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교시가 끝날 무렵, 두 통의 문자를 받았다. 하나는 성과 상여 등급이 A1)라는 문자, 다른 하나는 금촌동 집에서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찍어도 되냐는 아들의 문자였다. 아들의 문자에 뭐라고 답할지 고민하며 교무실에 내려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죽상을 한 채 담화를 나누는 이들과 눈치를 보며 업무를 보는 이들로 이미 파(派)가 갈려 있었다. 성과급 내역이 통지되는 날이면 으레 냉담하고 어색한 기류가 교무실 안을 떠돌았다. 한동안 피곤하겠네. 파티션에 몸을 숨긴 채 중얼댔다.
   성과급에 관한 논쟁은 퇴근길에서도 이어졌다. 카풀 메이트인 중국어 교사 오를 태우고 꽉 막힌 올림픽 대로를 건너는 동안 나는 예체능을 담당하는 이들의 고충(몸을 갈아가며 일해도 저흰 항상 B예요)과 노골적인 채근(선생님은 S등급이죠? 그렇죠?)에 내내 시달려야 했다.
   그게 뭐 중요한가요, 허허.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수더분하게 웃으며 화제를 돌리려 애썼다. S든 A든 간에 나는 이 분란에 끼고 싶지 않았다. 적을 만들지 않는 것. 34년의 교직 생활 동안 내가 고수해온 신조 중 하나였다. 사람 좋게 적당히 대꾸하면 오 역시 다른 이야길 꺼내지 않을까 싶었지만, 오는 그런 내 의중 따위 아랑곳 않고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그러니까 본론을 향해서만 돌진했다.
   제가 이런 얘기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요.
   정체 구간을 지나 막 파주로에 접어들었을 때, 오가 느닷없이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곽쌤 아시죠?
   곽. 곽이라면 지난해 우리 학교로 첫 발령을 받은 신입 교사였다. 이전에도 오를 통해 곽에 대한 몇몇 이야기를 전해들은 바 있었다. 사범대 졸업과 동시에 임용고시에 붙었다는 것, 교무실에 커피 그라인더와 드리퍼를 가져다놓고 아침마다 딱 1인분의 커피만 내려―오의 설명에 따르면 드셔보란 말 한 번 안 했다고―사람들의 눈총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조합원이라는 것.
   신입 교사들은 조합에 속하길 꺼렸다. 언질만 비쳐도 부담스러워하는 게 역력해 가입을 권유하기도 어려웠고, 그나마 남아 있던 젊은 조합원들도 하나둘 탈퇴하는 실정이었다. 그런 암담한 시점에 곽이 등장한 것이다.
   저희 부모님도 전교조셨거든요. 어릴 때 엄마 아빠 따라 창립 집회도 갔구요.
   곽이 가입 신청서를 내며 했다던 기특한 말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조합원 사이엔 S등급을 받은 교사가 B등급을 받은 교사에게 성과급의 일부분을 떼어주는 암묵적 룰이 존재했다. 교사 간 불필요한 경쟁을 지양하기 위해 실시된 균등 분배제였고, 누구 하나 거스른 적 없이 18년을 유지해왔는데, 곽이 그걸 딱 잘라 거절하더라고 오는 말했다.
   자긴 그게 부당하다는 거예요. 공정한 평가로 지급된 성과금을 왜 나눠야 하냐고. 분배를 강요하는 게 진짜 불합리 아니냬요. 아니, 그럴 거면 애초에 조합엔 왜 들어온 거야. 이거 완전 명분은 명분대로 챙기고 실리는 실리대로 챙기자는 심보 아니냐고요.
   분한 듯 침까지 튀기며 오는 말을 이었다.
   저는요 요즘 젊은 교사들 너무 어려워요. 영악한 것 같아.
   오의 푸념을 들으며 나는 젊은 교사들에 대해 잠시 떠올렸다. 학생들은 확실히 연차가 쌓인 교사보다는 신입 교사를 더 좋아하고 따랐다. 그들은 유튜브로 수업을 시연했고, 학생들과 선을 넘는 장난을 서슴없이 주고받았으며, 선도에 힘쓰기보다 느슨히 풀어두는 쪽에 가까웠다. 젊은 교사들을 무르고 미숙하다고 질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달랐다. 비록 우리 때보단 패기도 없고 손익을 따지는 면면이 못마땅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시대가 변하지 않았는가. 젊은 교사들의 유연함과 자유로움을 나는 메리트로 보았고, 그들 역시 자신을 인정해주고 이해하는 내게 호감을 갖는 것 같았다. 지난주 교사 회의가 끝나고 내 애플 워치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으니까. 부장님 정말 센스 있으세요. 맞아요 진짜 영(young)하세요.
