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다니엘 리가 방문한 집은 캠벨타운에 위치한 임대주택이었다.
   캠벨타운 임대주택에는 주로 이민자들이 살았는데 질이 안 좋기로 유명했다. 그들은 프로젝트 매니저가 문을 열 때 머리 위로 떨어지도록 문 위에 주사기를 올려놓거나 배관공이 손을 넣어야 하는 파이프 뒤에 주사기를 꽂아놓았다. 새총처럼 주사기를 고무줄에 걸어서 서랍 안에 넣어 놓기도 했다. 캠벨타운으로 향하면서 다니엘은 평소에 쓰는 분진 마스크 대신 공업용 마스크를 챙겼다. 두꺼운 장갑도 잊지 않고 주머니에 꽂았다. 임대주택에 도착한 후에도 바로 내리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그때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울타리 바깥쪽에 서서 다니엘의 차를 보고 있었다. 다니엘은 차에 시동을 끄지 않은 채 사이드미러로 여자가 차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여자는 몸집이 작았고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가방을 들고 있지도, 주머니가 불룩하지도 않았다. 다니엘은 고개를 돌려 여자의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 차에서 내렸다.
   저는 여기 살던 사람이에요.
   다니엘은 여자의 영어를 듣고 바로 한국인임을 알아챘다.
   두고 온 물건이 있어요. 집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임대 기한이 끝난 후에는 임차인은 어떤 이유로든 들어갈 수 없어요.
   여자는 다니엘을 빤히 바라보았다.
   혹시 한국인이에요?
   다니엘은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이 상황이 매우 당황스러웠다. 한국인이 왜 여기 있는지 이해가 안 되어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임대주택 보수 일을 맡은 이후로 다니엘은 한 번도 한국인을 만난 적이 없었다.
   다니엘의 업무는 정부 지원 임대주택에서 살던 사람이 이사 나간 후에 시작되어 다음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 끝이 났다. 빈집을 찾아가 상태를 점검하고 보수가 필요한 부분의 견적을 내고 용역을 부르고 정해진 기한까지 보수가 마무리된 것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전에 살던 사람이나 후에 살게 될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없었고, 그들의 개인정보를 받아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빈집의 상태로 보아 임대주택에 사는 대다수가 마약과 알코올에 중독되었거나 심각한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독과 정신착란에 시달리는 무직자, 출소자, 미혼모, 노인, 장애인, 이민자들이 임대주택에 살았다. 도움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 한국인 이민자들은 그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들은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했으며 평판에 예민했다. 다니엘의 한국인 부모가 그러했고 부모가 속한 한인교회 사람들이 그러했다. 그런데 이 한국 여자가 중독자와 정신병자들이 사는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사를 하고 나서야 두고 온 물건이 있는 걸 알았어요.
   여자에게서 중독과 정신착란을 읽어낼 수는 없었다. 여자가 입고 있는 셔츠와 청바지는 오래된 것처럼 보였지만 더럽지 않았다. 중독자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눈의 초점이 또렷했으며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 중요한 물건이에요. 저를 들여보내 줄 수 없다면 확인만 해 주세요.
   여자의 말에 따르면, 작은방의 벽에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은 석고 가루로 채워져 있는데 벽의 페인트 색이 바래서 석고 가루로 막아 놓은 구멍이 쉽게 눈에 띄었다. 석고 가루 안에 파란색 비닐봉지가 있었다. 여자의 물건이 아니라 가족의 물건이었고 꼭 찾아야 했다.
