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경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손바닥이 안구를 누르자 어둠 속에 사금파리 같은 얇은 빛들이 돋아나 어지러이 명멸했다. 홍콩에서 일하는 조카는 두어 달에 한 번 대개 일요일 밤에 전화를 했다. 그동안 몇 차례 통화했는데도 조카는 이제야 그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오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연경이 아들 오윤과 홍콩을 다녀온 지 8개월이 흐른 뒤였다. “그 앤 이모가 그런 진실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요. 혹은, 단지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죠.” 눈을 뜨자 두 손바닥 안에 오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오윤은 여행 전에도 후에도 무신론자였다.

   빅토리아 피크트램을 타러 가던 길에 마주쳤던 노란 벽의 성당에 관해서는 여행을 다녀와서 찾아보았다. 성요한 성당,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건물로 영국성공회의 예배당이었다. 성당 내부는 무엇 하나 눈길을 사로잡는 것 없이 소박하고 환하고 고요했다.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눈에 가장 익숙하고 평범하고 조화로운 원형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연경의 마음을 끈 것은 중앙통로 양편에 놓인 반지르르하게 길이 든 갈색 나무 벤치들이었다. 뒤쪽에 달린 좁다란 기도대 위에 표지와 책갈피들이 닳아서 부푼 성경책과 찬송가책들이 드문드문 놓여 있고, 벤치 아래 바닥엔 비닐 가죽이 낡고 속이 꺼진 무릎 쿠션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연경은 금세라도 무릎이 꺾일 듯한 승복의 감정에 저항하며, 애써 관광객다운 자세를 유지했다. 오윤이 첫 줄의 벤치로 들어간 것은 한순간이었다. 연경이 햇살이 비쳐드는 옆문 쪽으로 나가려다가 뒤돌아보았을 때 오윤은 돌연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기도대에 올렸다. 연경은 환영을 보는 듯했다. 오윤의 몸에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깍지 낀 두 손의 마디들이 툭툭 튀어나와 있었다.
   오윤은 때론 신을 부르고 싶을 만큼 외롭고 두려운 순간들이 있었지만, 막상 믿기가 어려워 종교를 가질 순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연경은 자신 앞에서, 오윤이 그 무엇을 위해서든 무릎을 꿇고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맨 마음을 보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연경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알 수 없는 통증을 느끼며 오윤이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겨우 스물일곱 살의 무신론자가 엄마 앞에서 무릎을 꿇을 만큼,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첫 사회생활을 앞둔 각오나 연경의 건강, 새로 사귀게 된 여자친구, 같은 것이 떠올랐지만 그런 것은 무신론자의 기도와 어울리지 않았다. 사랑이란, 그 마음을 상상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일이라고 하는데, 아들의 마음은 금고 속에 잠겨있는 수수께끼 같았다. 다음날 마카오에서 아마사원에 갔었을 때, 연경은 열두 곳의 제단에 향을 피우고, 그 내용이 무엇이든, 오윤이 기도한 것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다.

   홍콩 여행 동안 연경은 말을 참고 견뎠다. 오윤이 스스로 하지 않는 말을 굳이 끄집어내지 않았다. 오윤이 혀 밑에 감추고 있는 말이 너무 아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혀 밑에 감춘 나비 한 마리를 유리가 풀어준 셈이었다. “이모와 윤이 홍콩 여행 오기 얼마 전에 윤이 아빠가 말기 암 수술을 받았어요. 이모에겐 말하지 말라고 해서 못했는데, 다행히 회복이 되고 있나 봐요. 매월 초에 같이 사는 여자분과 서울의 병원에 검사하러 온다고 해요. 윤도 그때마다 병원에 찾아가고, 병원비도 보탠다고 해요.”

