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울고, 그는 그해 여름 처음으로 매미 소리를 들었다. 그의 가게 맞은편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 매미는 거기 어딘가에 매달려 처연하게 울었다. 그는 가게 앞 의자에 앉아 늘 그렇듯 그의 가게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매미 소리에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작은 덮밥집을 하고 있다.
   메뉴는 제육 덮밥과 불고기 덮밥뿐이고, 가격은 각각 육천 원과 칠천 원이다. 제육 덮밥은 딱 그 가격이라는 평을 들었고, 불고기 덮밥은 양이 적다는 불평을 들었다. 개업한 지는 팔 개월. 매상은 늘 월세보다 낮았다.
   그는 태연하다. 장사를 시작한 지 이십 년 가까이 되었지만 한 번도 돈을 벌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전혀 놀라운 경험이 아니다. 이번에도 그의 안목은 형편없었다. 첫 장사는 제법 많은 권리금을 지불하고 시작했으나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 회수하지도 못하고 망해버렸다. 두 번째 장사부터 그는 늘 권리금 없는 자리만 고집했다. 지금도 그렇다. 이 일대 가게들은 그가 문을 열기 시작한 시기를 기점으로 점점 권리금이 사라지고 있다. 그는 자신이 불경기의 신이 된 기분이었다.
   한창 손님이 많아야 할 점심시간에도 그는 식당 앞 의자에 앉아 있다. 옆 건물에서 부동산을 하고 있는 김사장이 그의 식당을 지나쳐 아래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일부러 그를 쳐다보지 않으려 꼿꼿하게 앞만 보았다. 그는 알고 있다. 김사장은 언제나 대로변에 있는 김밥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그의 가게에 온 적은 한 번뿐이다. 오픈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주방 카운터 너머로 홀을 살피고 있는 그에게 김사장이 물었다.
   “한사장님, 덮밥집은 왜 하게 되신 겁니까?”
   “십구 년 전부터 덮밥집만 했습니다. 덮밥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그런데 왜 이 동네에 가게를 열었어요? 여긴 회사원이 없고 주민만 많아요. 다들 집에서 먹지 않겠어요?”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벌써 스무 번 넘게 들었던 질문이다. 왜 하필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 덮밥집을 차렸느냐고. 그는 몰라서 묻는가 싶었다. 이런 곳이 아니면 무권리를 찾을 수 없고, 평당 월세도 차이가 크다.
   “맛이 어떠세요? 입맛에 맞으세요?”
   “돼지고기는 냉동을 쓰시죠?”
   “냉동을 씁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가격에 맞추지 못해요.”
   “저 아래쪽 국숫집도 제육 덮밥을 파는데 거긴 육천 원에 생고기를 씁니다.”
   그는 상체를 기울이며 말했다.
   “그거 생고기 아니에요. 해동한 고기일 겁니다.”
   김사장은 대번에 그의 말을 잘랐다.
   “장모가 돼지를 쳐요. 그러니 당연히 생고기겠죠.”
   그는 반박하는 대신 개수대에 쌓여 있는 그릇을 거칠게 닦았다. 김사장은 고추기름이 묻은 냅킨을 식탁에 내던지고 일어나더니, 벨트 버클을 만지작거리며 찜찜한 얼굴로 계산대 앞에 섰다. 그는 ‘맛있게 드셨나요?’라고 묻는 절차를 생략했다. 가게를 나서던 김사장이 뒤돌아 물었다.
   “박하사탕 같은 건 없어요?”
   “없습니다. 그냥 이를 닦으세요.”
   어쩌면 그의 무례한 언행이 동네 주민들의 귀에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방금 전, 김사장이 그의 가게 앞을 다시 지나갔다. 이번에도 꼿꼿하게 앞만 보며 뒷짐을 지고 걸었다. 그는 이래도 돌아보지 않나 싶어 한번 매미 소리를 내봤다.
   “매앰매앰.”
