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선즈



   이번 생은 밝아오지 않아 어렵겠다며
   성큼 올라선 산중턱 바위

   섬을 밝히는 오징어 배 불빛은 나를 와락 안아주었다

   나무를 양손으로 안고 큰 숨을 마신다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 깍짓손

   백야의 방사선이 온몸을 훑으며
   낭떠러지 앞에 선 마음을 까만 아크릴판에 들춰내고 있다

   독한 소독약으로 거품을 내도
   앙상한 뼈마디에 걸린 혹 같은 건 도무지 씻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무는 손차양을 하면서 이파리를
   절벽 아래로 던지고 있는 동안에도
   땅만큼은 움켜쥐고 있는 거라고

   가로로 늘어진 불빛은 터진 그물코로 비어져 나오는
   저마다의 허물을 물에 헹구고 있다

   뜯어낸 손톱 위에 굽은 등
   누르면 아픈

   섬.

   슬픈 꿈을 꾸는 우리의 자세





   시나몬 토스트



   P는 친구의 아내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장례식장을 찾진 않았다 P는 연애 초부터 그들과 알고 지냈다 몸에 줄을 감고 다니는 착실한 부부여서 그런지 복잡한 매듭은 잘 풀리지 않았다 힘들수록 되레 굵은 줄을 당겨주던 서로였는데 누가 심지에 불을 붙이고 갔나

   침대엔
   검게 탄 식빵 껍질
   풀린 수갑처럼 굳어 있었다

   그 일로 친구는 이불을 털 때면
   빵가루에
   재채기가 쉬질 않았다고

   비 퍼붓는 저녁

   P는
   탄 빵을 버려두고
   아내가
   달아나버리면 어쩌지

   앞치마를 고쳐 맨다
   냉동실에서 갓 꺼낸 식빵을 녹인다

   빵을 씹으며
   쌉싸름한 맛이 난다고
   미소 짓는 아내

문경수

펜을 철근이라 여기고 쓰고 있습니다. 저에게 글쓰기란 참 무거운 일입니다. 그래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시에 깃든 묵직한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2020/03/31
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