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둑이다. 일을 하러 가는 중이다. 자전거를 타고 시골마을을 돌며 도둑질을 한다. 도둑은 기다리는 시간이 반이다. 공치는 날도 꽤 많지만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일도 잘 된다. 자전거를 타며 맞는 봄바람이 정겹다. 자전거 페달을 구르면서 생각했다. 평생 이렇게 일하고 살면 행복하겠다고. 긴장감은 설렘을 가져온다.
   햇살이 점점 익어가는 중이다. 날은 하루가 다르게 봄에서 여름으로 서서히 뜨거워지는 중이다. 일하기 힘든 시절이 오고 있다. 여름엔 사람들이 집밖으로 잘 나가지 않아서 빈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여름휴가를 떠나는 집은 보통 도시에나 있다. 나는 차에 자전거를 싣고 가서 자전거로 갈아타고 일을 보는데, 일할 곳과 30km 정도는 떨어진 곳에는 차를 주차시킨다. 도둑은 뭐든지 두렵다. 여름엔 일을 쉴 생각이다.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알아보고 있다.
   오늘은 일터를 ㅇㅊ읍 쪽으로 잡았다. 나는 ㄷㄱ시에 산다. 내가 타고 다니는 애마, 스페셜은 로드용으로 네덜란드에서 공수해왔다. 아니, 그 말은 잘못된 것이고 나는 도둑놈이니까 물론, 스페셜하게 훔쳤다. 타고 다니던 내 국산 자전거를 두고 그 집 벽에 걸려 있던 이 멋진 놈을 타고 나왔다. 막 도둑질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첫눈에 스페셜에 반했다. 자전거가 벽에 걸려 있는 모습이 섹시했다. 자전거가 아름다울 수도 있었다.
   나는 도둑이지만 값나가는 모든 것을 훔치진 않는다. 오로지 순금과 현금만 도둑질한다. 스페셜은 내가 처음으로 훔친 물건이다. 그 집에서는 스페셜 말고는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다. 도둑질을 하면서 그렇게 흥분된 적이 없었다. 그 벽에 내 자전거를 걸어놓던 순간, 얼마나 짜릿했던가. 하지만 잠시만 그랬고 그게 내동 마음에 걸렸다. 그것을 보고 주인이 느꼈을 모욕감이 떠오를 때면 나는 도둑놈 주제에 자괴감을 느끼곤 했다. 어쨌든 도둑은 충동적이면 안 된다. 그러면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니까. 도둑은 절제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아무거나 다 훔치면 결국 잡힌다. 이를테면 내겐 나름 직업의식 같은 것이 있고 스페셜을 만난 것은 그런 루틴이 처음으로 무너진 날이었다.
   알아보니 스페셜은 기천만 원이 넘는 고가였다. 스페셜은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장비다. 물론 스페셜을 싣고 다니는 작업용 자가용도 있다. 그건 훔친 것은 아니고, 할부로 마련했다. 내 차는 스웨덴에서 건너온 왜건 스타일이다. 이름은 ‘컨트리’로 지었다. 스페셜을 위해 격에 맞게 준비한 것이다. 트렁크에 거치대를 마련했는데 공간이 길쭉하고 넓어서 스페셜을 싣고 다니기에 좋다. 스페셜의 집이 컨트리다. 세금 때문에 동업자의 개인사업자 명의로 차량 등록을 했다. 컨트리에게 매달 150만 원의 할부금을 넣고 있는데, 앞으로 38개월이 남았다. 내가 부지런히 벌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내 생활은 철저하게 이중적이다. 직업도 두 개, 차도 두 대, 집도 두 채다. 둘 중 하나는 모든 게 감춰져 있고, 하나는 모두 드러나 있다. 숨겨진 삶은 안정적이고 드러난 인생은 불안정하며 피폐하다.
   스페셜은 나와 주3일 일하고 4일은 쉰다. 도둑질은 이틀간 하는데 점찍어 둔 집에 사람이 있으면 바로 작업종료다. 그러니까 다른 집을 찾지 않는다는 얘기. 내가 몇 년 동안 잡히지 않고 완벽한 도둑이 될 수 있었던 이유, 바로 준비성이다. 규칙적인 생활은 도둑이 직업이 되면서부터 시작됐고, 내 생활은 건강해졌다. 잠도 잘 자고 부쩍 몸이 좋아졌다.

   페달을 구르는 발에 힘을 주며 생각했다. 이젠, 그녀와 헤어져야겠다고 말이다. 그녀와 만난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생각해 보면 연애하는 내내 나는 그녀를 잡으러 다니고 그녀는 도통 잡히지 않고 도망 다니는 꼴이다. 그녀도 백수다. 그럼에도 그녀는 외박이 잦다. 때마다 뻔한 거짓말을 한다. 그녀에게 화가 나지 않은지 오래다. 우리는 가끔 만나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상적인 시간을 나누다 헤어진다. 나는 내리막길을 전속력으로 달린다.