   파주시청 가까이 도착해서도 오는 내릴 생각 없이 곽에 대한 이야기를, 참교육과 학교 민주화에 불철주야 헌신하던 우리 때 이야기를 마구잡이로 쏟아냈다.
   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가 물었다. 같은 조합원으로서 오의 의견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래도 나는 똘레랑스가 있는 사람이었다. 견해가 다르다고 타인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지.
   글쎄요. 저는 잘……
   오를 보며 나는 허허, 실없이 웃었다. 나까지 애써 그편에 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집에 도착해 제일 먼저 휴대폰을 확인했다. 아들에게 부재중 전화가 두 통 걸려와 있었다. 아직 아들의 문자에 답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저녁으로 먹을 레토르트 카레를 전자레인지에 돌려놓고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 년 전 아내와 별거한 뒤 나는 이곳 금촌동에 단독주택을 지어 혼자 지내고 있다. 아들은 매달 이틀 정도를 이 집에 묵었다 가곤 했다. 그 애와는 나름 돈독한 부자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생활이나 상황에 대해 공유하고, 인터넷에 떠도는 레시피로 함께 불닭게티인가 하는 것을 끓여 먹기도 하고,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보며 밤을 새우기도 하며…… 네 달 전, 아들의 용돈을 끊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들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
   문자 보셨어요?
   다짜고짜 용건부터 전하는 아들의 태도가 마뜩잖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 애의 안부를 물었다.
   그래, 잘 지내니?
   경합 준비하느라 바빠요. 뮤직비디오도 그것 땜에 찍는 거고요.
   경합?
   이비에스 헬로 루키요.
   아들은 이제 스물아홉이었다. 많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새 판을 벌이고 뛰어들기 좋은 나이도 아니었다. 아들이 문화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닐 때만 해도 나는 그 애의 미래가 그저 평범하고 순탄할 거라 단언했다. 페이퍼 엠프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밴드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달마다 적지 않은 생활비와 ‘자랑스러운 아들 석희에게’로 시작하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낸 건 아니었으니까.
   아들은 다음 주 월요일까지 동영상 심사에 제출할 뮤직비디오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아직 로케이션 헌팅을 하지 못했는데, 금촌동 집이 방음도 잘 되고, 숲과 접해 있어 컨셉 측면에서도 딱 적합할 것 같다고.
   차라리 세트를 빌리지 그러니. 카페나.
   아들에게 그만한 공간을 빌릴 여력이 없단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부러 불퉁스럽게 대꾸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아들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아들이 입을 떼기도 전에 나는 말을 가로챘다.
   그것도 아니면 너희 연습실에서 찍으면 되겠구나.
   방음도 안 되는 옥탑에서 어떻게요 아빠.
   아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빈정대며 그 애에게 소리쳤다.
   넌 왜 늘 나한테만 그러냐. 네 엄마한테 말하지.
   이런 얘기 엄마한테는 못하는 거 아시잖아요 아빠……
   불리한 상황이면 늘 그러하듯 아들은 말끝을 흐리며 웅얼댔다. 이번만큼은 넘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이 그 애 쪽으로 기우는 건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지금은 아들에게 가장 비관적인 시기였다. 추측건대 아내의 원조는 훨씬 오래전 끊긴 게 분명했다. 하기야 자식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었으니. 수화기 너머에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서른 가까이 되었는데도 아들은 여전히 애 같았다. 이제 나마저 등을 돌리면 그 애는 영영 무너질 수도 있다. 이럴 때는 마지못한 척 자식의 손을 들어주는 게 능사였다. 자식 이기는 비정한 부모는 언제나 아내였지, 내가 아니었으니까. 별수 없다는 듯 말했다.
   언제 올 건데?
   이번 주말에요.
   집을 쓰게 해줄 순 있어도 아예 비워줄 순 없다. 나도 같이 있을 거야.
   좋을 대로 하세요.
   감사하다는 말을 내심 바랐지만, 아들은 끝까지 그 말은 아꼈다. 인류학과까지 나온 놈이 어째서 온정하고 다정하진 못할까. 아들과의 통화를 마친 뒤, 홀로 늦은 저녁을 챙겨 먹었다. 전자레인지에서 꺼낸 카레는 겉은 뜨겁고 속은 너무 찼다.

   ∞

   아들은 토요일 세 시쯤 도착한다고 했다. 집은 동네 초입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도 30분은 더 걸어야 도착하는 변두리라 아들이 도착하기 전 미리 메시지를 보내놓았다.
   [너네 버스 타고 오지? 데리러 갈까?]
   [저희 차 있어요. 그거 타고 갈 거예요.]
