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밥솥에 대한 명상



   밥물은 대강 부어요.
   쌀 위에 국자가 잠길락 말락,
   물을 붓고 버튼을 눌러요.
   (밥솥의 눈금은 쳐다보지도 않아요!)
   한 번도 계량한 적 없어요.
   밥물은 대충 부어요. 되든, 질든,

   되는대로,
   대강, 대충 살아왔어요.
   대충 사는 것도 힘들었어요.
   전쟁, 만큼 힘들었어요.

   목숨을 걸고 뭘 하진 않았어요.
   (왜 그래야지요?)
   서른다섯이 지나,
   제 계산이 맞은 적은 한 번도 없답니다!





   수건을 접으며



   엉망인 이 세상을 내 손으로 정리할 순 없지만,
   수건이라도 가지런히 접어야지.
   수납장과 서랍의 질서를 나는 사랑하지.

   일요일 오후에 빨래 걷기를 잊지 않으면
   내 인생은 순항할 듯,
   더러운 일주일을 견딜
   속옷을 접는다.

   내 손을 거치면 어떤 모양의 옷이든
   작은 사각형이 되지요.

   저 엉망인 세상과 맞설
   투쟁 의지를 불태우며 수건을 접는다.
   매일 아침 깨끗한 속옷을 입을 수 있다면,
   누구든 상대해주마.

   빨래 접기가 귀찮아지면
   미련 없이 떠나야겠지.
   내게 더러움만 보여준 땅,
   흐린 하늘, 최루탄과 미세먼지에 유린당한 눈.
   너무 맑은 날에는 눈물이 났지.

   한 번뿐이었던 어느 화창한 봄날,
   그에게서 배운 대로 세로로 수건을 말아
   수납장에 세워둔다 포개진 기억들.
   벌써 이십 년 전인데,
   너는 내게 영원히 젊은 남자.
   (엄마에게 그를 보여주진 않았지)

   그와 헤어진 뒤, 하얀색만 입었지
   내 헐렁한 팬티를 그는 싫어했지
   할머니 같다고 놀렸지
   나는 흰색.
   엄마는 누런색.
   (너는 무슨 색이었니? 섹시한 검정?)
   건조대에서 흰색을 골라내느라
   누런 수건을, 어머니를 방바닥에 떨어뜨렸다.
   미안해 엄마.

   엄마는 이제 수건을 접지 않는다.
   혼자 머리를 감지도 못한다.
   내가 와서 당신을 씻어줄 토요일만 기다리는 엄마.
   토요일이 너무 빨리 다가온다고 투덜대는 나.

   어머니의 요양병원에서 가져온 누런 수건을,
   누렇게 바랜 내의를 비닐봉지에 넣기 전에
   냄새를 맡는다. 아무도 해치지 않고
   사나운 고기를 싸는 상추 잎처럼 순하게 살아온 당신.
   날이 갈수록 작아지는 엄마,
   드럼세탁기도 없애지 못한 오줌 냄새.

   엄마 수건과 내 수건이 섞이는 게 싫어
   따로 빨았다. 언제나
   위생 관념이 철저했던 어미가 물려준 결벽증 때문에
   어미의 세균을 1회용 비닐봉지에 밀봉하고
   돌아서, 터지는 소리.

   시리아를 공습한 미사일의 섬광처럼
   어둠을 찢으며, 가슴이 갈라지며
   오래 벼르던 언어가 폭발한다.

   엉망진창인 세상을 내 손으로 정리할 순 없지만……
   쉼표와 마침표의 질서를 나는 사랑하지.

최영미

정확한가? 더 줄일 수 있나? 어디서 끝낼까? 마침표와 쉼표를 제일 고민하는 글쟁이.

2018/12/25
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