   엄청난 속력이 살아난다. 스페셜이 스페셜라이즈드가 되는 순간이다. 그러니까 특별함이 전문적이 되는 찰나다. 나는 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원래 직업은 시간강사였다. 그게 직업이 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결국 나는 도둑이 됐으니까 전공도 스페셜하지 않았고 직업도 스페셜라이즈가 되지 못했던 것은 분명하다. 부업으로는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시간강사로는 살 수가 없었기 때문. 직업을 바꾼 뒤로 나는 살만하다. 그래서 학원 일을 그만두었다. 스페셜을 만나면서 나는 스페셜라이즈드가 되었다. 그래도 강의를 포기하지 않고 도둑질과 병행했었는데, 최근 개정된 강사법 때문에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내겐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 좋은 강사법인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어쨌든 그랬다. 오랫동안 되지도 않을 일을 붙잡고서 스스로 포기 못한 것을 정부가 포기시켜 줬으니까. 도둑보다는 교수가 되는 편이 낫겠다고 여기며 살아왔는데, 나는 달라졌다. 나는 드디어 학교를 나오고서야 진정한 직업인이 된 것이다.
   봄바람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내 작업복과 장비는 일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사이클링 저지와 수트, 헬멧과 고글, 마스크와 장갑, 이 모든 것들이 흔적의 바람을 막거나 비껴가게 만든다. 달리면서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가, 묻는다. 마음은 대답이 없다. 왜, 헤어지지 못하는가, 스스로 묻지만 딱히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냥, 나는 아무 변화가 없는 삶이 좋은 거라고 여긴다. 속썩이는 그녀와 계속 만나는 이유가 그런 생각 안에 답이 있을 거라 믿는다.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오르막, 내리막이 확연히 다르고 각각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오르막을 오를 때에는 잡념이 들지 않고 내리막길에서는 반대로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헐떡이는 숨을 애써 고른다. 나는 고갯마루에서 멀리 보이는 마을을 내려다봤다. 메고 있는 작은 배낭 안에는 커터와 ‘찍찍이’라고 부르는 테이프뿐이다. 알리바이를 위해 전화기도 두고 나온다. 목이 마르고 빈 생수병도 필요한데, 삼십 분은 더 페달을 굴러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멀리 출근을 하면 돌아가는 일도 만만치 않다. 야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서두른다.
   나는 읍내에 도착하자마자 편의점에 들렀다. 잠깐이었지만 스페셜에 자물쇠를 채운다. 자전거 도둑이 가장 흔했다. 방심하면 잃어버린다. 스페셜에게 달아놓은 자물쇠는 자르려면 결국 자를 수 있겠지만 꽤 고생을 해야 하는 튼튼한 놈이다. 자물쇠를 채울 때마다 뿌듯한 마음이 든다.
   어디서 구하셨어요?
   자전거숍 사장이 스페셜을 보더니 물었다.
   외국에서 타던 거 가지고 왔어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얘는 밖에 잠깐이라도 둘 거면 자물쇠 꼭 채워야 돼요. 안 그러면 금방 사라져요.
   바퀴튜브에 바람을 넣으러 간 것이었는데, 좋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벽에 걸어놓을 것만 생각했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거였다.
   진짜, 잘 나가죠?
   그렇죠 뭐.
   사장이 알아봐 주니 기분이 좋았다. 그날 나는 그 숍에서 가장 비싸고 튼튼한 자물쇠를 스페셜에 달았다. 채우고 푸는 일이 번거롭지만 혹 내게서 스페셜이 사라질까 나는 두렵다.
   나는 어디에서건 헬멧과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일터에 들어서면 나는 달라져야만 한다. CCTV에 절대 얼굴이 찍히면 안 된다. 뭐든 흔적을 남기면 안 된다. 나는 생수하나를 들고 계산하기 위해 한참을 기다렸다. 사장이 아르바이트 학생을 다그치고 있었다.
   유통기한 보이게 진열하라고 했지?
   ……네.
   그런데 왜 안 해?
   한다고 하는데.
   선입선출도 안 돼 있잖아.
   ……
   너무 앳된 티가 나는 남자애가 어쩔 줄을 모르고 사장에게 꾸중을 듣고 있었다. 어쩐지 그게 너무 익숙한 풍경이어서 오히려 낯설었다. 나는 웬만해선 마주치는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았다.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CCTV가 있는 곳이니 더 조심해야만 했다.
   증정상품은 꼭 옆에 진열하라고도 했지.
   신경질적으로 물건을 다시 재배치하며 사장이 푸념을 늘어놓는다. 아르바이트 학생은 이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여긴 왜 이렇게 흐트러져 있는 거야? 가격택과 물건이 맞지가 않잖아.