   아들을 기다리는 동안 옷을 여러 벌 갈아입었다. 고심 끝에 초이스한 건 몇 년 전 스파 매장에서 집히는 대로 골라 산 건즈 앤 로지스 티셔츠였다. 셔츠에 커피를 쏟아 얼결에 산 옷을 이렇게 입게 될 줄이야.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꼼꼼히 살폈다.
   너무 튀나.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려다 마음을 고쳤다. 좋든 싫든 아들의 동료―그렇게 부르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들과 만나는 날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등산용 바람막이나 생활한복을 입는 교사들을 얼마나 우스워하고 깔보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구닥다리로 비쳐지긴 싫었다. 아들도 그걸 원치 않을 테고.
   약속한 시간에서 삼십 분이 지났을 때, 밖에서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거실로 뛰어가 창을 내다보았다. 연식이 오래된 다마스 한 대가 마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요즘에도 저런 차가 생산되나. 무난한 등장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생각보다 더 괴이했다. 다마스에서 내린 사람은 아들을 포함해 총 네 명이었다. 창가에 서서 떠들썩하게 짐을 내리는 아들의 동료들을 쓱 훑었다. 어깨가 한 뼘 이상은 남는 오버핏 재킷에 하네스 벨트, 나이키 홀로그램 로고가 전면에 인쇄된 후드 집업은 패션을 좀 아는 내가 봐도 난해했다. 아들 역시 비슷한 차림이었지만, 그 애의 해괴한 헤어밴드보단 핼쑥한 얼굴에 더 눈길이 갔다. 4개월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 아들은 훨씬 앙상해져 있었다. 무모하게 일을 벌이는 그 애 때문에 분통이 터지다가도 이럴 땐 애처롭고 딱한 마음이 앞섰다.
   도어락 누르는 소리가 났다. 아들과 그 애의 동료들에게 건넬 첫인사를 고르며 현관으로 다가갔다.
   어서 와요.
   악수를 건네려 막 손을 내밀 때,
   화장실 어디예요?
   앞서 집 안으로 들어온 녀석이 내 말을 뚝 잘랐다. 머쓱하게 손을 거두곤 화장실을 가리켰다. 뒤에서 웃음이 터졌다. 나를 두고 웃는 건지, 화장실로 달려가는 녀석을 두고 웃는 건지 잘 가늠할 수 없었다. 아들의 동료들―이런 칭호가 과연 알맞을까―은 전부 어려 보였다. 끽해야 스물 아님 스물둘. 얼굴은 조숙해도 말이나 행동에서 어쩔 수 없이 티가 났다. 그에 반해 아들은 꼭 그 애들의 늙은 선배 내지는 조교처럼 보였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 애들 틈에 섞여 웃고 떠드는 아들에게 나는 물었다.
   저거 누구 차냐?
   방금 화장실 들어간 애 차요.
   왜 저런 걸 끌고 다닌다니.
   아들은 화들짝 놀라며 목소리를 죽였다.
   그런 말은 왜 해요 아빠.
   가까이서 본 아들은 안쓰러울 정도로 수척해 있었다. 입술도 다 부르튼 데다 가뜩이나 숱 없는 머리를 헤어밴드로 넘겨 더 궁해 보였다.
   밥은 먹었니?
   아뇨.
   나는 아들의 동료들에게로 시선을 돌린 뒤, 점잖고 나긋한 말투로 되물었다.
   뭐 좀 시켜줄까요? 다들 피자 좋아해요?
   피자 좋죠.
   나이키를 입은 녀석이 넉살 좋게 감사하다고 하자 다른 아이들도 따라 고개를 숙였다. 옷차림은 좀 특이해도 자세히 보니 얼굴은 둥글둥글 모두 유순하게 보였다. 예의나 체면을 아주 차리지 않는 애들은 아니구나. 안도하며 파파존스에 전화를 걸려던 찰나, 곁으로 아들이 다가왔다.
   아빠.
   아들은 내 어깨에 슬며시 팔을 두르며 말했다.
   고기랑 햄은 빼달라고 하세요. 저희 채식하거든요.
   채식?
   네.
   그거 너도 하는 거냐?
   네.
   헛웃음이 나왔다. 내 주변에도 베지테리언이 몇 있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교감이었다. 나보다 다섯 살 많은 교감은 당뇨를 앓았고 마흔부터 고기를 끊었다. 교감은 점심시간마다 교무실에 앉아 급식 대신 현미로 만든 밥과 두부조림을 먹었다. 주위 시선은 전혀 아랑곳 않고. 그만하면 다행이지 한 번은 회식으로 망원동에 있는 페스코 베지테리언 식당에 가자고 해 모두를 당황시킨 적도 있었다. 독고 선생도 고기 끊어 봐요. 확실히 달라.
   그치만 아들은?
