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 노트북에서 손을 떼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벌써 해가 저물고 있었다. 온종일 깜빡이는 커서를 보았는데 아직도 메일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일주일 전 도착한 메일에 대한 답장이었다. 무언가 써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을 느꼈지만 옳은 선택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H는 그럴싸한 말로 치장했을 뿐, 그의 진짜 목적은 호기심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진에게서 로라의 이야기를 들은 다음, 그것을 가십으로 소모해버릴지도 모른다. 비밀을 지켜달라는 부탁은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도 진은 그 메일을 외면할 수 없었다.

   쌓이는 메일에 답장을 보내지 않은 지 꽤 되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삭제하지 않고 꼬박꼬박 읽어보았는데, 나중에는 제목만 보고도 어떤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어 읽지 않은 채로 쌓여갔다. 그들은 대부분 진에게 『잘못된 지도』에 관해 물었다. 사소하게는 자신의 과제나 논문 집필을 위해 더 많은 사례와 추가 자료를 얻을 수 있겠냐는 요청이었지만,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담백하게 부탁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많은 이들은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주위에 ‘지도’가 망가진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혹은 바로 메일을 쓰는 그 자신이 지도가 망가진 사람이라는 이야기, 자신의 지도가 망가져 가는 것 같아 두렵다는 호소까지.

   진은 그들의 절실함을 이해했다. 하지만 답을 보내지는 않았다. 한때는 진도 정확히 그런 사람들을 찾아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고, 책을 쓰던 때라면 메일 하나하나를 그냥 넘겨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취재는 모두 끝났고 진은 지쳐있었다. 사람들은 그 책을 통해 어떤 공감과 깨달음, 놀라운 영감에 다다른 것 같았지만, 정작 진에게는 의문만이 남았을 뿐이다. 로라를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여행은 진에게 어떤 답도 주지 않았다.

   솔직히는, 진이 그 문제에 고민해왔던 모든 것들은 이미 한 권의 책에 모두 담겨 있으며, 그 책은 누군가에게 구원이 되었을지언정 진을 구원하지는 못했고, 이제 무슨 말을 덧붙여봐야 불필요한 사족만 되리라는 것이 진의 생각이었다. 그 이상의 결론을 끌어낼 수 없었다.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한 것도, 도착하는 메일에 아무 답도 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일주일 전에 온 메일은 조금 달랐다. 자신을 H라고 밝힌 여자는, 진에게 자신에 대해 최소한의 정보 외에는 밝히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사연을 늘어놓지도 않았다. 그의 메일 서두는 평범했다. ‘『잘못된 지도』를 읽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으며 새로운 감각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것뿐이었다면 진은 다른 메일과 달리 취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H는 다른 질문을 덧붙였다. 그는 로라에 관해 물었다.

   [예전에 당신의 연인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서문의 L이 아마 그일 것으로 생각했죠. 그가 잘 지내는지 궁금해요. 그는 당신의 책을 읽었나요?]

   H는 어디서 로라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것일까? 진은 책에서 한 번도 로라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 모든 여정과 모든 문장의 근저에 로라를 이해하고 싶다는 갈망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진은 로라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초고를 쓸 때는 로라에 관해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대목이 있었지만, 고쳐 쓰면서 모두 지웠다. 만약 로라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 허락해주었다고 해도, 진은 결국 한 줄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출간 이후의 인터뷰에서 무심코 이야기를 한 것일까 기억을 돌이켜보아도, 그런 실수를 했을 리가 없었다. 세심한 사람들은 간혹 서문의 그가 누구인지를 궁금해했지만, 진은 그 질문에 매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 취재가 시작되기 전에도 진은 여러 매체에 에세이를 기고하곤 했다. 그 내용을 전부 기억할 수는 없지만, 진의 인생 전반을 지배했던 로라에 대한 약간의 단서가 남아 있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메일을 쓰는 동안 자동세척을 마친 커피머신이 이제 막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진은 식탁 앞으로 걸어갔다. 손에 닿는 뜨거운 커피잔의 감촉이 평소와 달리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일상에서 사소한 이질감을 마주칠 때 진은 로라를 생각했다. 로라의 삶은 이질감으로 가득 차 있을까. 거듭 던진 질문에도 불구하고, 진은 로라의 삶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사랑과 이해는 같지 않다. 진은 그것에 동의할 수 없어 긴 취재를 시작했다. 로라를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은 진을 자주 비참하게 만들었다. 진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로라와 비슷한, 그러나 정확히 같지는 않은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대부분 진을 반겼고, 때로는 경계했고, 때로는 완전히 거부했지만, 진은 그들에게서 각자 다른 진실한 내면 일부를 발견했다. 그래서 한순간 진은 자신이 로라를 거의 이해했다고, 그의 복잡한 내면에 거의 가닿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잘못된 지도』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전히 불가해한 L에게.

