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멧돼지가 내려왔다.
   밭귀를 열 평이나 되게 절단을 내놓았다. 짐승들은 마치 무딘 낫으로 쪄내듯이 옥수숫대를 자빠뜨리고 옥수수자루만 해먹었다.
   발자국을 추적해보니 새끼 네댓 마리를 거느린 암퇘지로 추정되었다. 짐승들은 물도랑을 따라 내려와 밭귀에 앉은 묘지를 타고 밭으로 들었다. 봄에 난 새끼들을 달고 산 아래로 내려올 때다. 큰 산 끼고 농사를 짓는 근동 여러 농가에서 산짐승 피해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밭 임자는 요양원으로 가고 지금은 이웃 마을에서 한우 치는 젊은 농부가 밭을 부쳐 먹고 있다. 노인이 지어먹을 때는 고추 농사를 해서 산짐승을 탄 건 올해가 처음이었다. 이제 길을 튼 멧돼지 일가는 밤마다 드나들며 옥수수 농사를 망쳐놓을 것이다.
   장마 끝 물쿤 날씨에 옥수수 이파리는 시들시들하다. 노인은 총부리로 작물을 헤쳐서 이삭을 살펴보았다. 메옥수수는 여물어서 이른 건 수염이 고스러지고 있다. 한 보름만 지켜내면 수확할 밭이다.
   옥수수밭 윗자리로 벌써 산그늘이 내렸다. 그래도 온 골짜기가 끓는 여물통이다. 일기예보에서는 나흘째 열대야가 지속되리라고 했다. 거미줄이 낯에 안길 때마다 노인은 데인 듯 목에 두른 수건으로 훔쳐냈다.
   노인은 수렵 허가를 받고 엽총을 찾아왔다.
   그는 오늘밤을 보고 있다. 매복할 만한 데를 미리 봐둘 생각이다. 야음에도 이동로를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자리를 잡아야 했다. 그러자면 몇 해 묵힌 복숭아 과수원 울타리를 넘어야 하는데 칡덩굴이 우거진 곳에 발 들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과수원 안쪽에 버려진 농막이 있기는 하다. 지붕에 자리를 잡으면 밭뿐 아니라 숲 가장자리까지 한눈에 둘 수 있다. 문제는 사정거리가 너무 멀어 보인다. 예전 같으면 그보다 먼 데서도 먹일 수 있겠으나 아무래도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다.
   조용한 골짜기에 행상 트럭 소리가 들려왔다.
   싱싱한 생선이 왔고 따끈따끈한 두부가 왔다……
   행상 트럭은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다음 마을로 가느라고 골짜기를 오르는가 보았다. 고개 너머 저수지 가에 전원 마을이 있다. 행상이 온갖 부식을 싣고 이 일대를 상대로 삼 년째 장사를 다닌다. 이제 이웃같이 임의로운 사내를 떠올리자 노인은 담배 생각이 났다. 그는 행상 트럭을 놓칠세라 옥수수밭 고랑을 빠르게 헤쳐 나갔다. 그가 옥수수밭 고랑으로 내려오는 동안 호객 소리가 한층 가까워진다.
   다행히 트럭은 고샅길 마루에 서 있다. 무슨 손님이 있어 이런 외진 고갯마루에 섰을 리 없다. 그곳은 늙은 곰솔이 한 그루, 그늘 좋은 바람 자리라 차창 열어놓고 담배 한 대 그슬릴 만했다.
   그러나 트럭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녹음된 호객 소리만 저 홀로 듣그럽다.
   콩밭 아래 계곡에서 인기척이 나고 상인이 올라왔다. 남방셔츠 앞섶이 젖어 있다. 길 밑에 서서 상인이 손을 내밀자 노인이 손을 내주었다. 훌쩍 뛰어오르는 상인을 맞으며 노인이 말했다.
   “거기 계곡이 얼음골이야.”