   아마 손님이 뒤에 있는 다른 물건을 꺼내가면서 흐트러졌나 봐요.
   그럼, 옹알란 없으면 훈제란 앞으로 하고, 옹알란 가격표 제대로 해놓고, 뒤로 밀지 말고 옆에 두라구. 못 알아들어? 열여덟이면 말귀 알아들을 만하잖아. 여기 도시락은 너무 위에 있으면 내용물이 안 보이니까 밑에 두라고 몇 번을 말했어.
   사장은 말하면서 화가 나는 스타일인가 보다. 말하면서 점점 언성도 높아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나는 열여덟 살짜리 남자애가 학교에 안 가고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가 더 궁금했다.
   여기요.
   나는 참다못해 말했다. 아르바이트 학생이 계산대로 오려 하자 사장이 그를 붙잡았다.
   이거 얼른 정리나 해.
   나는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말없이 내밀고 서둘러 그곳을 나왔다.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나머지 물은 버렸다. 나는 며칠 전 봐두었던 한적한 마을로 곧장 향했다.
   내가 이런 특별한 도둑, 시골마을만 터는 도둑이 된 이유는 간단했다. 도시에서는 집안에 현금을 두지 않는데, 시골은 달랐기 때문이다. 시골엔 금붙이도 현금도 많은 편이다. 보안도 허술하다. 욕심내지 않으면 도둑질은 언제나 풍족하다. 뭐든 없었던 게 생기는 일이니까.
   나는 마을입구에 다다르자 스페셜을 어깨에 짊어졌다. 로드용이라 바퀴가 얇고 가늘어서 시멘트 길에서는 조심해야만 한다.
   나는 도둑질하러 들어가는 집 앞에 자전거를 잠깐 기대어 놓는다. 도둑질하는 시간은 10분을 넘지 않는다. 오래 있어봤자 좋을 일이 없다. 나는 신속하고 조용히 일을 치른다.
   일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일은 집 안에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여러 방법을 써보았지만 그냥 물어보는 게 제일 쉽고 명확하다. 나는 집에 들어서며 큰소리로 사람을 부른다. 사람이 나오면 들고 있던 빈 생수병에 물을 얻고 마을 떠난다. 집이 비어있으면 들어간다.

   이 집엔 사람이 없다. 마을에서 가장 윗집이다. 현관문은 열려 있었다. 나는 집안으로 들어온 뒤 현관문을 잠근다. 가만히 현관입구에 서서 집안을 둘러본다. 집안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알람을 맞추고 족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신발에 덧신을 신는다. 거실 천장 구석에 CCTV가 달려 있었다.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 카메라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믿어야 한다. 나는 여기로 오는 과정을 떠올려 본다. 편의점에 들렀던 게 거슬렸다. 만약 집주인이 신고한다면 경찰은 CCTV를 쫓을 것이다.
   거실 벽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을 바라본다. 노모를 가운데 모시고 십 수 명의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나는 방들을 살핀다. 안방만 뒤지면 된다. 요즘은 도둑이 많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귀중품을 그다지 귀하게 숨겨놓지 않는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엔 훔칠 게 별로 없다. 나는 옷장을 열고 가만히 옷들을 살핀다. 남성의 옷과 여성의 옷이 잘 구분되어 걸려 있다. 장롱 안쪽에 작은 상자가 여러 개 있다. 열어보니 오래된 사진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주인에겐 이 추억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 이렇게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을 것이다. 다음은 돈일 것이다. 손은 빠르게 해야 하고 침착해야만 한다. 여러 상자를 확인하다보니 상자 중 하나에 현금이 들어있다. 사진 밑에 잘 숨겨두었다. 오만 원 권 한 묶음이었다. 나는 뒤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장롱문을 닫기 전에 흐트러진 곳이 없나 확인하고 문을 닫는다. 화장대 서랍 안에는 꽤 많은 금붙이가 있었다. 가져가기 좋게 작은 상자에 잘 모아 두었는데, 쌍가락지, 팔찌, 목걸이, 두꺼비 등 다 합치면 두 냥은 족히 넘을 듯했다. 14K, 24K, 다른 보석들은 그대로 두고 순금만 챙긴다. 다이아몬드가 있어도 나는 손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나는 집안 곳곳 창문과 문을 단속했다. 꼼꼼하게 잠가주었다. 집을 나서기 전 들어올 때처럼 현관에 서서 집안을 빙 둘러본다. CCTV와 눈이 마주친다. 집주인이 무심한 사람이라면 한참 뒤에야 도둑이 들었던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덧신을 벗고 밖을 살핀다. 문 앞에서 집주인과 마주치는 일처럼 난감한 일은 없을 것이다. 아직은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은 없었지만, 항상 그런 상상을 하곤 한다. 들어오고 나갈 때의 긴장감이 가장 크다. 이때 이상하게 엄청난 배변욕구가 이는데, 일을 처음 시작했을 적엔 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때마다 생각나는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어렸을 적,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그 도둑은 똥을 냄비에 싼 다음 뚜껑까지 덮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갔다. 그 똥과 마주하던 우리 식구들 얼굴이 생생하다.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고 잘 참는 편이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밖으로 나온다.