*

   인간은 고유의 신체 지도를 가진다. 팔과 다리의 위치를 의식하지 않을 때도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몸의 위치와 움직임을 감지하는 고유수용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어긋난 고유수용감각을 가진다. 다시 말해, ‘잘못된 지도’를 가진다.

   일시적인 신경 마취가 고유수용감각을 잃게 할 수 있다.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자기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심하게는 몸과 영혼이 분리된 감각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것은 대개 짧은 순간 지속되는 부작용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일치’의 감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몸이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팔과 다리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느낀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시각이, 청각이 존재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들은 자신의 지도와 현실의 몸을 일치시키기를 원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스스로 맹인이 되기를 선택하며, 어떤 이들은 스스로 팔을 절단한다.

   진의 첫 목적지는 마드리드였다. 진은 약속한 식당에서 절단 욕구를 느끼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이제 막 모임을 조직하는 단계였고, 그들 중 다수는 몸 정체성 통합장애를 진단받았다. 그들은 뇌 내의 신체 지도와 실제 신체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불쾌감을 경험했다. 어떤 이들은 보조기구를 이용해 신체 일부를 고정해 ‘무력화’하는 것에 만족했지만, 일부는 세계 각국에서 자신들에게 적합한 의료적 시술, 즉 수족 절단을 시행해줄 의사를 찾고 있었다.

   “그 밖에는 치료법이 없는 건가요?”

   “다들 시도를 안 해봤겠습니까. 드물게 거울 치료나 시뮬레이션 치료로 효과를 본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결국 그걸로 안 됐던 사람들이 이렇게 모였죠. 의사들이 우리를 고치겠다고 얼마나 엉뚱한 시도를 연달아서 해댔는지 들으면, 당신도 한숨이 나올걸요.”

   그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의 사연을 모은 공개적인 웹사이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웹사이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주목받았지만, 곧장 수많은 비난에 직면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당장 정신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일부 장애인 단체는 그들이 신체장애를 낭만화하고 있다며 불쾌감을 표했다. 지금은 웹사이트가 잠정 폐쇄된 상태였다.

   “우리도 팔과 다리를 잃은 채로 사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어요. 단지 알면서도, 이 끔찍한 불일치감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겁니다. 다들 우리에게 정신과적 치료를 시도해보라고 하지요.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팔다리를 절단하는 것이 그들에게 너무 이상하고 잔인해 보이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안전한 환경에서 신체에 적절한 처치를 하는 것과, 헛된 희망을 걸고 끊임없이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수십 년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어요. 증상이 심해지면 병원에 감금당하거나, 언젠가 뇌를 치료할 수 있게 될 거라는 위로를 받는 게 다입니다. 하지만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치료법을 가정해서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가 아는 이들 중에는 스스로 다리를 절단하려다 감염되어 죽은 사람도 있어요.”

   이야기를 나누던 중 누군가가 진이 책을 쓰고 있다는 말을 듣고 혜윤을 소개해주었다. 혜윤은 드물게 고유감각 자체를 전부 상실한 사람이었다. 처음에 진은 전달받은 혜윤의 메일로 연락을 시도했다. 혜윤은 손의 위치 감각이 없어 타이핑을 하는 일이 무척 힘들다며 화상 전화를 요청했다. 화면 속의 혜윤은 놀라울 정도로 외견상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쉴 새 없이 자신의 몸을 곁눈질로 확인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진은 마드리드의 모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절단이라는 치료법에 대한 혜윤의 견해를 물었다.

