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화 연습 문장
   ─석양이 지는 쪽으로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도착해 있는 말들을 받아쓰고 있었다. 나는 그것에 관해 말하지 않기 위해 쓴다. 나는 그것에 관해 말할 수 없으므로 쓴다. 그러나 이미 말들은 도처에 있었고. 누군가가 내뱉은 말이 나의 입술을 빌어 세상으로 흘러나왔고. 언젠가 내가 했던 말이 누군가의 목소리를 덧입은 채로 흩어지고 있었으므로, ……너는 한 남자와 한 여자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그저 석양이 있는 쪽으로, 석양을 볼 수 있는 시간에, 가닿기 위해 차를 몰았다. 너는 조금씩 조금씩 차의 속력을 높이고 있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마지막 여정을 재연이라도 하듯이. 눈앞으로 해변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변은 우리에게 하나의 은유로 작동하고 있었다. 무언가가 지속되기 위해서 끝없이 펼쳐져야 하는 그 무엇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을 쓰라는,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을 쓰라는, 저물어가며 번지는 빛의 계시 속에서. 여자는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자리 그대로 엎드린 채로 십여 페이지 넘게 쉬지 않고 써 내려갔다. 질 좋은 만년필이 다른 세계로 데려다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말에 갇힌 사람을 연기하는 운전자의 동승자에 불과할 뿐인지도 모른다. 석양은 타오르듯 넓게 번지고 있었다. 해변은 서로의 두 눈에서 붉게 차오르고 있었다. 그때. 차 안 가득 어떤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그 음악은 오래전의 한순간을 지금 이곳으로 곧장 데려왔고. 그것은 살아 있는 내내 아프게 따라다니게 되리라 예감하게 되는 그런 순간들 중의 하나였고. 잊을 수 없는 절정의 아름다움 혹은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을 나눠 가진 사람들이 그러하듯. 서로가 서로로부터 멀어져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하더라도. 서로가 서로 속에서 잊을 수 없는 한 부분으로 살아가게 되리라는 뼈아프고도 애틋한 감정을 되새기게 했으므로, ……그러니까 결국 그들은 가장 기본적인 말조차도 서로에게 전할 수가 없었던 거지.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이국의 언어를 쓰는 타국의 사람들에 불과했고. 가장 기본적인 말조차도……, 너는 반복했고. 그럼 그 모든 말 없는 것들은 어떻게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거지. 그토록 깊은 사랑은 언어 없이 오는 것이라 여겼으므로. 여자는 자신이 쓴 문장들을 숨겼고. 언어란 찢어지고 부서지는 그 무 엇 일 뿐 으 로……, 남자는 말을 하면서도 말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말을 멈추고 또 멈추었고. 자신들을 덮쳐오는 음악의, 그 말 없음,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말 없음……, 말할 수 없음……, 몸과 마음의 어떤 고통들에 대해서……, 어떤 고통들은 말 없음 속에서야, 말 없음 속에서만이, 점점 더 깊고 점점 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그렇게 어느 날 문득 사람들은 저마다의 우묵한 물그릇 하나를 갖게 된다. 그것은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찾아지는 것으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찾아드는 것으로. 물론 삶의 순간순간을 무의식적인 차원에서조차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는 훈련을 거듭해왔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물그릇 속에 눈물을 떨어뜨릴 수도 있을 테고. 그 물그릇을 앞에 두고 정화수를 올리듯 기도와 경배를 드릴 수도 있을 테고,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석양이 지는 쪽으로 달리고 달리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거나 알지 못하는 이야기의 결말 속으로 빠르게 숨어들듯이. 눈앞에서 스러지고 스러지는 것은 석양이 아니라는 듯이. 석양이 지는 쪽으로, 석양이 지는 쪽으로. 차 안 가득 울려 퍼지고 있는 한 목소리의, 그 텅 빔/가득 참 속에서. 제가 만들어낸 그림자 속에서 다른 누군가의 주저앉음을 바라보면서,





   발화 연습 문장
   ─몰의 말



   몰은 뒤돌아 서 있었다. 앞이 없다는 듯 서 있었다. 이곳에는 너와 나를 지탱할 만한 것들이 무수히 쌓여 있다. 복도와 복도를 지나면서 몰은 말했다. 물건들은 쌓이고 있었다. 흐르고 있었다. 도착하는 즉시 사라지는 것의 상징으로서 거기 그곳에 멈춰 있으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무언가 색다른 것을 기대했다면 미안한 일이지만 발견이란 실은 늘 보아왔던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거든. 몰은 오래도록 눈멀었던 날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물건은 차오르고 있었다. 타오르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물건을 바꾸듯 기분이라는 것도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뒤바뀐 운명을 다시 뒤바꾸려는 의지 속에서 하루하루 고투의 나날을 보내는 연속극의 주인공처럼. 몰은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몰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나마 불쾌함을 거둬들일 수 있다면 내 몫은 다 한 거겠지만. 몰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자라나고 있었다. 몰에게 있어서 말은 앞이 없어도 되는 뒷면과도 같이 펼쳐졌으므로. 몰은 더 이상 소리 내 말하지 않았다. 나아가고 나아가는 한여름 담벼락의 덩굴손처럼. 자라나는 의지 그 자체를 자신의 말로 삼았으므로. 물건과 물건이 말과 말의 자리를 대신하여 흐르고 있었다.

이제니

말 없음, 말할 수 없음, 말 더듬는 내면에 대해 쓴다. 몸과 마음의 고통이 불러들이는 다중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쓴다. 기어이 한 존재를 선택해 찾아드는 그 깊은 어둠에 대해서, 그 어둠을 생의 헌사로 받아들이려는 어떤 마음에 대해서, 그 연약한 용기에 대해서 쓴다.

2018/09/25
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