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발견하기 전까지 나는 저기 저쪽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있었어. 가로등 빛도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지. 열대야를 견디기 위해 공원으로 흘러든 사람들이 수두룩했어. 사람들은 아무 데나 앉거나 드러눕고, 물건들은 아무렇게나 떨어지고 뒹굴어. 나는 생각했어. 여름은 무언가를 잃어버리기 좋은 계절이다. 사람들은 익숙한 장소를 떠나고 익숙한 장소로 돌아와. 그리고 그들이 떠난 자리엔 종종 흘리거나 놓아둔 무언가가 남아 있지.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했어. 오랫동안 그래왔듯이, 내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말이야.
   나는 평생에 걸쳐 수많은 것을 잃어버렸어.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많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적지도 않았지. 그중에는 내가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잃어버린 것들이 있어. 예를 들면 볼펜처럼 말이야. 사라진 볼펜은 새로운 볼펜을 사고 나면 어디선가 홀연 나타나지. 크게 쓸모는 없지만 소중한 것들도 있었어. 귀중해서 잘 보관해둔다는 게 그만 그 장소를 잊어버린 경우가 그래. 때로는 잃어버렸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린 잃어버린 것들도 있었어. 필요가 없어진 물건들일 때가 많았지. 이런 걸 잃어버린 것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들 때가 있긴 해. 오히려 버려진 것이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것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발견되면 잊었던 물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하니까. 그리고 아주 가끔은 그것을 되찾는 일이 그것에 다시 쓸모를 부여하기도 하니까. 그 역시 잃어버린 것이라고 부를 수는 있을 거야. 물론 대체로 버려지거나 방치되거나 다시금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되겠지만. 아무튼 나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것을 잃어버렸고, 되찾았고, 혹은 되찾기를 단념했어. 그것을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게 바로 문제야. 나는 그게 무언지 도통 알 수가 없어.
   벌써 수년 전 어느 날 저녁의 일이야. 그때도 무언가를 잃어버리기 좋은 여름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잃어버리는 일에 대해 달리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 나는 그저 공원의 벤치에 앉아 더위를 못 이기고 강바람을 쐬러 나온 사람들과 주인을 끌고 질주하는 개들과 철교 위를 밝히는 자동차들의 행렬을 바라보는 중이었어. 그때 그가 내게 다가온 거야. 그는 다짜고짜 어두운 나무 그늘을 가리키며 그곳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해. 여름인데도 구겨진 긴팔 셔츠에 긴 바지를 입고 있지. 좀 이상하게 보이지만, 그가 점잖은 사람이라는 건 알 수 있어. 그는 내게 무엇을 찾고 있느냐고 묻지. 그럼 나는 아무것도 찾지 않는다고 대답해. 그런데 그는 내가 분명 무언가를 찾고 있고, 자신은 그런 걸 기가 막히게 알아볼 수 있다고 말하는 거야. 그리고 내 반응일랑 아랑곳 않고 이렇게 시작하는 거야.
   “나는 어둠 속에 앉아서 내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 그러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너를 발견한 거야.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공간을 수색하는 데에 몰두하고, 때때로 한숨을 내쉬기도 하는 너를 말이야.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는 말았으면 해. 나는 뭔가를 잃어버렸고 잃어버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니까. 그게 무엇인지가 궁금하고, 그걸 잃어버린 기분이 궁금하고, 그걸 함께 찾을 수 있다면 좋을 테니까. 서로의 곤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나를 너무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진 말아줘. 나는 그저 내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할 뿐이야.
   벌써 수년 전 어느 날 오후의 일이야. 그건 순전히 뭔가를 잊어버린 것 같은 기분으로 시작되었지. 이를테면 가스 밸브나 현관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은 것 같은 기분 말이야. 방금 집을 나왔다면 돌아가 확인을 할 수도 있을 거야. 보통 그런 예감은 예감에서 끝나버리는 게 다반사니까 안심하고 그대로 갈 길 가는 수도 있지. 가스 밸브나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다고 해서 특별히 사고가 일어나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런데 만약 그 예감이 너를 완전히 사로잡아 버린다면,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거대한 기분이 너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어 버린다면 말이야.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뙤약볕 밑에서 손부채질을 하고 실내로 뛰어드는 그런 여름날의 오후에 나는 뭔가 중요한 걸 깜빡한 것 같다고 느껴버린 거야.
