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 좋지 않아 동네 주민센터에서 수영을 배우기로 했다. 땀 흘리는 걸 질색팔색하는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여름이기 때문이었다. 여름엔 시원한 게 최고지. 시원한 거 하면 또 수영이나 맥주 아닌가. 일본 드라마에 나오는 건강한 미남미녀들처럼 나도 직장인반 저녁 수영을 끝내고 캔맥주 하나 까서 먹고 싶었다. 여름이란 그렇게 보내지 않기엔 아까운 계절인지도 모르니까. 내가 놓치고 있는 삶이 절실해져 가던 시기였다.
   생각해보면 건강이 상한 것도 다 직장 때문이었다. 일터에서 모니터만 너무 열심히 살피고 내 코어 근육을 살피는 데엔 소홀했던 모양이었다. 잠깐 앉아있기만 해도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이 아팠다. 몸을 팽팽하게 지탱하고 있던 사기 같은 게 빠져나갔으니 회사에서 나는 사람이라기보단 그냥 데친 청경채였다. 나는 내가 이런 직장 생활도 거뜬히 해내고 자신을 능히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담에 걸렸다. 자고 일어나면 좀 나아지겠지 하면서 병원 가는 것도 미뤘다. 결국 열흘 동안 목이 왼쪽으로는 돌아가도 오른쪽으로는 돌아가지 않아서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기울인 채 보내야 했다. 직장 동료들에게서 ‘비뚤어진 자’라고 놀림받을 때마다 저 그렇게 안 비뚤어졌거든요! 하고 항변하고 싶었던 시간은, 삶의 무너져버린 균형에 대한 몸으로부터의 총체적 메타포 같았다.
   그렇게 몸을 위해서 등록한 수영 강습은 결국 야근 때문에 대여섯 번이나 빠지고 나서야 처음 나갔다. 나는 내가 돈 아까워서라도 아득바득 수영을 배우러 다닐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야근이 없는 날엔 퇴근 후 옷도 안 갈아입은 채로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기 바빴다. 수업을 빠졌는데도 돈이 아깝지 않다는 사실이 경악스럽지 않다는 게 오히려 경악스러웠다. 강습 한번 나가지 않고 때려치우자니 아찔한 기분이 들었고 나 자신에게 최소한의 면목을 세우기 위해 수영 강습에 간 건데 하필이면 거기서 몇 년 만에 동엽을 만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로부터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

   ‘직장인 클래스 - 3개월 만에 개헤엄을 물개헤엄으로 바꿔드립니다’라는 게 수강생 모집 공고의 제목이었다. 주민센터에서 열리는 강습인데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SNS에 열중하며 각종 밈에 민감한 젊은 층을 타킷으로 한 듯했다. 과연 처음으로 탈의실을 나서고 보니 다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청년들만 있었다. 제일 나이가 많은 듯한 사람도 서른 다섯을 넘기지 않아 보였다. 수강생들 모두 나름대로 직장에서 버티고 있는 거겠지. 그 버티고 버티기의 과정을 좀더 수월하게 해줄 수 있는 게 체력이라는 결론이었을 테고. 모두 문제의 해답이 노동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체력이라 여기는 것 같아 나는 함부로 씁쓸해했는데, 문득 나만큼 똥배가 나온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묘한 소외감을 느꼈다.
   몸풀기가 시작되자 호루라기 소리가 수영장에 널찍하게 퍼졌다. 저녁 시간대라 그런지 한산했다. 이런저런 동작들을 할 때 비집고 나오는 군살이며 바르지 못한 내 자세, 그에 반해 나보다는 능숙해 보이는 사람들을 흘깃거라느라 정작 강사의 시범 동작에는 신경을 못 썼다. 총 두 세트인 체조를 한 세트 끝내고 나서야 나는 수강생들 맞은편에서 삑비빅, 삑비빅비빅, 하고 호루라기를 아주 열심히 불어대는 강사가 낯익다고 느꼈다. 저 사람은 동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수영 모자와 물안경을 감안하더라도 강사는 뜯어볼수록 동엽과 닮아있었다. 짧은 키에 거의 일자로 이어질 듯이 진하고 굵직한 눈썹, 무엇보다 심한 뻐드렁니까지. 안경이 물안경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동엽이었다.
