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



   장례식장엘 갔다. 며칠째 날씨는 흐림. 영정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망자가 누구인지 몰랐으나 마음을 다해 절을 했다.

   울먹이는 상주의 무릎에 누워 잠시 죽은 척하였다. 사후엔 하늘을 찌를 듯 용맹하였고 괴수들은 한없이 연약하였다. 승전보 속에서 나의 부고는 알릴 수 없었지만

   개선장군처럼 일어나 육개장을 먹었다. 망자의 오랠 공복을 생각하며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문상객들의 표정이 웃는 것도 같아 마음에도 없는 춤을 추었다.

   새벽의 빈소에서 쪽잠을 자는 상주 곁에 앉아 조위록을 읊었다. 올 줄 알았던 사람, 올 거라 믿었던 사람, 먼저 와 멀리 가버린 사람. 그들의 필적을 밤새 지우다

   구두를 고쳐 신고 돌아가려는 망자에게 아는 체 해보았다. 그가 돌아서서 마음을 다해 절을 했다. 나 또한 거기엔 없는 사람.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앞서 뛰어가던 발자국이 멈춰 느린 걸음의 망자를 잠시 돌아보고 있었다.










   맨홀



   맨홀 속에 빠진 나를 봤다
   맨홀 뚜껑을 가져와 굳게 닫았다

   맨홀 뚜껑 위로 물을 주었다
   매일매일
   창문을 끌어와 햇볕도 쬐어주었다

   맨홀 뚜껑 위로 거대한 꽃이 피었다
   맨홀 주위에 터를 잡고 가족을 모았다
   맨홀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무료한 날엔 여러 마리 새끼도 낳았다

   가족이 모두 돌아간 저녁이면
   맨홀 뚜껑을 베고 잠이 들었다

   꿈결에 그만 웃음이 터지려 할 때면
   꽃잎이 떨어져 입을 가렸다

김영락

가끔 환청과 환각에 시달릴 때가 있다. 그것들은 어떤 기억으로부터 발원한다. 나에게 시 쓰기란 그러한 기억을 찾아가는 일이며 그럼으로써 환청과 환각을 멈추는 과정이다. 근래엔 하룻밤의 꿈속에서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을 어떻게 하면 한 편의 시로 옮길 수 있을까 고민하며 시 쓰기에 몰두하고 있다.

2017/12/26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