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우리가 처음 계획한 여행의 행선지가 도쿄가 된 것은 우연이 결코 아니었다. 우리는 일본어학원 새벽반에서 만나 함께 수업을 듣다가 연애를 하기 시작했으니까. 한국어를 곧잘 했지만 수업 시간에는 죽어도 한국어를 쓰지 않던 강사는 수강생끼리 짝을 지어 회화를 연습해 보라고 시키곤 했다. 새벽반이다 보니, 수강생의 출석률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결석을 거의 하지 않던 우리끼리 짝이 되는 경우가 잦았다. 우리는 새벽마다 “쿄우와 야스미다시 히마다카라 운동오시마스” 1) 나, “기무상와 마지다메다시 야사시이카라 모떼마스”2) 같은 예문을 주고받았고, 그러다 언젠가부터 수업이 끝난 후 학원 근처의 푸드 트럭에서 계란토스트를 함께 사 먹기 시작했다. 채 썬 양배추 위에 계란 부침을 얹은 토스트는 특별하지 않았지만, 출근 전 우리의 허기진 위장을 부드럽게 달래줄 만큼은 맛이 있었다.
   그러던 우리가 퇴근한 이후에도 만나 밥을 먹기로 약속을 잡은 것은 회사 사정상 성훈이 더 이상 일본어 수업을 들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시 내가 다니던 직장 근처인 명동에서 만나, 타이페이에 본점이 있다는 식당에서 샤오롱바오를 먹기로 했다. 그날 퇴근하기까지 시간은 정말로 더디게 흘렀다. 어찌나 더디게 흐르는지, 퇴근 시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을 땐 겨우 오후 세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나는 내가 사랑에 빠진 것을 알았다. 팀장이 퇴근하자마자 목에 건 사원증을 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허둥지둥 사무실을 나왔지만, 그날따라 엘리베이터는 꼭대기 층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성훈은 크리스마스 시즌맞이 일루미네이션으로 장식한 백화점의 정문 앞에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횡단보도 건너편에 서서 그의 쪽으로 건너가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 코가 새빨개진 채 머리 위로 크게 팔을 흔들었다.

   도쿄에 다시 가보자고 제안했던 것은 성훈이었다. 성훈의 오피스텔에서 페퍼로니 피자를 시켜 먹은 후, 뒷정리를 하던 중이었다.
   “도쿄?”
   “응, 옛날처럼.”
   연애를 시작한 이래, 우리는 연차와 월차를 모아서 많은 곳을 함께 다녔다. 후쿠오카에 모츠나베와 오징어회를 먹으러 가기도 했었고, 발리로 서핑을 하러 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한 번 갔던 장소를 다시 방문한 적은 없었다. 세계는 넓고 가볼 곳은 많았으니까. 궁금한 곳은 많지만 한 해 소진할 수 있는 연차는 제한적이었으니까. 그런데 다시 도쿄라니?
   “왜 싫어?”
   제안에 즉답을 하지 않자 성훈은 눈치를 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아니, 좋아.”
   분리수거를 하기 위해 피자 박스에 붙은 전단지를 떼어내며 내가 대답했다. 5년 만에 도쿄에 다시 가고 싶어진 성훈의 마음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5주년 기념일이 들어있던 2월 초에 도쿄로 떠났다. 이미 한 번 방문했던 곳이라 큰 기대를 품지 않았는데, 막상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일어가 적힌 표지판들을 보자 조금 들뜬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성훈도 마찬가지였는지, 공항에 도착한 이래 목소리 톤이 다소 높아져 있었다.
   “우리가 그때도 리무진을 탔던가?”
   “모노레일 탄 거 아니었나?”