   그는 나를 모르는 척하기로 한 듯했다. 내가 그동안 결석을 많이 해서 동엽이 일대일 맞춤 수업을 해주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다른 수강생들이 지난번 수업 때 배운 걸 복습하거나 레인에서 헤엄치고 있을 때 동엽은 회원님, 음-파! 하세요, 음-파! 라면서 요령부득으로 물속에서 바둥대는 내게 끝없는 신뢰의 눈빛을 반짝였다. 그런데 대체 왜 나를 모른척한단 말인가. 수영 강습이 이뤄지는 내내 나는 신경 쓰여 집중할 수가 없었다. 설마 내가 누군지 잊은 건 아니겠지. 아니면 내가 착각한 건가. 아주 랜덤하게 동엽과 똑같이 생긴 수영 강사일 뿐인 건가. 그러나 의혹이 가시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첫 수업이 끝나고 그가 날 불러세운 것이었다.
   “회원님은, 음, 첫 번째로, 집중적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회원님들에 비해 진도가 느리기 때문입니다. 이상입니다.”
   이거면 확정이었다. 혀가 짧은 동엽은 늘 시옷과 리을 발음이 어색했다. 무엇보다 두괄식으로 말하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게다가 첫 번째로, 라고 운을 띄웠으면 두 번째나 세 번째까지는 나와야 인지상정인데 첫 번째만 말하고 끝내버리다니. 이 정도면 충분히 동엽스러웠다.

*

   부장의 입버릇은 ‘살아지는 대로 살면 사라진다’였다. 나를 불러서는 삶을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진취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내용의 잔소리를 했다. 4분 지각했다고 30분 잔소리를 듣는, 종합적으로 따져봤을 때 결국 시간 로스는 더 커져 버린 이런 형국에 대해 이제는 따질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진취적, 주도적, 그 말뜻이 대체 뭘 의미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다가 동엽을 떠올렸다. 시옷과 리을 발음이 어색한 동엽이 부장의 입버릇을 그대로 따라 한다면 ‘사다지는 대도 살면 사다진다’ 하고 말했겠지. 결국엔 그의 말을 잘 못 알아들은 사람은 몇 번이고 다시 물을 것이고. 옛날 내가 알던 동엽이라면 부장의 그 말을 교리처럼 삼고도 남았겠지만 결국엔 동엽답게, 그의 발음이 어딘가 일그러뜨려 결국에는 그 말처럼 되진 않았을 것이다.
   “알잖아, 그거잖아, 그거. 사람은 노 젓지 않으면 가라앉는다고. 또 노 젓는 곳에 물 들어오길 바라면 안 돼. 물 들어오는 곳 가서 노 저어야 돼.”
   “네, 노 저어야죠, 저어야죠. 저 수영도 배워요.”
   “수영! 수영 좋지. 근데 노 젓는 게 더 빨라. 내 말 뭔지 알지? 자 얼른 가서 노 저으라고. 파이팅하라고.”
   부장이 손짓하며 말했다. 테라스로 나가 멍하니 담배를 피우는데 내가 수영한다는 소리만 안 했어도 왠지 지금 기분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수영을 아주 잘하는 사람은 노 젓는 배보다 빠르려나? 동엽의 자유형 시범을 떠올려본다. 스타트대에서 물로 뛰어드는 폼은 굉장하다. 너무 드라마틱해서 투명 인간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그를 반드시 구하러 가야 한다는 필사의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그의 자세는 수영 강습 2주 차 학생인 내가 판단하기로 분명 정확한 자세다. 정확한 것 같긴 한데, TV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어딘가 뻣뻣하다. TV에서의 자유형은 물속에 있던 팔이 공기 중에 나왔다가 다시 물 속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 흐름이 말 그대로 물 흐르듯 매끄러웠다. 반면 동엽의 경우엔 팔이 목적지까지 도착하기 전에 여러 군데 들르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체크 포인트를 팔이 잘 거치며 움직이는지 일일이 의식하는 것처럼.