   유리가 모자에게 마카오 여행을 제안했을 때는 오윤이 입사 시험에 최종적으로 합격한 직후였다. 4학년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으니 취업까지 1년 6개월여가 걸린 셈이었다. 오윤에겐 회사 연수에 들어가기 전 2주 정도 시간이 생겼다. 연경은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겨 관절염 진단을 받고 직장에서 조기 은퇴를 하고 두어 달 쉰 뒤였다. 연경은 매주 병원에 다니며 약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유리의 초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유리의 초대는 인생에 생긴 기적적인 틈 같았다. 오윤과 연경이 3박4일을 맞출 수 있는 기회는 다신 없을 것만 같았다. 취업을 준비한 기간 동안 연경의 집에 들어와 지냈던 오윤이 회사 근처로 방을 얻어 나가는 대로 연경은 오래 알고 지낸 정문과 재혼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윤은 이제 직장에 얽매인 몸이 될 것이었다. 직장에 좀 익숙해지면, 아마도 몇 년 지나지 않아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 결혼을 하면 아이가 생길 것이고, 직장 업무와 집을 얻은 대출 이자와 육아와 가사와 부부생활에서 비롯되는 온갖 일과 관계에 휘말려 세상이 핑핑 돌아갈 것이다. 그런 식으로 오윤의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연경은 면역관리를 하며 관절염과 대상포진을 앓으며 늙어갈 것이다. 어쩌면 정문과 함께, 또 어쩌면 홀로. 8년 동안 알고 지낸 정문은 살림을 합치자고 하지만, 연경은 도무지 결심이 서지 않았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둘의 관계는 달라질 게 없어보였다. 20년이나 혼자 살아온 자신이 지속적으로 한 공간을 나누어 쓰며 타인이 차지하고 분출하는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에게 정문이 필요하다해도, 정문에게 병든 연경이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말수가 적은 정문은, 우리는 모두 늙고 병든다고 말했지만, 연경은 그런 일이라면 차라리 따로 살며 겪고 싶었다.

   막상 출발하는 날이 되자 오윤은 여행의 변수들을 전부 제 몸에 짊어진 듯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다. 기대와 희망이 일제히 스트레스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 연경은 오윤의 예민하고 불안정한 신경증을 자기 몸처럼 함께 느꼈다. 혹은 연경의 신경증에 오윤이 공명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오윤이 휴대폰 칩을 교체하러 위층에 다녀오는 사이에 연경은 강박증처럼 약국을 기웃거리다가 마시는 일회용 링거를 발견하고 소화제와 함께 구입했다. 어느 순간 바닥 모를 막연한 공포를 느낄 때는 자신이 공황장애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불면증도 계속되고 있었지만 수면제는 사지 않고 버텼다. 가방 안에는 이미 관절염약이 한 봉지 가득 들어 있었다. 다행히 새로 바꾼 약은 잘 들었고 통증도 없는 상태였다. 연경은 두려움과 기대로 가득 차서 제자리에 선 채 공항 로비의 바닥을 다져 밟았다. 모든 것을 다 맡기고 느릿하게 움직이는 연경에 비해 모든 일을 떠맡은 오윤은 계속 서둘렀고 무슨 일이든 미리미리 하고 정확한 장소에 가서 대기하려고 했다. 그 바람에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해 식사를 하고도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다. 오윤은 학교에서 간 단체 여행이나 간단한 패키지여행이 아닌 사적인 여행은 처음이었다.
   오윤이 철저히 준비했는데도 마카오 공항에 내려서부터 일이 꼬였다. 마중 나오기로 한 유리가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도 불통이었다. 연경과 오윤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턱대고 로비에서 기다려야 했다. 오윤은 목이 마른 채로 전화를 계속했다. 유리가 자기 초대라고 생색을 내며 마카오 호텔을 예약하고 돈을 지불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홍콩 달러를 넉넉히 준비할 테니 카드만 들고 오라고 당부했기에 생수 한 잔도 마실 수가 없었다. 마카오 공항 편의점에서는 카드를 받지 않았다. 마카오 공항은 그저 중국의 작은 지역 공항의 모습이었다. 로비는 관공서의 큰 강당 같았고 벽과 곳곳의 현수막에 적힌 크고 붉은 글자들이 내부의 구조와 장식을 압도했다. 남자들은 대체로 몸과 체격이 둥글고 조심스럽고 겸손해 보였고 여자들은 활달해 보였다. 화장을 진하게 한 어린 여자들이나 너무 짧은 치마나 어린 옷차림을 한 중년 여자들이 눈에 띄었고 간혹은 대놓고 금장식과 명품으로 부자티를 낸 중년 여자들과 대담하게 노출을 한 젊은 여자들이 로비를 지나다녔다.