   신주쿠행 리무진 버스의 차창 밖으로 그리운 기억들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차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운전자라든가 어디서든 보이는 콘돔 가게 같은 것들만으로도 일본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고 감탄할 준비가 되어 있던 한 여름의 도쿄. 어쩌면 나만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몰라. 퇴근 시간이라 정체가 심한 도로 위, 등받이에 기대어 졸고 있는 성훈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의 관계가 모서리부터 조금씩, 빠른 속도로 허물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견고한 듯 보였던 우리의 관계에 틈을 내는 것이 무엇인지는 정말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성훈의 귓바퀴에 붙은 마른 귀지나,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의학전문대학원 입시 준비만 하고 있는 그의 형, 혹은 우리가 데이트 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 전화를 걸면 끊지를 않는 그의 엄마의 존재처럼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들이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방지턱처럼 솟아,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전진하던 우리 관계를 덜컹거리게 만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런 것은 성훈에게도 존재했겠지? 우리는 툭하면 싸우고, 별것도 아닌 일로 전화기를 꺼두었으며, 서로에게 상처 줄 말을 일부러 찾았으니까. 그럴 때면 이게 3, 5, 7 주기로 찾아온다는 권태기인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주기적으로 찾아온다니, 그런 생각만으로도 삶 자체를 향한 권태가 일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끝나버리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고, 뭔가 우리의 관계를 갱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예약해둔 신주쿠의 호텔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져 있었다. 야경을 볼 겸 걸어간 시내는 퇴근한 후 한잔하려는 사람들인지 코트 위에 검은 배낭을 멘 직장인들로 북적거렸다. 가부키쵸에는 전광판 불빛이 휘황했고, 거리마다 일본 특유의 고요한 활기가 가득했다. 때마침 커다란 돈키호테가 눈에 띄어, 우리는 5년 전에도 여기에 이 가게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놓고 티격태격하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신기한 잡화들을 구경했고, 쓸모없지만 소소한 재미를 주는 물건들을 몇 개 구입한 후에 꼬치거리까지 걸어갔다.
   손님들이 많아 보여 선택한 식당 안쪽에는 계절과 상관없이 인조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딱 봐도 한국 사람처럼 보였는지 유명한 일본 요식 드라마의 주인공을 닮은 가게 주인은 우리에게 한글 메뉴판을 건넸다. 이윽고 우리가 주문한 닭껍질과 돼지염통꼬치 그리고 맥주가 차례로 우리의 테이블 위에 올라왔는데 맥주는 탄산감이 적당했고, 꼬치들은 딱 알맞게 고소했다. 5년 만에 다시 이렇게 성훈과 마주 앉아 꼬치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니, 우리가 처음으로 술을 먹었던 날이 떠올랐다.
   “이거 다 먹으면 술 한잔하러 갈래요?” 몇 개 남지 않은 샤오롱바오 위에 정성스럽게 생강 채를 얹던 성훈은 다소 의외라는 듯 나를 쳐다보았지만 이내 특유의 평온한 표정을 되찾고는 “좋죠!” 하고 말했다. 성훈에게 술을 마시자고 제안한 것은 첫 데이트에서 남자와 술을 마셔보는 것이 연애를 시작하기 전 내가 반드시 치르는 나만의 의식이었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외모에 대한 취향이나 성격에 대한 기호는 시기에 따라 달라졌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줄곧 갖고 있는 신념 아닌 신념은 술 마신 후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남자랑은 상종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같이 대학 다닐 때는 안 그랬던 남자 동기들마저도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언제부터인가 취하면 옆에 앉은 여자 동기나 후배들의 허리를 감거나 어깨를 끌어안기 시작했는데, 그 꼴을 본 이후부터 나의 신념은 더욱 확고해졌다.
   성훈은 술을 아무리 마셔도 흐트러짐이 없는 남자였다. 그는 내가 사귀었던 다른 남자들처럼 좋아한 여자는 많았지만 사랑한 여자는 네가 처음, 이라거나 너를 만나고 운명이 무엇인지 알았어, 따위의 속 보이는 말을 하지도 않았고, 모텔에 가더라도 내가 오늘은 왠지 하기 싫어, 라고 말하면 정말 손만 잡고 자는 그런 종류의 남자였다. 한 달에 한 번씩 소액이지만 진보정당에 후원금을 내고, 주말에는 집에서 조용히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남자.