   대학 시절에도 동엽은 비슷했다. 그와 처음 만난 건 독서 토론 동아리에서였는데 그에 대한 내 첫인상은, 이런 비유를 하면 좀 그렇지만 사람으로 둔갑한 미국너구리였다. 늘 무언가(주로 커리큘럼에선 절대 필요하지 않을 듯한 두툼한 학술서적)를 한아름 안고 다니고, 아는 사람을 마주치면 글자 그대로 하하하, 하고 뻣뻣하게 웃으며 자리를 피했다. 학교 안을 바쁘게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언제나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도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처럼 말했고(그놈의 두괄식),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의식하는 듯했다. 그러니 독서 토론 동아리원들이 동엽을 싫어한 건 아니었어도 다가가기 어렵다고 느낀 것 역시 자연스러웠다. 무엇보다 우리와 가까워지는 건 동엽 본인부터가 원치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토론 세미나가 끝나고 그를 제외한 동아리원들이 보드게임을 하러 가려던 참에, 극강의 사회성 없음으로 무장한 동엽이 자기도 함께 가도 되겠냐고 물어왔을 땐,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수영 강습에는 꾸준히 나갔다.
   이후 몇 주나 흘렀음에도 나는 동엽에게 아는 척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2년 전 같은 독서 토론 동아리에서 활동하지 않았느냐는 말을 꺼내지 못했고 나를 기억하냐고 묻지 못했으며 동엽의 미국너구리처럼 어색한 몸짓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줄곧 사과하고 싶었다고 나는 말하지 못했다. 말하지 못하겠다고 느끼는 것과는 관계없이 수영 실력은 무심히, 그리고 착실히 늘어갔다. 킥판 없이도 이제 자유형을 할 수 있었으니까.
   숨을 참았다가 내쉰다는 것. 다리를 움직이는 것. 물의 흐름을 느끼고 거기에 적당히 몸을 맡기는 것. 내 몸 구석구석을 느끼는 것. 이는 뚜렷한 목적성과 방향성을 갖고 어딘가를 향해, 부장의 말마따나 ‘노를 저어가는 것’과는 달랐다. 수영은 내가 움직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전자가 목적지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후자는 움직이는 ‘나’에 찍혀 있었다.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가장 현재에 관한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체력도 순탄히 늘어갔다. 처음 몇 번 강습을 듣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자빠져 자기 바빴는데 지금은 좀 버틸 수 있었다. 일터에서도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며 책상 앞에 앉아있을 수 있었다. 이제는 회사 사람들이 나를 ‘안 비뚤어진 자’라고 칭했다. 나도 비뚤어졌고 너네도 다 비뚤어졌다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그제야 내가 그동안 체력이 없어서 냉소도 못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이렇게 짜증이 날 때마다 일일이 참아야 하나? 싶다가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아닌데요. 저, 비뚤어졌는데요.”
   “영희씨가 왜 비뚤어져? 우리 회사에서 제일 반듯한데. 수영 배우더니 사람이 아주 파이팅 넘치네.”
   “그럼 중도타협해서 덜 비뚤어진 걸로 치죠.”
   삶이란 지겹도록 배움의 연속이구나 싶었다. 냉소할 체력이 생기면 그다음엔 냉소를 참아낼 체력도 필요한 법임을 배웠으니까. 그날 수영 강습이 끝나고 동엽의 얼굴을 봤을 때도 마음 속에서 치솟는 공격성이랄까 투지랄까 그런 걸 느꼈다. 내가 가진 동엽에 대한 모든 의문을 간신히 참고 있었던 만큼 다소 거친 방법으로라도 해결하고 싶은 것이었다. 역사학자가 되겠다던 사람이 왜 여기 수영 강사로 있는지, 당초 목적지로 삼았던 곳과는 전혀 다른 이곳에 지금 와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왜 묻고 싶은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물어야 한다고 느꼈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은 사람들로서 나는 물을 자격이 없고 동엽도 대답할 의무가 없었음에도 말이다. 결국 나는 수강생들이 전부 물 밖으로 나왔을 때 모두에게 뒤풀이라도 가자고 제안했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 좋다고 하는데 동엽은 망설였다.