   체격이 큰 여자들이 다가올 때마다, 연경은 유리인가 했지만 아니었다. 언니의 딸인 유리는 대학 때 1년 동안 연경의 집에 얹혀 지낸 적이 있었다. 제 엄마가 죽고 2년쯤 지난 뒤였다. 형편이 안 좋아, 학자금을 대출하고 전철과 버스로 환승하며 1시간 반이나 걸리는 거리를 통학했었다. 그편이 방세 마련하느라 아르바이트에 시달리고 지치는 것보다 낫다는 계산이었다. 유리는 졸업 후 몇 번 회사를 바꾸다가 지금은 영국계 회사의 홍콩지사에서 일했다. 유리를 기다리는 시간은 달콤했다. 연경은 그렇게 느꼈다. 여행이 끝나면, 유리를 만나기 전에 가졌던 무위의 시간이,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이 될 거라고 상상했다. 오윤이 다른 아무 짓도 하지 않고 곁에 붙어 있었다. 하는 일 없이 곁에서 온몸을 비비적거리며 함께 있는 것이 어린 시절 후로 얼마만인지 까마득했다. 연경은 여행 내내 가능만 하면 그렇게 오윤을 잡아두고 싶었다. 비행 중에도 오윤은 아이패드로 영화를 보고 게임을 했었다. 취업 준비하며 집에서 지낸 1년 동안 주로 도서관과 독서실에 나가 있었고 어쩌다 집에서 휴식할 때도 오윤은 연경과 소파에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것조차 얼마 견디지 못했다. 함께 밥을 먹고도 설거지를 해주고 나면 머뭇거리다가 제 방으로 들어가 눕거나 게임을 했다. 더구나 여자 친구가 생기자 데이트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오윤에게 여자 친구란 연경에게 선을 공공연하게 긋기 위한 알리바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이 지난 뒤 마침내 커다랗고 튼튼한 유리가 나타났을 때 연경은 놀랐다. 170센티 키에 과체중이지만 지나다니는 마카오 여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제된 모습이었다. 피부는 고급스러웠고 명품 코트와 백과 굽 낮은 검정색 펌프스가 잘 어울렸다. 유리는 이제 아름다웠다. 오윤이 짜증을 폭발시키는데도 연경과 유리는 서로 끌어안고 빙빙 돌며 한동안 호들갑을 떨었다.
   유리는 무슨 일인지 시간을 착각했다고 했고, 오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화를 냈다. 이 애는 여자를 몰라. 여자들은 그런 일이 다반사라고. 더구나 오늘은 일요일이잖아. 씩씩하고 낙천적인 유리는 할할 웃었다. 오윤은 거기서 여자가 왜 나오고 일요일이 왜 나오냐고, 그따위 정신으로 어떻게 외국회사에서 일하고 돈을 받느냐고 빈정댔다. 유리는 한국에선 안 되지만 외국회사니까 되는 거야, 여긴 여자들이 간혹 정신 나간다는 걸 이해하더라고, 나 정도면 준수해, 라며 맞받았다. 오윤은, 막 나가는 보살 같으니, 너를 믿고 환전도 하지 않고 여길 도착하다니, 내가 또 당했어! 라고 투덜댔다. 네 살 차이 나는 오윤과 유리는 어릴 때부터 자주 얽혀 몸싸움까지 하며 자라서 둘이 안 맞는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았다. 오윤이 착하고 마음이 깊고 예의 바른 아이라고 철석같이 믿던 연경에게 유리는 몇 번이나 혀를 내밀며 경고했었다. “이모는 잘못 알고 있어요. 오윤은 이모 앞에서만 그렇게 해요. 자신이 제어할 수 있을 때까지만요.” 하지만 연경은 근성을 믿었다. 오윤은 근성이 좋은 아이였다.