   “성훈이 정도면 정말 준수하지!” 사귄 햇수는 쌓이는데 내가 결혼을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 안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 그렇지만 뭔가가 소리소문없이 분명히 무너져 내리고 있는 걸. 하지만, 여기는 도쿄였고, 우리가 처음으로 같이 잤던 도쿄의 한복판에서, 그 옛날 그랬던 것처럼 나의 접시 위로 닭껍질꼬치의 살을 젓가락으로 발라내어 가만히 얹어 주는 성훈의 단정한 이마를 보는 순간 나는 무너지고, 무너지고, 무너져서 저 멀리 떠내려가던 그 무언가가 밀물에 실려 다시 나의 연안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맛있지?”
   “응, 정말 맛있다.”
   비가 올 것처럼 공기가 음습했지만 술기운 탓인지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호텔로 돌아갈까? 아님 좀 더 걸을래?”
   성훈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나는 그의 빨개진 코를 손끝으로 만지며 웃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호텔 조식을 챙겨 먹고 우리는 시내로 나갔다. 아사쿠사 센소지나 다이칸야마 카페 거리처럼 우리가 이미 가본 곳들도 많았지만 도쿄는 넓었고,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우리는 와규 비프가 무한 리필되는 식당에서 샤부샤부를 먹었고, 블로거들 사이에서 유명한 긴자의 식당에서 스시를 먹었다. 3박 4일은 짧은 일정이었지만, 한 번 와본 도시였기 때문에 조급할 것이 없었으므로 마음이 여유로웠던 탓인지 우리는 싸우지도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놀라울 정도로 다정했는데, 누군가는 여행 때문이었을 거라고, 그러니까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일탈이 주는 흥분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꼭 그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무상와 츄가 스케데쓰까?” 3)
    “다이 스키데쓰” 4)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가진 것은 빈곤한 언어뿐이었지만 어떻게든 상대의 존재에 가닿으려 애쓰던 때처럼, 학원 교재의 예문을 본뜬 유치한 일본어 문장들을 상대의 귓속에 속삭였고, 대단한 농담이라도 되는 것처럼 깔깔대고 웃었다. 나를 그간 지겹게 만들었던 성훈의 어떤 태도들, 이를테면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나를 인생을 모르는 어린애 취급한다거나, 퇴근 후 독서 모임이나 커피 동호회에 나가는 나를 쓸데없는 데 시간 낭비하는 사람 취급하던 그런 태도들마저도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추운 날씨를 핑계 삼아 성훈의 곁에 꼭 붙어 도쿄를 걸으면서 생동하는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정말로 과거, 아직 결혼이라느니, 안정이라느니 하는 것들과는 무관했던 시절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내가 학원에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면 성훈이 의자 옆자리에 놓았던 가방을 슬그머니 바닥에 내려놓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하던 날들처럼. 계란토스트를 우물우물 먹고 있는 내 옆으로 와서 “저도 토스트 하나만요.” 하고 말하던 성훈의 목소리에서 어떤 기미를 읽어내기 위해 나의 모든 촉수들이 여름날의 해바라기같이 활짝 만개했던 날들처럼.

