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받았다. 입에서 자꾸 비린내가 난다. 양치를 해도 안 없어진다. 퇴근했다. 새벽 6시다. 멍게를 먹으러 갔다. 멍게는 봄이 제철인데. 지금은 11월이다. 멍게에선 바다향 대신 비린내가 났다. 비린내를 비린내로 덮었다. 술도 마셨다. 소주를 시켰다. 원래 소주는 마시지 않는데, 다 비웠다. 멍게를 더 먹고 싶지만 이런 멍게를 먹기는 아깝다. 이제 곧 눈이 날리고, 확연한 겨울이 오겠지. 그러면 봄도 올 거다. 봄이 오면 멍게를 대야에 쌓아놓고 하나씩 까먹을 테다. 가게를 나왔다. 정장 입은 사람이 많다. 지하철 입구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갔다. 지하철 입구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오늘은 방에 돌아가기 싫네. 고시원 방에선 담배를 못 피운다. 옥상까지 올라가야 한다. 근데 오늘은 담배를 많이 피울 거다. 엄청 많이 피울 거다. 수에게 전화를 해볼까. 받을까. 받았네. 수에게 말했다.
   
   “오늘 하루만 너희 집에서 잘게.”
   
   수유에서 노원까지 걸었다. 노원에는 노원문고가 있으니까. 지금부터 걸어가면 문을 열 거다. 걸음이 너무 빨랐나. 도착은 했는데 서점 문이 닫혀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노원문고 주변을 걸었다. 정장 입은 사람은 이제 드문드문하다. 교복 입은 아이들이 늘었다. 양손에 맥주를 들고 걸었다. 한 걸음, 홀짝. 한 걸음, 홀짝. 맥주를 다 마셔도 걱정은 없다. 편의점은 어디에나 있다. 맥주를 더 샀다. 한 걸음, 홀짝. 한 걸음 홀짝. 마침내 서점이 문을 열었다. 책을 한 권 샀다. 선물 포장을 했다. 1,000원이 더 들었다.
   
   수의 옥탑은,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항상 헷갈려, 옥상? 마당? 뭐든 간에, 역시나 쓰레기장이다. 합판이 썩어가고 있었다. 수가 직접 책상을 만들어보았다가 개미가 들끓는 바람에 버린 거라고 했다. 50L 쓰레기봉투도 사방에 널려 있다. 빨래 건조대에 널려있는 저 옷은 이 주 전에도 본 것 같다. 햇볕에 옷 색이 바래고 있다. 그래서 좋다. 여기선 아무 짓이나 해도 될 것 같다.
   “여기.”
   역시, 수다. 맥주를 사 놓았다. 나도 책을 줬다.
   “숙박비야.”
   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돈이 어디서 났느냐는 거겠지. 그렇겠지. 어제만 해도 나는 180원 밖에 없었으니까. 100원 하나, 50원 하나, 10원 3개. 그래도 노원문고라고 쓰인 봉투를 보고 수는 좋아했다. 수는 책을 좋아하니까. 아직 포장을 뜯지 않아 무슨 책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책이니까. 수가 기뻐하니까 좋다. 그러고 보니 수에게 뭔가 사준 것은 이게 처음이다. 늘 얻어먹기만 했는데. 이제는 돈을 버니까 수에게도 많이 사줄 수 있겠다. 아니 많이는 못 사주겠네. 그래도 종종 사줄 여유는 있겠지. 그러니 기쁨의 축배를 들자! 나도 이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엿이 돈을 버는 사회인이 되었다! 평범하게, 의연하게. 주문을 외우자. 그냥 평소랑 똑같이 술을 마시는 거다. 근데 왜 수의 눈을 못 쳐다보겠지. 그래, 천장을 보자. 목이 아프네. 그럼 고개를 숙이자. 어머나 내 허벅지. 내 가랑이. 노래나 틀자. 근데 자꾸 손이 보이네. 내 손. 비린내가 남은 내 손. 아무리 비누로 벅벅, 벅벅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 비린내. 비린내 나는 몸. 보기 싫은데, 자꾸만 보이네.
   “조증 왔어?”
   수가 물었다. 수의 눈을 쳐다봤다. 빤히는 아니고 흘깃하고. 미간이 살짝, 아주 살짝 찌푸려져 있어. 이건 의심일까, 걱정일까. 이건 의심일까, 걱정일까. 창밖을 보며 답했다.
   “왜?”
   “자꾸 손발을 가만히 못 두길래.”
   “조금?”
   다행이다. 수는 모른다. 아직 모른다. 담배를 꺼냈다. 수도 꺼냈다. 수는 아무 말도 없다. 수는 원래 말이 없다. 나도 별로 말이 없다. 그래서 좋다. 우리가 만나면 아무것도 안 한다. 그냥 술을 마신다. 담배를 피운다. 유튜브로 노래를 튼다. 기분이 좋으면 노래를 따라 부른다. 기분이 나빠도 노래를 따라 부른다. 어, 지금 나 노래 부르고 있나?
   
