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어요 그게 뭔지 알지만 말할 수가 없어요 비가 오고 해가 뜨고 사람들은 우산을 접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그러나 말할 수가 없어요 말해서는 안 돼요 창틀에 앉은 죽음이 할머니를 부르고 있고 너무 많은 새들이 동시에 울기 시작하고 말할 수도 없어요 말도 다 못해요 떨어트린 휴지가 데굴데굴 굴러가고 그걸 다시 감아도 한참 헐겁고 말해진 건 없어요 말은 다 했어요 바깥은 이토록 해가 빛나고 화장실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말할 수는 없어요 꺼내달라는 말 외에는 할말이 없어요 문밖에는 사람이 지나다니고 아무도 노크를 하지 않고 그러니 말할 수 없어요 물이 차올라서 입을 열 수 없어요 죽어가는 사람은 없고 모두가 당분간 안전하고 그렇게는 말할 수가 없어요 모두 다 맞는 말이지만 그럴 순 없어요 말이 다 끝나면 밤이 오고 창틀에는 아무것도 없고 죽음마저 떠나면 사실만이 남아요 사실만 남아서 자꾸 소리를 질러요 그러니까 말할 수 없어요 그게 뭔지 안다면 말할 수가 없어요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주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이 있다 물 내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당신이 입을 열기 전까지)

황인찬

시집으로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여기까지가 미래입니다』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가 있다. 식물을 키우다가 화를 내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시를 통해 무엇이든 말할 수 있고, 또한 무엇이든 읽어낼 수도 있지만, 시를 쓰는 일이란 우리가 아무것도 제대로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그런데도 말을 하고 싶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런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 그런데 시를 말하기라고 이해해도 괜찮은 것일까요. 요즘에는 그런 생각을 또 하고 있습니다.

2024/06/05
6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