   김사장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듣고서도 모른 척하고 싶었던 것인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서운함을 느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그를 투명 인간으로 취급하는 김사장과 동네 주민들에게.
   그달 그의 가게 매상은 반토막이 났다.

   늦은 장마 탓에 어딜 가나 고온다습한 공기가 가득한 칠 월에 주민들은 휴가를 떠났다. 그는 가게 앞 의자에 앉아 캐리어를 끌고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의 가게에 한 번 정도 왔던 얼굴이 보였고, 그의 가게 앞을 지나다니기만 할 뿐 한 번도 들어오지 않은 얼굴도 보였다. 아마도 주민들은 모를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가게 앞에 앉아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니 그는 주민들의 얼굴을 거의 다 외웠다. 모두가 친숙해 보였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그의 가게에 들어와 덮밥을 주문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있더라도, 재방문율은 극히 낮았다. 다들 계산대 앞에 서기만 하면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도통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몰랐다.
   그의 가게 옆에 있던 화실이 빠지고, 보름간의 공사 끝에 카페가 들어왔다. 카페 전면엔 커다란 관엽식물 네 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 때문에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카페 주인은 사십 대 중반의 여자였는데 장사는 처음이라고 했다. 개업식도 하지 않았고, 오픈한 뒤에도 가게에 틀어박혀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팔 일째 되는 날 정오에 비척비척 걸어 나오더니 가게 앞 의자에 앉아 있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여자는 머뭇거리다가 그의 옆에 서더니 물었다.
   “장사는 잘되세요?”
   “이 거리가 지금은 비수기입니다.”
   여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렇죠? 지금이 비수기죠?”
   “예. 요 앞 학교도 방학에 들어갔고, 주민들은 대다수가 휴가를 떠났어요.”
   “다들 돈이 많은가 보네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휴가 정도는 가는 거죠.”
   여자는 멀뚱히 서서 맞은편 편의점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편의점 정문을 바라보던 중이었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종이 울렸다.
   “저 종 때문에 죽겠어요.”
   여자는 그를 돌아보더니 말을 이었다.
   “손님이 하도 안 들어와서 문을 열어 두는데, 저 종소리를 자꾸만 우리 가게 종소리로 착각해요. 카운터에서 일어나 보면 아무도 없는 걸 알고 허망해져요.”
   “원래 장사라는 게 그렇습니다.”
   “저 편의점이 얄밉지 않으세요? 덮밥 파시잖아요.”
   “별수 없습니다. 요즘엔 편의점에서 안 파는 게 없으니까. 그런데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그는 여자가 한 번도 자신의 가게에 오지 않은 일을 상기하고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여자가 곧바로 되물었다.
   “커피는 안 드세요? 아니면 편의점에서 사서 드세요?”
   “직접 타서 먹습니다. 그게 제일 싸니까요.”
   그들의 눈앞으로 아래쪽 카페에서 사 온 커피를 들고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카페마다 컵 홀더의 색상이 달랐고, 상호가 인쇄되어 있기도 해서 어느 가게 것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픈한 뒤로 가게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손만 쳐다봐요. 저렇게 음료를 들고 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내 얼굴을 밟고 지나간 것 같아요.”
   덮밥을 표나게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으므로 그는 내심 안도했다. 여자는 아무런 인사 없이 가게로 들어갔다.
   다시 혼자가 된 그는 매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거리는 고요했고, 습도 높은 공기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오로지 매미 소리만 도드라졌다. 편의점 테라스에서 낮부터 막걸리를 마시고 있던 사내가 말했다.
   “거참, 시끄럽네.”
   그는 은행나무를 올려다봤다. 매미는 보이지 않았다. 매앰매앰 큰 소리로 울다가 찌르르르르 울음을 그치는 듯한 여음을 냈다. 그는 은행나무 아래로 터벅터벅 걸어가 손날로 나무의 몸통을 내리찍었다. 몇 번을 반복해도 매미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막걸리를 마시고 있던 사내가 호기심 어린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잠시간 나무를 노려보던 그는 이윽고 나무에 매달렸다. 두 팔과 두 다리로 몸통을 감아 끈덕지게 매달렸다. 매미가 다시 울었다. 동시에 수피가 따뜻해졌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나무의 심장 박동 같았다. 그는 매앰매앰 소리를 냈다. 부동산 김사장이 마침 가게를 나서다가 그를 발견했다.