   홍콩과 마카오를 오가는 페리터미널 근처에 자리한 호텔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렸을 때 연경은 순진한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공예품처럼 정교하고 섬세하고 이국적인 호텔이 바닷가에 꿈인 듯 서 있었다. 연경은 그것이 웅장하면서도 여성적인 포르투갈 스타일이라고 여겼다. 호텔이란 현실을 완전히 잊을 정도로, 그러니까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워야 한다. 그 호텔은 충분했다. 연경과 오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유리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3일 묵는 동안 일정을 마친 오윤은 밤마다 수도관이 금색으로 도금된 19세기 스타일의 욕실에서 고양이 발 도자기 욕조에 몸을 담그고 노래를 불렀다. 물의 찰박거림과 함께 오윤의 노랫소리가 욕실과 침실 사이의 덧창을 통해 울려 나올 때, 연경은 행복이라는 감정을 귀로 듣는 것만 같았다.
   “저 애가 노래를 부르네……” “지금 편안한가 봐요.”
   연경과 유리는 케이크를 핥아먹으며 속살거렸다.
   “아빠와 있다가 12살에 내게 왔을 때, 5분마다, 10분마다 오줌을 누었어…… 불안 초조 조급증, 강박증이 심각했지. 저만큼 잘 자라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맞아요. 그랬어요. 같이 여행 갔을 때, 2리터짜리 페트병을 가져가야 했죠.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저 앤 페트병 하나를 다 채웠어요. 내가 곁에서 이모의 봄 코트로 커튼을 쳐주었는데, 12살이나 된 아이가 그 짓 하려니 창피하니까 또 얼마나 신경질을 부려대던지……”
   “동백꽃 보자고 선운사까지 내려갔지.”
   “맞아요, 동백꽃. 하지만 선운사 동백꽃은 다 지고, 서해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하게 만나 실컷 보았지요.” 연경은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도 오윤도 때론 이상했지만, 이만해서 정말 고맙고 다행이다.”
   “나도 한땐 비행 청소년이었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아빠와 이모가 팔을 더 늘여 안아주어서 더 이상 엇나갈 수도 없었어요.”
   “그래. 네 아빠와 난 겨드랑이를 찢어가면서, 아파하면서 계속 팔을 늘였지.”
   “이모는 이젠, 이모부, 그러니까 오윤의 아버지와 감정적으로 다 해결되었어요?”
   “그래. 그렇게 되었어. 그렇게 되고 나서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알겠더라. 자기 인생 전체를 수긍하기 위해서는, 그러지 않을 수가 없어.”
   “난, 내가 가장 나의 원수인데.”
   그 말에 연경은 몸을 뒤로 젖히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는 건 나를 사랑하는 일이에요.”
   “유리야, 너 진짜 보살 같다. 너 진짜 대단해!”
   연경은 웃다가 탁자 위의 케이크 상자를 떨어뜨릴 뻔했다. 유리가 케이크 상자를 잡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날은 유리의 생일이었다. 짐을 풀고 택시로 구시가지로 나가 세도나 우체국 옆 계단 가에 있는 포르투갈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성도밍고 성당으로 이어지는 세도나 광장을 둘러보고 대성당의 곁 포르투갈 모자이크 타일 광장 벤치에 앉아 중국풍 분수를 감상하며 쉬었다. 그러는 동안 유리와 오윤은 부지런하게 사진을 찍고 더러는 어딘가로 전송했다. 셋이 완전 닮았다는 반응들이 오자 오윤은 불쾌해하며 의심했고 유리와 연경은 흡족해했다. 어묵 골목으로 내려가 중심도로의 택시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베이커리에 들러 케이크와 빵을 골라 나왔을 때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밤의 거리는 가로에 실타래처럼 늘어뜨린 조명 빛으로 축제처럼 반짝거렸고 바닥은 매끄러운 흰색 포르투갈 타일이 깔려 있어서 걷기 좋았지만 빗방울이 차가워서 사람들이 우왕좌왕 몰리다가 빠르게 흩어져갔다. 택시 정류장에서는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들 순서가 왔는데도, 택시 기사들은 손을 내저으며 뒤 순서의 손님들을 태우고 가버렸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여섯, 일곱 대의 택시가 지나가고 줄을 섰던 승객들이 모두 떠났을 때 연경은 밤새 호텔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공포감을 느꼈다. 차가운 빗방울은 더 많지도 적지도 않게 방울방울 떨어졌다. 택시는 이제 오지도 않았다. 오윤이 뭐라고 중얼거리며 스마트 폰을 꺼내 로컬버스 검색을 시작했다. 리스보아 호텔 정류장에 버스가 와요. 뛰어요, 잠깐이면 돼요. 오윤이 연경의 팔을 잡고 달렸다.