   처음의 예감은 가스밸브를 열어둔 것이 아니라 가스레인지를 켜놓은 것만 같다는, 문을 잠그지 않은 것이 아니라 활짝 열어둔 것만 같다는, 점점 더 위험한 상황에 대한 예감으로 둔갑하기 시작해. 그건 마치 누군가 간지럼을 태우는 것과도 같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지. 참고 또 참고 참다가 기어이 간지럼 태우는 사람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야 말 것 같았어. 그리고 결국 주먹을 날렸지. 사무실 책상 앞에 앉은 지 채 한 시간이 되지 않아 상사의 눈총을 받으며 조퇴서를 썼어. 예상했겠지만, 당연히 내 예감은 모두 빗나갔어. 그런데 말이야. 여전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던 거야. 오히려 내가 그보다 훨씬 중요한 무언가를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거야.
   나는 곰곰 기억을 더듬었어. 결제를 받아야 할 서류와 스케줄 노트에 적힌 약속들 따위를. 너는 예상할 거야. 이번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말이야. 아니, 그 반대야. 나는 세탁소에 맡겨놓았던 셔츠를 두 주째 찾아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그게 발단이었지. 셔츠를 찾아왔는데도 여전히 그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던 거야. 만일 셔츠를 찾아오는 일을 계속해서 잊고 있었다면 셔츠는 잃어버린 물건이 되어 폐기되었으리란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잊어버린 것에 대한 생각이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생각으로 돌변한 순간이지.”
   어쩌면 좀 어지러울 수도 있을 거야.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간단히 말하면 그는 분명 무언가를 잃어버렸는데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잊어버렸다는 생각에 빠져들고 만 거야. 그는 조금 엉뚱했고, 조금은 미친 사람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해코지를 할 것 같지는 않았어. 나는 시간이나 때우자는 생각으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지. 그는 뭣에 홀리기라도 한 양 혼자 쉴 새 없이 떠들었어. 이렇게 말이야.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살았어. 한동안은 그랬지. 그런데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생각이 점점 더 몸집을 불려 나가기 시작한 거야. 잘 이해가 되진 않을 거야.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다니. 그 기분이 얼마나 강렬하게 지속되었던지! 그러다 보면 내가 잃어버린 것이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돼. 단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착각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해도, 그즈음이 되면 그것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봉착하고 마는 거야.
   나는 전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도 내가 잃어버린 그것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어. 내게 익숙한 공간들을 주의 깊게 심문하는 것으로 말이야. 내 작은 방과 사무실, 자주 다니는 식당과 카페, 가끔 산책을 나오던 공원을 들쑤시고 다녔단 소리야. 내가 잃어버린 것을 찾아내면 비로소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될 테니까. 중요한 건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떠오르지 않는 잃어버린 것, 그 자체였으니까. 그것을 찾아내기만 하면 그만이었던 거지. 물론 지금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지만, 적어도 그땐 그렇게 생각했어.
   나는 내가 잃어버렸던 것들을 셀 수 없이 많이 되찾았어. 그리고 찾을 수 없게 된 잃어버린 것들을 수없이 많이 떠올려냈지. 거기엔 찬란한 기쁨과 고통이 따랐어. 왜냐하면 그것들엔 기억이 들러붙어 있으니까.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다는 건 잊었던 기억을 되찾는 일에 다름 아닌 일이거든. 간혹 어떤 것들은 한 시절의 사소한 불행들을 떠오르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무척 만족스럽게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일에 몰두했지. 특히 한 영국 밴드의 음반을 먼지 구덩이 속에서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굉장했어. 이름은 말해도 모를 거야. 이십 년쯤 전에 잠시 활동했다가 망해버린 밴드고, 내가 찾아낸 음반도 제대로 된 앨범 재킷이라고는 없는 복사본에 불과했으니까. 아무튼 흠집이 많아서 재생조차 할 수 없었는데도, 그들이 내 팬레터를 받고서는 음반을 보내주겠다고 했던 순간의 벅찬 흥분이 되돌아왔지. 그게 내가 찾던 것이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내가 찾아낸 잃어버린 것 중에 내가 찾으려 했던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았어. 나는 그제야 깨달은 거야. 내가 그것을 절대로 찾을 수 없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그는 잔디밭을 가리키며 말했어. 저기 잔디밭 위의 파란 재킷이 보이냐고 했지. 지금은 당연히 보이지 않아. 하지만 상상할 수는 있을 거야. 두 아이와 부부가 돗자리를 깔고 앉은 쪽 말이야. 그 오른쪽의 비닐봉지를 파란 재킷이라고 가정하자고. 그땐 저기쯤에 파란 재킷이 놓여 있었어. 나는 그제야 그가 줄곧 그 재킷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려. 그는 말해.