   그 애는 건강했고, 평소 잡채에서 고기만 골라 먹을 정도로 사족을 못 썼다. 그런 애가 채식이라니. 아들은 트위터에서 공장식 축산과 동물 실험에 대한 트윗을 보고 채식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밴드 멤버들은 자기보다 더 철저한 베지테리언이라고.
   한 판은 치즈까지 빼주셔야 돼요. 비즈는 비건이거든요. 우유도 안 먹어요.
   비즈?
   아들은 나이키를 입은 녀석을 가리켰다. 비즈가 진짜 이름이냐고 물을 틈도 없이 아들은 다시 제 무리에 섞여들었다. 주문하려던 콤비네이션 피자에서 햄과 고기 토핑을 뺐다. 아들의 주문대로 다른 한 판은 치즈까지 빼고. 고기가 그렇게 문젠가. 피자에서 치즈를 뺄 정도로? 잠시 입맛을 다셨다. 흘러내리는 바지를 추켜올리는 아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해는 가지 않지만, 그래도 뭐 어쩌겠나 존중해줘야지.
   애들은 집 구경에 바빴다. 금촌동 집은 고명한 건축가 장―내 고등학교 동창이었다―이 설계한 복층형 단독주택으로, 건축 잡지 표지에 실릴 정도로 근사했다. 특히 거실 인테리어가 돋보였는데, 남향으로 난 전면 창 앞에 서면 잣나무 숲이 훤히 내다보였고, 거기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책이 빼곡히 꽂힌 오크목 책장이 보였다. 거실 한 면을 차지한 커다란 오크목 책장은 이 집의 큰 자랑거리였다. 집을 방문한 손님들도 그것만 보면 탄성을 내지르곤 했으니. 역시 국어 선생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
   애들은 1층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아들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나이키를 입은 녀석만 빼고. 녀석은 거실 책장 앞에 서서 책을 꺼내보기도 하고, 장식품을 구경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와, 책 진짜 많네.
   감탄하는 녀석을 우쭐한 마음으로 주시했다. 아내와 함께 살 때도 나는 거실에 TV를 두지 않고, 벽 한 면을 책에 양보했다. 책장엔 대학 시절부터 차곡차곡 모은 책들- 학원사 세계문학 전집, 창간호부터 최근까지의 《문학동네》, 월간 《키노》와 《씨네 21》……, 오래된 LP 컬렉션과 함께 조합에서 받은 상패가 전시되어 있었다. 상패는 책장 한 편에 무심한 듯 놓여 있었지만, 틈날 때마다 마른 융으로 닦아 광을 내는 애물(愛物)이었다. 나이키는 그것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저씨, 전교조예요?
   이전에 누군가 그렇게 물어올 때, 나는 늘 거리낌 없이 그렇다고 답해왔다. 지금은 활동을 뜸하게 해도 한때는 조합의 지부장으로서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높이고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힘써왔으니까. 그건 어찌 보면 내 아이덴티티, 자부심이었는데. 그날 나이키의 물음에는 평소와 사뭇 다르게 반응해버렸다.
   그건 왜……?
   내 물음에 녀석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그냥요.
   2층에 올라갔던 아이들이 내려오고, 나이키가 자리를 뜬 후에도 뇌리엔 내내 녀석의 말이 박혀 맴돌았다. 나를 힐끗대던 녀석의 미묘한 눈빛, 감사패를 툭 건드리던 손도 신경 쓰였다. 책장으로 다가가 비뚤어진 감사패를 바르게 정렬했다. 34년의 교직 생활 동안 나는 수많은 아이들을 겪어왔다. 약간의 변수는 존재해도 그 나이대 애들이란 다 거기서 거기. 말을 조금 섞어보면 그 수도 어느 정도 파악됐다. 스마트폰을 들고 거실을 누비는 애들을 훑어보았다. 아직 가늠은 되지 않지만, 아마 저 애들 역시 비슷하리라.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는 애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둘러앉아 채소가 잔뜩 든 피자를 먹는 동안에도 그 애들은 좀처럼 폰을 놓지 않았다. 통성명조차 않고 다들 무언가 하느라 바빴다. 이럴 땐 아들이 좀 나서주면 좋을 텐데. 멀뚱히 앉아 니 맛도 내 맛도 없는 피자를 씹으며 생각했다.
   쟤넨 몇 년생이니?
   아들에게 물었다.
   구십 구년 생이요. 어리죠?
   대답 대신 쩝, 입맛을 다셨다.
   다들 생각도 깊고 음악도 잘해요.
   그 애들은 조금 전부터 스마트폰 전면 카메라를 켜놓은 채 저들끼리 시시덕대고 화면을 향해 무어라무어라 웅얼대고 있었다.
   쟤들 지금 뭐 하는 거니?
