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완경(完經)



   1. 조각

   그녀는 밤마다 투명하게 조각된다
   마취된 자들의 세계는 새하얗고
   수면제에 담긴 밤들은 돌아올 줄 모른다

   조각가이자 조각품이었던 꿈은 번번이
   식은땀으로 변질되어 쏟아지고
   그녀는 투명하지만 탁한 재료로써
   다시금 조각되곤 했다

   무딘 칼로 조각하던 그녀의 팔이
   깎아낸 것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버려진 몸 조각을 자꾸만 주워 담는다

   깎여나가며 동시에 접착되려는 소리
   새벽까지 들려온다

   2. 스마트폰

   그녀는 요새 나온 전화기의 매뉴얼이
   지나치게 재미없다고 말했다

   배터리가,
   10퍼센트 남았습니다,
   네트워크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란 메시지를 볼 때마다
   무작정 추모하고 만다

   남아있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사용할 수 없어 슬픈 것이 아니라

   그녀는
   침묵하고 싶어도 진동이 울린다고 했다
   자꾸만 받아 달라 한다고 했다
   매너 있게 늙고 싶다고 진동처럼 울었다

   3. 세미누드 대회

   하반부를 동강 내고 상반신을 게시하는 이들의 대회
   그녀는 세미누드 대회에 나간다고 말했다

   품평하는 것도 아닌데
   그녀는 쉴 새 없이 어깨가 짊어온 무게를 층층이 쌓고
   주름 하나의 기록을 줄글로 열심히 적고
   밤새 젖꼭지를 빨갛게 칠한다

   착색된 것은 그녀의 발자국

   다시 발자국을 위를 걷는다
   말라버려 보이지 않는 그녀의 음부
   나는 언제 태어났지

   세미누드 대회 무대 위 왼쪽에서 두 번째
   플래시가 터진다
   그녀의 젖가슴은 아직 늘어지지 않았다





   데워지는 방



   보일러를 목 안에 심었다
   어딘가에서 마지막 말을
   잃어버리고 왔던 날이었다

   좁은 방의 바깥쪽 창은
   달고 차가워
   금방 꺼낸 소주처럼
   어서 빨리 열어달라고
   차분히 재촉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 방에 앉아서
   목 속의 보일러를 켜고

   화장(火葬)되는 나직한 목소리가
   끝까지 방 안에서 비명을 질렀다
   아무도 문고리를 덜컥거리지 않았다

   목울대는 사정없이 데워지고
   시야는 빠르게 마모되는 중이었다

   보일러가 돌아가는 동안에도
   나는
   아침이 동파되는 순간을
   고대하고 있었다

   모두에게 다른 아침은
   모두에게 같이 다가오느라
   서서히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

정민아

무작정 비워내기보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같이 부대낄 때 글이 시작된다는 걸 막 깨달은 참이다. 어떤 시간을 채워 넣게 될까.

2018/04/24
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