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
   ―shape shift



   하늘빛은 바다의 색을 반영한 것이라고들 한다.
  아니, 하늘빛은 비단조개의 속을 복사한 것이야.
  아이는 생각한다. 진짜 하늘은 비단조개 속에 있다.
  밥 먹는 것도 잊고 백사장에 쪼그려 앉아
  조개 무덤을 더듬는다.
  어머니가 찾으러 올 때까지 하늘을 찾는다.
  넘실대는 파도 위로 얼마나 많은 하늘빛이냐.
  모자(母子)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하늘은 등 뒤에서 비단조개의 속을 비춘다.





   구미호
   ―energy drain



   한 사람의 혼(魂)이 내 안에 자리 잡는다. 한 사람의 혼이 내 안에 백일홍을 심는다. 한 사람의 혼이 내 안의 화원에 물을 준다. 한 사람의 혼이 내 안에서 노래한다. 그리운 캔자스를 그리워한다. 홧술을 마신다. 한 사람의 혼이 내 안에서 편지를 쓰고 부치지 못한다. 한 사람의 혼이 그것을 훔치려고 하지만 훔치지 못한다. 훔쳐본다. 크리스마스카드를 부친다. 한 사람의 혼이 내 안에서 내게 전화를 건다. 구름은 난청이요, 비 오는 방의 목소리는 부재중이다. 통신 보안! 통신 보안! 또 시작이다. 외부에서 한 사람이 침대에 담긴 채 화분을 표절한다. 한 사람의 혼이 내 안에서 화분 남자를 소외시킨다. 한 사람의 혼이 내 안에서 길을 떠나고, 한 사람의 혼이 내 안에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백 사람의 혼을 체내에 지니고서도 극북(極北)의 빙산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정녕 고승대덕(高僧大德)을 청해 서역(西域)에 불경(佛經)이라도 가지러 가야 하는가. 이번 생에는 사람 되기는 텄다고, 내 안에서 한 사람의 혼이.

장이지

인간은 참으로 불가해하다. 언어라는 불완전한 매개를 통해서는 결코 타자에게 다가설 수 없다. 그럼에도 언어는 숙명이어서 괴롭다.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나 자신과도 만나지 못하는 이상한 사람이 바로 나.

2019/02/26
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