   인스타 라이브요.
   그게 뭔데?
   그러니까…… 팔로워들이랑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홍보도 하고, 뭐 그런 거예요.
   누군가 자기들의 일거일동을 지켜보고 있다는데도 그 애들은 무감하게 피자를 먹거나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말없이 먹기만 하거나 화면을 벗어날 때도 태반이었다.
   저걸 보는 사람이 있어?
   네. 스물여섯 명.
   아들은 화면 상단의 숫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화면에 띄워진 아들의 얼굴 위로 댓글과 하트가 떠다녔다. 아들이 카메라를 내 쪽으로 돌렸다.
   아빠도 찍어보실래요?
   화면은 이제 내 얼굴로 채워졌다. 드문드문 달리는 댓글과 알록달록한 하트,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화면 속 나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시대에 뒤처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폰을 썼고 모바일 앱으로 신문을 읽었고 페이스북 계정도 있었다. 그치만 이건. 고요하면서도 시끄럽고 무심하면서도 관심으로 들끓는 이곳은. 내가 아는 세계는 아니었다.
   난 됐다 됐어.
   손사래를 치며 서둘러 화면 밖으로 빠져나왔다. 잠깐이었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내게는 이렇게 이질적인 세계를 아들과 그 애의 동료들은 대수롭지 않게 드나든다는 것도 희한했고. 이만큼 따라왔나 싶으면 또 저만큼 멀어지는 게 요즘 세상이었다. 치즈 없는 피자를 먹는 애들을 둘러보았다. 비록 저 애들보다는 뒤처져도 동년배에 비해선 그래도 적응이 빠른 편이었다. 그래도 난 아이폰을 쓰고 신문도 모바일 앱으로 읽고 페이스북 계정도 있으니까. 키오스크나 애플 페이를 사용하는 데에도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 중요한 건 언제나 속도가 아니라 수용이었다.
   저 세계도 언젠가 적응되겠지.
   하트와 댓글로 도배된 스마트폰 창을 보며 생각했다.

   얼추 배가 찼을 때에야 아이들은 뮤직비디오 촬영을 시작했다. 원래 야외에서 촬영할 예정이었지만 그러기엔 미세먼지 농도도 짙었고 마당 역시 관리하지 않아 잔디가 웃자라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촬영은 집안에서 강행되었다. 아이들은 가지고 온 짐을 거실에 부렸다. 그 애들이 가져온 악기라곤 펜더 일렉 기타 하나가 전부였다.
   베이스나 드럼 같은 건 없나보네.
   여기 다 있는데요.
   나이키는 아이패드를 가리켰다. 거기 뭐가 있다고? 되물을 새도 없이 녀석은 스위치와 페달이 많은 기계 하나를 가져오더니 그것을 곧장 아이패드에 연결했다.
   그건 뭐니?
   루프스테이션이요.
   루프…… 뭐?
   루프스테이션요.
   한때 학교 밴드부를 지도한 적도 있었지만, 그때도 그런 건 본 적이 없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프로페셔널해 보이는 장비. 휘둥그런 눈으로 장비를 살피는 내게 녀석은 소리쳤다.
   아저씨 여기 계속 계실 거예요?
   독 오른 고양이처럼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는 녀석에게 쭈뼛쭈뼛 말했다.
   미안하다. 방해 안 할게.
   그 애들과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나는 조용히 주위를 살폈다. 아들은 소파에 앉아 기타를 튜닝하고 있었다. 분주히 무언가 연결하고, 설치하는 애들 틈에서 그 애 혼자 고요했다. 섬섬옥수로 프렛을 짚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좀 침울해졌다. 아들은 3월생이었다. 빠른 년생은 아니었지만 나와 아내는 무리하게 그 애를 조기 입학시켰다. 그때는 그랬다. 뭐든 빠른 게 좋은 거라는 인식. 남들보다 일 년을 버는 게 이득이라는 믿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애는 또래에 비해 뒤처졌다. 발육이 더뎠고, 삼수를 해 겨우 대학에 들어갔으며 졸업이 유보되어 대학원 입학도 일 년 지체되었다. 본래 그 애 체성이 그랬다. 뭘 하든 느리고 조심스러웠다. 세상은 급진적이고 치열하고 격렬한데 그 애만 그 속에서 홀로 슬로모션 중이었다. 아들은 스트링을 몇 번 튕기다 내 쪽을 힐끗 보았다. 그 애를 향해 손을 흔들어보였다. 저게 밥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이 애정을 쏟고 있는 대상인 건 분명했다. 느리긴 해도 그 애는 한 번 문 건 끝까지 놓지 않고 붙드는 근성이 있었다. 김성모 만화 주인공처럼. 미간까지 좁힌 채 집중하고 있는 아들을 보자니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근성과 패기. 그거야말로 재능 아니겠나, 밥이야…… 내 몫을 나누어주면 되지.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세팅한 후, 오크목 책장을 배경으로 두고 섰다. 그 애들이 촬영을 준비하는 모습이 인스타그램으로 여전히 생중계되고 있었다. 피어오르는 하트, 댓글들. 숨을 죽인 채 아들과 그 동료들을 지켜보았다.