   “한사장, 뭐 하는 거예요, 지금?”
   그는 나무에서 내려와 옷매무시를 가다듬은 뒤 아무런 대꾸 없이 자신의 가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또다시 편의점 정문만 바라보았다. 김사장이 그에게로 다급히 걸어왔다.
   “좀 전에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겁니까?”
    “아무 것도 안 했습니다.”
   “안 하긴. 내가 다 봤는데.”
   “그냥 뭘 좀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기 스쿨존인 거 알죠?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은 행동은 하면 안 됩니다.”
   그는 들은 척도 안 했다. 편의점 테라스에서 낮술을 마시던 남자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는 양반이구먼. 덮밥 어떤 걸 팝니까?”
   그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제육 덮밥과 불고기 덮밥 두 가지 있습니다. 맛있습니다.”
   남자는 술병을 들고 그의 가게로 건너왔다.
   “막걸리 남은 거 가게에서 먹어도 되죠?”
   그는 지체 없이 답했다.
   “네, 됩니다.”
   남자는 그보다 앞서 그의 가게로 들어갔다. 그는 뒤늦게 홀 조명을 켠 뒤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는 손님용 의자에 앉아 있다. 자그마치 일곱 시간 동안이나 꼼짝도 하지 않고. 그의 눈은 일정한 크기로 벌어져 있다. 감긴다거나 홉뜬다거나 휘둥그레지는 법 없이 늘 똑같은 크기로. 그러다 갑작스레 손님을 맞닥뜨렸다. 중년의 여자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려다가 멈칫거리더니 물었다.
   “장사, 하는 거죠?”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예, 합니다. 들어오세요.”
   여자는 문가 옆 탁자에 앉더니 제육 덮밥을 주문했다. 그는 심혈을 기울여 돼지고기를 볶은 뒤 평소보다 많은 양을 담아 홀로 내갔다.
   “양이 많네요.”
   여자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얼른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말없이 덮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는 여자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그릇을 모두 비운 여자가 그에게 말했다.
   “요 아래 국숫집에서도 제육 덮밥을 팔아요.”
   “예, 압니다.”
   “그런데 가격을 천 원 올렸어요.”
   그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래요? 몰랐습니다.”
   “그래서 여길 한번 와본 거예요.”
   “앞으로도 저는 가격을 올리지 않을 겁니다.”
   “예, 그러세요.”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계산대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다시 여자의 얼굴을 살폈다. 찜찜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실로 오랜만에 물었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어요?”
   그러나 여자는 머뭇거렸다.
   “음식에서…… 냄새가……”
   “예?”
   “음식에서……”
   여자는 마침내 고개를 들더니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냄새가 좀 나네요.”
   “무슨 냄새요?”
   “돼지 냄새 같은데.”
   그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제육볶음은 원래 돼지고기로 합니다.”
   “그게 아니라, 냉동을 쓰시나 봐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가 손에 움켜쥐고 있는 카드를 내려다봤을 뿐이다.
   “조금 더 노력을 하셔야겠어요.”
   그는 결제를 마치고 카드를 돌려주며 말했다(울었다).
   “매앰매앰.”
   여자는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매앰매앰.”
   여자는 뒷걸음을 치면서 가게 밖으로 황급히 나갔다. 그는 당장 은행나무로 달려가 매달리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사방에서 그를 추동했다. 매앰매앰 울라고. 매앰매앰 참지 말고 큰 소리로 울라고.