   “제가…… 술을 못 마셔서. 하하하……”
   “그럼 카페로 가죠.”
   “커피도…… 못 마셔서…… 하하하……”
   “레모네이드라도 시키면 되죠. 쌤도 같이 가요, 다들 간다는데.”
   동엽은 급격히 시무룩해졌다.
   “아…… 알겠습니다……”
   결국 우리는 술도 팔고 커피도 팔고 레모네이드도 파는 곳을 찾다가 주 고객층을 종잡을 수 없는 바에 도착했다. 실내에 싸구려 불상과 상어 턱뼈와 스케이트보드가 진열된 곳이었다. 동엽에게 내 패를 다 까 보이리라, 그리고 동엽의 패도 볼장 다 보겠다, 하는 마음이었건만 막상 자리에 앉으니 입이 잘 안 떨어졌다. 그렇게 나와 동엽을 제외한 모두는 웃고 떠드는 동안 우리 둘은 각자 주문한 것만 홀짝이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강생 중 한 명이 강사님을 끌고 온 건 영희씨인데 왜 둘이 말없이 앉아만 있냐고 물어왔고 결국 이목이 동엽과 내게 쏠리고 말았다. 나는 말문이 막힌 지 오래였다. 동엽은 난처함을 이기지 못했는지 내게 안 하느니만도 못한 아이스 브레이킹을 해왔다. 내게 무슨 일을 하는지, 수영 수업은 어쩌다 듣기로 했는지 등등.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다 동엽의 목소리에 어떤 절박한 기운이 배어있음을 알아챘다. 제발 내게는 아무것도 묻지 말아 달라는 그런 절박함이었는데 그렇게나 애쓰는 동엽의 모습을 보자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치밀어올랐고 결국엔 묻고 말았다. 그러는 선생님은 왜 수영 강사가 됐냐고, 대체 왜 수영을 하고 있냐고. 동엽은 당황한 듯했다.
   “음…… 수영은……”
   답을 고민하느라 기우뚱해진 고개가 다시 천천히 원위치를 찾았다. 곧 그가 말을 이었다.
   “제가…… 뭍의 존재라는 걸…… 배우기 위해 합니다…… 예……”

*

   독서 토론 세미나 후의 보드게임은 동엽에게 전에 몰랐던 환상적인 재미를 선사해준 듯했다. 독서 토론회가 끝나면 그의 얼굴이 미소로 번쩍거렸으니까. 뒤풀이를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했던 동아리원들은 기대감을 못 숨기는 그 얼굴 때문에 매번 보드게임 카페로 향하게 됐다.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 들고 홀연히 사라지던 동엽이 이렇게 변화한 건 예상 밖이었다. 동엽이라는 수수께끼에 호기심을 느끼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동아리원들은 토론 때 서로 헐뜯다가도 끝나면 흔쾌히 보드게임을 하러 나섰다.
   우리가 자주 했던 게임은 카탄이나 시타델 같은 것들이었지만 때로 고전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루미큐브나 우노에서 모노폴리까지. 주사위를 던지고 말을 움직이고 카드를 남들에게 보이지 않게 감춘 채 들고 있자면 동아리원들의 숨겨진 인격이 드러났다. 상대적으로 어리숙한 사람을 등쳐먹고 뒤통수 때리기에 한 맺힌 사람들처럼 굴었다. 그러다가 어느 하나가 이걸로 사내정치 하나는 문제없겠다고 했을 때 모두 웃음을 터뜨렸는데, 나도 웃었지만 사실 그때 가슴 한구석에서 찬 바람이 불어오긴 했다. 원치 않고 그래서 버티기 힘든 삶을 향해 걸어갈 때 느껴지는 맞바람이었달까.