   “머리만 담갔는데도 멱을 감은 것 같아요.”
   상인은 짧게 친 머리가 흠뻑 젖어 있다. 노인이 엽총을 든 모습을 보고 그가 덧붙였다.
   “어디 과수원에서 공갈탄을 쏘는 줄 알았더니 포수 총소리였네. 그래 뭘 좀 잡았어요?”
   “잡긴 뭘 잡어. 길 좀 들이느라 사람 없는 데서 몇 방 당겨봤지.”
   노인은 엽총을 소나무 둥치에 기대어놓고 힙색을 벗고 조끼 지퍼도 풀었다. 나무 그늘로 바람이 흘러가는데도 시원한 맛이라고는 없다. 상인은 스피커를 끄고 돌아온다. 그가 담배를 내밀어 두 사람은 나누어 피웠다. 오랫동안 인사처럼 해오던 일이다.
   “작년에는 쉰 마리나 잡았다면서요?”
   “누가 그래?”
   셈해보지도 않았지만 노인은 추어주는 소리가 괜히 마음 한쪽에 괸다. 산짐승을 잡아대는 일이 길거리 무용담으로 도는 게 우쭐하기는커녕 께름칙하다. 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인이 들뜬 소리로 말한다.
   “거 왜 회관에 살던 인천 형님 계시잖아요?”
   “금열이? 금열이가 그래? 올봄까지도 여기 살지도 않던 사람이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해. 그리고 걔가 왜 형님이여? 둘이 나이가 거지반 비슷할 건데. 올해 몇이랬지?”
   “닭띠요.”
   “외려 금열이가 한 살 밑이구만.”
   “그래요? 그렇게 안 보이던데.”
   “작년에 환갑 났다네.”
   “얄밉네, 형님 소리를 태연하게 받아내고.”
   “그놈이 누굴 만나든 낫새부터 꺾고 들려는 버르장머리가 있단 말야. 걔가 서른 넘어서 동네를 떠났는데 낫낫한 제 친구들 아버지한테도 형님이라고 불러대 동네 족보를 요상하게 해놨지.”
   “그나저나 회관에서는 왜 쫓겨났데요, 고향에 왔다고 좋아하던데?”
   “누가 쫓아내? 당장 들어가 살 데 없다고 해서 애초에 그러자고 임시로 내준 거지. 회관이 어디 세놓고 그런 데여. 빈집을 사네, 집 지어 나가네 하더니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야. 귀촌이네 어쩌네 말은 고상하데만 돌아온 사람이 다 반가운 건 아니지. 그놈이 하고 다니는 소리 좀 보게. 쫓아내? 괜히 동네 사람들을 못쓰게 만들어. 그쪽은 외상을 받았어? 골치를 앓는다더만.”
   “골치는요, 뭐. 그깟 몇 푼 곧 주겠죠. 거기도 일 잡았다고 엽총을 메고 다닌다던데요.”
   “금열이가 총을 메? 어디서?”
   “상리 쪽에서 봤어요. 스쿠터도 하나 구해서 온갖 데를 다 다니더라고요.”
   노인은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그런 놈한테 수렵 허가가 떨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걸로 사람이나 안 잡을까 걱정이었다. 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간 묵은 마음이 깊은 데 놀랐고, 남의 동네 사람한테 괜한 소리를 너무 지껄인 건 아닐까 후회가 밀려왔다. 이유야 어떻든 동네에서 내쫓은 셈이었으니까. 노인은 한껏 시르죽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인저 이 짓도 못 해 먹겠어. 눈도 가물가물하고.”
   “영감님도 약해진 소리를 다 하네. 사방을 다녀 봐도 포수 별호를 단 사람은 영감님밖에 안 계셔요.”
   사람들은 노인을 ‘강 포수’라고 불렀다. 사내가 위로하느라 그냥 하는 말이려니 노인은 여겼다.
