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씨, 들으세요



   선생님, 사장님, 나는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부릅니다. 그렇게 부르면 대충 다 통합니다. 그러나 당신을 카프카 씨라고 부르겠습니다. 오늘 내가 요제피네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2020년 2월 26일 오후 3시경, 서울의 모 대단지 아파트 998동 1406호, 당신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축하합니다, 카프카 씨. 당신은 남쪽으로 난 커다란 창문을 가지게 되었군요. 그런 창문이 당신의 글쓰기에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부럽습니다. 암만 소형평수라고 해도 당신처럼 빼빼 마른 독신남이 살기에는, 넓어요. 그리고 버튼만 누르면 응답처럼 지하에서 엘리베이터가 올라오지 않습니까. 나는 계단과 씨름하다가 굴러떨어진 적이 있어요. 누군가 내다 버린 책상을 갖다 쓰려다가 생긴 일이었어요. 나는 얌전하게 말하는 편이지만 그땐 절로 욕이 나오더라구요. 희망이 남아 있어서 욕도 하는 거라고, 그런 말에 취하는 치들이 있지요. 나는 욕이 아까운지, 희망이 아까운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계단처럼 1도, 1도, 1도씩 마음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마음이 몇 도에서 어는지 아세요? 마음이 물은 아닙니다. 물이었다면 벌써 익사했을걸요. 나는 쥐처럼 내면으로 침잠하는 종족이니까요. 아아, 이런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닌데, 가끔씩 나는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고 외출하는 영혼 같아요. 나는 나도 모르게 줄 줄 줄 새고 있어요. 당신이 그랬죠, 쥐의 종족 중에 입을 꼭 다물고 있을 수 있는 존재는 극소수라고, 그런데 요제피네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나는 학교를 휴학하고 이사업체에서 파견하는 짐꾼으로 일하고 있어요. 오늘 당신의 새집에 이삿짐을 풀어놓은 세 명의 인부 중 한 명이었습니다. 당신과 눈인사를 했고, 그때 당신은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어요. 학교로 돌아가진 못할 것 같아요. 당신이 그랬죠, 쥐의 종족이라면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거치지 않고 바로 어른이 되는 거라고.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 서씨족(鼠氏族) 전체의 스페셜한 예외, 우리들의 디바 요제피네의 노래조차도 노동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었다고. 당신의 책들은 돌덩어리 같습니다. 내겐 가장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당신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이것이 짐이 아니라면 당신은 내게 돈을 주지 않겠지요? 당신과 나 사이에 지폐의 신비가 작용하여 우리가 만났으니, 우리가 만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나는 금전을 사랑해야 해요. 돈을 만지작거리는 손은 따뜻하고, 우리가 돈을 주고받는 짧은 순간에도 전염병이 지구처럼 돌고 있어요, 요제피네도 멀리 가지 못했어요. 당신은 그녀가 우리를 완전히 떠나버렸다고 했지만, 그렇게 작은 동물이 어디로, 어디로 간단 말이에요? 그리고 나는, 나는 또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나는 당신이 숨겼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두운 사람이니까 요제피네를 감추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2020년 2월 26일 오후 3시경, (때마침 내 생일이기도 했는데, 내내 불우했던 인생에겐 생경한 선물처럼) 카프카 씨의 침대 밑으로 쥐 한 마리가 기어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세 명의 사내가 모두 허걱했지만, 각기 다른 이유로 놀랐습니다. 같은 표정을 짓는다고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같아 보일 순 있지만 같아질 수는 없습니다. 내가 페스트를 보았노라, 우리가 페스트를 보았노라, 곽씨가 제 몸을 와들와들 떨었어요. 헛소리와 설사는 우리가 곽씨를 묘사할 때 빼놓지 않았던 특징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감히 쥐를 잡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각기 다른 이유로 쥐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요제피네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요제피네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단 말입니다. 당신은 요제피네를 사랑하지 않지 않은 것이 아니지 않았다고, 나는 거의 아름다워지는 믿음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랬죠, 요제피네가 노래를 위해 일어선다면 우리 모두 장중한 침묵에 빠진다고. 카프카 씨, 나를 숨기세요. 당신의 어둠은, 충분히, 넓어요. 아무 일도 도모하지 않고 노래를 위해서만 조용히 일어서겠습니다.

*눕혀 놓은 글자는 카프카 씨의 「요제피네, 여가수 또는 서씨족鼠氏族」에서 찾은 단서들이다.






   두 자매



   민희는 지붕부터 그렸어요. 집을 그릴 땐 언제나 그랬죠. 숙희는 창문부터 그렸습니다. 창문 세 개를 나란히 그려놓고 바깥에 큰 테두리를 하나 두르면 집 한 채가 이야기꽃처럼 쉽게 피어났어요. 우리는 초록색 담쟁이 넝쿨로 그림 속의 집을 꽁꽁 싸매곤 했지요.

   엄마는 아기를 낳으러 갔어요. 민희도 나중에 아기를 낳을 거야. 숙희도 나중에 아기를 낳을 거야. 아기들은 사촌이 되는 거야. 아기를 자꾸자꾸 낳으면 민희는 이모할머니도 되고 고조할머니도 되는 거야. 숙희는 언제나처럼 스케치북에 창문 세 개를 그렸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하나 더,

   하나 더 그릴까?” 민희에게 물었어요. 좋아. 오늘은 창문만 그리자. 별별 모양의 창문을 우리가 다 발명하자. 엄마가 아기를 안고 오실 때까지.

   아기는 이름도 없대. 민희와 숙희는 아기를 둘러싼 모든 것이 궁금했어요. 민희가 갑자기 훌쩍이기 시작했어요. 아기를 낳다가 엄마가 죽을지도 몰라. 어쩌면 벌써 엄마는 죽었고 우리가 아는 어른이란 어른은 죄다 화장터로 몰려갔을지도 몰라. 엄마가 죽으면 세상엔 우리 둘뿐이야. 우리 둘이서 보름달도 보고 반달도 보고 달이 증발한 깜깜한 하늘도 이렇게 올려다보는 거야.

   그런데 아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가 가서 아기를 데려오자. 이제 사람들은 우릴 완전히 잊어서 들킬 염려도 없어. 민희와 숙희는 처음으로 집을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운동화 끈을 매고 민희는 숙희의 손을 잡고 일어났습니다.

김행숙

누가 말하느냐와 누구에게 말하느냐가 발화내용을 생물처럼 움직이게 합니다. 두 편의 시에서는,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의 배후에서 ‘더’ 말하게 하고 ‘다르게’ 말하게 합니다. 건너편에서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떤 말들은 영영 꺼낼 수 없는 무덤처럼 묻혔을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을 드러내고,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의 어둠을 파고듭니다. 시집 원고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사춘기』 『이별의 능력』 『타인의 의미』 『에코의 초상』 『1914년』에 이어 여섯 번째 시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020/03/31
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