   나이키가 아이패드를 통해 드럼비트와 베이스라인을 찍어내고, 오버핏 재킷이 비트에 맞춰 화음을 넣으면 하네스 벨트를 맨 녀석이 루프스테이션을 조작해 그것들을 오버 더빙했다. 풍부한 화음, 둔중한 베이스음, 리드미컬한 드럼 비트가 겹겹이 쌓이며 리듬이 만들어졌다. 아이패드와 루프스테이션을 능숙하게 다루는 아이들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애들은 뭐랄까. 내가 아는 밴드와는 확실히 달랐다. 이채롭고 생경하긴 했지만, 그건 음악이라기보다는 기술에 가까웠다.
   저런 것도 음악이 되나.
   가사도 단 한 줄에 불과했다.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야 아니야 그게 아니야.

   저게 정말 음악이 맞나.
   들으면 들을수록 더 알쏭달쏭해졌다. 심란한 얼굴로 비트에 귀 기울일 때, 밴드에서 유일하게 악기를 연주하는 아들의 기타 솔로가 시작되었다. 내심 고대하며 아들의 연주를 지켜보았다. 그래, 너만은.
   믿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밴드의 옥의 티는 아들이었다. 기계가 만들어낸 다채롭고 현란한 사운드에 아들의 연주는 자꾸 묻혔다. 심지어 중반쯤 이르렀을 땐 삑사리가 나기도 했다. 아, 자꾸만 탄식이 새어나왔다. 아들의 손에 들린 펜더 기타를 빤히 쳐다보았다. 저 기타가 아들의 손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아들이 맥도날드에서 받은 산재 보상금으로 화상 치료를 받는 대신 일렉 기타를 샀을 때 얼마나 골이 터졌는지도. 그때를 떠올리자 미약한 두통이 일었다. 그때 엄하게 혼을 냈어야 했는데, 화상 치료비를 대신 지불해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니 그 전에 그 빌어먹을 아르바이트를 시키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아들은 아직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지 않았을까. 곡은 이제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고 있었다. 미간을 좁히며 연주에 몰입하는 아들을 볼 때마다 더더욱 복잡해졌다.
   어때요?
   한 차례 촬영이 끝나고 아들이 나를 향해 물었다. 맘 같아선 빌어먹을 거 당장 관두라고 윽박지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나는 너무 점잖은 사람이었다. 한껏 달뜬 얼굴로 나를 보는 아들이 걸리기도 했고.
   좋은데…… 음. 악기가 더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
   나이키가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악기는 지금도 들어가 있는데요?
   그치…… 그렇긴 한데 내 말은…… 진짜 악기 말이다. 샤우팅도 좀 들어가면 더 밴드 같을 거 같고. 백두산이나 시나위처럼.
   백두산? 시나위? 그게 뭐야? 백두산은 북한에 있는 거 아냐? 애들이 수군거렸다. 당황했지만 내색지 않고 말을 보탰다.
   시나위는 요즘도 활동하는 밴든데. 너희 다 모르니?
   내 말에 애들은 스마트폰을 꺼내들곤 서치를 시작했다. 유튜브에 업로드된 시나위 공연 영상을 보며 나이키가 말했다.
   아, 이거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아요.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들으며 녀석은 말을 이었다.
   근데 이거 너무 구식이네요. 피치도 떨어지고 메이저 스케일에서 벗어나질 못하는데.
   어그먼트 코드니, 파라디들 패턴이니 들먹이며 음악성에 대해 논하는 나이키와 그 옆에서 맹추처럼 고개를 주억이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심기가 거슬렸지만 꾹 참고 비위 좋게 대꾸했다.
   허허, 그래도 우리 때는 기라성 같은 밴드였어.
   그런 말 쓰면 안 되는데.
   뭐?
   기라성이요. 그건 일본 잔재잖아요. 유도리, 찌라시 이런 말처럼.
   어안이 벙벙해졌다. 녀석은 손까지 꼽으며 잔존해 있는 일본말을 하나하나 열거하기 시작했다. 노가다, 기스, 와꾸…… 나를 가르치는 듯한 녀석의 태도에 아까 받은 수모가 겹쳤다. 속이 끓었고, 분노가 치밀었지만 어찌되었든 녀석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우기고 땡깡을 부리며 모욕을 되갚아주는 것보다 일단은 굽히는 게 어른으로서의 체통을 지키는 일이리라.