   “작년에는 산짐승들이 좀 극성이었어? 멧돼지가 개밥그릇까지 핥고 갔는데. 밤잠을 통 못 잤어.”
   “대체 포상금이 얼마야? 마리당 한 오만 원씩 쳐준다니까…… 고기는 고기대로 식당에 넘길 테고. 가용벌이로 그만한 직업이 어딨어요. 나도 군대 있을 때 사격 좀 열심히 배워둘걸.”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밤잠 못 자, 한데서 물것에 뜯겨, 꿈자리 사나워, 할 짓이 아냐. 내년에는 면허갱신을 해야 할 텐데 어디 이래서 신체검사나 통과하겠느냐고. 글렀어.”
   그는 12게이지 실탄을 다 쓰고도 한쪽 물크러진 호박 표적에 겨우 산탄 몇 방을 먹이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담배가 다 됐다. 노인은 한 모금 쪽 빨고는 발밑에 던졌다. 상인이 말했다.
   “그나저나 뭔 일이래요, 오늘은 마을에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안 비치니?”
   “회관에도 없어?”
   “아무도 안 보이던데요.”
   “여자들이 좀 있을 텐데.”
   마을회관에서 쉬는 동네 여자들이 있을 것이다. 날 더워지면서 주민들은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회관에서 한낮을 보내며 점심까지 지어 먹는다. 부식비는 마을경비에서 일부 보조가 되고 갹출도 하여 한 주치 부식을 이 사내에게서 대 먹는다.
   노인은 아까 점심에 총무 할멈이 행상 트럭 들어오는 날이라고 들먹이는 소리를 들었다. 행상 트럭이 싣고 오는 식재료라는 게 구색이 훤해서 구경거리도 흥정거리도 없는데도 노인들은 트럭이 오면 예사로 몰려나간다. 열이 넘게 먹는 식사니 미리 식단도 짜놓고 그러면 좋을 텐데 정해진 식단이라는 게 없다. 트럭을 들여다봐야 뭘 해 먹을지 판단이 선다는 식이다. 제집 냉장고 여닫듯이 식단은 돌고 돌아 거기서 거기다. 월요일에 올랐던 두부찌개가 화요일 식단으로 가고, 주말에 먹은 잔치국수가 주중으로 당겨지고, 그 중 어느 하루는 제육볶음이 상에 오른다. 노인은 투정 한 번 하지 않았다. 밥 끓여주는 손이 없는 입장에서 그는 회관에서 먹는 점심 한 끼가 귀하기만 했다. 밥맛 없는 날은 그것 한 끼로 하루를 날 때도 있었다.
   “들에들 나갔을라……”
   노인은 마을을 에두른 산밭들을 둘러본다. 장마가 물러갔으니 사방에 일이 쟁였다. 콩, 고구마, 감자, 고추, 옥수수 고랑에 박혀 앉았을 텐데 어둔 눈에 흔적이 가뭇없다.
   “마을 오는 시간이 애매해. 오려면 점심참에 오든가, 차라리 느지막이 저녁답에 와야지.”
   말은 그렇게 했어도 행상 트럭이 그 시간에 올 리 만무하다. 황금시간대에 큰 동네를 돌지 이문도 없는 이 산골 마을에 들까. 지금도 전원 마을에다가 차 대놓고 저녁 장사를 하려고 넘는 길일 테다. 주마다 하루 정해서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내주에 먹을거리가 걱정되어 노인은 총무 할멈에게 전화를 한다.
   “어디요?”
   그는 트럭에서 한 발 물러나 상대가 있을 법한 서편 구릉지를 가늠한다. 노을기도 없이 해는 저물고 있고 마을은 박아놓은 사진처럼 조용하다.
   “더덕 밭이란 게 맨 잡초 밭이지 뭐. 그나저나 부식 트럭 말요. 그냥 보내서 어쩐데?”