   “저 재킷은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이 분명해. 아까부터 내가 지켜보고 있었거든. 여름이고, 사람들은 겉옷을 벗고, 벗어놓은 옷을 두고 사라져. 사라진 건 저 옷의 주인일까 아니면 재킷일까. 이건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문제지. 나처럼 오랫동안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해 온 사람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질문일 거야. 물론 아주 중요한 질문은 아냐. 문제는 저 옷의 미래지. 한때 저 옷은 누군가의 추위를 막아주고, 그를 멋지게 단장해 주었을 거야. 이제 어떻게 될까. 옷의 주인이 저 옷을 찾으러 나타나지 않는다면. 나는 알아. 그는 잃어버린 걸 찾으러 오지 않을 거야.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저건 내가 여기에 오기 전부터, 해가 지기 전부터 저기에 놓여 있었고, 저기에 자리를 깔고 앉은 사람들이 몇 차례 바뀐 뒤에도 누구도 가져가려 하지 않았으니까. 저대로 남겨져 있다가 쓰레기 수거함으로 가거나 분실물 센터로 보내지겠지. 그러고도 찾아가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에게 보내질 수도 있고, 어쩌면 그대로 폐기처분 되어 세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릴지도 몰라. 나는 미처 그걸 생각하지 못했던 거야.”
   나는 물었어. 그럼 그것을 찾기를 그만두었냐고 말이야.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답하는 거야.
   “물론 나는 그것을 찾기를 단념했어. 절반쯤 단념했다고 해야 하나. 실은 그때부터 진짜 문제가 시작됐지. 이상한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은 거야. 문득 내가 너무 많은 걸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지 뭐야. 그 생각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잠재적으로 잃어버릴 가능성 아래 놓여 있다는 데까지 가버리고 만 거야. 그러자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사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어. 내 삶을 축소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지. 내가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그것을 버려야 했다는 뜻이야. 나는 팔거나 버리기 시작했어. 입지 않는 옷들, 읽지 않는 책들, 사용되지 않는 식기들, 자질구레한 일상용품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다시 구입할 수 있고, 또 버릴 수 있는 그런 물건들. 그러면서 내 작은 방은 점점 더 넓어졌지. 그런데 그렇게 버리기 시작하니 남아 있는 것들이 더욱 위태롭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게 아니겠어. 기가 찰 노릇이지. 내 방은 점점 휑해졌고, 형언할 수 없는 어떤 절망의 얼굴이 그 빈자리에 머리를 들이밀어. 나는 언제나 무언가를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했고, 일상은 차츰 엉망이 되어갔던 거야. 그리고 이걸 발견하게 되지.”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꺼내 들었어. 엄지손톱보다 조금 큰 크기의 반질반질하고 예쁜 돌멩이였지. 대단히 특별해 보이는 건 아니었어.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의 손 위에 가지런히 놓인 돌멩이를 내려다봤지. 계속해서 버리고 버리고도 남겨져 있던 오래된 반바지 한 벌을 버리려던 참이었다며 그는 이야기를 이어나갔어.
   “한때는 자주 입어 나름대로 추억이 깃든 반바지였는데, 예전이랑은 상황이 달라지고 있었으니까. 필요하지 않은 반바지를 집안에 그대로 둘 수는 없었지. 그 반바지 주머니 안에 이게 들어 있던 거야. 의아했어. 그동안 왜 내가 그 바지 주머니 속에 있는 돌멩이 하나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이미 모든 주머니란 주머니는 다 뒤졌다고 생각했거든. 그게 기묘한 암시처럼 느껴졌어. 그를 비로소 떠올렸으니까. 내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하기 한참 전에 만난 그가 떠오른 거야. 왜 진작 그를 떠올리지 못한 걸까.
   그때도 여름이었어. 이것 봐. 여기엔 분명 어떤 징후가 있어. 여름이 반복되고 있잖아. 여하간 그 여름 저녁에 나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었어. 사람들의 시끄러운 목소리, 음악 소리, 풀벌레 소리와 공원 곁 도로의 앰뷸런스의 소음이 뒤섞인 밤이었지. 그때 그가 내게 다가오는 거야. 그는 머리가 조금 희끗희끗하고 여름인데도 긴팔 셔츠에 긴 바지를 입고 있었어. 특별히 이상해 보이진 않았어. 나이를 먹으면 앙상한 몸을 내놓기를 편치 않게 여기기도 하니까.