   그래, 주의하마.
   네, 앞으론 그런 말 쓰시면 안 돼요 아저씨.
   나이키가 말했다.

   화장실로 가 찬물 세수를 했다. 나이키의 말을 듣는 동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것을 아들도 눈치챘을 것 같았다. 싸가지 없는 놈. 참아보려 해도 울분이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34년간 우리말을 가르쳐온 순간들이 녀석으로 인해 한순간 부정당하고 엉터리로 매도된 것만 같았다. 왜 녀석을 참아줬을까. 찬물을 연거푸 얼굴에 끼얹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학생인권조례니 뭐니 해도 동료 교사 중엔 여전히 애들에게 매를 드는 이들이 있었다. 폭력이나 폭언 없이는 훈육이 불가하다고 믿는 작자들. 구태의연한 교육방식을 꾸준히 고수하는 작자들. 일평생 나는 그들과는 다른 부류였다. 그들보다 더 진보적이고 참을성 있었으며 유연했다. 비이성을 비이성으로 갚아주는 게 얼마나 보기 흉한 일인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굳이 적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거울 앞에서 되뇌듯 중얼댔다.
   그래, 나는 베테랑이니까.
   개운치는 않았지만, 그렇게 말하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축축하게 젖은 얼굴을 건즈 앤 로지스 티셔츠에 문질러 닦고는 화장실에서 나왔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입꼬리를 올리며 아들에게 향했다. 아들은 다른 애들과 한데 모여 녹화본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다른 애들도 모니터를 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아빠,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아들은 난처한 얼굴로 나를 부엌으로 끌고 갔다. 밴드 멤버들 쪽을 힐끗대며 그 애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희가 방금 촬영본을 확인해봤는데, 좀 걸리는 게 있어서요.
   뭔데?
   그게……
   아들은 머뭇대다 책장에 가지런히 놓인 감사패를 가리켰다.
   저건 빼야 될 것 같아요. 너무 튀고 화면에 예쁘게 잡히지 않아서……
   입가에 드리워져 있던 미소가 서서히 가셨다. 아들을 향해 나는 조용히 물었다.
   누가 시키던?
   네?
   누가 빼라 시켰냐고.
   아들은 선뜻 입을 떼지 못했다. 누구 짓인지는 안 봐도 뻔했다. 책장 앞에 서 있는 나이키 앞으로 나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막 감사패를 집어든 녀석을 똑바로 응시했다. 녀석 역시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침착하려 애쓰며 최대한 점잖게 말했다.
   그거 내려놔라.
   아들이 다급하게 다가와 내 팔을 잡았다.
   아빠, 얘네가 이런 거 많이 찍어봐서 잘 알아요. 아빠도 아시잖아요. 미장센이 중요하다는 거.
   다른 녀석들도 말을 보탰다.
   빨리 찍고 그대로 제자리에 둘게요.
   한 번만 봐주세요 아저씨.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식뻘 되는 애들과 얼굴 붉히고 싶진 않았다. 아들 앞에서 추태를 부리는 것 같기도 했고.
   그래, 나는 똘레랑스가 있는 사람이니까.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합의점을 찾으려 할 때, 나이키가 또다시 툭, 손가락을 튕겼다. 존나 별것도 아닌 걸로. 감사패를 건드리며 그렇게 중얼거린 것 같기도 했다. 피가 얼굴로 확 몰렸다.
   내려놔.
   아들이 불안한 얼굴로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아들 때문에라도 더 녀석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완고하게 일렀다.
   여긴 내 집이야.
   와, 진짜 대박이네. 녀석이 실소를 터트렸다. 얼떨떨한 얼굴로 상황을 관망하던 다른 녀석들도 한 명씩 따라 웃었다.
   웃어? 녀석들은 뭐가 우스운지 계속 큭큭댔다. 큭큭. 나의 34년을 애물로 취급하는 녀석들. 버릇없고 무례한 그 애들에게 진저리가 났다. 부끄럽다는 듯 내게 등을 돌린 아들에게도. 이젠…… 정말 못 참아.
   야! 니들 정말……
   단전에 힘을 잔뜩 주고 소리치려던 찰나,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인스타그램 라이브 화면에 형형색색의 하트가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이전보다 더 급격하고 기하급수적인 하트.
   [????????]
   [??????]
   [?????????]
   솟구치는 댓글들. 그리고 순간.
   픽.
   끓는 냄비 안에서 부풀고 부풀다 터지는 만두처럼 픽, 단전에 힘이 빠져버렸다. 그 애들은 여전히 폭소하고, 아들은 연신 바지를 추켜올리고. 저게 밀레니얼이구나. 화면 속 나를 향해 쏟아지는 무수하고 끊임없는 하트를 보며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는 거 아니다…… 니들 정말 그러는 거 아냐.