   그는 주방 바닥에 쭈그려 앉아 양 발목을 붙잡고 온몸에 힘을 주었다. 무언가 항문을 턱 막았다. 서둘러 속옷을 벗자마자 시커먼 것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는 매미 한 마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구겨진 날개를 펴지도 못하고 고부라진 앞다리를 부르르 떨면서 헐떡이고 있었다.

   그의 가게는 침몰하는 배와 같다. 그의 가게를 스쳐 지나가는 저들은 그를 고의적으로 수장하려는 자들이다. 좋게 보더라도 미필적 고의일 것이다. 아니지. 그저 외식비가 넉넉지 못한 것일 뿐이야.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누군가를 침몰시킬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지.
   그는 그의 가게를 스쳐 지나가는 자들을 온종일 노려보았다. 그들의 관자놀이와 목덜미와 가슴과 윗배를 쳐다보다가 저 뱃속에 든 것이 제육 덮밥과 불고기 덮밥이 아니라면 과연 무얼까, 이 세상엔 먹을 수 있는 것이 많고도 많지만 결국엔 친숙한 음식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을, 하고 생각하다가 이 모든 생각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저 멍해져버렸다.
   김사장이 그의 옆 가게로 들어갔다. 잠시 후 카페에서 나온 김사장은 그에게 물었다.
   “여기 주인 어디 갔어요?”
   “모릅니다. 안에 없습니까?”
   “없어요. 여기 화장실이 내부에 있나?”
   “그럴걸요. 무슨 일이신데요? 커피 드시려고요?”
   “아니요. 가게를 내놓겠다고 연락을 해와서요.”
   “벌써요?”
   “그런데 종일 전화를 안 받아요.”
    김사장은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처음으로 카페 안에 발을 들였다. 에어컨이 뿜어낸 냉기가 홀 안에 가득 차 있었다. 텅 빈 의자들이 그의 눈을 찔렀다. 이곳 역시 사람이 없다.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다.
   김사장은 화장실로 짐작되는 문 앞에 서서 노크했다.
   “안에 계십니까?”
   잠시 후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여주인이 튀어나왔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그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김사장이 말했다.
   “우셨어요?”
   여자는 눈물을 닦아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김사장에게 다급히 물었다.
   “저녁은 드셨습니까?”
   김사장은 멍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그걸 왜 묻습니까? 당연히 먹었죠.”
   “저희 가게 좀 오세요. 오백 원 깎아 드릴게요. 고기도 생고기로 바꿀 생각입니다.”
   “난 원래 제육을 안 좋아해요. 매워서.”
   “불고기 덮밥도 있어요.”
   “불고기도 안 좋아해요. 달아서.”
   그는 김사장의 얼굴을 죽일 듯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매앰매앰.”
   “지금 뭐라고 한 거예요?”
   그는 큰 소리로 울었다.
   “매앰매앰매앰.”
   카페 여주인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녀의 속눈썹에 매달려 있던 눈물방울이 흔들렸다.

   그날 밤, 그는 가게 문을 닫기 전 텅 빈 홀을 휘둘러보았다. 이제껏 한 번도 두 테이블 이상 찬 적이 없었다. 그저 기다리기만 한다는 점에서 탁자와 의자는 그와 똑같은 상태였다.
   그는 가구를 한가운데 모아 놓고 장작개비 쌓듯이 쌓아 올렸다. 아슬아슬하게 무너지지 않은 상태로 만들어 놓고는 주방으로 들어가 가스 밸브를 열었다. 감지기는 이미 망가뜨려 놓은 후였다.
   정적을 깨며 종소리가 울렸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희뿌연 얼굴이 떠올랐다.
   “사장님, 뭐 하세요?”
   카페 주인이었다. 그녀는 문을 반쯤 열어놓은 채 우두커니 서서 그를 쳐다보았다.
   “가세요.”
   “예?”
   “그냥 가시라고요.”
   그녀는 망설이다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손을 더듬어 스위치를 켰다. 그가 겹겹이 쌓아 놓은 탁자와 의자가 설치조형물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것을 멀거니 쳐다보기만 하다가 물었다.