   그러나 의외의 면모를 갖고 있는 건 동엽이 제일이었다. 패배하면 너무 분해서 몸을 파르르 떨다가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벅벅 하고 나왔다. 이기면 보드게임에서 화폐로 사용되던 플라스틱 코인이나 종이로 된 카드 같은 걸 몰래 챙기기까지 했다. 그만의 작은 전리품이라도 되는 걸까. 그리고는 이후 며칠 내내 싱글벙글거리며 남들이 안 본다고 생각할 때 그걸 꺼내보곤 했다. 동아리원 중 승부에 있어 가장 진심이었던 거였다. 생각해보면 모노폴리 같은 우정파괴 게임을 할 때라도 동아리원은 캔맥주 하나씩 까서 잡담도 하고 느슨하게 했는데 동엽은 그러지 않았다. 정말 풀파워로 고민하고 협상했으며 수를 뒀다. 그러다가 동엽에게 질문이 오면 보드게임 메이트를 잃지 않을 정도의 사회성만 간신히 발휘해 대답했는데, 할 말을 잃게 되는 건 오히려 질문한 사람 쪽이었다.
   “선배는 아르바이트 어떤 거 해요?”
   “나? 안해…… 하하하.”
   “그럼 용돈 받아요? 얼마나 받아요?”
   “방세 합해서 60만 원쯤...?”
   “와, 방세 합해서 60만 원이면 진짜 빠듯하다. 방세가 얼만데요?”
   “방세는, 35만 원이지.”
   “그럼 25만 원으로 한 달을 사는 거예요? 대박. 그거 갖고 어떻게 살아요?”
   “어, 그냥. 살아져. 하하하.”
   보드게임 카페의 쿠폰이 쌓여감에 따라 나는 동엽에 대해 아는 게 많아졌다. 역사학과에 다니며 역사학자가 되겠다는 꿈이 있고, 그러나 집안 형편을 위해 공무원이나 대기업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것. 공부할 시간을 빼앗겨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다는 것. 장학금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기 때문에 학점은 꽤 높은 편이지만 바빠 보이는 것 치고는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 자수성가한 사업가들이나 학자의 이야기에 쉽게 감동받는다는 것. 돈을 아끼고 아껴서 비행기 프라모델을 모으는 게 취미라는 것. 자존심이 세다는 것.
   그런 동엽은 내게 답답할 정도로 좁은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조건을 바꿀 상상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랬다. 시간 대비 고소득의 아르바이트는 얼마든지 있으며, 돈이 많아지면 도서관에서 낡은 참고서를 대여해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려줬다. 휴대폰 요금제를 바꾸면 통학 중에도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있고 건강하게 먹으면 수업에 집중도 잘 된다는 걸 알아줬으면 했다. 그러나 동엽은 그 당시 내가 바랐던 것처럼 진취적이지도 적극적이지도 않았고,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일이 드물었으며 무엇보다 물 들어오는 곳에서 노를 젓지 않았다.

*

   불상도 있고 상어 턱뼈도 있고 스케이트보드도 있는 그 정체불명의 술집에서 나왔을 땐 열두 시를 넘겼고 이미 나 혼자 폭탄주를 네 잔이나 해치운 뒤였다. 입구 앞에서 수강생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동엽은 강사라는 모종의 책임감 때문인지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옛날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자리를 피하기 바빴었는데.
   “이야, 너 많이 컸다? 옛날엔 안 이랬잖아. 맨날 먼저 가고 말이야.”
   동엽은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곧 하하하, 하고 어색하고 과장되게 웃었다. 나는 자식, 진짜 많이 컸다, 장하다, 하며 동엽의 팔뚝을 쿡쿡 찔렀다. 동엽은 대체 이 인간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상황이 요구하는 배역에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것처럼 아윽, 하하하, 아윽, 하며 몸을 배배 꼬았다. 나는 그를 마주 보고 양손을 어깨에 올렸다.
   “동엽 선배야,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아……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물이 아니라 뭍의 존재라는 걸 배우기 위해 한다며. 수영. 그거 나 들으라고 한 말 아니었어? 내가 아등바등 사는 거 알고 그렇게 말한 거잖아. 남의 일이라고 쉽게 이야기하는 거잖아.”
   “그게…… 어……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나는 한동안 그의 어깨를 붙잡고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 나 기억하지. 우리 대학 같이 다녔잖아. 동아리도 같이하고 보드게임도 같이했잖아.”