   그는 내게 무엇을 찾고 있느냐고 물어. 나는 아무것도 찾지 않는다고 답하지. 그런데 그는 내가 뭔가를 찾고 있는 것이 분명하고, 자긴 그걸 알아볼 수 있다고 말해. 그런 다음에 혼자서 한참을 떠들었는데, 오래된 일이라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다만 그게 잃어버린 것에 대해 이야기였다는 사실과 한마디 인상적인 문장만큼은 떠올릴 수 있었지. 이 돌멩이 하나가 그걸 기억해내게 만든 거야. 이 돌멩이를 내게 준 사람이 바로 그였거든. 그가 내게 말했어.
   그 캄캄한 어둠도 이제 다 소진되었다.”
   그가 그의 말을 내게 전해줄 땐 돌연 소름이 돋았어. 딱히 음산한 표정으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탁 트인 공공장소였는데도 목덜미가 서늘했지. 그는 그 이후로 매일 공원에 나오게 되었다고 했어. 여기에 있으면 그에게 돌멩이를 건네준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허황되어 보였어. 약간은 거짓말 같기도 했지. 나는 곧 자리를 뜰 생각이었는데, 불현듯 질문 하나가 떠올랐어. 그가 왜 그에게 돌멩이를 주었는지 말이야.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군. 그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왼쪽 뺨을 긁기 시작했어. 어디선가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곧 폭죽을 터뜨리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들려왔어. 그의 어깨가 놀라 움츠러드는가 싶더니, 이내 그의 손이 돌멩이를 움켜쥐었어.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물건이라도 된다는 듯 말이야. 그리고 내게 고백했지.
   “나는 꽤 오래 여기에 붙박여 있어. 한 시라도 여기를 벗어나면 그사이에 그가 다녀갈까 봐. 벌써 일 년도 더 되었지. 내 고용주는 나를 해고했고, 나는 살고 있던 방을 잃었어. 더는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게 되어버린 거야. 그런데도 나는 지금 입고 있는 셔츠와 바지, 겨울용 코트 한 벌, 그리고 그가 내게 남긴 돌멩이가 사라질까 봐 마음을 졸여. 특히 돌멩이만큼은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돼. 그가 나타났을 때 내가 나라는 사실을 그에게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니까. 왜 그를 찾느냐고. 잃어버린 것에 대해선 그가 분명 나보다 앞서 일가견이 있는 인물일 테니까. 사실 그는 잠시만 자리를 비울 테니 내게 이 돌멩이를 맡아달라고 했어. 그리고 긴팔 셔츠에 긴 바지를 입은 그가 나타나면 그를 붙들어 두라고 했는데, 나는 그냥 그 자리를 뜨고 만 거야. 그의 소중한 돌멩이를 내 주머니에 넣어버린 채로. 그건 엄청난 실수였어.”
   어처구니가 없었어. 벌써 십수 년 전에 만난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는 게 말이야. 그들이 서로를 알아볼 수나 있을까 싶었지. 그를 만난다고 해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요? 내가 물었지. 그는 고개를 저으며 한심하다는 듯 대꾸했어.
   “이젠 내 캄캄한 어둠도 다 소진되었지.”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어. 선선한 강바람이 우리의 머리카락을 헤집어놓는 동안에 그는 꼭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까만 강물에서 눈을 떼지 않았지. 나는 그가 바라보는 것을 함께 바라보았어. 그가 언제 사라졌는지는 모르겠어. 그는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휘발되어 버렸어. 공원의 인파 속에서도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지. 그리고 그가 떠난 자리에 그게 놓여 있던 거야. 작고 반질거리는 바로 그 돌멩이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짐작할 수 있을 거야. 내게도 그 일이 일어난 거야. 무언가를 분명 잃어버렸는데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었지. 그다음은 똑같아. 나는 그와는 반대로 수많은 것을 잃어버리고도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모르게 되도록 거대한 양의 것들을, 오직 잃어버리기 위해서 사들였어. 그래도 결과는 같아.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기분, 그건 처음엔 그저 아주 작고 검은 점에 불과해. 그게 차츰 까맣고 텅 빈 구멍으로 확장되는 거야. 마치 내가 잃어버린 것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인 듯해.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지. 사람들은 기억나지 않는 것이라면 정말로 소중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들 해. 소중하지 않은 것이라면 굳이 찾아야 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지. 하지만 나는 그것이 소중하기 때문에 찾아 헤맨 게 아니야. 그가 말했잖아. 그건 내가 찾아 헤매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되어버리는 거니까. 이게 흥미로운 부분이지. 그렇게 되면 결국 난 소중한 걸 찾아 헤매는 것이니까.