   민지야, 나영아, 소연아, 수아야, 선혜야. 제 이름은 영이에요. 민지야, 나영아, 소연아, 수아야, 선혜야. 제 이름은 영이에요. 누가 자꾸만 누군가를 찾는데 그게 나네. 내 이름이 아닌데 저것도 내 이름이네.
   
   정신을 차리니 토하고 있었다. 수가 화장실 문밖에서 물었다.
   “괜찮아?”
   “응, 괜찮아, 괜찮아, 정말 괜찮아. 나 원래 이유도 없이 잘 토하잖아.”
   “하지만 벌써 세 번짼데?”
   화장실에서 나왔다. 입에 뭐가 묻었나 보다. 수가 휴지로 닦아 주었다. 바닥에 누웠다. 수는 자꾸 나를 쳐다보고 있다. 저건 의심일까, 걱정일까. 걱정일 거야. 수는 착하니까. 나도 모르게 말했다.
   “그때, 대각선으로 콱 그었어야 했는데.”
   “병신년. 이젠 안 긋는다며.”
   “맞아, 이젠 안 그어.”
   이젠 그으며 안되지. 나는 돈을 버는 어엿한 사회인이니까. 내가 팔을 그으면 의사는 또 입원을 시킬 거고, 그럼 돈을 못 벌겠지. 그러니 이젠 안 그어. 아니 못 그어. 헤헤. 웃었어. 내가 웃으니 수도 따라 웃었어. 끅끅, 킥킥. 뭐가 웃길까. 그치만 웃음이 나오니 웃자. 끅끅 킥킥, 끅끅. 끅끅, 끅끅, 끄윽끄윽. 어느 순간 수는 웃지 않네. 아무 말도 없네. 난 웃다 울다 수에게 말했다. 수에게 말했지만 수에게 말한 것은 아니다. 혼잣말인데 수에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 참 똑똑한 사람이야. 정말로 똑똑한 사람이야.”
   이건 술버릇이야. 항상 똑같은 레퍼토리야. 수 앞에서는 늘 이래. 원래 한 문장을 덧붙여야 한다. ‘근데 사업하실 분은 아냐……’ 하지만 안 했어. 왜냐면 이젠 모두 아는걸. 정말로 아버지는 사업하실 분이 아냐. 하지만 아버지는 참 똑똑하지.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에게.
   “아버지, 잘 지내시죠? 저야 늘 잘 지내죠. 아버지, 사랑합니다.”
   문장은 서울말이지만 억양은 진한 부산 사투리로 말했다. 전화는 끝났다. 짤막한 레퍼토리도 끝났다. 다시 서울말을 써야지. 수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 그래서 수가 좋다.
   “어쩌다 이리 됐노.”
   나도 모르게 사투리가 나왔다. 수는 여전히 말이 없다. 수는 담배를 피웠다. 나도 누운 채 담배를 피웠다. 한 대를 피우고, 또 한 대를 피우고, 또 한 대를 피웠다.
   
   “나, 매춘 시작했다.”