   나는 대문 안쪽에 기대어 놓았던 스페셜을 다시 짊어졌다. 스페셜은 바람처럼 가볍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다른 인상을 준다. 정갈하고 조용한 마을이다. 코너를 돌며 그런 생각이 들던 찰나 한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보통은 그렇지 않는데, 나는 흠칫 놀랐다. 내가 그러자 그녀도 멈춰 섰다. 도둑은 집주인을 알아본다. 방금 나온 집이 마을의 끝집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안녕하세요.
   나는 큰소리로 인사했다.
   네에, 안녕하세요. 그런데 왜 자전거를 힘들게 짊어졌대요?
   집주인은 도둑을 알아보지 못한다. 아주머니가 웃으며 묻는다. 그녀는 가족사진 안에서 노모와 팔짱을 끼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노모의 방이 없었던 듯했다.
   길이 안 좋아서 자전거가 다칠까봐서요.
   나는 그녀를 지나치며 무심히 말했다.
   아, 그러게 길도 없는데 들어왔대요. 시커먼 사람이 자전거를 짊어지고 내려와서 깜짝 놀랐네.
   아주머니가 성큼성큼 걸어 내려가는 나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그럼, 어여, 더 고생하세요.
   그때 시계에서 알람이 울렸다. 나는 뭔가 들킨 사람처럼 허둥지둥 시계에서 울리는 알람을 껐다. 마음은 바삐 움직였지만 침착해야만 했다. 한데 평소와 다르게 허둥댔다. 나는 돌아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한 집 더 보아둔 곳이 있었으나 마음을 접었다. 돌아가는 길이 퍽 멀게 느껴졌다. 아스팔트에 닿자 나는 미친 듯이 페달을 구르기 시작했다.

   전속력으로 마을을 벗어나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일을 시작한 뒤로 시도 때도 없이 누가 쫓아오는 것 같은 공포가 일었다. 공황증세 진단을 받아서 약을 먹고 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꼭 약을 먹는데, 잊었다. 침착하지 않으면 잡힌다. 숨이 금방 차오른다. 그때서야 나는 평소처럼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밥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루틴이 깨진 것을 알자 불안증이 심해졌다. 엄청난 허기가 몰려온다. 나는 방향을 읍내로 틀었다. 읍내, 시내엔 카메라를 피할 길이 없다. 돌아가는 길엔 읍내나 시내에 들르면 안 된다. 그럼에도 스페셜은 읍내로 향하고 있다.
   수많은 CCTV를 발견할 때마다 ‘언젠가 잡히겠지.’ 생각한다. 그런 생각은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매번, 매순간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에게 잡힐 때를 생각해서 도둑은 그때를 잘 준비해야만 한다. 훔친 것을 잘 숨기고, 증거를 없애야 하고, 잘 숨어 있어야 한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나도 모르게 아까 들렀던 편의점 앞이었다. 꺼림칙했지만 나는 어느새 스페셜에 자물쇠를 채우고 있었다. 나는 평소와 다르다. 마음먹은 것과는 다르게 몸이 움직인다.
   조용히 편의점 안으로 들어섰다. 아르바이트 학생 혼자다. 가만히 서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여기로 오면서 보았던 수많은 카메라가 겹쳐졌다. 뭔가를 많이 훔친 날엔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기보다 불안함과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아르바이트 학생은 내가 온 지 모르고 도시락 진열장 앞에서 하던 일을 계속했다. 내가 그쪽으로 다가서자 그 애가 깜짝 놀라 움찔했다. 그는 진열장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돈되어 있던 물건들을 일부러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나는 모른 척 그의 어깨 뒤로 손을 뻗어 김밥 한 줄을 집어 들었다. 아르바이트 학생이 느릿느릿 계산대로 왔다.
   사장이 카메라 확인하면 어쩌려고.
   내가 아는 체를 하자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고글 너머로 나도 그를 쳐다보았다.
   상관없어요. 그만둘 거니까.
   나는 평소와 분명 다르다.
   녹화된 거를 지우면 되지, 왜.
   어차피 고장나서 녹화도 안 돼요. 그리고 물건 흐트러뜨리는 게 죄는 아니에요.
   그 말에 긴장이 확 풀리는 것 같았다.
   계산 안 해요?
   아.
   나는 편의점 구석에서 김밥을 먹는다. 일을 시작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녹화가 되지 않는다던 CCTV의 사각지대에 서서 허겁지겁 김밥을 먹었다.