   “그 이상한 친구들에게 소개받으셨단 말이죠? 재미있는 친구들이에요. 하지만 당신의 질문은 잘 모르겠어요. 그들의 심정은 이해가 가요. 저도 제게 감각할 수 없는 몸이 있다는 사실이 끔찍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저에게는 죽는 것 외에 방법이 없는걸요. 그렇지 않나요?”

   혜윤은 농담이었다며 웃었다.

   “저도 죽음을 자주 생각하기는 해요. 그래도 잘 모르겠네요. 당신의 표현대로라면, 그들은 변형된 지도를 가진 셈이고, 저는 아예 지도를 상실한 셈이죠. 차이가 있으니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미국 코네티컷에 본부가 있는 세계 트랜스휴먼 연합은 그들의 인간적 신체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단체였다. 그들의 주된 목적은 아직 법률 규제가 엄격한 증강 시술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도록 증강 자율화 법안을 국제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지금도 규제의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들며 신체를 변형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회장은 어깨까지 길게 늘인 귀가 인상적인 여자였다.

   “그러니까, 규제의 명분은 치료는 되지만 향상은 안 된다는 거죠. 하지만 그게 구분이 되나요? 인간은 항상 자신의 신체를 개조하고 변형해왔어요. 증강을 막을 것이라면 다들 멀쩡한 뼈에도 박아 넣는 임플란트 시술이나 백신 접종도 막아야겠지요.”

   회장은 거대하고 고풍스러운 피어스를 양 귓불에 달고 있어서 마치 고대 문명에서 현대로 이동해온 귀족처럼 보였다.

   “우리 연합의 사람들은 주로 새로운 감각에 관심을 가집니다. 시각과 청각의 개선에 대단히 관심이 많은데, 현존 시술로도 충분히 일반인의 두 배 효율에 달하는 슈퍼비전을 획득할 수 있어요. 다만 그 시술 허가를 받으려면 시력이 저하되었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는 게 우습군요. 자기 센서를 손가락에 삽입하는 것도 유행이 되고 있어요. 저는 일상에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서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젊은이들 말로는 꽤 재미있는 센서라고 하더군요. 아, 겉으로 보이는 신체를 변형하는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 뼈와 근육 일부를 신소재로 과감히 대체해서 매우 곧고 우아한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는 회원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는 아주 성공적인 모델로 활동하고 있지요. 저처럼 외모에 관해서라면 가벼운 시술로 만족하는 이들도 많지만요.”

   트랜스휴먼들은 신체를 변형하고 개조하는 것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목숨이 위험해지지 않는 선에서, 혹은 위험을 감수해가며 그들은 최대한의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목표는 확고했다. 더 나은 기능, 기존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

   진이 트랜스휴먼 연합원들에게 『잘못된 지도』에 관해 물었을 때, 그들 대부분은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의 몸이 잘못되었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다만, 인간이라는 잠재력이 무궁한 영혼을 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는 느끼죠. 그 잠재적인 가능성을 충분히 발현할 수 있도록 신체를 증강하는 것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트랜스휴먼들은 몸 정체성 통합장애를 앓는 사람들과 완전히 달랐고, 사고로 수족을 잃은 이후 환상통을 앓는 사람들과도 달랐다. 트랜스휴먼들은 단지 신체를 변형하는 것에 별로 거부감이 없고 더 나은 신체를 가지기를 원하는 이들이었다.

   진이 물었다.

   “그럼…… 팔을 하나 더 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가끔 팔이 모자란다고 생각한 적은 있긴 하죠. 한 손에는 서류를,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무거운 유리문을 밀 때라던가……”

   여자는 이상한 질문을 받았다는 듯이 무신경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평소에는 두 팔이 그렇게 부족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

   로라는 세 번째 팔을 원했다.

   진은 스물한 살에 로라를 처음 만났다. 대학 피트니스 센터 앞에서 처음 데이트를 시작한 이후로 둘은 계속해서 연인이었다. 진은 로라의 문제를 아주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생각해보면 몇 가지 수상한 점이 있었다.