   상대가 큰소리를 내서 노인은 전화기에서 귀를 뗀다. 총무 할멈이 퍼붓는 새된 목소리가 흘러나와 상인에게도 들린다.
   “뭘 훔쳐 묵은 놈처럼 잡을 새도 없이 막 내빼더라니게. 숨넘어가게 쫓으면 뭐 해, 뒤도 안 돌아보고 내빼는디. 지금도 숨차서 똑 죽겄네.”
   그런 소리였다. 그리고 말끝에 “물건 보고 샀나, 사람 보고 샀지” 하는 소리까지 단다. 사내는 대번에 펄쩍 뛴다.
   “환장하겠네. 내가 왜 내빼요? 홍자 메들리가 끝나도록 서 있다가 회관 문도 열어봤구만. 누가 누구를 쫓아와? 어디 문지방에 서서 소리만 질러댔겠지. 아, 안 그래요, 할머님?”
   손보다 입이 재바른 총무 할멈을 흉보는 소리다. 노인이 성끗 웃고는 다시 전화기를 귀에 갖다 댔다.
   “들었지라? 이, 그려요. 날 잡아서 멱살 잡고 한판 붙어 보시요……”
   하더니 노인은 부식 받을 생각으로 사내에게 물었다.
   “이따 나가는 길에 마을에 들렀다가 갈 수 있어?”
   사내는 손사래를 쳤다.
   “저도 스케줄에 딱딱 맞춰 움직인다고요. 윗마을 돌고 농공단지 쪽으로 빠져서 몇 마을 더 돌아야 해요. 밤중이겠네.”
   노인은 총무 할머니와 상의를 끝내고 나서 일을 정리한다.
   “나보고 장을 봐 두라네. 외상 달아놓고 다음 주에 개리자는구만.”
   생선은 생물로 전갱이가 있다. 회로는 못 먹고 구워 먹으란다. 상인 사내는 상자 하나를 착실하게 꾸려서 내놓는다. 노인은 수박 한 통을 더 시켰다. 지난주에 양포댁 딸이 제 엄마 생일이라고 다녀가며 회관에 넣어준 수박이 인기 좋았다. 그러고 나서 노인은 제집에서 해먹을 부식을 이것저것 주문했다. 도토리묵에 계란 한 판을 사고, 라면을 한 상자 내렸다. 막걸리를 세 통까지 챙기니 한 상자가 따로 꾸려졌다.
   “전갱이 말고 생선 먹을 만한 거 있어?”
   노인이 입맛을 다셨다.
   “자반고등어도 있고 갈치도 있고, 가자미 피데기에 조기도 있고……”
   “갈치는 어떤가?”
   “물이 좋죠.”
   상인은 비닐장갑을 끼고 아이스박스를 열어 갈치를 내보인다. 썩 싱싱해 보이지는 않지만 통통하고 굵었다.
   “굵네. 제주도 건가?”
   “어휴, 갈치 사 드신 지 꽤 된 모양이네. 다 세네갈 산이죠, 뭐.”
   “세네갈? 거기는 또 어디여? 목포 쪽에 붙은 동네여, 부산 쪽에 붙은 동네여?”
   상인이 성끗 웃었다. 노인도 따라 웃었다.
   “저기 아프리카 대서양에서 잡은 건데요. 거기 세네갈이라고 물 좋은 나라가 있대요. 하도 물어봐서 저도 알아놓고 다니잖우.”
   “거기가 어디라고 갈치가 여기까지 와.”
   “거기서만 오나요. 고등어는 거기보다 더 먼 노르웨이에서 오는데. 이 갈치도 중국에서 하도 수입을 많이 해가서 금이 올랐어요. 베네수엘라 산이 싸게 들어온다는데 나도 인저 그걸 받으려나 봐요. 토막 내줘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인은 도마에 올려놓고 갈치 두 마리를 토막 쳤다.
   “애호박에다가 지져 드시면 맛있을 때죠.”