*

   영은 그 후로 맥주를 조금 더 마시다 아무 말 없이 잠들었다. 잠든 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피우고 또 피웠다. 술이 남았지만, 술을 마실 생각이 들지 않았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안 좋아 토를 할 때까지 담배를 피웠다. 그러고 나서 숙박비라던 책 포장을 뜯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이었다. 영이 몇 번씩 다자이 오사무 이야기를 했지만 한 번도 그의 책을 읽지 않았다. 영이 전쟁 전후 일본 작가를 권할 때면, 일본 소설 좋아하면 자살한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역시나 책 표지부터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을 언급하고 있다. 책을 펼쳤다.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자살 이야기가 나왔다. 인터넷에서 다자이 오사무를 검색했다. 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단다. 이쯤 되니 담배가 다 떨어졌다. 분명 영이 온다는 연락을 받고 아침 댓바람부터 담배를 사 왔는데 말이다. 담배도 살 겸 시장으로 갔다. 마트는 오늘따라 수산물 코너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톱밥에 파묻힌 활꽃게를 세일하고 있었다. 1kg에 13,000원이었다. 한참을 고민했다. 어떤 아주머니가 두 마리만 봉투에 담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제야 결정을 내렸다. 나도 두 마리만 담아달라고 직원에게 부탁했다. 7,000원이 나왔다. 옆에는 알이 꽉 찬 대게가 놓여있었다. 한참을 힐끔거리다 마트를 나왔다.
   냄비에 된장을 풀고, 마시다 남은 술을 부었다. 찜기를 올리고 게 두 마리를 쪘다. 그래도 영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새 오후 다섯 시가 넘었다. 자고 있는 영의 핸드폰이 계속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 스무 번. 화면엔 실장님이라고 떴다. 어쩔 수 없이 영을 깨웠다. 영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핸드폰을 한참 쳐다보더니 그냥 벨소리를 꺼버렸다.
   “게 쪄놓았어. 먹어. 난 기다리다 배고파서 먼저 먹었어.”
   두 마리 꽃게를 그릇에 받쳐왔다. 영은 환하게 웃으며 꽃게 두 마리를 싹싹 발라먹었다. 껍질까지 와그작와그작 쪽쪽 씹고 빨았다. 순식간에 영은 꽃게 두 마리의 잔해만 남겼다.
   “늦겠다. 일 가야겠다.”
   영은 웃으며 옥탑을 내려갔다. 그제야 오늘 술 말고는 먹은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게를 찌고 남은, 된장 푼 물에 밥을 말아 먹었다. 밥을 먹고는 집 안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던 동전을 모았다. 난생처음 로또를 사러 갔다.
   삼 일을 기다렸고 당연히 로또는 당첨되지 않았다.

*

   어떤 손님이 농담을 던졌다.
   “여자가 동정 천 개를 모으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한다던데. 몇 개나 모았어?”
   나는 그냥 웃기만 했다. 아니 정말로 웃겨서 웃었다. 이미 알고 있는 농담이었다. 나도 수에게 종종 그 농담을 하곤 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말이다. 그땐 ‘동정 천 개라니’라고 했다. 지금은 ‘고작 천 개라니’다. 승천은 충분히 할 테다. 손님 중에는 동정도 종종 있었다. 친구가 끌고 왔다고 변명하면서, 어리벙벙하게 굴었다. 동정을 상대하는 것은 까다로웠다. 제대로 허리를 쓰는 법을 몰라 한참을 해야 했다. 아니면 내가 올라타서 허리를 흔들어줘야 했다. 그래서 어쩌다 동정이 하루에 두 명이나 오면, 다음 날은 허벅지에 알이 배겼다. 그래도 여의주는 분명 물 수 있겠다. 천 명은 채울 수 있겠다. 하지만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보단 물고기가 더 좋다. 수에게 선물한 『만년』에도 물고기 이야기가 실려있다. 사춘기 소녀 스와는 첫눈이 내리던 날, 용소(龍沼)에 빠진 걸까 홀린 걸까 끌린 걸까. 용소에 빠져 헤엄치던 소녀는 물고기가 되었지. 나는 용소에 빠진 걸까 홀린 걸까 아니면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걸까. 어쨌든 이번 손님도 동정이네. 용이 되어 승천하기 전에 한 마리 물고기 붕어가 되어 허리를 흔들었다. 뭍에 나와 파닥거리는 붕어는 얼마나 오래 살아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손님에겐 돈을 받고, 실장에겐 돈을 주고, 남은 돈을 챙겨 퇴근하는데 첫눈이 내린다. 스와는 소녀가 되었고 물고기가 되었지. 나는 창녀가 되었고 다음엔 무엇이 될까.
   
   어쨌든, 딱 천만 원만 모을 거다.

