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홀로 옥상에서



   말해요, 말해봐요
   마지막이 없어질 때까지
   당신이 얼마나 많은 마지막을 만들었는지

   당신이 보았던 마지막 태양이 어떤 빛을 뿜으며 사그라졌는지
   당신이 마셨던 마지막 물 한 모금이 어떤 맛이었는지
   당신이 쓰다듬었던 마지막 동물의 이름은 무엇인지
   당신이 맡았던 마지막 꽃향기가 어떠했는지
   당신이 친구를 데리고 간 마지막 장소는 어디였는지
   당신이 들었던 마지막 단어도 사전에 나와 있는지
   세계의 종말을 위해 애썼던 무수한 당신의 노력을

   들어요, 들어봐요
   당신이 마지막인 세계에서
   당신의 말을 당신이 들어봐요





   말씀과 시인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지. 그는 자신만 모르는 떠벌이였어. 그는 쉬지 않고 사랑 공의 자비를 말했지만, 어제 했던 말이 오늘 달랐어. 낮에 했던 말과 밤의 말이 달랐지. 말씀은 예순여섯 권의 두루마리에 신성한 글자로 기록됐어. 말씀의 말을 기록한 성스러운 책을 읽고 말씀의 자녀들이 생겨났지. 말씀에게는 애초부터 자신의 말을 자신이 듣는다는 발상이 없었지. 말씀에는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뚜렷했지. 말씀의 구조를 빼닮은 자녀들은 스스로를 목자라고 뻐기며 말씀으로 양을 쳤지.

   오랫동안 말씀을 찬양했던 노래꾼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말씀을 따라 읽은 사랑 공의 자비가 자신의 귀까지 와서는 항상 다르게 들리는 것에 절망했다. 그는 손바닥을 펼쳐 입과 귀 사이의 거리를 재어봤다. 귀와 입 사이의 거리는 겨우 한 뼘도 되지 않았지만, 입과 귀보다 더 먼 것은 우주에 없었다. 그는 말씀이 미처 이루지 못한 현전을 구하기 위해, 칼로 자신의 입과 귀를 길게 찢었다. 그러자 입과 귀가 들러붙어 하나가 되었다.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는 벙어리가 되었다.

   말씀을 처음 기록했던 자들이 다 쓰고 내다버린 깃털펜을 주웠지. 그것으로 말씀의 행간과 공백에 사랑 공의 자비라고 썼어. 그러자 구더기가 꼬물대는 것 같이 비천한 흔적으로부터 환청이 울렸지. 사랑 공의 자비 사랑 공의 자비 사랑 공의 자비…… 신성한 글자로 뒤덮인 성스러운 페이지에 부끄러운 글씨를 써넣을 때마다, 사랑 공의 자비는 살이 지글거리며 타는 소리를 냈어. 계시를 듣는 자, 아니, 자기 입으로 내뱉은 사랑 공의 자비를 자기 귀로 들으려고 안간힘 쓰는 자.

장정일

"우리의 시간이 찾아와, 조용히 죽어 무덤에 가면 얘기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괴로웠는지. ……우리는 쉬게 될 거예요!” ―체호프, 「바냐 아저씨」

2018/12/25
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