   다니엘은 알겠다고 한 후 울타리 안으로 들어섰다. 한 손으로 키 박스의 번호키를 가리고 다른 손으로 비밀번호를 눌러 열쇠를 꺼냈다. 슬쩍 돌아보니 여자는 계속 울타리 밖에 서서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음식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다니엘은 잊고 있던 마스크를 꺼내 썼다. 집은 엉망이었다. 다른 집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문이 부서지고, 벽에 온통 낙서가 되어 있고, 얼룩진 가구들이 쌓여 있고, 쓰레기를 밟지 않고는 둘러볼 수 없는 집. 매일같이 이런 집들을 봐 오면서 그 집에 살았던 사람이 궁금할 때가 있었다. 저렇게 멀쩡한 얼굴이었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거실의 소파는 칼집을 낸 것처럼 찢겨 있었고, 소파 앞에 놓인 테이블의 유리도 깨져 있었다. 소파와 테이블을 사진 찍은 후에 ‘폐기물 처리 트럭 필요’라고 썼다. 바닥에는 전체적으로 카펫이 깔려 있었는데 여기저기 유리 조각이 밟혔다. 다니엘은 ‘청소 용역 필요’라고 썼다. 큰방의 문은 아래쪽에 움푹 들어간 자국이 있었다. 목수가 쉽게 알 수 있도록 발을 들어올려 자국 옆에 대고 사진을 찍었다. 자국의 크기가 자신의 신발 사이즈와 똑같았다. 사진에는 ‘최대한 교체하지 않는 방향으로’라고 썼다. 작은방의 벽에는 여기저기 낙서가 되어 있었는데 더러 한국어가 눈에 띄었다. 다니엘은 한국어가 보이지 않도록 사진을 찍었다. ‘페인트 패치 작업 필요’라고 쓰고 보니 그 아래 I hate Koreans라는 문장이 희미하게 보였다.
   부엌에 들어서서 장갑을 끼고 오븐을 열어 보았더니 오븐 안이 깨끗했다. 반면에 가스레인지의 화구는 온갖 음식물이 눌어붙어 있었다. 싱크대는 더께가 쌓이다 못해 검게 변해 있었다. 다니엘은 온 벽에 오줌 자국이 나 있는 집도 가 봤고, 사방에 널려 있는 주사기에 찔릴 뻔한 적도 있었다. 분명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화를 낼 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저 일이었고, 빠르게 사진을 찍고 나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지금 다니엘은 욕설을 뱉어가며 부엌을 뒤지고 있었다. 냉장고에는 본래 고기였던 것 같은 무언가가 하얗게 곰팡이가 핀 채로 접시에 올려져 있었고, 찬장에는 된장이 엎어져 누군가의 대변이 말라붙은 것처럼 보였다. 싱크대 아래를 열어보니 배수구가 두 동강 나 있었다. 여기에서 악취가 올라오고 있는 거였다.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겨우 참으며 사진을 찍었다. 부엌에서 나오면서 ‘한국인 배관공 연락’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배관공 추가 금액 제시’라고 썼다.
   감사할 줄 몰라.
   다니엘의 회사 동료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는 임차인이 사는 도중 필요한 보수를 담당했다. 임대주택을 방문해 그곳에 사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의 일이었는데 매일같이 욕설을 들었고 칼로 위협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도와주러 왔다고 해도 막무가내야. 그러니까 그렇게 사는 거지.
   다니엘은 서둘러 집을 나왔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도 독한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찾았어요?
   여자가 울타리 밖에서 외쳤다.
   없어요.
   다니엘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구멍을 잊어버렸고 찾아보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말했다.
   잘 찾아본 거 맞아요? 큰방이 아니라 작은방이에요.
   다니엘은 여자에게 대답하지 않고 키 박스에 열쇠를 넣은 후에 차에 올랐고 그대로 집을 떠났다. 그곳에 당신이 찾을 만한 것은 없다고, 쓰레기뿐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어차피 여자와 다시 만날 일은 없을 테고, 더이상 말을 섞어 봐야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캠벨타운을 빠져나오는 사거리에서였다. 백미러에 여자의 얼굴이 비쳤을 때 다니엘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여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여기저기 찌그러진 빨간색 차를 타고 다니엘의 차에 바짝 따라붙어 있었다.
   다니엘은 다음 골목에서 차를 돌려 한적한 곳을 찾아 세웠다.
   거짓말이잖아요.
   여자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소리쳤다.
   찾아보지도 않은 거예요. 없을 리 없는데.
   당신이야말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압니까? 당신이 누군지, 거기 살았는지, 그 집을 노리는 도둑인지 어떻게 아냐고요.
   당신은 나를 못 믿는다고 생각하고 싶은 거죠. 하지만 이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에요.
   무슨 문제든지 상관하지 않아요. 당신은 내게 불법적인 일을 요구하고 있는 거고, 이렇게 차를 따라오기까지 한다면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어요.
