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빙



   당시 우리집은 살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걷기엔 멀고 자전거를 타기엔 알맞은 거리로 나는 매일 저녁 자전거를 타고 살구 킬로미터를 달려갔다.

   로스빙은 자전거의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달리면서 해가 지는 저녁을 돌아 나와 함께 집으로 오곤 했다.

   로스빙은 꿈에서 온 개였다. 그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로스빙은 베개맡에 앞발을 세우고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현관에 등롱을 걸어 문간을 밝히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중이었다.

   아버지가 도착했을 때 어떠세요 아버지 마음에 드세요 하고 물었다. 아버지는 등롱이 아니었으면 못 찾았을 거라고 했다. 그러고는 더 말이 없었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집에서 작별하고 싶었다. 달리 올 사람도 없고 그러는 편이 아버지에게도 좋았다.

   문밖에 개가 있기에 아버지의 개냐고 물었다. 아니다. 아무리 쫓아도 따라오더구나. 나는 현관에 나가 집에 들어올 것인지 물었다. 로스빙. 개는 자신의 이름이 로스빙이라는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아버지는 며칠을 머무르고 집을 나섰다. 그 사이에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거나 수첩에 적힌 전화번호를 찾거나 볼펜으로 글자를 적고 밑줄을 그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아버지 말고는 내게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담장의 등롱을 내려 다시는 아버지가 찾아오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가 살아 있었을 때 얼마나 곤란했는지 모르죠. 아버지가 없는데 아버지가 살아 있는 것이요.

   아버지의 무덤은 작고 눈여겨보지 않으면 무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로스빙은 낮은 봉분에 턱을 괴고 나를 기다렸다.

   아버지가 있는 삶은 어떤 삶일까 궁금해요.

   우리는 매일 살구 킬로미터를 달려서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을 먹고 나면 로스빙은 현관으로 가서 밤새도록 가만히 있었다.

   아버지가 어디서 살았는지 너는 아니?

   문을 열면 로스빙이 떠날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로스빙



   우리가 도착한 곳은 여러 채의 방갈로가 공중에 떠 있는 해안가였다.

   방갈로는 기둥을 세워 공중에 띄우고 만조에 물에 잠기지 않도록 했다.

   여기에 아버지가 살았어?

   로스빙은 그렇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어린아이를 버린 적이 있다.

   어린아이를 버리고 서울의 당구장에서 내기 당구를 쳤다.

   어머니는 소파의 모서리를 뜯으며 게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방갈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모두가 가족처럼 보였고
   모두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에 로스빙은 화물칸에 있으면서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상자들 사이에 있었다.
   그중에 로스빙이 가장 컸다.

   방갈로에서 나온 여자에게 나는 아버지 사진을 보여주었다.

   여자는 고개를 내젓고 사진을 물렸다. 물가에는 한 무리 아이들이 얼굴을 씻고 있었다. 아무도 아버지를 안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로스빙과 함께 해안가를 따라 오래 걸었다.

   아니야. 여자는 운 게 아니야.

   로스빙은 자꾸만 고집을 부렸다.

   아버지가 처음 버린 아이는 나의 오빠였는데 그는 재일 한국인으로 사십 년을 넘게 살았다.

   그를 본 적은 없다.

   나에게 오빠가 있다고 로스빙에게 말했다.

   아이를 한 번 버린 사람은 두 번째 아이를 버리고 남은 일생을 살았다.

   로스빙 너는 아이를 낳고 싶어?
   나는 잘 모르겠어.

   로스빙은 앞발로 젖은 모래를 파서 작은 구덩이를 만들고 거기에 구슬을 묻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 로스빙은 수척해 보였다.

   아까 그건 뭐였어?

   로스빙은 그것이 이번 생에서 얻은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곧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유진목

1981년 서울 동대문에서 태어났다. 2015년까지 영화 현장에 있으면서 장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일곱 작품에 참여하였고, 현재 ‘목년사’에서 단편 극영화와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고 있다. 2016년 시집 『연애의 책』이 출간된 뒤로는 글을 쓰는 일로 원고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2017년 산문집 『디스옥타비아』, 2018년 시집 『식물원』, 산문집 『교실의 시』를 출간했다. 부산 영도에서 서점 ‘손목서가’를 운영하고 있다.

2019/11/26
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