   “마카오 로컬 버스를 타고 돌아가다니 믿을 수 없다. 너 대단하구나.” 버스를 탄 뒤 연경이 칭찬하자 오윤은 “이 정도야 뭘, 더 빨리 택시를 포기할 걸 그랬어요” 했다. 오윤은 자신은 못 푸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문제를 단순화해서 푸는 거예요. 포인트는 집중력이죠.” 언젠가는, 자신이 제어하지 못할 일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자기 삶을 제어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걸 보면 한심해요.” 연경은 오윤이 오만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식으로 오윤이 제 삶을 감당하기 위해 결심과 각오를 다진다는 사실도 알기에 나무라지 못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할 때는 막연한 각오를 해야 해요. 그 안에선 늘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니까요.” 연경은 오윤이 인생을 미처 시작하기도 전에 그 많은 각오를 하는 것이 가슴 아팠다.
   무엇보다 연경은 오윤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어받아 물려준 체질의 불안정과 예민함을 오윤은 인격과 양식으로 감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임계점을 넘어설 때면 그 많은 각오와 노력에도 소용없이 오윤은 인격의 파국을 드러내며 무너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존재였다. 그러나 오윤은 그것조차 자신이 책임질 몫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룸에 돌아와 케이크와 와인으로 생일 파티를 하고 오윤은 욕실로 들어가고 연경과 유리는 담요를 감고 밤바다와 테마파크와 페리터미널의 아름다운 조명이 반짝이는 발코니와 앤틱 가구로 장식된 방을 변덕스럽게 오가며 잡담을 나누었다. 연경은 어느 순간 방안의 대형 거울이 그 모든 것을 담고 모든 것을 흡수하며 계속해서 그들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연경은 거울과 어떤 동맹이라도 맺은 듯했다. 멀리 집에 돌아가서도 그 거울을 떠올리면 방안에서 있었던 모든 움직임과 소리와 웃음과 표정들과 말과 냄새와 작은 기척까지도 고스란히 되돌려 줄 것만 같았다. 연경은 간간이 시선을 맞추듯 거울을 통해 오윤과 유리와 자신을 바라보고 셋이 함께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는 모습을 거울 속에 담았다.

   여행을 하는 동안 연경은 홍콩과 마카오가 대여섯 개의 냄새로 간직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냄새들은 기습적으로, 너무나 생생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세도나 우체국 옆 계단에서 쏟아져 내려오던 토끼고기 육수와 아프리카 향신료 냄새…… 홍콩의 미드레벨 아래 스테이크 가게에서 번져 나온 버터에 볶은 신선한 토마토와 바질 냄새, 사진 갤러리를 나온 뒤 좁은 계단 길에서 만난 노상 기도사원의 눈물이 나도록 매웠던 향 연기 냄새, 시장 길과 교차하던 장소에 있던 로컬 음식점 앞에서 깊숙이 들이마시고 만, 사람 머리통을 끓이는 것 같았던 무서운 냄새, 침침하고 추웠던 밤의 침사추이에서 구름다리를 건널 때, 그 아래 이태리 식당에서 위로처럼 번져오던 버터에 볶은 마늘 냄새. 아마사원 옆 골목 기념품 가게에서 육포를 맛볼 때 맡은 돼지고기와 검은 통후추 냄새, 돌아와 공항의 한식당에서 먹은 비빔밥의 참기름 냄새……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 강렬하고 생생하던 냄새는 퇴색되어갔다. 오히려 점점 더 이물스럽고 아프게 폐부를 파고드는 것은 혀 밑에 감추며 참고 견딘 얼음 조각 같은 침묵의 냄새였다.