   이건 존중의 문제예요.
   다니엘은 기가 찼다. 존중이라니. 집을 그따위로 만들어놓고 존중이라니.
   당신은 나를 존중하지 않아요.
   다니엘은 여자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다시 따라오면 정말 경찰을 부를 겁니다.
   다행히 여자는 더이상 다니엘을 따라오지 않았다.

   다니엘은 사무실에 돌아와 평소처럼 거래처들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폐기물 처리 트럭이 급했다. 아침 일찍 4톤 트럭을 보내 달라고 통화를 마친 후에 견적서를 보냈다. 이어 청소 용역 거래처에 전화를 걸어야 했는데 다니엘은 선뜻 전화번호를 누를 수가 없었다.
   다니엘의 회사와 거래하는 청소 용역은 세 곳이었는데 그중 다니엘이 우선적으로 연락하는 것은 그의 부모의 회사였다. 불법적으로 일을 맡긴 것은 아니었다. 다니엘이 지금의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청소 용역 거래처가 종종 마감 날짜를 지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모의 회사를 추천한 거였다. 그의 부모는 20년 넘게 청소 회사를 운영하면서 날짜를 어긴 적이 없었고 남들이 꺼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업계에서 평판이 좋았다.
   다니엘의 부모는 아들의 회사에서 들어오는 일은 직원을 시키지 않고 직접 해서 실수가 없도록 했다. 이번 일도 부모님에게 맡기면 분명 완벽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여자가 다시 찾아올 수도 있었고 한국인에 관련된 일이라면 제일 먼저 나서는 부모님이 여자를 어떻게든 도우려다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청소 용역에 일을 맡기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부모님의 회사는 근래 사정이 좋지 않았다. 한국인의 성실함으로 청소업계를 평정한 것은 다 지나간 이야기였다. 인도인들이 청소업계에 뛰어들었고, 한국인 업체의 절반에 가까운 가격으로 고객을 빼앗아 갔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 것이다. 이민자들은 넘쳐났고, 언어가 안 되는 이들에게 청소만큼 시작이 쉬운 것도 없었다.
   다니엘은 결국 부모님의 회사에 견적서를 보냈다. 사진을 첨부하면서 잠시 벽의 낙서를 바라보았다. I hate Koreans는 여자가 남긴 낙서일까. 다니엘은 고개를 저었다. 여자의 사정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다. 여자는 이미 다른 임대주택으로 이사했을 것이다. 새로 페인트를 바른 벽에 낙서를 해 놓았을 것이고, 구멍을 뚫어 마약이나 푼돈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숨겨 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봉지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리고 또 다른 임대주택으로 이사할 것이다. 임대주택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살았다.

*

   다니엘의 집은 교외에 있었다. 저택에 가까운 집들로 이루어진 부촌이었다. 다니엘이 취직을 하면서 독립을 하려고 하자 부모님은 더 큰 집으로 이사하자고 제안했다.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 이사한 집은 셋이 살기에는 지나치게 큰 편이었는데도 양옆의 집에 비하면 작고 초라해 보였다. 다른 집들과 달리 정원을 가꾸지 않는 것도 한몫했다. 다니엘은 웃자란 잔디 사이로 거칠게 박혀 있는 돌을 밟고 집으로 들어섰다.
   현관에서부터 된장 냄새가 풍겼다. 다니엘은 된장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어머니는 더더욱 다니엘에게 된장을 먹이려고 했다. 아버지는 거실에서 골프를 연습하고 있었다. 골프공이 굴러가는 방향의 벽에 여러 개의 감사패와 표창장이 전시되어 있었다. 현관을 들어선다면 누구든지 제일 먼저 보게 될 수밖에 없었다. 다니엘은 올해의 한국인 표창장을 향해 공을 굴리는 아버지에게 대충 인사하고 주방으로 들어섰다.