   로라는 자주 다쳤다. 단순히 부주의하다고 표현하기에는 과할 정도로 자주 어딘가에 부딪혔고, 넘어졌고, 피부가 긁히곤 했다. 그런데 로라는 상처를 입고도 별로 속상해 보이지 않았다. 로라의 오른쪽 팔에서 지나치게 많은 상처를 발견했을 때 진은 로라가 자해를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한 적도 있다. 표정이 어두워진 진에게 로라는 자신이 어릴 때 큰 교통사고를 겪었고, 그 이후로 가끔 근육에 힘이 빠질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부연했다.

   서른 살에 로라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개발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진은 로라가 단지 자유로운 업무 시간을 원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로라는 서른한 살에 세 번째 팔을 달겠다고 선언했다.

   “내게는 세 번째 팔이 있어. 그걸 실제로 만들 생각이야.”

   사고 이후로 로라는 존재하지 않는 세 번째 팔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고로 절단된 사지에 환상통을 겪는 일은 흔했지만, 로라의 경우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팔에 통증을 느끼는 것이어서, 어떤 클리닉도 소용이 없었다. 유일하게 로라에게 효과가 있었던 치료는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치료였다. 스무 살 무렵 신경과 의사가 제안한 방법이었다. 로라는 시뮬레이션 치료를 한 이후 더는 세 번째 팔의 통증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세 번째 팔이 있다는 감각은 더욱 선명해졌다.

   진은 도저히 로라에게 동의할 수 없었다. 거짓 감각을 고칠 일이지, 기계 팔을 다는 것이 어떻게 해결책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진은 로라를 오랜 시간 설득했고, 새로운 클리닉을 찾아냈으며, 다른 병원에 다니며 상담을 받아보도록 권유했다. 처음에 로라는 진의 제안을 따르는 것 같았다. 세 번째 팔을 달겠다는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대신, 순순히 진이 이끄는 대로 클리닉을 받았다. 진은 매일 밤 로라에게 말했다. 나아질 수 있어. 괜찮을 거야. 로라의 거짓말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달 뒤에 로라는 자신이 일주일 뒤 수술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라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기계 팔 이식을 준비해왔다. 가족들을 먼저 설득했고, 다음으로는 세 번째 팔을 다는 수술이 단순히 ‘증강’이나 취향에 따른 신체 변형이 아니라 치료의 목적이라는 것을 지난한 서류 절차를 통해 증명해야 했다. 마지막이 진이었다. 진은 자신의 연인이 존재하지 않는 팔로 인해 그렇게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도, 그 해결책이 뇌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팔을 다는 것이라는 결론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허가를 받아냈다고?”
   “쉽지는 않았어. 지난 십 년간 나의 뇌를 계속해서 자료로 남겨야 했어. 진, 이걸 봐.”

   로라가 내민 자료에는 흑백의 뇌 스캔 데이터들과 그래프와 의사의 소견이 적혀 있었다. 어떤 방법으로도 로라의 뇌는 수정되지 않았다. 잘못된 지도는 이미 로라의 삶 전체를 사로잡았다.

   “나에게는 세 번째 팔이 실존하는 것처럼 느껴져. 봐, 지금도 그 팔이 너를 만지고 있는 것 같아. 우리가 포옹할 때 나는 세 번째 손을 이용해서 네 뺨을 쓰다듬어. 그런데 그게 사실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이질감을 느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꿈에서 깨어나는데, 꿈속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해.”

   침묵하는 진에게 로라가 말했다.

   “네가 받을 충격을…… 나도 상상해봤어. 만약 네 입장이 된다면, 나라도 받아들이지 못할 거야. 하지만 이건 내 어긋난 현실과 인식의 차이를 바로 잡는 문제야.”

   로라는 망설였지만, 결국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진과 무관하게 이미 결정을 내린 것이다.

*

   진이 가장 괴로웠던 것은 로라가 애초부터 진에게 이해받을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로라는 과잉 환상지에 관한 것을 온전히 자신의 문제로만 남겨두었고, 진에게 단 한 번도 그 세 번째 팔의 존재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며, 실제로 기계 팔을 달기 직전에 통보해왔다. 로라의 태도는 마치 진이 절대로 로라의 문제를 공감하거나 해결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전제한 듯한 태도였다.

   어쩌면 그 괴로움이 진을 『잘못된 지도』를 쓰도록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글은 진이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이었고, 진은 로라의 내면을 알고 싶었다.