   노인은 포토트럭을 부르려고 친구 김태식 노인에게 전화를 했다. 김은 오늘 요양원에 들어간 안댁을 면회하러 나간다고 했다. 그는 이미 마을로 돌아와 있었다.
   상인을 보내고 그는 과수원으로 들어 농막을 둘러보았다. 기둥이며 지붕이 아직 짱짱했다. 사다리 갖다 놓고 오르면 될 듯싶다. 그는 농막 바닥에 깔린 합판을 밖으로 꺼내놓았다. 지붕에 올려서 엎드릴 자리를 보강할 생각이다.
   농막 앞에 서서 그는 옥수수밭을 내려다보았다. 옥수숫대 넘어진 자리가 한 장의 표적지처럼 보인다. 멧돼지는 이랑을 따라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고 타원형으로 움직이며 옥수수를 먹었다. 새끼 멧돼지들은 오월에 낳아서 이제 갓 석 달이나 되었을 것이다. 제힘으로 옥수숫대를 넘어뜨릴 재간이 없다. 아마 어미는 여러 새끼들에게 고루 먹이를 먹이되 경계 안에 두려고 저런 모양으로 움직였던 듯싶다. 표적이 모여 있는 건 다행이다. 멧돼지들은 저 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이동로와 포인트가 한눈에 그려진다. 그는 엽총을 겨누어 조준경 속으로 풍경을 당겨본다. 역시 멀다. 숨이 죽고 방아쇠에 올린 손가락이 긴장한다. 밭둑을 지나 숲으로 총구를 천천히 끌어올린다. 소나무 숲이 끝나고 참나무 숲이 이어진다. 저기 어디쯤에서 멧돼지 일가가 낮잠에 들었겠지.
   그는 총구를 내렸다.
   김이 곰솔 밑에 트럭을 댄다. 노인은 과수원으로 불러올렸다.
   두 노인은 파트너다. 짝지어 수렵을 나다닌 게 십 년이 넘었다. 야간 사냥은 혼자 해내기 힘들다. 한 사람은 표적에다가 서치라이트를 비춰줘야 한다.
   김이 알루미늄 사다리와 낡은 모포를 갖고 올라왔다.
   “뭔 자리가 이렇게 옹색해?”
   김은 놀라는 눈치다. 지붕에 올라 일한 적이 없다. 지붕에 엎드려 몇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니 노인도 아득하다.
   “안댁은 좀 어떠셔?”
   “왜 안 하던 짓을 하는지 몰라. 욕을 그렇게 해대.”
   저번에도 들었던 이야기다.
   “나뿐이 아녀. 요양보호사들한테 그렇고 한 방에 입원한 할머니들한테도 어찌나 몰풍스럽게 해대는지. 앉지도 못해 꼬챙이처럼 마른 사람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원.”
   “자기 신세가 처량해져서 그럴 거야.”
   “처량해진 신세나 아는지 몰러.”
   김은 수심이 깊다.
   노인이 사다리를 받아 농막 벽체에 세운다. 그들은 합판을 지붕 경사면에 올렸다. 합판 위에 모포를 깔고 그들은 나란히 엎드려 포인트를 점검했다.
   “새끼들 단 놈이야. 네댓 마리 되는 것 같아.”
   “어미를 잡아야겠군. 너무 멀지 않아?”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달도 없는 날이다. 짧은 이동로에서 잡기는 힘들 테다. 밭에서 먹이를 먹을 때 해치워야 할 것이다.
   “옥수숫대 부러뜨리는 소리를 쫓아서 라이트를 쏘고 총을 놓아야 할 텐데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려나 몰라.”
   “들릴 걸세. 옥수숫대가 아주 실해지면서 마르고 있고 땅도 며칠 새 굳었으니까.”
   그들은 모포를 그대로 깔아놓고 지붕을 내려왔다. 밤 아홉 시부터 매복하기로 했다.