   가스레인지에서 된장찌개가 끓고 있었다. 뚝배기에서 국물이 넘쳐 화구 주변에 고였다. 어머니는 양파의 껍질을 벗긴 후에 음식물쓰레기를 모아 놓는 통에 집어넣었다. 호주에서 음식물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지 않는다는 걸 어머니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음식물쓰레기는 항상 그 통에 먼저 담겼다. 다니엘은 곧 식탁에 올라갈 요리 옆에 나란히 놓여 있는 음식물쓰레기통을 들어 싱크대 아래로 숨겼다. 그리고 거기 떨어져 있던 종이를 집어 들었다. No Boats. 부모님이 지난 주말에 다녀온 집회에서 받아온 팸플릿인 듯했다.
   그게 왜 거기 떨어져 있지?
   어머니가 칼질을 계속하면서 말했다.
   집회는 어땠어요? 이민자 집회였다고 했지요?
   정확히는 한 보수정당의 반난민정책을 지지하는 이민자 집회였다. 난민에 반대하는 이민자의 목소리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부모님이 출석하는 한인교회의 목사가 그 정당의 열혈 지지자였고 교인들이 집회에 대거 동원되었다고 들었다.
   중국놈들이 어찌나 바닥에 침을 뱉던지.
   어머니는 저녁이 다 됐으니 식탁에 가 앉으라고 덧보탰다. 다니엘은 팸플릿을 음식물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견적서는 받았어.
   어머니의 말에 다니엘은 여자의 부엌을 떠올렸다. 어머니도 그 사진을 보고 화가 났을까? 형태를 알 수 없게 썩어있는 것들이 한국 음식이라는 것을 알아챘을까?
   전에 살던 사람이 찾아올 수 있는데 집 안에 들이면 안 돼요.
   뭐 그런 걱정을 다 하니.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답하고는 저녁이 다 됐다고 아버지를 불렀다.

   다음날 출근길에 전화가 울렸다. 폐기물 처리 기사였다.
   젊은 여자가 한 명 와 있어요.
   다니엘은 순간 브레이크를 밟을 뻔했다.
   프로젝트 매니저가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는데, 들여보내요?
   아뇨, 그냥 미친 여자예요.
   다니엘은 전화를 끊고 차를 틀어서 길가에 세웠다. 여자의 임대주택 파일을 열었다. 여자는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했다. 다니엘은 파일에서 해당 주택의 임대 계약 책임자의 번호를 찾았다. 계약 책임자는 다니엘의 이야기를 듣더니 담당 사회복지사를 연결해 주었다.
   사회복지사는 신원정보는 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다니엘은 그 사람이 그 집에 거주하던 사람이 맞는지만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젊은 한국인 여자던데, 맞아요?
   젊다고 할 수 있는 나이죠. 호주 국적을 가지고 있고요.
   억양이 심한 걸 보면 호주 출생이 아닌 것 같은데요.
   정당한 절차를 거쳐 시민권을 취득했어요.
   가족의 물건을 찾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가족과 같이 거주했던 건가요?
   네.
   혹시 가족 중 누군가가 마약이나 조직과 관련이 있나요? 범죄에 연관된 물건이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분류 코드에 NSI가 붙어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죠?
   No Social Issue요.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없다는 뜻이죠.
   그러면 왜 정부 지원을 받는 건가요?
   그런 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그 사람은 NSI가 아니에요. 지금 매일같이 찾아와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요. 그 사람이 도대체 왜 저러는지 우리도 알아야 하잖아요.
   사회복지사는 잠시 침묵했다.
   불행을 겪고 한시적으로 정부의 도움을 받았던 것뿐이에요. 더이상의 정보는 드릴 수가 없어요. 이 정도면 신원 확인은 충분한 것 같고 후에 여자분이 또 찾아오면 우리 쪽으로 연결해 주세요.
   다니엘은 여자의 얼굴을 다시 떠올려 봤다. 가족이 사고를 당했을까. 임대주택을 받을 정도의 사고라면 가족 중 한 명이 죽었거나 영구적인 장애를 얻었을 가능성이 컸다. 폭력이나 강간, 살인에 노출되었을 수도 있다. 사건의 피해자가 그녀는 아닐 것이다. 다니엘은 여자의 단단한 눈빛과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기억해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고개를 흔들어 여자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자신으로서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일이다. 다만 기한 내에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다니엘은 오후로 예정된 청소 일정을 떠올리고 다시 집으로 차를 돌렸다.