*

   영은 일이 끝나면 우리 집에 왔다. 술을 잔뜩 마시고, 그 날의 진상들을 욕하다가 잠에 들었다. 그러면 나는 장을 보고 밥을 차렸다. 영이 일어나면 같이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면 영은 일을 나갔다. 나는 그러면 잠에 들었다. 잠이 오지 않아 수면제를 늘렸지만 그래도 잠은 잘 오지 않았다. 늘 자다 깨다 했다. 그래도 덕분에 영이 올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긴 편했다.
   잠을 설칠 때면 종종 영을 처음 만난 날을 생각했다. 우리는 두 번 처음 만났다. 첫 번째 첫 만남은 친구가 소개해준 술자리에서였다. 영이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나와 영이 만날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때 영과 처음 만났다. 나는 낯가림이 심했고 영도 낯가림이 심했지만, 이상하게 우리는 그 날 빨리 친해졌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끼리의 유대감이었을까. 그렇게 우리는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술을 마시며 애인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 말하자면 동지애에 가까운 사랑을 품었다. 영이 나보다 항상 한 발짝씩 앞서 병이 악화되었고, 나는 영을 뒤따라가며 병이 악화되었다. 영의 현재는 나의 미래였고, 영의 과거는 나의 현재였다. 그즈음부터 우리는 서로를 병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병신. 상병신. 씹병신.첫 번째 첫 만남 이후 한참이 지나서야 우리에게 또 다른 첫 만남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2년 전 대학교 강의실에서였다. 여름이었다. 한 여자가 있었다. 항상 왼 손목에 스포츠용 아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남성용 카시오 시계와 주렁주렁한 팔찌도 함께였다. 그 여자는 쉬는 시간이면 항상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웠다. 그때마다 그 여자의 손목에 시선이 갔다. 그 여자에게 말을 걸어볼까도 고민했지만, 학기가 끝날 때까지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사실, 학기 중반 즈음이 지나고 나서는 내가 수업에 나간 횟수 자체가 드물어 그 여자를 만난 것도 몇 번 되지 않았다. 그게 두 번째 첫 만남이었다.
   언제나처럼 병신, 병신거리면서 놀고 있는데 어쩌다 그때 그 수업 이야기가 나왔다. 그제야 그때 그 여자가 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은 그사이 라섹 수술을 하고 안경을 벗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던, 뽀글뽀글했던 파마머리도 남자들 머리에 가까울 정도로 짧게 쳐냈다. 나도 2년 사이 매일 같이 마신 술이 그대로 살로 붙어 30kg이나 몸무게가 불어있었다. 그래서 첫 번째 첫 만남 이후로도 서로가 서로를 몰라보았다.
   나와 영은 우리의 두 번째 첫 만남을 알게 된 날, 서로를 놀렸다.
   “병신년, 아대는 왜 차고 있었냐. 더 눈에 띄게.”
   “그러는 넌 병신아. 왜 맨날 수업 듣다가 사라졌냐.”
   그러다 영이 말했다. 수업시간에 옆자리에 앉은 날이 있다고 했다. 그때 정말로 말을 걸고 싶었단다. 수업시간 중간중간에 사라지는 모습과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우는 모습만 보고도 왜인지 모르게 동류라고 직감했단다. 그 날 우리는, 병신끼리 병신력(病身力)을 알아보았다며 배를 잡고 웃었다.