   그것이 무엇이든 오윤이 한 기도가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열두 곳의 제단에 기도하고 향 연기에 휩싸인 아마사원을 나올 때까지 완벽했었다. 아마사원 곁으로 난 평화롭기 그지없는 한 줄기 골목으로 들어가 우연히 만난 기념품 가게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표면적으로는 오윤은 여자 친구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연경은 고양이를 맡아준 지인에게 줄 선물을 고르면 되는 일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여행의 다른 일에 비하면 지나가다가 가볍게 할 수 있는 소일거리였다. 그로인해 연경과 오윤은 방심했는지도 모른다. 오윤은 염두에 두었던 대로, 양철 상자에 담긴 그 유명한 아몬드 쿠키를 고르면 되었다. 아몬드 쿠키 못지않게 유명한 것은 양철 상자에 찍힌 푸른색의 세인트폴 성당이었다. 그것은 단연코 마카오의 시그니처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시식을 하면서 일이 꼬였다. 아몬드 쿠키는 퍽퍽했고 어딘가 땅콩 맛이 났다. 연경뿐 아니라 오윤도 그렇게 느꼈다. 연경은 선물이 맛이 없으면 받은 사람이 집에 가서 실망한다고 설득하며 화이트 에그롤을 추천했고, 뭔가를 사는 일에 서툰 오윤은 망설였다. 그 사이에 연경은 화이트 에그롤 두 개와 육포를 카운터로 가져가 계산했다.
   기념품 가게를 나왔을 때 오윤의 얼굴이 체념한 듯, 좌절한 듯 그늘지는 것을 보며 연경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윤이 여자 친구에게 줄 선물을 엉뚱하게도 자신이 고르고 만 것이었다.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여자 친구에게 더 나은 선물을 하기 위해 망설였던 오윤은 몇 걸음 앞서서 말없이 걷고 있었다.
   만다린 하우스에서 오윤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연경의 사진을 찍어주려고 노력하고 연경은 사진에 찍힐 때마다 미소 지으려고 애썼지만 두 사람의 얼굴 아래로 살얼음이 끼는 듯했다. 아들을 설득하는 것은 엄마의 본능이고, 엄마에게 설득당하는 것은 아들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사소한 일 따윈 없었다. 가장 작은 일도 인생 전부를 포함하고, 인생 전부는 가장 작은 부분에도 수렴되었다. 작은 망설임이라 할지라도, 오윤의 것이었다. 오윤은 충분히 망설인 뒤에 누가 봐도 마카오를 상징하는 시그니처 아이템을 골라 여자 친구에게 선물했어야 했던 것이다. 맛 따위가 대체 뭐란 말인가. 맛 같은 건 연경 또래 지인이나 평가할 것이다. 그 지인은 시그니처 아이템 같은 건 관심도 없을 것이었다. “이모,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윤의 것에 손 넣지 마세요. 윤은 사춘기를 그냥 지나더니 뒤늦게 질풍노도기를 겪고 있어요.” “난 그러지 않는다.” “이모는 그렇게 해요. 자신이 의식하지 못할 때요. 윤을 밀어내면서, 다른 팔로는 빙빙 휘감는다고요. 이모가 그러면 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너무 힘들어요.” 유리는 그런 일을 예고라도 하듯 여행 출발 전날 전화를 걸어 연경에게 주의를 주었었다.

