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알 유희



   실습을 끝내고 너는 돌아와
   작고 투명한 구를 하나 보여준다, 숨을 멈추고
   풍경은 몸을 말고 들어가 있었지

   깨뜨릴까,
   두 손을 펼쳐 받는다
   나의 손아귀에는:

   향어 한 마리가 수많은 알을 낳고 사라졌다
   햇빛에 쓸려 내려가고
   단 한 개 남았다

   소인국 부족 여인이 자신의 한쪽 가슴을 내어주었다
   안녕을 빈다는 듯, 아주 기나긴 시간

   징그럽고 낯선 건 하나같이 부드러워

   일곱 살 때, 동네 형이 찢겨 죽은
   개의 내장을 쥐어보라 시켰을 때
   나는 울었다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너는 유리알이 토끼의 수정체라 알려준다
   생물학적 무지로부터의 전리품, 해맑게 웃는 내
   호기심 왕성한 약탈자

   부드러운 것도
   찢기는 소리는 부드럽지가 않고
   오늘의 나는 비단 찢는 소리에
   웃을 수 있다

   화살은 저만치 날아가 꽂혔는데
   활줄은 아직도 몸을 떨고

   나의 내장까지 들여다보던 눈,
   너의 얼굴을 떠올리면
   마냥 부드럽다

   네가 쥐여주었던 참새의 놀라움,
   내 손에서 날아가 버렸을 때
   그날 나의 손도 함께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제야 안다
   너를 보던 나의 얼굴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웠다





   보물찾기



   유미는 우두둑, 떨어지는
   작은 밤송이 같은 이름
   뭉쳐놓은 눈덩이 같은 이름
   (너 어디에서 날아오는 거니?)

   그해에는 관광버스를 타고
   학년 모두 대전 엑스포에 갔지
   유미와 나란히 앉았지
   우리는 키와 눈썹이 거의 같고

   그날의 마지막 순서는 보물찾기
   일등상은 모두가 탐냈어
   꿈돌이가 샛노랗게 그려진
   전동 연필깎이였으니까

   내가 그걸 머리 위로 치켜들었을 때
   유미는 소리 내어 울었지
   우우, 아이들이 나를 에워싼다
   너무, 어쩜, 대체, 그런, 너 때문에, 왜,

   나는 12층에서 연필깎이를 던지고
   엄마는 103동 아저씨에게 조아리며
   차 유리 값을 물어줬지

   엄마, 나 연필깎이 사줘

   오늘 내가 탄 버스
   창문 너머로 아이들 대여섯 썩은 밤을 던져대고
   나는 가방을 열어
   가장 해맑아 보이는 아이의 얼굴에, 손거울
   립스틱, 물병, 스페인어 사전을 던지면서

   박람회란 뜻을 알게 됐어도
   엑스포는 언제나 유미의 이름

   나는 아직도
   보물찾기 쪽지를 바꿔치기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고 다만

   목욕탕에서 마주친
   유미의 모습을 생각한다
   둥글고 빨간 입술을 더 오므리던 아이

   손으로 빚은 물그릇같이
   하얗고 무방비한 유미,
   그 애를 빚는 꿈을 꾼다

   물레 위에서 돌아가는 유미, 어느 방향에서도
   나는 볼 수 있다

백연준

며칠 전 태어나 처음으로 무지개를 보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아직도 꿈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고 적는다. 그 외에 다른 말은 차마 할 수가 없다.

2018/09/25
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