   노인은 김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권했다.
   “승일이네 아범이 오늘 회관 당번이야. 불러서 저녁을 같이할까?”
   김이 말했다.
   금열이 때문에 밤마다 회관을 지키는 당번이 생겼다. 금열에게 회관 방을 내준 게 지난 오월이었다. 금열은 돌아온 게 아니라 나타나듯이 동네에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만이냐고 놀라면서 모두 반갑게 맞았다. 노모를 모시고 인천으로 떠난 지 삼십 년 만이었다.
   분명 떠날 때 아내도 있고 자식도 둘이나 있었는데 그는 홀몸이었다. 집도 구하지 않고 여행 오듯 나타난 것도 심상치 않았다. 회관 방 하나를 내주고 나서 주민들은 근심이 시작되었다. 제집처럼 쓰면서 치우지도 않고 물이랑 전기를 펑펑 쓴다. 화장실에서 지린내가 진동한다. 밤마다 동네 사람들을 하나씩 꿰어다가 술을 퍼마신다. 주사도 심해서 여럿과 싸운다. 낮에는 웃통을 벗고 거실에 드러누워서 여자들이 출입을 못한다.
   참 모를 일이었다. 주민들은 금열의 행태를 겪으면서 주술에서 풀리듯 삼십 년 전 그 집안일들을 하나씩 떠올리게 되었다. 아내의 머리채를 끌고 다니던 주정뱅이, 아들이 아버지 새끼손가락을 물어뜯어서 끝마디가 끊긴 사건, 마을에서 내쫓자고 수도 없이 열린 마을회의. 왜 그런 일들을 생판 다 잊고 금열을 맞았는지. 그의 가족이 인천으로 떠난 게 주민들의 회의 끝에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금열에 대해 한 마디만 나눠도 새로운 기억들을 발견해냈다. 한 달도 채 되기 전에 금열은 삼십 년 전 골칫덩어리 이웃으로 돌아왔다. 세상이 바뀌어 그때보다 더 불량한 이웃이 되어 돌아왔다. 처치 곤란으로 전전긍긍하다가 회의 끝에 방을 빼게 했다. 물론 행동거지를 핑계로 대지는 않았다. 마을회관이 쉼터와 노인정 용도로 쓰여 군에서 연료비랑 뭐다 해서 지원을 받는다, 감사에 걸릴 판이라고 둘러댔다. 금열은 이웃 마을에 도회지 사람이 갖다 놓은 컨테이너 하우스를 빌려 나갔다. 그런데 더러 밤에 술을 마시고 회관 방으로 들어와 잠들고는 했다. 그것 막느라고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밤마다 당번을 정해 숙직을 섰다.
   “그럼 아예 회관에서 저녁을 먹자고. 옮겨놓을 물건도 있고.”
   노인이 대답했다.
   승일 아범 역시 갑장이었다. 아들 승일이 이장을 맡고 있다.

   김은 옷을 갈아입으러 가고 노인은 텃밭에서 애호박을 따다가 회관 부엌에서 밥을 짓고 갈치조림을 했다. 일곱 시 무렵에 김이 오고, 뒤이어 승일 아범이 왔다. 승일 아범은 홑이불 한 채를 겨드랑이에 끼고 나타났다.
   “뭔 이불이여? 회관에 쌓인 게 이불이고 날도 푹푹 찌는디.”
   김이 쏘아붙였다.
   “나가 비염이 심하잖어. 이불만 바뀌어도 코가 맥혀서 죽겠다니까.”
   승일 아범이 샐샐 웃으며 작은방 입구에 놓았다.
   “뭔 애들처럼 비염이여.”
   노인이 말했다.
   “없던 게 나이 드니까 생기네. 그러잖아도 내가 회관 가서 잔다고 나오는데 손주가 할아버지 파자마 데이 가느냐고 묻더라고. 당번이 나쁘지는 않네. 이 나이에 동무들하고 얼려서 자게 생겼으니.”