    우리가 소품 가게인 ‘로망스’를 다시 발견한 것은 세 번째 날이었다. 다음날은 이른 아침 공항에 가야 했으므로 사실상 여행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고, 우리는 성훈이 여행 책자에서 보고 가고 싶어 했던 코엔지 쪽의 빈티지 숍에 들렀다가 예전에 왔을 때 분위기가 좋았던 걸로 기억해 다시 가보기로 했던 키치죠지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키치죠지는 기대했던 것만큼 예쁜 골목들로 가득했지만 어쩐지 기억과 조금 달라보였다. 그사이에 변해버린 것인지 내 기억이 왜곡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5년이 꽤 긴 시간이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보도 위에 놓인 나무 간판―로망스라는 단어가 알파벳으로 쓰여 있고 새하얀 하트가 그려져 있다―이 눈에 띈 것은 이색적인 편집 숍들과 아기자기한 그릇들이 진열된 잡화점, CD모양의 간판이 귀여운 레코드 숍을 구경하며 골목들을 거닐고 있을 때였다.
    “어, 여기 전에 왔던 거기 아니야?”
    “어디?”
    간판과 쇼윈도의 디스플레이는 낯이 익었지만 5년 전 우연히 들른 상점의 이름 따위를 기억하고 있진 않았으므로 나는 그곳이 우리가 가본 상점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맞아, 여기 우리 왔던 데야.”
    나는 차양 아래 우뚝 서서 구글 포토 애플리케이션을 클릭했고, 날짜별로 정리된 사진들 틈에서 상점의 간판을 찾아냈다. 아이스크림콘을 하나씩 들고 찍은 우리의 셀카와 하늘색 자전거가 세워져 있는 카페 사진 사이, 로망스란 이름의 간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다섯 살 어린 나.
    “이곳이 아직 여기 있구나!”
    대단할 것 없는 작은 액세서리 가게였지만, 우리의 추억이 남아 있는 장소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그 자리에 남아 우리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뜻밖의 기쁨을 주었다. 그러자 컬러풀하고 유니크한 장신구를 팔던 가게와 스페인에서 오래 살았다는 일본 여자 주인에 대한 기억이 일제히 떠올랐다. 내게 선물하겠다며 내가 만지작거리던 연보라색 원석이 달린 귀걸이를 들고 카운터 앞에 간 성훈이 현금이 모자라 멋쩍어하며 나가려 할 때,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에게는 깎아줘야죠, 라고 말하며 밝게 웃던 활달한 여자.
    “들어가 보자.”
    나는 신이 나서 가게의 나무문을 밀고 들어섰다. 진열대 안 색색의 원석 귀걸이와 반지들, 벽에 걸린 화려한 목걸이와 팔찌들은 거의 그대로였다.
    “와, 다 그대로네!”
    성훈이 말했다. 하지만 이내 나는 어쩐지 달라진 느낌을 받았는데, 모든 것은 그대로였지만 톤이랄까 공기랄까, 마치 수명을 다하기 직전의 형광등이 간신히 밝히고 있는 것처럼, 가게 안의 무언가가 생기를 잃고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인기척을 듣고 커튼이 드리워진 가게의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여자 주인이 나의 기억 속 그녀와 조금도 닮은 구석이 없었다.
    “혹시 주인이 바뀐 건가요?
    가게를 둘러보는 시늉을 하던 나는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건넸다.
    “아, 가게를 아는 분이군요?”
    전형적인 일본 여자 같은 말투와 표정을 짓는 주인이 관광객인 우리가 가게를 안다는 사실에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예전에 한 번 와봤거든요. 가게를 그만두신 건가요?”
    다시 한번 질문하는 내 곁으로 성훈이 다가왔다. 우리를 가만히 보던 그녀는 고개를 젓더니 조금은 쓸쓸한 낯빛으로 대답했다.
    “아니요. 그건 아니고, 여기 주인이 암 투병 중이거든요. 그래서 임시로 맡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그저 그뿐이었다. 우리는 가게를 빠져나왔고, 앙증맞은 크기의 빈 화분들이 놓인 골목을 지나쳐 도쿄 일정의 마지막 코스였던 롯본기힐스 전망대에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이동했다. 도쿄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는 어린 연인들과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관람객들이 비슷한 비율로 섞여 있었다.
    “와, 근사하네.”