   아버지가 드라이브웨이에 밴을 꺼내놓고 청소 도구를 싣고 있었다.
   오늘 임대주택 청소, 두 분이 직접 가실 필요 없어요. 다른 직원 보내세요.
   아버지는 밀대를 손에 들고 다니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국 여자가 찾아올 거예요. 그전에 살았던 사람인데 뭘 두고 갔다나 봐요. 소동이 있을 것 같으니 직원을 보내세요.
   한국 사람이 왜 임대주택에 산다니?
   임대주택은 이민자들이 대부분인데 새삼스레 뭘 그러세요.
   다니엘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고 했는데 자꾸만 말이 빨라졌다.
   캠벨타운 임대주택 사람들 아시잖아요. 괜히 엮여 봐야 좋을 것 없어요.
   너무 그러지 마라. 불쌍한 사람들이야. 어딘가 크게 문제가 있지 않고는 그럴 수가 없지.
   그러니까 문제 있는 사람들하고 굳이 마주칠 필요 없잖아요.
   아버지는 다니엘의 어깨를 툭툭 치고 밀대를 밴에 실었다. 밴의 열린 문틈 사이로 아버지가 한국에서 직접 사 온 분홍색 고무장갑이 눈에 띄었다.
   얘, 그리고.
   아버지가 주머니에서 종이를 하나 꺼냈다.
   이걸 번역 좀 해 놔라.
   종이의 맨 위에는 No Boats라고 쓰여 있었다. 지난 주말에 이민자 집회에서 받은 팸플릿의 하나같았다. 아래쪽 빈 공간에 아버지의 필체로 쓰인 한국어 몇 문장이 눈에 띄었다.
   고객들이 한국에 전쟁 나는 거 아니냐고 물을 때마다 말문이 막히는 거야. 왜 그렇게 묻는지 그 속이 빤히 보이니까 더 답을 못하겠는 거지.
   다니엘은 드라이브웨이에 서서 아버지의 글을 읽었다. 모든 문장이 ‘한국인은’으로 시작했다. ‘한국인은 다른 민족들과 다릅니다.’ ‘한국인은 스스로를 지켜 왔습니다.’ 몇 번을 읽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다니엘은 마지막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한국인은 전쟁이 나도 난민 신청을 하지 않을 겁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이었다. 다니엘은 아버지에게 이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호주인처럼 양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다시 청소 도구를 챙겼다.

   부모님이 여자의 임대주택을 청소할 시간이 되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니엘은 다른 일정을 조정하고 여자의 임대주택으로 향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었으나 둘 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임대주택에 들어서는 골목에서 차를 돌리는데 여자가 튀어나왔다. 다니엘은 차를 급정거했다. 여자의 얼굴이 창백했다. 몹시 지쳐 보였다. 순간 여자의 담당 사회복지사의 말이 떠올랐는데 그 말을 곱씹기도 전에 여자는 사라져 버렸다. 다니엘은 백미러로 여자가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다 정신을 차리고 임대주택으로 차를 몰았다.
   집 앞에는 청소 도구가 정리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었고, 아버지가 그 옆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서서 통화를 하다가 다니엘을 보고 전화를 끊었다.
   그 여자가 왔었어.
   어머니의 목소리는 매우 격양되어 있었다.
   무슨 비닐봉지를 찾아달라며 사정을 하지 않니. 하도 그러니까 니 아버지랑 찾아봤지. 벽을 다 뒤졌는데도 봉지는커녕 구멍도 없더라. 뻔하지 않니. 바라는 게 뭐겠니. 그래서 니 아버지가 불쌍하다고 청소용 비닐봉지에 돈을 넣어서 줬어. 이거 해서 얼마 받는다고 100불이나 넣어서 줬는데, 그 여자가 고맙다고 받아들더니 열어보고는 냅다 달려드는 거야. 아니 고등학생들이 싸우는 것처럼 그렇게 니 아버지를 밀쳐서 넘어뜨린 다음에 뺨을 막 때리더라고. 난 신고할 줄도 몰라서 영어 잘하는 교회 집사님한테 전화를 거는데 걔가 후다닥 도망을 가버렸지 뭐니. 이게 다 니 아버지가 제정신도 아닌 사람을 돕겠다고 오지랖을 부려서 그래.