*

   천만 원은 쉽게 모이지 않았다. 내가 사치를 너무 많이 부렸나 보다. 일이 끝나면 새벽까지 여는 횟집에서 꼬박꼬박 멍게 한 접시를 사 먹었으니 말이다. 돈이 제법 모인다 싶으면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업 자금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시 돈이 모인다 싶으면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병원비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또 돈이 모인다 싶으면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합의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도 천만 원을 모을 거다. 멍게를 끊으면 금방 모일 거다.
   그동안 나는 집안의 짐 덩어리 둘째 딸이었으니까. 이제는 어엿이 어른이 되었으니까. 그동안 가족들에게 짐이 되었던 만큼 힘을 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 ‘소녀’가 건강도 안 좋은데 식당일을 나가야 하니까. ‘소녀'는 내가 어머니를 부르는 말이다. 고등학생 때, 처음 폐쇄 병동에 입원했을 때, 첫 면회 때, 어머니는 도시락을 싸 왔단다. 근데 내가 도시락을 많이 남겼다. 올 때랑 별로 무게가 다르지 않은 도시락 가방을 들고, 어머니는 병원 벤치에 한참을 앉아있었다고 했다. 목련이 아름다웠고 벤치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후로 핸드폰에 어머니를 ‘소녀'라고 저장해 놓았다. 먹성 좋은 내가 도시락을 남긴 게, 면회실에서 수저도 쓰지 않고 양손으로 도시락을 퍼먹다가 어머니를 보고는 누군지도 못 알아보고 당신 누구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서 급하게 면회가 종료되고 내가 끌려나간 탓이란 건 한참 후에야 알았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도끼로 내 머리를 찍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나 같은 딸을 둔 게 수치스럽다고 했다. 분명 약을 먹고 잠든 줄 알았는데 몽유병 환자처럼 기어나와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우적우적 처먹고 있는 모습을 본 다음 날이었다. 다 내가 못난 탓이다. 나이 스물여덟 먹도록 돈 한 번 벌지 못했다. 그렇다고 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머리에 꽃만 꽂고 돌아다녔다. 못난 딸이다.
   그러니 천만 원을 모으자. 이제 짐 덩어리 못난 둘째 딸을 벗어나는 거다. 멍게를 끊고 어머니에게 오백을, 아버지에게 오백을 부쳐드리는 거다.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열심히 살며 돈을 모으는 거다.

*

   어느새 1월이 되었다. 로또는 매주 샀다. 딱 한 번, 사 등에 당첨되었다. 오만 원을 받아든 그 날은 꼬막을 삶았다. 영은 이번에도 꽃게를 먹을 때처럼, 환하게 웃으며, 순식간에 다 먹었다. 로또를 더 많이 사기로 했다.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영이 일하는 시간에 맞추어 편의점 야간 타임 일을 시작했다. 월급을 받으면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로또를 샀다. 숫자를 찍는데 이렇게 재능이 없는지 처음 알았다. 한 번 사 등에 당첨된 이후로는, 오 등짜리, 오천 원짜리 한 번 당첨되지 않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영이 퇴근할 시간쯤 되었다. 대게 영이 조금 일찍 퇴근했고, 영은 내가 일하는 편의점에 놀러 왔다. 마감 정리하는 것을 조금 도와주고 나면 우리는 같이 집으로 갔다. 퇴근하면서 사 온 맥주를 마시면서 놀았다. 영은 점점 진상 이야기하는 것이 줄었다. 마치 예전처럼, 그냥 아무 일 없었던 때처럼, 술을 마시고 노래를 틀었다. 가끔은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췄다. 그러다 졸리면 잤다. 나는 영이 일 갈 시간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밥을 준비했고, 영을 깨웠다. 평온한 일상이었다.

*

   천만 원을 모아야 했다. 딱 천만 원만 모으면 됐다. 그래야 했는데, 그래야 했는데, 일을 못 하게 되어버렸다. 망쳐 버렸다.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그걸 못 참아버렸다. 병신이다. 구제 불능이다.