   동엽은 위를 올려다보다가 기억이 안 난다는 듯 난처하게 미소지었다.
   “독서 토론 동아리 했잖아. 맞아, 아니야?”
   “맞습니다.”
   “보드게임 가끔 했어, 안 했어, 뒤풀이로?”
   “보드게임 말씀이십니까? 어디보자…… 했습니다.”
   “근데 나를 기억 못해? 내 얼굴 기억 안 나? 내가 너 맨날 이겨 먹었다니까. 너는 나한테 졌고.”
   나는 쏘아붙였다. 동엽의 얼굴은 내가 한마디씩 할 때마다 새하얗게 질려갔다. 마치 겁을 잔뜩 먹은 초식동물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이렇게 나를 몰아붙이는 당신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처럼.
   “참 이상하다. 나는 너를 기억하는데. 내가 뭐라고 했는지도 기억하는데. 근데 나는 여기 있고 너는 거기 있네.”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엽을 그대로 두고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계속 걷다보니 인생이 돌고 돌아서 이번에 떠나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건 나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다가왔다. 대학 시절 나는 동기들과 선배들의 불안에는 잘 공감하지 못했다. 나는 스펙이 탄탄한 편이었고 자기소개서도 잘 써서 여기저기 많이 붙었다. 원하는 곳을 골라서 갈 수 있는 입장이었다. 오랫동안 진취적이었고 적극적이었던 대가로 물 들어오는 곳에서 노를 저을 기회가 내겐 많았다. 말하자면 나는 회사의 입장에서 자리를 내어주기에 적합한 사람이었다. 동엽은 그렇지 않았다.
   동엽과의 마지막 보드게임을 한 그날도 우리는 모노폴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동엽을 무참히 파산시키고 게임의 승리자가 됐는데 그와 나의 재산 차이는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얼마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동엽은 패배감에 몸을 바르르 떨다가 눈물까지 글썽일 정도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자 나는 미안하기보다는 화가 나서 한마디 했는데, 결정적으로 그때 내가 한 말 때문에 동엽은 자리에서 뛰쳐나갔고 다시는 보드게임에는 물론 독서 토론 세미나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선배, 이건 진짜 돈이 아니에요. 진짜가 아니잖아요.”
   내가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알고 있던 동엽이니까 내가 뒤이어 말하지 않은 말들도 들리지 않았을까? 가짜 돈보다 진짜 돈에 연연하는, 생산성을 갖춘, 사회에 좀더 적합한 사람이 되라는 내 업신여김이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을까?
   그가 동아리에 참석하지 않은 이후로 나는 오랫동안 이 일을 마음속에 담아왔다. 물론 상처를 받기엔 사소한 농담이다, 그러니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동엽이다, 라는 목소리도 있긴 했다. 이렇게 대강 매듭짓고 넘어가야 편하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알았다. 그런데 문득 떠오르곤 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과 동엽에게 어쩌면 들렸을 내가 삼킨 말들과 무엇보다 동엽의 얼굴이. 동기의 결혼식장에서, 왁자한 술자리에서.
   딱히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는데도 발은 저절로 움직였다. 가고 싶은 장소의 목록을 마음속에 만들고 하나씩 체크해보았다. 공원에 가고 싶은가? 아니오. 집에 가고 싶은가? 아니오. 집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디? 수영장에 가고 싶은가? 아니오. 학교로 가고 싶은가? 아니오. 회사로 가고 싶은가? 아니오. 근데도 어째서 내가 걷는 방향은 회사 쪽인가. 한때 내 자리라고 믿었던 곳으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등 떠밀리면서, 계속 걸었다.
   그러다가 곧 그 술집 앞에 동엽이 여전히 서 있는지 확인하러 가야 한다고 느꼈다. 왜 그런 마음을 느끼는지는 알지도 못하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마침내 불상도 턱뼈도 스케이트보드도 있는 술집 앞에 도착했을 때 당연히 동엽은 없었다. 조금 전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서글픈 마음에 휩싸였다. 달렸던 탓인지 울렁거려서 가로수 하나를 붙잡고 속을 게워냈다. 그리고 계속 걸었다. 어쩌면 몇 년 전 대학 시절 동엽이 내게서 상처 따위는 입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걸 뒤늦게 실감하면서. 사실 나는 동엽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실감하면서.