   승일 아범은 밥상머리에서 탈탈 돌아가는 선풍기를 보더니 한마디 한다.
   “에어컨 놔두고 뭔 짓이래. 열대야라잖어. 쪄 죽을 일 있어?”
   그래놓고 그는 에어컨을 틀고 사방에 열린 창문을 부산스럽게 닫았다.
   밥상에서 갈치 산지 얘기가 또 나왔다. 승일 아범은 세네갈 갈치를 알아본다.
   “아, 지난번 유이십 국가대표 축구 붙을 때 상대가 거기 애들 아녔어.”
   승일 아범 얘기를 듣고 김이 껄껄 웃었다.
   “아따, 축구 볼 때 나라까지 새기며 보는가? 나넌 우리나라, 넘의 나라 붙는갑다, 하고 보는디.”
   그러자 승일 아범이 받아서 대꾸했다.
   “갈치를 먹어 봐서 그런지 세네갈 애들이 남 같지 않더라고. 괜히 응원하는 마음도 생기더란 말이지.”
   “응원하는 마음이 생겨? 우리나라 두고?”
   노인이 무슨 흰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연히 우리나라 응원을 하지. 그런데 쟤들이 이겨도 섭섭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더라니까. 여기 맘 한쪽에서.”
   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게 밥 얻어먹는 사람한테 나오는 심리여. 짐승도 그러고 사람도 그래. 세네갈 사람들이 우리 밥상에 이걸 올려줄지 누가 알았남.”
   밥상에서 이야기가 재밌어지니 반주 생각이 났는지 김이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가져왔다. 한 잔을 비워내고 남긴 막걸리다. 승일 아범이 손사래를 친다.
   “손도 대지 마.”
   “왜? 주인 있어?”
   노인이 대답했다.
   “뉴스도 안 보고 살어. 회관 냉장고에서 막걸리 함부로 꺼내먹다가 무슨 사달이 나는지.”
   “뭔 소리여?”
   노인이 물었다. 김이 침을 삼키고 목소리를 낮춘다.
   “우리가 왜 제집 놔두고 회관 방 숙직을 서?”
   노인과 김은 밥상에서 허리를 세운다. 김이 말을 잇는다.
   “나는 그놈 모습만 보여도 심장이 뛰어. 무섭다니게. 분명히 그놈이 잘못 살아서 내쫓은 건디 마음이 이상하게 찜찜하고 무서워.”
   “허허, 이거 이런 새가슴한테 숙직을 잘못 세웠네.”
   김이 혀를 차고 웃었다. 승일 아범도 샐쭉하니 따라 웃었다.
   “그러지? 괜히 우리가 무슨 양심 가책 같은 거 느낄 필요 없겠지? 모두가 다 같이 살 수는 없는 일인게.”
   김과 승일 아범이 입맛을 다셨다. 노인은 숟가락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막걸리 사둔 게 있는디 가져옴세.”
   노인은 회관을 나섰다. 골목을 돌 때 고갯길로 스쿠터 한 대가 넘어가는 게 보였다. 그는 스쿠터가 가는 걸 지켜보았다.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그는 분노와 함께 불안에 휩싸였다. 그에게서 뭔가를 빼앗으러 온 놈이 분명했다. 그는 입술을 사려 물었다. 그는 집으로 향했다. 막걸리는 잊고 총을 가지러 집으로 간다.

전성태

우리는 뭔가를 지켜내려고 작은 싸움들을 벌이며 불안의 감옥에 갇혀 산다. 불안의 감옥에는 생존 게임에서 비롯된 죄의식과 피해 의식이 서식한다. 멧돼지를 퇴치해야 하는 시골 노인의 불안하고 위태로운 밤 이야기가 조금 오싹했으면 좋겠다.

2019/09/24
2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