   다니엘은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이제야 새빨갛게 달아오른 아버지의 오른쪽 뺨과 헝클어진 얼마 남지 않은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다니엘은 여자의 창백한 얼굴을 떠올렸다.
   그 여자가 니 아버지 뺨을 때리면서 정신 차리라고 하는 거야. 꼭 물에서 사람을 꺼내서 쥐어흔드는 것처럼.
   어머니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생각할수록 소름이 끼쳐.
   어머니가 주변을 정리하는 동안 다니엘은 아버지를 자신의 차 조수석에 태웠다. 다행히 별다른 상처는 눈에 띄지 않았다. 의사 역시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괜찮아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입원을 하겠다고 우겼고, 둘은 큰 병원으로 옮겼다.
   멀쩡한 환자를 입원시키기 위해 다니엘이 뛰어다니는 동안 아버지는 병원 로비의 소파에 앉아서 전화 통화를 했다. 다니엘은 수십 명의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눈 후에야 겨우 병실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다니엘과 아버지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병실이 정리되길 기다렸다. 다니엘은 소파 깊숙이 몸을 묻었다.
   고소할 거다.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여기서 그 애를 고소하지 않으면 안 돼. 한국인들이 임대주택에서 치고받았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겠니. 이건 정신적 문제가 있는 임대주택 이민자로부터 아무 죄 없는 청소 용역이 공격을 받은 거다. 내 말 알겠니. 어떻게든 바로잡아야 해.
   아버지는 손을 들어 머리를 매만졌다. 아버지 손의 주름이 더 깊어 보였다. 다니엘은 자신에게 돌아올 법적 책임에 대해 말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희미하게 손가락 자국이 보이는 아버지의 뺨을 지켜보고 있는데 불현듯 로비가 소란스러워졌다.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있는 사람이 병원에 들어서려 하고 있었다. 한인교회 목사로 다니엘도 얼굴을 아는 사람이었다. 보안요원이 알러지 환자가 많아 꽃은 반입이 안 된다고 막아섰는데 목사는 막무가내로 병원에 들어서려고 했다. 벌떡 일어난 아버지가 다급하게 다니엘에게 나가 보라고 손짓을 했다.
   병원 앞 쓰레기통에 꽃다발을 버리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한국인들이 꽃을 어쩐다고 한 거야? 기념한다고?
   나도 반도 못 알아들었어.
   호주 온 지 얼마 안 됐나 보지?
   아닐걸? 지난번에 어떤 환자는 여기서 이십 년을 살았다는데 자기가 어디가 아픈지도 말 못 하던데. 그냥 평생 그렇게 사는 거야.

*

   임대주택의 문을 열자 부모님이 즐겨 쓰는 레몬 향 세제 냄새가 났다. 다니엘은 현관에 서서 아버지가 청소한 카펫과 어머니가 닦은 창문을 보았다. 카펫은 깨끗했고 창문은 반짝거렸다. 다니엘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집에 들어섰다. 빠른 걸음으로 작은방에 들어가 핸드폰의 손전등을 켜고 반질반질한 벽을 살폈다. 창틀 아래 동전만 한 구멍이 석고 가루로 채워져 있었다. 가루를 파헤쳐 내고 그 안의 비닐봉지를 꺼냈다. 정말로 봉지가 거기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봉지는 꽉 봉해져 있었다. 다니엘은 봉지를 열어보려고 했다. 그때 현관의 센서등이 켜졌다. 다니엘은 황급히 문 뒤에 웅크려 앉았다. 얼마 안 지나 센서등이 꺼지고 한참 동안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다니엘은 어두운 집에 웅크린 채 단단하게 매듭지어진 봉지를 손에 꽉 움켜쥐었다. 봉지 안에는 딱딱한 것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알약도 가루도 아니었고, 지폐도 동전도 아니었다.

서수진

호주에 살고 있습니다. 이민자로 살면서 이 소설을 썼습니다. 같은 시기에 쓴 「웰컴 투 아메리카」에도 같은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이 소설은 창비 문학3 9호에 실립니다. 앞으로도 이민자의 삶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

2019/08/27
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