*

   며칠이 지났고 회식이 있었다.
   잔업 때문에 나 혼자 한 시간 정도 늦게 참석했다. 좌식 삼겹살집이었는데 팀원들은 쏘맥을 말아먹어서 이미 붉어져 있었다. 내가 바닥에 앉자 부장이 팀 구호와 포즈를 정했다고 했다. 보여주자고, 안 비뚤어진 이대리한테 우리 팀의 패기와 비전을 보여주자고 부장이 말하자 쭉 늘어선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팀원들이 그를 향해 돌려 앉았다. 책상다리에서 무릎을 세우더니 앞사람의 엉덩이가 발을 깔고 앉은 모양새가 되게끔 자세를 바꿨다. 그리고 곧 팀원들이 노를 젓는 모션을 취하는 게 아닌가. 뭐가 그렇게 웃긴지 불콰해진 얼굴이 더 빨개질 때까지 다들 자지러졌다.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이 이렇게 한마음 한 몸일 수가 있지? 나는 2002년 월드컵도 봤는데. 초현실적인 광경으로 느껴져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부장이 함께하자고 손짓했다.
   “이대리도 쪼인 해야지! 컴온! 쪼인!”
   “아이씨, 저는 수영 배워서 노 안 저어도 되는데.”
   “에이, 안 비뚤어진 이대리야, 그만 구시렁대고 빨리 와라!”
   내 자리를 찾다가 팀원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앞사람의 엉덩이가 살짝 들렸다가 내 발등 위로 내려왔고 내 엉덩이는 뒷사람의 발등을 깔고 앉았다. 그 습하고 훈훈하며 물렁하면서도 단단한 몸의 질감에서 모두가 아득바득 살고 있다는 묘한 실감이 났다. 팀원들과 영차, 영차, 하며 노 젓는 시늉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가 어디론가 쭉 미끄러져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곧 짜증과 환멸과 창피함이 내 안에서 고개를 들이밀었다.
   나는 꼭 받아야 하는 전화가 온 척하며 밖으로 나가 가게 앞의 은행나무 밑동에 쪼그리고 앉았다. 취하진 않았지만 취한 척 청승맞게 있지도 않은 노래를 옛날 트로트 풍으로 지어 아무렇게나 불렀다. 나 세상살이 돌고 돌아 내 자리 없는 이곳에 왔노라. 노 젓다가 자유형 하다가 휩쓸리고 떠밀려 온 이곳은 어디인가. 늦여름 밤인데도 아직 매미가 죽지 않고 남아 울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얼마 전 동엽이 여전히 그 술집 앞에 서 있나 확인하러 달려가지 않았더라면, 이 자리가 그나마 괜찮지 않았을까 하고 막연하게 느끼면서. 그리고 담배 타들어가는 소리와 밤 매미가 우는 소리, 그리고 가게 현관을 통해 새어나오는 웃음소리를 듣다가 문득 예감이 찾아왔다. 나는 두 번 다시 수영 강습에 나가지 않으리란 걸, 어쩌면 다른 운동을 배우리란 걸. 어느 날 동엽을 우연히 만나게 되리란 걸, 그땐 정말 동엽을 모르는 사람처럼 대할 거란 걸. 그리고 이곳을 정말로 미련없이 떠날 수 있게 나는 여기서 오래 버티게 되리라는 걸.

류한경

남을 더 좋아하기 위해 남을 고치려 드는 인물을 생각하며 썼다. 아닌가. 자기 속 편하자고 남을 고치려 든 건가. 아무튼 내 인생의 어느 구간에 내가 그랬던 것 같다. 어쩌면 지금도 그런 것 같아서 걱정되고 미안하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구상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이야기도 나를 조금 바꿔놓은 것 같은 기분이다. 참고로 여러분, 저는 사진도 찍는다. Instagram @hankyung.ryu로 들어가면 구경할 수 있겠사오니 먹고 살게 도와주세요.

2021/04/27
4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