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적 결말



   나는 밀가루 사람이다
   푸른 장갑 속 그녀의 손은 비둘기다
   그녀는 반죽을 쌓아 관람차를 만든다

   너의 부모는 기억 상실이다 종이로 만든 별을 좋아하고 형광 별을 좋아하고 장롱에서 자라는 별을 좋아한다

   나는 너를 뿌리며 처음 너를 알았다
   남은 너의 뼈는 버려진 장롱 속에 넣어두었다

   기차를 타고 너의 부모가 왔다 그들은 품에 속이 빈 호박을 안고 있었다
   나에게 길을 묻기에 나는 숲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숲은 따뜻하다 숲은 새를 숨겨주고 숲에는 수프도 있다 나는 언젠가 숲으로 갈 거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곳에도 너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어 내가 그녀의 자매였다면
   이렇게 속삭였을 테지만

   창문을 두드리는 그녀의 언니는
   창문 너머에서 구르고 있는 비둘기를 주워야 하기 때문
   비둘기의 집은 모자야 비둘기는 마술사가 부를 때만이 나올 수 있어 비둘기는 그렇게 태어났어 비둘기를 돌려보내줘야 해 그녀의 언니가 아무리 그렇게 믿어도 비둘기의 눈이 떨어져 눈이 구르고 비둘기의 부리가 떨어져 부리가 구르고

   네가 그림자를 따라 걷다가 끝이 났듯이 우리 언니는 창문을 두드리다가 끝이 나겠지

   죽는 게 무서운가요
   그녀와 함께 본 영화 속에서 누가 물었다 다른 사람들 다 죽었는데 그 사람만 살아남았다
   계속 궁금해하라고 살려 두셨나 보다 그저 궁금해하기만 하라고
   누가?
   죽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 신이

   그 신이 영화 밖에서 어두운 극장에서 자신의 유일한 모자 속을 뒤적이고 있는 감독이라면

   나는 영화관을 빠져나가는 감독을 따라 걸었다
   감독은 사람들로부터 돌아서는 순간 딱딱한 우울이 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밤거리를 걷는 딱풀이라고 여겼으며

   내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 마지막까지 살아버린 그 사람이 자신을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걸음이 무척 빠르시네요……
   나는 숨을 삼키며 말했고

   그 순간 감독은 자신을 찾아온 그 사람의 팔을 잡고 힘껏 달리기 시작한다

   조용한 곳으로 가서 말합시다,
   아무도 우리를 볼 수 없는 곳으로……!

   그때 그가 너무 빠르고
   절박하게 나를 이끄는 바람에

   나는 종이처럼 찢어지고 말았다
   두 덩이의 반죽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곳을 향해 날아가고 말았다





   회색 방문자



   오랫동안 심심했던 아버지는 목성으로 갔다
   목성지기를 데리고 돌아왔다
   슬픔을 무늬처럼 팔에 새긴 목성지기에게 아버지는 중력에 의해 별 쌓는 법을 가르쳐준다

   나는 점자를 읽으며 앉아 있었다

   이곳은 참 덥군요……
   목성지기가 열어놓은 문틈으로 비가 들이친다

   점자가 젖고 어항이 젖었다

   아버지가 어항에서 꺼내는 옷가지들 모두 내가 먼저 사랑했으나
   결국 저버린 것들
   어떻게 할래 아버지는 묻고 나는 그것들을 태우기로 한다

   천장까지 쌓인 별은 무덤이 된다 아버지와 나, 목성지기가 죽으면 그 안에 들어가게 될 텐데
   목성지기는 알고 있을까? 나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지만
   옷가지들 타는 냄새만

   목성지기는 내 곁에서
   재가 된 흔적들을 쓸어 본다

   어떤가요?
   내가 물으면
   부드럽습니다

   나는 창문을 닫는 대신
   목성지기에게 우산을 씌워주었다
   완전히 젖으면 헤어나올 수 없이
   슬픈 게 되지만

   반만 젖으면
   그래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어

   목성지기와 나, 아버지는 한동안 천장까지 쌓아올린 별을 보며 서 있었다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마당에서 웅성거리고
   목성지기는 창밖을 내다보며 가끔
   꿈을 꾸는 듯한 얼굴

   나는 제자리로 돌아가 점자를 읽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긴 이야기가 흘러넘쳐서
   무릎 위로 떨어진다

   담요가 필요해요!
   외치자

   어느덧 아버지는 별 무덤 속에 눈 감은 채 누워 있고
   슬픔을 이기지 못한 목성지기가 문을 열어 들여보낸 사람들

   그들이 내게 달려왔다

구현경

나는 정말 말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 줄 몰라 비밀이 되어버린 것도 있다.

2021/01/26
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