   진은 제보가 들어오는 대로 인터뷰를 요청했고 수락해준다면 어디든 그들을 만나러 갔다. 일 년의 취재 과정에서 진은 로라와 비슷한 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뇌의 잘못된 지도와 몸의 불일치를 신체의 변형을 통해 바로 잡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몸 정체성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로라는 유사했다. 한편, 신체에서 무언가를 제외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한다는 점에서는 트랜스휴먼들도 로라와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로라와 정확히 같지는 않았다.

    『잘못된 지도』에 실린 사례 중 로라와 유사한 경우는 단 한 건뿐이다. 취재에 응한 노인은 그것이 이미 오래전 과거의 일이라고 회상했다. 그 증상은 50대 후반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발생했는데, 약 2주간 왼쪽 허리 부근에서 또 다른 팔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재활 훈련을 통해 그런 감각을 거의 느끼지 못하며, 가끔 다른 팔이 달려있던 자리가 간지러울 뿐이라고 했다. 그밖에 문헌상으로 보고된 사례가 있었으나 로라처럼 과잉 환상지를 경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대개는 인터뷰했던 노인과 유사하게 뇌 병변의 합병증으로 나타났고, 로라처럼 분명한 팔의 존재로 드러나지도 않았으며, 다른 기능장애가 치료되면 환상지 역시 사라졌다.

   진은 fMRI를 이용해 과잉 환상지를 연구한 십 년 전의 논문을 발견하고 취재를 요청했다. 교신저자에게서는 연구 대상인 환자의 개인정보를 넘겨줄 수 없다는 말과 연구진들 역시 그 이후 새로운 사례를 발견하지는 못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연구에 참여했던 연구원 한 명은 유일하게 취재에 응했지만, 그는 그 실험의 결과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글쎄요. 제가 연구에 참여한 건 사실이에요. 이미지 분석을 맡았죠. 하지만 저는 그 이후로 같은 환자의 경우를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혹시 당신이 아는 게 있다면 알려주면 좋을 텐데요.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도울 수도 있고요……”

   그는 무엇이라도 듣고 싶어 하는 진을 수상하게 여긴 것 같았다. 도울 수도 있다는 말에 진이 잠깐 흔들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은 결국 로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로라가 자신의 환상지를 실재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로라는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계속 기계 팔을 단 채로 살아갈 것이다.

   진은 로라가 든 비유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평생을 살아갈 집의 설계자가 네게 도면을 내밀었어. 분명히 도면에는 커다란 방이 하나 더 있어. 창문이 커서 햇볕이 잘 들고, 방 한쪽에 책장을 들여 서재로도 쓸 수 있을 만큼 멋진 방이야.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 방이 없는 거지. 나에게 도면을 준 그가 나를 비웃어. ‘잘 찾아보세요, 방이 거기에 있다니까요.’ 누가 나를 놀리는 걸까? 내가 환각을 보는 걸까? 책장을 놔둘 곳이 없어 책이 쌓여갈수록 그 가상의 방이 더 절실해지는데, 무언가가 내 눈을 가려서 문을 찾을 수 없는 걸까? 무엇이 내 현실일까? 미치지 않을 수가 없지.

   진은 정확히 그런 감각을 이해하고 싶었다. 진은 로라가 누구에게도 완전히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종종 우울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잘못된 지도』를 쓴 이후 진은 로라의 말을 머리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여전히 공감의 영역은 아니었다.

   -진, 네가 그 모든 일을 했다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하고 슬프게 해.

   로라는 언제나 분명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너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 그 여행을 다녀온 거야.

*

   두 번째 메일에서 H는 진이 대학 시절 잡지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로라의 이야기를 읽었다고 했다. 그제야 진은 글의 내용을 기억해냈다. 그것은 잡지의 연애 코너에 실린 가벼운 에세이였는데, 자주 다치고 부주의한 연인이 걱정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로라에게 에세이를 보여주었다. 로라가 글을 읽고 씩 웃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로라의 그런 특성이 신체의 불일치감에서 비롯한 것임을 진이 그때도 알고 있었다면, 그래도 그것이 사랑스럽게 느껴졌을까.

