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



   겨울 사냥은 미신이 있는 사람들을 장대에 거는 것으로 시작한다

   날이 궂을 때 떠올린 생각을 간직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못에 찔린 발가락이 저녁으로 침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나의 백경, 당신은 애칭이 즐거워서 눈 감는 와중에도 웃었다

   집음기를 켜놓고 유난히 많은 칼을 사들이던 옆집으로 기울여 보는 일, 사막으로 떠난 낙타들처럼 제 안을 바다로 채우는 연습, 움푹한 집안으로 나는 몇 번인가 막창을 사서 던져두곤 했다 이제 남은 일은 불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검은색 커튼을 눈 밑에 늘어뜨리고, 먼지 낀 베개 속 솜을 꺼내 당신의 코 밑에서 흔들어대는 것, 항해는 참 지루한 것이지요, 아버지 옆에서 지전을 태우며 나는 배웅이 끝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참 뒤, 돌아가야 할 수심을 알아차린 사람은 손바닥을 더 단단한 손바닥 위에 조용히 올려 두었지만,

   파종하듯 흘려두었던 눈곱과 방울을 하나씩 쪼개볼까,

   늙은 물범이 어린 물범을 껴안고 암초 위를 뒹굴 듯
   우리가 가까워질수록 곱게 갈린 돌가루들이 떨어지곤 했다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당신이 미숙아(未熟兒)를 품에 안고 달리던 길목에는 발바닥이 국수처럼 뭉개지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다들 긴 시간을 배에서 보냈고, 고래를 보았고, 고래가 얼마나 깊은 외로움으로 소리를 빚어내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횃불이 있다, 악을 지른 채 아버지는 해초와 가래를 한가득 마당에 널어 두었고, 그때도 당신과 끝은 서로 멀지 않았으니, 모래알이 뭉쳐 있었던 의자 등받이까지 내리쳐지던 번개들,

   겨울 사냥은 작살에 베인 사람들이 음력을 손아귀 바깥으로 떠나보내는 소리,

   나의 백경, 마지막으로 당신은 졸여낸 무처럼 무르고 달콤한 팔뚝을 휘둘렀다

   그날은 비명 지르는 집과 만났고, 귤껍질을 떼어내듯 아버지 목젖 부근의 치석을 쓰다듬을 수 있었다 당신은 밑이 이상해져서 걸친 것을 모두 벗어낸 다음에야 무엇을 남기고 사라져야 하는지 알게 된 사람, 그리고 백경,

   나는 꾸벅대며 그 옆을 지나곤 했다 혼자서, 혼자서,





   메스티소 풍경



   설탕이 들어가지 않는 호밀 빵, 머리를 기르다 눈매가 사나워진 신부님, 세례명에 따르면 한참 전에 지루해진 것이 분명한 아이들 주머니, 눅눅해진 과자를 장난치기 위해 버리지 않는 바보들, 모두 모여서 추었던 춤이 기억났다

   쨈과 낡은 트럼펫에서 흘러나오던 물소리를 들으며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보기엔 아주 부끄러운 표정으로, 다른 아이들이 이상한 놀이를 했다 현이 상한 바이올린을 대신해 당근과 당근 깎는 칼을 붙였다 떼어내는,

   어린 연주자들은 버려둔 건물 밑에서 악기를 조율하다가, 등으로 내리치던 눈발을 첫 음으로 삼는다

   교향곡의 처음은 겨우, 겨우살이 이파리를 흔들 정도로
   그러나 곧 웅장한 코끼리 상아가 들썩거리도록,

   먼지를 뭉쳐서 만든 구슬과 꿀이 떨어진 카펫, 낭심이 아픈 사내들이 어젯밤에 만난 메스티소를 떠올리는 시간, 거미줄과 얇은 치마 속으로 들어간 벌레의 여행기, 어린 것이지만 밤새 춤출 때는 토마토 다섯 개의 무게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는 것을 말해버린 매정한 오빠들,

   영혼에 대해서 알고 싶을 때 읽어야 했던 책을 가지고 머리를 땋은 계집애들이 점성술을 위해 박수 친다 라La 라La 라La, 모든 골목과 모든 언덕과 천문대와 목매다는 나무에 앉아 깡마른 몸을 접었다 펼쳤던 소녀는 무엇을 듣고 있었을까, 도저히 삼키기 어려웠던 알약을 리듬과 빗소리 없이 손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던 것을 떠올렸을까,

   리듬과 리듬, 손 저림과 손 저림,

   검은 건반이 움직일 때마다 지구의 자전축이 살짝 슬픈 말을 했다고 생각할 것,

   연주자들을 보살피고 잠재우기도 했던 검둥이 여자는 박수를 치며 웃었다

이상정

고양이가 많지 않아서 우리가 많은 걸까. 나는 항상 쓸모없어서 참 다행이다. 세상은 내내 평화롭고.

2018/11/27
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