   다 지난주에 그녀 집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다, 나는 김밥을 우걱우걱 씹으며 생각했다. 지난주엔 그녀가 여행을 다녀왔다. 친구들과 놀러간다기에 어디로 가는지도 묻지 않았다. 그녀가 돌아온다던 날, 연락도 하지 않고 그녀의 집에 들렀다. 내가 도착했을 땐 그녀가 막 캐리어를 풀고 있었다.
   어, 진짜 돌아왔네?
   웬일이야?
   그녀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저녁이라도 먹으려고 왔지.
   나, 밥할 시간 없어. 피곤해.
   나가서 먹음 되지, 누가 밥을 해 달래.
   그녀가 가만히 손을 멈추었다가 하던 일을 계속했다.
   돈 없다며.
   밥 먹을 돈은 있지.
   서로의 오가는 말이 곱지 않았다. 우리의 궁핍한 현실은 늘 서로에게 곱지 않은 말을 하게 한다. 물론 나는 그렇지 않지만, 나는 철저하게 이중적이다. 싸우지 않았지만 우리는 싸우고 있었다. 그녀의 삶도 팍팍하긴 마찬가지이다. 비정규직으로 잘리고 작은 옷가게를 했다 망하고, 요즘은 인터넷으로 뭔가를 파는데 영 신통치 않다.
   누나, 외국이라도 다녀온 거야? 무슨 짐을 이렇게 많이 싸간 거야?
   ……외국은 무슨, 친구랑, 여기저기 돌아다녔어. 어디 좋은 데 있음 안 올 생각도 하긴 했네.
   그녀가 무슨 말인가를 참았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을 억지로 참을 때면 입술을 무는 버릇이 있다.
   아주, 팔자가 좋으시네.
   나는 소파에 앉으며 빈정거렸다. 그녀가 짐을 푸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
   그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어디 있을까? 좀, 도와줘?
   그녀가 옷가지를 개다가 손을 멈추고 잠시 그대로 있었다.
   그래, 차라리 나가서 먹을 거라도 좀 사 와라.
   그녀와 여행을 간 것은 3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뒤로 그녀는 친구들과 여러 번 크고 작은 여행을 자주 다녀왔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상한 심리였다. 나는 그녀와 여행을 가고 싶지 않다. 그녀도 나와 여행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런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건가. 나는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그 새 그녀는 짐정리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여행 얘기 좀 해 봐.
   별거 없었어. 구경하고 밥 먹고, 술 마시고.
   어디로 다녀왔는데?
   그냥, 돌아다녔다고 말했잖아. 넌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당연히 궁금하지, 여자친구가 며칠 동안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사이 전화통화를 한 것도 아니고.
   그녀는 내가 사 온 먹을거리엔 관심도 없었다.
   이 막걸리는 뭐야? 술 마실 거면 집에 가.
   나가서 밥이나 먹을까?
   아니, 쉴래. 피곤해.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꺼져 있는 TV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앉아있었다. 무슨 말을 꺼내도 서로에게 좋지 않을 거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둘 사이 침묵이 어색해져서 화장실에 갔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참을 변기 위에 앉아있었다. ‘화내지 말자.’ 거울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마음을 다잡고 화장실 밖으로 나오니 그녀는 소파에 앉은 그대로였다. 여전히 꺼진 TV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발매트 대신 깔아놓은 수건에 발을 닦다 멈칫했다.
   혹시,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 있기를 바라는 것처럼 매번 물어. 무슨 일이 있어, 있긴.
   화장실에 들어갈 적엔 분명 발수건에 ‘남산호텔 02) 255-2560’이라고 찍혀 있는 부분이 보였었는데, 나올 때에는 뒤집어져서 아무것도 없는 면이 위를 향하고 있었다. 도둑은 관찰력이 좋은 법이다.
   너야말로 무슨 일 있니?
   그녀는 푸념처럼 말을 늘어놓다가 결국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숨기고 싶은 뭔가를 들키면 화가 나는 법이다.
   나 강사 잘렸어.
   그녀가 나를 뻔히 쳐다보았다.
   이제 뭐 먹고 살려고?
   그녀가 무심하게 물었다.
   내가 그만둔 게 아니라, 잘린 거라고. 이제 도둑질이라도 해야지.
   나는 내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과장되게 웃으며 얘기했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그날 뒤로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고, 그녀에게서도 연락이 없었다. 이대로 그냥 정리해야지, 나는 마지막 남은 김밥을 입에 넣으며 다짐했다. 그녀만 없으면, 나는 평온할 것이다, 도둑질이나 열심히 하면서 잘 살아야지, 편의점을 나서며 결심했다. 나가면서 돌아보니 아르바이트 학생이 나를 뻔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저씨, 저 사이클 얼마짜리에요?