    성훈이 창밖 사진을 연신 찍으며 말했다. 나 역시 유리창 앞에 바짝 다가가 도쿄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흐려진 탓인지 맑은 날이면 보인다는 후지산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쉽네,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곧이라도 눈이 올 것처럼 스산한 하늘을 보는데, 고작 5년의 시간 만에 생기를 잃고 암에 걸려버린 사람은 지금 어떤 마음일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 사람, 다 나을 수 있겠지?”
    나의 질문에 성훈은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누구? 아, 그 가게 주인?” 하고 물었다.
    “암이라는데, 나을까? 젊은 사람은 전이가 빠르다잖아.”
    그러곤 성훈은 예전에 다니던 직장의 팀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유학을 가겠다며 일을 그만두었으나 췌장암이 발견되어 몇 달 만에 죽어버렸다는 누군가의 이야기.
    “그러고 보니 그게 벌써 8년 전 일이네?”
    나는 도대체 성훈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성훈에게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다투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내가 한마디를 하면 성훈은 내 가시 돋친 말투에 피곤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뭐가, 또? 라고 할 거였고, 그러면 나는 또, 라니? 뭐가 또야, 할 거였으니까. 그러면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슬퍼지고,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오늘을 후회하게 되고 말 거니까.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사람들이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저 멀리 도쿄 타워가 보였고, 흐린 하늘 위의 구름들은 식어버린 카푸치노 위의 밀크 폼처럼 흩어져 있었다. 어느새 나보다 앞장 서 있던 성훈이 걸음을 멈추고 물은 것은 우리가 다시 도쿄 타워를 정면에 놓고 있을 때였다.
    “다음엔 도쿄 타워에 올라가 볼까?
    그러더니, 잠시 후 이렇게도 말했다.
    “우리 그땐 여긴 못 올라와 봤는데.”
    “응, 그러게.”
    그렇게 말하고 나자 5년 전엔 우리가 정말 그 어느 건물 꼭대기에도 올라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 이후 하루 중 대부분을 호텔에서 보냈으므로 가이드북에서 제안하는 필수 관광명소의 절반 정도에는 발을 디디지도 못했으니까. 섹스를 하고 난 후, 곯아떨어져 잠들어 있는 성훈을 보노라면 세상이 이미 경이로 충일해 어디에도 오를 필요가 없었으니까. 성훈은 자다가 가끔씩 인상을 썼는데 내가 미간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잠결에도 인상을 폈다. 그렇게 부드럽게 흐릿해지는 그의 얼굴 위의 주름들을 볼 때 내 안에 차오르던 환희는 얼마나 깊고 놀라운 것이었는지.
    내가 뒤처지는 줄도 모르고 성훈은 다른 관광객들 틈에 섞여 이미 먼 곳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성훈의 익숙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발밑의 빌딩들에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하자 성훈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불렀다.
    “이리 와서 봐봐, 해가 진다.”
    나를 향한 성훈의 미소는 친숙하고, 나는 그것에 호의가 담겨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응, 갈게.”

   하지만 나는 가지 않는다.
   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해가 저무는 창밖을 바라본다. 다음이란 얼마나 쓸쓸한 말인가 생각하면서, 밤의 자락처럼 서서히 다가오지만, 돌이킬 수 없음을 돌연 깨닫게 만드는 어떤 끝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끝>

백수린

내일이 오는 게 두려워 만성 불면증에 시달리고 아침이 오면 오늘도 망했구나, 이미 예감하지만, 소설을 쓰면서 그럭저럭 잘 살아간다.

2019/05/28
18호

1
오늘은 휴일이고, 한가하기 때문에 운동을 합니다. 今日は休みだし、暇だから、運動をします
2
김상은 성실하고, 자상하기 때문에 이성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キムさんは?面目だし、優しいから、モテます
3
김상은 뽀뽀를 좋아합니까? キムさんはチュ-が好きですか?
4
아주 좋아합니다. 大好き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