   일하다 보면 종종 조폭이 온다. 온몸에 문신한 떡대들. 그 치들은 절대 콘돔을 쓰지 않는다. 콘돔을 안 쓰겠다는 손님이 있으면 ‘저 성병 있을지도 몰라요’라고 타이르면 대게는 겁을 먹고 콘돔을 낀다. 끝까지 콘돔을 안 쓰겠다는 진상이 있으면 실장에게 전화나 문자를 하면 된다. 하지만 조폭들이 오면 그럴 수 없다. 실장도 소용없다. 전화하기도 전에 나는 얻어터질 테니까. 그래서 그런 날은 꼼짝없이 새벽에 응급실을 찾아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아야 한다.
   그래도 실장 밑에 있는 조폭들은 자기네 업소 여자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다. 그치만 규칙을 지키고 살 사람들이었으면 조폭이 아니라 경호원이 되었을 테다. 손님이 없을 시간이면 실장 밑에 있는 조폭들도 종종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내 가랑이를 두 팔로 벌리고 푹푹 쑤시다가 사정을 하고는 나갔다. 그럴 때면 최면을 걸었다. 나는 보지다. 나는 보지다. 나는 보지다. 최면을 걸다 보면 내가 뭐 하고 있지 하는 순간이 온다. 나는 보지인데, 왜 당연한 말을 하고 있지 하는 순간이 온다. 그때쯤이면 다음 손님이 들어온다. 그러면 방긋 웃으면서 문을 열어주면 된다.
   오늘도 조폭이 왔다. 제일 자주 방에 들락거렸던 조폭이다. 딴 업소로 가서 한동안 안 보이더니 또 왔다. 애무도 샤워도 없었다. 들어오자마자 바지만 슥 내리더니 삽입을 했다. 질 안에 사정했다. 그래도 끝났다. 오늘은 어느 병원 응급실에 갈까 고민했다. 근데 갑자기 머리채를 붙잡고 내 입에 자기 물건을 집어넣었다. 목구멍에도 사정했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두 번 사정하는 동안 그 조폭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바지를 올리고, 나갔다. 목구멍에 들러붙은 정액은 삼켜도 삼켜지지 않았다. 뱉어도 뱉어지지 않았다. 토라도 하려고 목구멍에 손을 집어넣으려 했다. 근데 그러면 손에도 정액이 묻겠지. 목구멍이야 이미 묻은 거, 손에 또 묻힐 필요가 있을까. 손가락을 못 넣었다. 평소에는 이유도 없이 툭하면 토를 했는데 오늘따라 토도 하질 못했다. 최면을 걸었다. 나는 보지다. 나는 보지다. 내 입도 보지고, 내 손도 보지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최면을 걸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조퇴했다. 실장이 화를 냈다.

*

   일이 끝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영이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냥 일이 좀 있나 했다. 영은 종종 일이 끝나고 산책을 하다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영은 그 날 끝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는 켜져 있었지만 받지 않았다. 다음날도 영이 집에 오지 않았다. 그다음 날, 낯선 번호로 영이 전화했다.
   “수야. 여기 경희대 병원인데, 멍게가 먹고 싶어. 횟집에서 멍게 좀 포장해줘.”
   “응급실이야, 폐쇄 병동이야?”
   나는 그것부터 물었다. 영은 폐쇄 병동이라고 답했다. 영은 오래 전화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금세 전화는 끊어졌다. 경희대 병원 정신과 폐쇄 병동에 전화를 걸었다. 영이라는 환자가 있냐고 물었다. 친구인데, 방금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면회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가족이 아니면 면회가 안 된다고 했다. 연락을 넣을 순 없냐고 했다. 연락도 넣을 수 없다고 했다. 영이 언제 퇴원할지 몰라, 매일 시장에 멍게를 사다 놓았다. 영을 기다리며 혼자 먹었다. 영이 퇴원한 것은 이 주일이 지나서였다. 팔에 깁스를 한 채로 옥탑 문을 두드렸다. 영을 보자마자 말했다.
   “병신년, 죽지 마.”
   “안 죽어, 안 죽어, 봐봐, 안 죽었잖아, 많이 해봐서 알아."
   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해맑게 웃었다.
   “이제 일 못 하겠네.”
   “한 달 뒤에 깁스 푼대. 그러면 다시 일해야지.”
   “당분간 술은 먹지 마.”
   “응, 그래야지.”
   영은 멍게를 우적우적 삼키면서 말했다. 죽은 게 성공이냐, 안 죽은 게 성공이냐고 따지면서 낄낄거리고 있는데 영에게 전화가 왔다. ‘소녀'에게서 온 전화였다.
   “네, 어머니.”
   “병원에서 연락받았다…… 내는 니가 그런 일까지 하는 것까지 바라는 거 아니데이…… 근디…… 술집…… 에서 일하는 거 치곤 보내주는 돈이 쪼깨 적디라……”
   통화는 짧았다. 영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소녀는 전화를 끊었다. 말캉거리는 멍게 살을 삼키기 어려웠다. 벌써 3월이다. 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멍게의 제철은 봄 중에서도 5월이다. 아직 비린내가 난다. 아무래도 맥주를 사 올 걸 그랬다.

주동우

부고를 전하는 일은 언제나 징그러워서 그만두기로 했다
우리 이제 슬픔을 기록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하자

2018/06/26
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