   어느 순간에 둘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던 초라한 노력을 포기했다. 연경은 무릎뼈가 뭉개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마카오타워로 가는 길은 살얼음판 같았다. 얇은 얼음이 파삭 깨어지면 돌이킬 수 없는 단절의 심연으로 추락할 것만 같아 모자는 한마디 말도 없이 엉금엉금 걸었다. 한마디 말의 무게조차 너무 위험했기에.
   연경은 빙판 같은 길을 걷다가 머리를 들어 위를 바라보곤 했다. 다리를 옮길 때마다 무릎뼈가 뭉개지듯 아픈데 머리 위엔 꿈속처럼 아름다운 포르투갈식 테라스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길에 행인이라고는 오직 단 둘뿐이었다. 걸음 속도가 달라 늘 앞서갔다가 기다리거나 되돌아오곤 했던 오윤이 조금도 앞서지 않고 나란히 걸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깨달았다.
   남반호에 이르러서야 긴장이 조금 풀어졌다. 마카오타워 쪽에서 보는 남반호와 언덕의 주택지는 어딘가 통영의 해안과 언덕을 연상시켰다. 긴 한숨이 나오는 동시에 죽어서 이런 곳에 묻히고 싶다는 동경이 습관처럼 떠올랐다. 마치 씨앗이기라도 한 것처럼 바닷가의 흙 속에 매장되려 하는 그리움의 정체를 연경은 알 수 없었다. 뷔페시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남반호 앞에서 쉬는 동안 오윤은 낮고 평평한 담 위에 드러누워 눈을 붙이고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는 담 위에서 학처럼 한 다리로 섰다. 그리고 다른 다리를 뒤로 높이 올리며 양팔을 앞뒤로 펼친 채 균형을 유지하는 묘기를 부렸다. 연경이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자 오윤은 어릴 때처럼 애교를 부리고 싱거운 장난을 치기도 했다. 아마도 식사를 하기 전에 자칫 체할 수도 있는 연경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 360도 회전하는 마카오 타워 뷔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끝낸 연경이 60층 높이의 창 바깥에 펼쳐진 거대한 허공과 남지나해가 만나는 흰 수증기 띠에 시선을 둔 채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오윤이 몰래 사진으로 남겼다. 사진 속의 여자는 아픔인지 행복인지, 상처인지 기쁨인지, 불행인지 아름다움인지 구별할 수 없는 깊은 감정에 빠져 있었다. 그 여자는 자신 같지 않았다. 낯선 여자, 어떤 다른 여자, 그 여자가 연경 자신이었다. 여자의 뒤편으로 창유리를 감싼 철제 프레임이 거대한 빗금을 긋고 있었다. 그날 밤 오윤은 세인트폴 성당 아랫길의 기념품 가게에서 여자 친구에게 줄 아몬드 쿠키를 샀다. 그리고 연경은 에그 타르트와 함께 육포를 좀 더 샀다. 각자 제 할 일을 하듯 등을 돌린 채.

   여행에서 돌아온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이른 아침에 오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침 8시가 안 된 시간이었다. 오윤은 그런 시간에 전화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는 토요일과 일요일 사이에 연경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 것은 오윤이 지키려고 하는 일종의 양식이었다. 전화기 속에서는 뭔가가 마찰되는 소음이 들렸다. 서걱서걱, 서그럭, 서그럭…… 슥 슥…… 연경은 윤아, 윤아 부르다가 대답이 없자 소리를 들으며 기다렸다. 고양이 모래를 갈아주는 소리인가 했다. 작은 플라스틱 삽으로 배설물이 묻은 모래를 긁어 비닐봉지에 담고 새 모래를 부어주는 중인 거 같기도 했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가, 쓰레기들을 분류해 비닐봉지에 나누어 담고 종이상자에 모아 베란다 같은 곳에 내놓는가 했다. 운동을 하는가, 일정한 반복 운동에 옷이 스치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출근해야 하는 시간에 할 일이 아니었다. 전화기를 귀에 댄 채 틈틈이 오윤을 불렀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잘못 걸린 전화였다. 연경은 도무지 그 소리를 파악할 수 없었다. 전화기 속의 소음은 마찰되고 반복되며 짐작할 수 없는 아득한 심연으로 하강하고 있었다. 갑자기 견디기 어려운 사랑과 두려움이 동시에 엄습해 연경은 전화를 끊었다. 얼마가 지난 뒤 오윤이 전화를 했다. 자전거를 타고 지하절 역에 가는 중이었다고 했다. 출근하는 중이라고. 호주머니에 넣은 휴대폰이 저절로 연경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연경은 신기하구나, 하는 말을 감추고 덤덤한 척했다. 그런 일일수록 말로 하지 않고 나비를 잡듯 혀 밑에 간직하고 싶었다. 오윤은 홍콩 여행에서 돌아온 뒤 계획대로 독립해 떠났다. 오윤과 함께 이삿짐을 싸던 연경은 슬픔과 희망 사이에서 뭔가 참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말했었다. “우리의 형편은 크게 변하지 않을 거다. 너무 애쓰지 말고 그냥 성실하게 살아가렴. 무리하지 말고.” 오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저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런 것조차 무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걸요.” 오윤의 얼굴은 평소 그대로 덤덤했다. 희망은 아니지만 냉소도 아니었다. 연경은 그것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했다. 다행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전경린

소설도 삶도, 보이지 않는 세계로 인해 완전해진다. 이번 소설을 쓰는 동안 보이지 않는 소통을 생각했다. 소통의 역설로 소설을 구성하고 소통의 그림자로 그 안을 채운 것 같다.

2018/12/25
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