   그 애는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너머의 스페셜을 보고 있었다.
   왜, 자전거 좋아해?
   그냥요.
   꽤 비쌀걸.
   달릴 때 80km/h 넘어요?
   어떻게 타느냐에 달렸겠지?
   작년 투르 드 프랑스 평균 속력이 얼만 줄 아세요?
   글쎄.
   72km/h에요. 최고 속력은 110km/h가 넘었고요.
   그렇게 빠를 거라고 생각은 못했다. 속으로 나는 좀 놀랐다. 일을 시작하면 사이클링 앱을 켜 놓는데, 스페셜의 최고속력은 내리막길에서도 60km/h를 넘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기술이 모자라서 그렇지 저놈도 그렇게 달릴 수 있고, 달리고 싶을 거야.
   저도 언젠간 로드형으로 좋은 거 살려고요.
   언젠가는 없는 시간이야. 갖고 싶을 때 가져야지. 그래서 아르바이트하는 거야?
   나는 분명 평소와 다르다. 다른 날과는 달리 말이 많다.
   그래서 알바하는 거 아니에요. 알바비로 언제 저렇게 비싼 걸 사요.
   그렇지. 뭐든 훔치는 게 빨라.
   훔치는 게 빠르겠죠.
   자전거를 훔치는 건 쉽지 않지만 다른 건 쉬울 수도 있어.
   다른 거요?
   훔치기 쉬운 것을 훔친 다음, 자전거를 사.
   그러다 들키면요?
   들키지 말아야지.
   말도 안 돼. 어떻게 안 잡혀요, 세상에 이렇게 CCTV가 많은데.
   그 애가 피식 웃으면서 편의점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를 가리켰다. 제법 성숙해 보였는데 웃을 땐 영락없는 애였다. 나는 그 애를 뒤로하고 편의점을 나왔다. 그 애는 문 앞까지 와서 내가 자물쇠를 푸는 동안 스페셜을 구경했다.
   진짜 멋져요.
   멋지지, 내게 너무 과분하게.
   그 애는 한참 동안 나와 나란히 걷는 스페셜을 바라보았다. 내가 뒤돌아봤을 땐 언제 나타났는지 사장이 또 그 애를 다그치고 있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저 편의점을 털고 싶어졌다. 사람이 있는 곳을 터는 게 진짜 전문가인데, 뭔가 아쉬웠다.

   나는 천천히 페달을 굴렀다. 보통은 그렇지 않고 신속하고 빠르게 일터를 벗어나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긴장감이 사라졌다. 차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한 시간 반은 달려야 한다. 이런 속력이면 세 시간은 가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유유자적 도로 가로 아주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까지 나는 백다섯 집을 털었다. 내겐 오랫동안 거래해온 절대로 들키지 않을 상생의 금방이 있다. 나름 동업자다. 모인 금을 건네면 금방 주인은 바로 금을 녹여 골드바로 만든다. 그것을 은행의 비밀금고에 차곡차곡 넣어두었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손을 댈 수가 없는 곳이다. 나는 금방 주인 이름으로 네 개의 적금을 붓고 있고, 그의 사업자등록으로 낸 컨트리 할부까지, 한 달에 현금만 천여 만 원이 필요하다. 도둑질 수입은 언제나 들쭉날쭉해서 돈 관리를 잘해야만 한다. 많이 버는 달은 그 몇 배를 벌 때도 있지만 수입이 변변치 않은 달도 많다. 나는 컨트리를 세워둔 곳까지 천천히 스페셜을 몰면서 생각했다. 적금만기가 돌아오려면 5년은 더 일을 해야 한다. 나는 마흔이 되면 한국을 떠날 것이다. 컨트리와 스페셜을 그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모은 돈을 아주 천천히 쓰면서 살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페달을 구르며 매번 하는 다짐을 다시 했다. 그 전에 잡히지 말아야 한다. 잡혀도 금방 나와야 한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오르막길이 시작되자 나는 전속력을 다해 오르막을 올랐다.
   걷는데도 숨이 헐떡거렸다. 산속 한적한 도로에 세워 둔 컨트리에 다다르자 이상하게도 다시 불안감이 엄습했다. 말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트렁크에 스페셜을 싣는 동안에도 숨이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언제나 일을 마치면 늘 그렇다. 산속엔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부지런히 여름이 오고 있었지만 아직은 먼 듯했다. 공황증세 약을 먹고 운전석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를 썼다. 긴장감이 빠지면 실수하기 마련이고 잡히기 마련이다. 이 직업은 일할 때도 그래야 하지만 일하지 않을 때 더 긴장해야만 한다. 나는 머릿속으로 차근차근 돌고 돌아서 집으로 가는 길을 떠올려본다. 컨트리를 주차하는 곳은 따로 있다. 시내에 장기주차를 하고 한 시간을 걸어서 내가 사는 오피스텔로 간다. 그 오피스텔 지하주차장엔 내 오래된 승용차가 또 있다. 거기엔 내 과거가 살고 있고, 시내에는 내 현재가 산다.