   ∞

   월요일에도 파주 시청 근처에서 오를 픽업해 학교로 향했다. 차에 타자마자 오는 기다렸다는 듯 이틀 치 밀린 이야기를 쏟아냈다. 평소였다면 듣고 싶은 말은 듣고 거를 말은 거르며 적당히 맞장구를 쳤을 테지만, 그날 아침엔 도저히 기분이 나지 않았다. 말없이 운전만 하는 내게 오가 슬쩍 물었다.
   쌤은 주말 잘 보내셨어요?
   네. 뭐 그냥……
   말을 흐렸다. 잇몸이 욱신거렸다. 그 애들이 떠나고 이틀 내내 먹은 고기 때문이었다. 애들이 촬영을 제대로 끝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애들이 거실에 있는 동안 나는 방에 누워 맥없이 천장만 바라보다 집안이 완전히 고요해진 뒤에야 1층으로 내려왔다. 허기가 졌다. 널브러진 물건을 제자리에 정리하고 차게 굳은 피자를 휴지통에 욱여넣은 뒤, 벽지에 누린내가 밸 때까지 양껏 고기를 구워 먹었다. 소와 돼지, 닭, 냉동고 깊숙이 들어 있던, 언제 사놓았는지 모를 고기들까지도. 잇몸에 피가 맺힐 때까지 양치를 했는데도 어금니에 낀 고기가 빠지질 않았다. 쯥쯥, 혀로 어금니를 건드리며 오에게 말했다.
   주말에 아들이 왔어요.
   어머, 그 대학원 다닌다던 아드님? 좋으셨겠네.
   오가 말했다. 문득, 오라면 내 입장을 이해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전교조 창립 멤버였고 대학 다니는 딸도 있었으니까. 지난 주말에 있었던 사건을 나는 그녀에게 찬찬히 털어놓았다. 채식 피자, 인스타그램 라이브, 루프스테이션, 감사패를 툭, 건드리던 녀석의 건방짐과 내가 겪은 치욕과 수모에 대해. 목소리가 커지고 쉰 소리가 나왔다. 실수로 클락션을 누르기도 했다. 오는 아무 반응 없이 내 이야기를 듣다 한참 만에 대꾸했다.
   아…… 그래요?
   짧은 정적.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메시지를 확인하며 오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그 얘기 했던가요? 어제 곽쌤이 나한테 기프티콘을 보냈다고? 아니 자기 말이 너무 셌던 것 같다고 그러데요.
   잇몸에 이물감이 심하게 느껴졌다. 쯥쯥 쯥쯥 쯥쯥. 잇따라 쯥쯥대는 나를 오는 살짝 흘겼다. 그녀가 말했다.
   사람이 의뭉스런 구석은 있어도 악하진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성과급 나누겠단 말은 끝까지 안 하는 거 있죠.
   스마트폰으로 연예 기사를 읽으며 그녀는 말을 보탰다.
   뭐 어쩌겠어요. 요즘 애들이 다 그렇지.
   쯥쯥, 혀를 굴리며 나는 요즘 애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 애들의 불손한 언행과 내가 입은 피해를 머릿속으로 열거해보았다. 따지고 보면 심각한 일은 아니었다. 그 애들이 정말 내게 피해를 줬나 싶기도 했다. 존나 별것도 아닌 걸로, 그 말을 녀석에게 직접 들은 것도 아니고, 내가 겪은 면면이 그 애들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면 내가 느낀 모멸의 정체는 무언가. 이게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정체된 도로에서 슬금슬금 엑셀을 밟으며 중얼댔다.
   네. 요즘 애들이 다 그래요.
   쯥, 어금니에 낀 고기가 빠질 듯 빠지지 않았다.

* 노래가사는 Yaeji의 노래 〈Drink I'm Sippin On〉에서 빌려왔다. 가사의 일부만 빌려왔을 뿐, 작중 밴드의 컨셉은 아티스트 Yaeji나 여타 밴드들과는 전혀 무관하다.


성해나

거실에 TV 대신 책장이 놓인 집에서 이십 년간 살았다. 그 집에 살며 아빠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아빠 역시 그랬겠지)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쉽지 않고 종국엔 오해로 남는 것 같다. 오해가 된 이해. 그것을 오래 이야기하고 싶다.

2020/01/28
26호

1
2001년 ‘건전한 경쟁을 통한 교원의 질 향상 및 사기 진작’을 목적으로 도입된 교원 성과급제. S등급은 상위 30%, A등급은 40%, B등급은 하위 30%로 각각 차등을 두고 성과급을 지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