    [진, 저도 당신과 같아요. 제게 아주 가까운 사람이 몸을 바로잡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건 누가 보아도 끔찍한 결과로 향해 가고 있어요. 저는 불안하고 두려워요.]

   H는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진과 거의 같은 경험을 앞둔 것 같았다. H의 그는 연인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을 것이다. H는 변형된 신체를 가진 새로운 그를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지, 만약 그 새로운 신체를 자신이 끔찍하게 여기기라도 한다면, 그것이 옳은 일인지…… H는 몸을 변형하기로 한 그보다도 더 큰 혼란에 빠진 것 같았다.

   [그를 막아야 할까요? 하지만 제 설득이 효과가 있을까요?]

   진은 H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진은 여전히 로라의 세 번째 팔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만약 로라가 자신의 세 번째 팔을 아주 매끄럽게 다루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로라는 세 번째 팔에 적응하지 못했다. 팔은 오른쪽 어깨 부근의 근육과 신경에 연결되었는데, 로라가 그 팔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던 것이 애초부터 인간에게 없는 신체 부위를 연결했기 때문인지 혹은 후천적으로 연결된 팔이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행위예술가들이 새로운 신체를 몸에 연결했다가 제거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로라처럼 신경 보철을 이용하여 과잉 사지를 단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했다.

   신경 접합 부위를 덮은 인공 피부에서는 자주 진물이 흘렀고, 징그러운 흉터가 생겼다. 팔을 수시로 손질해주어야 해서 결국 인공 피부를 반쯤 떼어냈다. 로라는 기계 팔의 외관을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았다. 로라는 무거운 세 번째 팔 때문에 균형을 자주 잃었고, 염증으로 고생했다. 원래 가지고 있던 팔의 기능마저 저하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의사에게 기계 팔을 떼어내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받았다.

   로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세 번째 팔을 그냥 가진 채로 살아가겠다고 했다. 그것이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현실이라고 로라는 말했다.

   로라에게 세 번째 팔은 증강이나 향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자신의 몸에 대한 훼손이었고, 결함을 갖기로 선택하는 것이었다. 진이 그렇게 긴 여정을 떠났던 이유는, 왜 어떤 사람들이 스스로 결함을 갖는 결정을 내리는지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답은 그곳에 없었다.

   진은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메일을 마저 쓰기 시작했다.

   [H, 제가 당신을 도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당신은 그를 설득하려고 할 테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결정을 내리겠죠. 그러면 당신은 혼란스러워지고, 당신 역시 어떤 특정한 종류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렇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이제 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첫 번째 메일을 받고, 어쩐지 로라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기를 제공해준 당신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요.

   어제 저는 로라를 만났습니다. 거의 두 달만의 재회였어요. 로라가 기계 팔을 단 이후로 우리는 만나다 헤어졌고, 또 만나다 헤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모든 사건이 로라의 팔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건 단지, 우리 사이에 결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다는 걸 확인해주는 하나의 사건이었을 뿐일 겁니다.

   도저히 더 기다릴 수 없어 만나러 왔다는 말에 로라는 그럴 줄 알았다며 웃었습니다. 그리고 로라는 세 번째 팔로 저를 꽉 안아주었어요.

   그 팔은 여전히 차갑고 단단했으며 지독한 기름 냄새가 났습니다. 힘 조절을 하지 못해 부품들이 제 어깨를 파고들어 찔렀고, 공기 중으로 노출된 인공 근육이 제 뺨을 건드렸습니다. 로라의 팔에 여러 번 안겨보았지만,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감촉이었어요. 로라는 제가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세 번째 팔을 늘 포옹에 동참시켰고요. 이번에도 그랬죠.

   눈이 마주쳤을 때, 로라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씩 웃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여전히 로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동시에 제가 앞으로도, 어쩌면 영원히 로라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요.

   하지만 그걸 깨닫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

   마지막 문장을 쓰려고 할 때, 초인종이 울렸다.

   진은 얇은 커튼을 통과해 쏟아지는 햇빛과 서성이는 실루엣을 보았다. 이제 멀리서도 로라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초엽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쓰지만, 거의 항상 실패하는 것 같습니다.

2019/10/29
2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