   시내에 들어서자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내일부터 명절연휴라는 것이 떠올랐다. 명절에도 집에 가지 않은 지 몇 년째다. 며칠 전에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이번 명절엔 꼭 와, 형.
   봐서.
   나 여름에 결혼해. 명절에 인사하러 갈 거야. 형도 봐야지.
   ……내가 만나서 뭐 해.
   그래도 봐야지, 소개시켜주고 싶어.
   봐서, 갈게.
   먼 데 사는 것도 아닌데, 집에 자주 좀 들러. 엄마, 걱정 많아.
   오랜만에 전화해서 잔소리냐.
   걱정되니까 그렇지.
   남동생은 서울에 사는데, 근처에 사는 나보다 더 자주 집에 들른다. 그가 형 같고, 내가 동생 같다. 원래, 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 형제는 더욱 그렇다. 남동생은 일찍 자리 잡고 돈을 벌기 시작했고, 나는 공부한답시고 오랫동안 엉뚱한 짓만 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결국 도둑놈이 되었다. 엄마에게도 남동생에게도 뭐라도 해주고 싶지만 내 삶은 궁핍하게 보여야만 한다. 하나가 무너지면 모두 들킨다.
   꼭 오는 거지?
   끊어. 나중에 통화 다시 하자.
   나는 뭐가 그리 꼬인 걸까. 원래는 친절한 사람이었는데, 자조해봤자 남는 것은 비루한 현실뿐이다. 나는 이번 명절에도 집에 가지 않을 것이다. 일이나 해야지, 나는 꽉 막힌 도로에서 마치 남동생에게 말하는 것처럼 큰 소리로 말했다.
   집 근처에 다다르면 신경이 곤두선다. 컨트리를 숨겨놓는 주차장은 시내 한복판에 있다. 사람의 왕래가 많고 누구도 의심받지 않을 만큼 번화한 곳에 컨트리와 스페셜을 숨긴다. 주차비는 2년 치를 한 번에 지불했고, 최근에 3년 치를 다시 선불로 냈다.
   그 사이 우리가 문 닫으면 어떻게 해.
   첫날, 주차장 아저씨가 내가 내민 돈을 세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뭘 어떡해요. 제 차 이고 가셔야죠.
   CCTV같은 건 없는 낡은 주차장인데, 철골 4층의 구조로 제법 크다.
   혹시 제가 갑자기 안 와도 아저씨가 애기 좀 잘 돌봐 주세요.
   아니, 미리 돈을 다 냈는데, 그럼, 그렇게 해야지. 근데, 멀리 어디가?
   아니요. 혹시 그러면요. 사정이 생겨서 못 오게 되면요. 제 차 비싼 거 아시죠? 3년 안에 못 돌아오면 와서 월세 밀린 건 꼭 와서 갚을 테니, 잘 부탁드려요.
   어디 먼 데 가나 보네. 나야, 좋지 뭐.
   시내의 번화가 한복판에 주차장은 불경기라는 것이 없다. 이곳은 언제나 붐빈다. 컨트리를 숨기기엔 안성맞춤이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은 주차장으로부터 걸어서 삼십 분 떨어져 있는 곳인데, 나는 한 시간을 꼭 채워서 집에 간다. 지하철을 타기도 하고, 버스를 타기도 하다, 내려서 걷다가 다시 버스나 지하철로 갈아타고 집으로 간다. 집으로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면 걸릴수록 마음이 평온해진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엔 천 가구가 산다. 천 개의 방, 실로 어마무시하다. 20층 건물이니 대략 한 층에 오십여 개의 방이 있는 셈이다. 과거가 살고 있는 내 집은 12층에 있다. 이곳에 사는 게 꿈이던 시절도 있었다. 8년 전 강사 일을 시작하면서 학교 앞 자취방에서 탈출해서 이 작은 오피스텔에 들어왔다.
   문 앞에 서자 이상하게 낯설었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지가 않다. 다른 집으로 갈까, 망설인다. 그런 날도 있는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느낌. 약을 먹었는데도 증세가 가라앉지가 않는다. 도둑질을 많이 한 날엔 그런 기분이 잠들기 전까지 계속된다. 허나 마음과는 달리 나는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그런 불안한 느낌이 든다면, 며칠은 밖에서 지내야만 하는 직업의식을 가져야만 했었나 보다. 내 예감이 맞았다.
   어이, 왔어?
   문을 열고 보니 여러 명의 사내가 내 집에 있었다. 움찔 나는 뒤로 물러섰다. 때는 이미 늦었다. 이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두 사내가 내 허리춤을 꽉 붙들었다.
