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고양이 골목은 골목



   골목은 골목으로 사라지고 고양이는 고양이 잠을 잔다 날 사랑해줄래? 남자가 여자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 편의점 앞에 멈춰 선 탑차 안에서 한 무리의 강도들이 쏟아진다 밤하늘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한다 그러나 골목은 요지부동 여전히 고양이는 고양이 잠을 잔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군 어린이집 옥상 난간에 걸터앉은 아이가 중얼거린다 머쓱해진 무장 강도들이 탑차에 올라 서둘러 자리를 떠난다 화단에 주저앉은 여자가 타자를 치고 있다 타닥타닥 자판 위로 탄피가 내린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떨어진 탄피를 주워 반지를 만든다 김 병장 개새끼 반지 안쪽에 전역일자를 꾹꾹 눌러 새긴다 여자는 쓰다 만 문장을 지운다 마우스가 꼬리를 자르고 고양이 목에 걸린 방울을 툭툭 흔들어본다 그러나 고양이는 여전히 고양이 잠을 잘 뿐 아이가 옥상 난간에 서서 배트맨을 외치며 뛰어내린다 아이쿠 배트맨은 하늘을 못 날지? 큭큭 아이가 웃는다 담 위로 솟은 가지마다 무장 강도들이 피었다 피어서 무차별 흩날린다 아이를 끌어안은 여자가 소리친다 사랑해 박스를 줍던 노파가 박스 안으로 들어간다 아르바이트생이 공중전화부스로 뛰어들어간다 낡은 육군수첩을 뒤적이다 꾹꾹 전화번호를 누른다 그르릉 그르릉 수화기 너머 고양이는 여전히 고양이 잠을 잔다 사라지는 골목을 골목은 골목에 서서 멀뚱히 바라보고 있다





   가령 그런 것



   가령 그런 것이다. 창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따라가다 내 눈과 마주치는 일. 때로 주민등록증의 성별을 바꿔보는 일. 아무도 없는 빈방의 문을 살짝 열고는 은밀하게 훔쳐보거나, 크게 숨을 들이쉰 후 타이머의 시작과 동시에 힘껏 숨을 참아보는 일. 달에 찍힌 몇 개의 발자국이 얼마만큼 달을 지구로부터 밀어냈는지를 가늠해보거나, 흡연구역에 버려진 빈 담뱃갑을 흔들어보는 일. 매일 아침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거나, 꽃나무 아래 입을 벌리고 선 노인의 남은 치아를 세어보는 일. 얼굴에 덮인 수건 너머 머리를 감겨주는 미용사의 표정을 상상해보거나, 버려진 방충망 속으로 들어간 호박벌이 결국 죽을 때까지 날갯짓하는 걸 지켜보거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들어보는 일.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들을 먼 이국에나 있을 법한 이름으로 바꿔 저장한다거나, 신부동 자취방 그 주변을 서성이다 돌아서는 일 그러니까 무엇이? 라고 묻는 당신에게 어쩌면 이런 것들이 우리가 맞닥뜨릴지도 모를 어떤 일들의 징후라 괜스레, 너스레를 떨어보는 일.

김영락

누군가에게 습작시를 보인다는 건 늘 민망하다.

2019/06/25
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