   혹시 내가 나를 잃어버린 게 아니냐고? 무슨 시답잖은 소리야. 물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긴 해. 자신이 철학적으로 무척이나 탁월하게 문제를 해결했다는 듯이 말이야. 하지만 나는 분명 여기에 있잖아. 내가 나를 잃어버렸다면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 뭐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나는 나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야. 내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지. 거꾸로 뒤집어 볼 수는 있을 거야. 누군가 파란 재킷을 잃어버린 건가, 아니면 파란 재킷이 누군가를 잃어버린 건가 하는 질문처럼.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면 나는 어디에서 그것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하는 질문이 따라오지. 그래서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을 찾아내기 위해 떠돌면서, 동시에 누군가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거야. 그런데 누구도 나타나지 않고, 망각은 아직도 나를 쫓고 있고, 그러다 너를 발견한 거야. 무언가를 잃어버린 너를 말이야.
   내가 무어라 말해도 소용없을 거라는 걸 알아. 너를 계속 붙들어 둘 생각도 없어. 나는 너무 지쳐 있고 내 캄캄함도 이제 다 소진되어 가고 있으니까. 그 구멍, 그 캄캄한 어둠은 점점 커지다가는 어느 순간 목숨을 다한 거대한 행성처럼 터져 나갈 거야. 안을 향해 무한히 붕괴했다가는 무엇이든 빨아들일 수 있는 블랙홀처럼 변신할 테지. 나는 그걸 느낄 수 있어. 하지만 그것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어. 그는 내게 그것을 알리지 않고 떠나버렸고, 다시는 이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어쨌거나 언젠간 너도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테고,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기억하지 못할 거야. 그건 먼 훗날의 일일 수도 있고, 당장 내일의 일일 수도 있지. 너는 너만의 작은 구멍을 갖게 되고, 그게 주머니 속 돌멩이가 무거워질 때마다 서서히 커다래질 거야. 그때 네가 정말로 무언가를 잃어버렸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몰라. 그럼에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게 되는 운명을 피할 수는 없을 거야. 나는 그런 걸 기가 막히게 알아볼 수 있거든. 너에게 비범한 능력이 있다면 잃어버린 그것을 되찾을 수도 있을 거야. 어쩌면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어. 그럴지도 모르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하긴 할까.
   돌멩이? 그런 건 가지고 있지도 않아. 돌멩이는 그저 돌멩이일 뿐이니까. 나는 돌멩이를 그 자리에 둔 채로 벤치를 떠났어. 너는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아무런 돌멩이나 하나 주워 주머니 속에 넣고 그것이 네가 잃어버린 것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걸. 핵심은 그게 아냐. 아무렴. 돌멩이 따위가 뭐 그렇게 중요하겠어.
   저길 봐. 사람들이 슬슬 떠나기 시작하지. 조금만 더 어두워지면 공원은 텅 빌 테고,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들만이 남겨질 거야. 그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다가,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잊겠지. 나는 그런 걸 생각하면 머릿속이 어지럽고 가슴이 갑갑해져 와. 잃어버린 것들이 잔디밭을 온통 차지하고 나뒹구는 꼴을 보기 전에 어서 자리를 떠야겠어. 떠나기 전에 담배나 한 대 태우면 좋겠는데 말이지. 혹시 담배 있어?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잖아.
   하긴, 아직은 아니겠지. 너는 아직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들어. 사람들은 왜 이미 일어난 일들을 깨닫지 못하는 걸까. 어째서 나는 나 자신을 설득하는 일마저 매번 실패하고야 마는 걸까.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아. 이것이 그 캄캄한 어둠의 끝이로구나.
   나는 떠날 거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럼 안녕히. 너는 여기에 있어도 좋아.

천희란

초조할 땐 같은 자리를 맴돌며 걷는 습관이 있다. 착륙이 불가능한 활주로를 떠올린다. 나와 나 사이에 따라잡을 수 없는 거리가 있다. 끝없는 반향과 결핍으로만 보존되는 존재가 있다.

2018/10/30
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