 두 손 가득 펜타닐을 쥐여줬다. “물론 그분을 지켜내겠다는 루카스의 말은 진심이었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그래서 더 위험했죠” 즈엉의 얼굴 위로 새까만 물결이 겹쳐 흐르고 하얀 커튼이 휘날렸다. 그렇게 커튼을 계속 바라보면, 그토록 투명한 창안의 커튼을 올려다보는 니마가 보트에 타 있었다. 보트에 구멍을 내고 엔진까지 빼간 해안 경비대가 달빛을 가르며 멀어져갔다. 함께 탄 이들이 모국어로 욕설과 기도 섞으며 발목까지 차오른 물을 퍼내고 있었다. 눈부신 창밖으로 바라보던 바다에서 니마는 꽃병을 앞질러 빈방에 차오르는 물결에 잠겨갔다. “결국 루카스가 가장 사랑한 건 그 자신의 재능이었으니까요”

   노조 파업 중인 전철 차량 기지에 들어간 형사들은 니마가 알려준 대로 전철들 밑으로 기어들어가, 눈코입부터 발가락까지 뜯겨 전철 아래 달라붙어 있는 루카스의 시신을 찾아냈다. 이어 터널들을 수색하며, 약에 취해 철로에 잠든 채 절반이 뜯겨나간 루카스의 나머지 시신까지 찾아냈지만 데이터는 비어 있었다. 못생긴 니트 조끼를 껴입은 니마는 케밥 가게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나는 어릴 때 그분이 내게 들려줬던 미래의 이야기를 전부 기억하고 있어요’ 낙엽들이 쌓여있던 자리에 빗물이 흐르고 요 요 요. 카운터에서 팔라펠과 차이를 받아온 딜러 두 명이 니마 뒤에서 떠들기 시작했다. “내가 어제 누굴 만났는지 알아?” “알 켈리?” 차이로 입을 헹군 그들은 팔라펠 접시 위에 마요네즈를 뿌리곤 감자튀김을 찍어 먹었다. “내 여동생을 만났어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감리교회 안에 서 있었지 저기 강단에서는 레일라 이모와 샤니스 이모가 성가대와 함께 춤추며 노래 불렀어 내가 자꾸 아버지를 올려다보니 아버지가 웃으며 품에 안고 있던 티티를 나에게 안겨줬지 그날은 비가 와서 해가 없었는데 티티의 얼굴 위로 새하얀 빛이 떨어지고 있었어 내 두 팔 안에 들려있는 티티의 작은 얼굴이 내 눈빛에 닳아버릴까 무서웠어” 말을 멈추고 흐느끼는 딜러에게 “친구” 동료가 말했다. “넌 백인이야” 치킨버거를 다 먹은 니마는 빨대로 콜라를 빨며 휴지 봉투를 살폈다. Floralys. ‘그런데 가끔 그 미래에 영영 내가 도착할 수 없을 거란 기분이 들어요’ 니마가 휴지 봉투에 적힌 휴지 회사 번호로 전화 걸었다. 세기말에 유행했던 하우스 음악을 배경으로 가짜 파도 소리 들려오고 자몽 빛깔로 물들어가는 하늘과 야자수 잎사귀 줄무늬 파라솔과 칵테일 담긴 유리잔 아무도 받지 않는 수화기 너머 해변에 니마가 혼자 서있었다.

이상우

좆같이 못생긴 니트 조끼를 껴입는 탐정은 버스에서 뭘 들을까. 나는 Laddio Bolocko일 거라 생각했다.

2022/02/22
5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