   “캠프파이어 하시려고요?”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비수기는 우리도 어쩔 수가 없잖아요.”
   “여긴 일 년 열두 달 내내 비수기입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렇대요. 다 똑같은 상황이에요.”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추진력을 모두 상실해버렸다.
   “밖으로 나가세요. 이건 제가 정리해 놓을게요. 열쇠 저한테 주시고 내일 찾으러 오세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서요. 이럴 땐 가게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좋아요. 가서 실컷 울고 오세요. 아까 보니 매미 소리 내면서 잘만 우시던데요.”
   그는 결국 열쇠를 건넸다. 그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은 기분이 들었다.
   “제 말대로 하세요. 어서요.”
   그녀는 그의 등을 떠밀어 가게 밖으로 내몰더니 문을 잠갔다.
   그는 비척거리며 은행나무 아래로 걸어갔다. 더이상 매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휴가지에서 돌아온 주민들은 또다시 그의 가게를 그냥 지나쳐 갔다. 들어오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을 악착같이 지키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는 몹시 궁금했다. 저들은 도대체 왜 그의 가게에 들어오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어쩌면 그의 가게에만 투명 망토가 씌워져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환히 빛나는 가게를 모른 척 지나칠 수가 없다. 층고를 높이고 사면에 타일을 붙이느라 고생을 했다. 조명을 달고, 간판을 올리고, 카운터를 물걸레질했다. 금전함에 지폐를 차곡차곡 채워 넣고 문을 연 뒤, 기다렸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기다리는 그의 행위는 올곧이 지속되고 있다. 오로지 기다리기 위해 기다리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은행나무 둥치 아래 매미가 떨어져 있었다. 뒤집힌 채 배를 내보이며 징그러운 다리를 파르르 떨었다. 그가 다가가자 갑자기 지면에서 허리까지 튀어 올랐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듯 힘껏 튀어 올랐다. 그는 뒤로 주춤 물러섰다. 매미는 그의 허벅지까지, 무릎까지, 정강이까지, 마침내 그의 발목까지 튀어 올랐다. 그러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맴을 돌며 이때껏 그가 들어본 가장 큰 소리로 울었다.
   매앰매앰매앰매앰매애애애애앰 찌르르르르르르르르르.
   여음이 길었다. 매미는 마지막 순간까지 처절하게 울다가 이윽고 소리를 멈추었다. 동시에 움직임도 멎었다. 그는 매미를 집어 들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뒤 요란하기 짝이 없던 죽음을 노려보았다. 연이어 매미의 양 날개를 떼어낸 뒤 몸통을 입속에 넣었다.
   “으아아! 엄마, 저 아저씨 매미 먹었어!”
   아이를 안고 있던 여자가 그를 쏘아보더니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는 두 팔을 펼쳐서 날아보려는 듯이 흔들다가 곧바로 내려뜨렸다.
   매미는 죽었다. 여름은 끝났고, 가을이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다. 비수기는 일 년 내내 이곳에 머물 예정이고, 매미는 내년 여름에 다시 울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가게로 걸어갔다. 탁자며 의자가 제자리에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다시 기다림을 시작하는 중이다. 그는 가게 앞 의자에 앉아, 여전히 그의 가게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뱃속에서 매미가 울었다. 길고 긴 여음이 그의 고막을 울렸다.

이서수

장사를 하며 소설을 쓰는 저는 이 세상에서 ‘비수기’라는 단어가 가장 무섭습니다. 그러나 어찌 해봐도 도무지 피할 길이 없는지라 그만 소설에까지 이 단어를 끌어오고 말았네요. 한적한 골목에 가게 문을 연 뒤, 동네 아주머니들의 근심거리로 등극했습니다. 함께 월세를 걱정해 주고 돌아서는 그 뒷모습이 어찌나 마음을 울리던지요. 저는 열심히 비수기를 살아나갈 것입니다. 대신 소리쳐 울어 주는 저 매미를 가끔 올려다보면서요.

2019/08/27
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