   이범상씨? 반갑네, 진짜. 당신 오래 기다렸어요, 정말. 그동안 열심히 찾았다고.
   사내들 중 반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를 보며 활짝 웃는다. 그리고 다가와서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서늘함이 감기더니 섬뜩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팔부터 시작해서 온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이런 순간을 그토록 상상했음에도 막상 닥치니 내 심장은 터지고 몸에서 바람이 모두 빠져나간 뒤 폭삭 내려앉을 것 같았다. 그는 미란다원칙을 공지했다. 나는 멘탈을 붙잡아야만 한다.
   변, 변호사를 부르겠습니다.
   그래야지, 지은 죄가 많으니 당연히 불러야지. 그 전에 우리가 수색영장을 받아왔으니깐, 조금 기다려 줘요.
   이미 꼼꼼하게 집안을 뒤져서 찾아낸 돈다발과 금붙이가 방 한가운데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이렇게 들킬 날을 위해 나는 훔친 것의 일부분을 과거의 집에 부려 놓았다.
   당신, 아주 열심히 살았나 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만 한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연습했지만 나는 무슨 말로라도 변명하고 싶어졌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놈, 또 뭐 일 다녀온 모양인데요.
   한 남자가 내 서류가방에서 영문교재와 섞여 있던 오늘 훔친 것들을 꺼냈다.
   오늘은 어디로 다녀왔어요? 자전거는 어디다 숨겨놨고?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나의 스페셜을 이들은 알고 있다. 더욱더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된다.
   내가 당신 쫓아다닌 지 삼 년이나 됐어요. 당신이야 모르겠지만 내겐 그간 쌓인 정이 있으니 작은 거 하나 선물로 좀 줘 봐. 서로서로 좀 좋아지게.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흔적이 하나도 없어서 영영 못 잡을 줄 알았네, 난.
   그가 장하다는 듯이 살짝 내 등을 토닥거렸다.
   그런데 3년 동안 지금까지 훔친 거치고는 얼마 안 되는데요.
   어디다 숨겼겠지. 이분께서는 말 안 해줄 거 같으니, 찾아내야지 우리가.
   마치 나보고 들으라는 듯이 형사들끼리 말을 주고받는다. 나는 돈과 금을 내려다보며 어림짐작으로 셈했다. 걸린 것만 말하면 된다, 속으로 나는 되뇌었다. 내 모든 것은 20층에 있는 금방 주인 명의로 된 또 다른 내 집에 있다. 그곳만 들키지 않으면 된다. 나는 준비를 잘 해왔다. 혹시 빠뜨린 것이 무엇이 있나 떠올려보려 했지만 자꾸 다른 생각이 앞섰다. 엄마와 남동생이 알게 될까 그게 더 걱정이었다.
   그런데 제 집에는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범상씨 잘 아는 사람이 비밀번호를 알려줬지. 현장 정리하고 주차장으로 가자.
   반장이 내 등을 가볍게 떠밀었다. 우리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내 차가 어디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물끄러미 오래된 내 차를 바라보았다. 과거에는 현재를 숨기지 않는다. 그 차가 그렇게 처연해 보이긴 처음이었다.
   별거 없는데요.
   아, 범상씨, 자전거 어딨어. 너 자전거 타고 일하잖아.
   저, 자전거 타지 않습니다.
   이들이 나를 알 리가 없다. 나는 한 번도 자전거를 타면서 고글과 마스크를 벗은 적이 없었다. 그냥 떠보는 것이다. 나는, 나를 믿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런 증거도 없이 나를 어떻게 찾아낸 것인지, 궁금했다.
   길어지겠네. 이제 철수들 하지.
   반장이 말한 뒤 나를 한 승합차에 타게 했다.
   반갑지? 잘 아는 사이겠지만 서로 인사라도 나누세요.
   내 앞에 그녀가 앉아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서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다.
   범상씨, 오래된 거 같던데 몰랐나 봐. 여기 이분이 당신이 훔친 장물 다시 훔쳐서 팔아먹다 걸렸어. 이분 아니었으면 당신 못 잡았어, 우리는.
   그녀와 진작 헤어져야 했다. 그녀만 없었다면, 나는 평온했을 텐데. 허나 내가 알고 있던 그녀보다 그녀가 나를 더 많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내가 그녀와 왜 헤어지지 못했었던 것인지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우리는 퍽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던 것.■

백가흠

소설을 쓰며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소설 공부도 하고 있다. 소설집으로 『귀뚜라미가 온다』, 『조대리의 트렁크』, 『힌트는 도련님』, 『四十四』, 장편소설 『나프탈렌』, 『향』, 『마담뺑덕』, 여행소설 『그리스는 달랐다』가 있다.

2019/02/26
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