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되는 병



   
1

   알몸이었고 빙판이었다

   언 곳을 녹이려고 실내를 찾아
   헤맸고 도달했고 그곳은
   커피와 꽃을 함께 팔았고 향기가 빼곡했고 손님이 듬성했다

   알바가 차를 내렸고 그즈음 나는
   마음껏 먹었고 살이 내렸다

   자라기 싫었고 기르기 싫었다 다만 조용하고
   건강한 것을 곁에 두고 싶었고 식물을 구경했다

   병까지 합쳐서 만원입니다
   병은 인터넷에서 사면 더 싼 거 아닌가
   그것도 병이에요
   그러게요 지금 즐거우면 그만인데
   그럼요 그만인데 즐거운데
   야, 너 내 방 갈래?
   지금 누구랑 얘기해요?
   저는 원래 사람 아닌 거랑 대화를…… 우리 개들이랑 제일 많이 해요
   저는 나무랑
   아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카페랑 꽃집을 같이 해요?
   아 그건 사장님이
   아 저도 알바해요 아무튼 병도 같이 데려갈게요
   잘하셨어요
   잘했어요?
   사실 저도 꿈이거든요
   뭐가요?
   사고 싶은 걸 생활에서 보면 그냥 사는 거, 꿈이잖아요
   아…… 근데 여긴 제 꿈인데

   현관을 거치지 않고 방으로 들어서자 책상 위의 유리병 속의 물속의 녹색 이끼 덩어리가 미친 듯이 똘똘 뭉쳐진 채로 웃고 있었다

2

   마리모는 물속에서 살고 작고 풍만하고 단단하다

   일본산이라는 말에
   일본풍의 고립에 대해 잠시 고민한다
   그런 게 있다면
   이름을 달아주고 싶어서

   스티커를 꺼내면서 펜을 굴리면서
   물과 가까운 인물들을 떠올린다
   인어, 마그리트, 습한 생애,
   카프카의 게오르그
   가깝다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떼고 남는 흰 것은 지저분하니까

   마리모를 그냥 마리모라 부르기로
   공평하게 내가 사람이라 불리기로 한다

   이 유리병은 불룩해서
   사람은 안에 있는 것을 실제보다 크게 본다

   커질수록 더 알고 싶으니까 너는 둥그니까
   구의 부피는
   4/3 × π × r × r × r
   연달아 세 번 적으면 기호는 병균 같고 어쩐지
   생명 같다

   숨 쉬는 것을 위해
   사람은 일주일마다 물갈이를 한다

3

   유리는 매일 밤 일기장을 펼치고 살갗이 몹시 떨던 시간을 각색하고 이것은 시가 될 거라고 우긴다 우기다 보면 한 방울 두 방울 눈물이 나는 법 고인 물이 차올라 사방을 가득 메우면
   물속에는 물이 가득해서 울어도 울어도 표가 나지 않는다
   첨언하자면 마리모가 야구공 크기로 자라는 데는 약 150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것은 유리로서는 확인할 길 없는 사실이다





   멈춰드리다
   ―카프카의 「시골 의사」



   눈밭에 마차가 고꾸라진다

   말이 둘, 머리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사람 하나, 외투도 없이 미동도 없이

   순무를 뽑듯이 나는
   수그린 그의 머리통을 쥐어 올린다
   (어라, 낯이 익다)

   말이 내 말이 갑자기 죽었어요 아침에 일어났더니 갑자기, 나는 중환자에게 가야 했습니다 그뿐이에요 어떻게든 말을 빌려야 했습니다, 아니요 거기서 관뒀어야 했을까요 환자를 포기해야 했나요 내가, 나는 의사입니다

   끝났던 사람이다 그는
   갑충, 등에 사과가 박힌 채로 서서히1)
   광대, 단식을 고집하다 표범에 먹혀 마침내2)

   가야 했습니다 이웃의 마부가 도와주더군요 고마웠습니다 그자가 로자를 건드릴 줄은, 마구간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나요 아 아니에요 나는 알고 있었어요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질 줄 아니 아니에요, 그냥 환자의 집이었어요 나는 벌써 도착해 있었습니다

   다음 연애는 더 잘 할 수 있듯이
   거푸 죽으면 더 잘 살 수 있습니까

   환자는 소년이었어요 가족들이 외투를 받아주고 럼주를 따라줬습니다 아아 그 기대에 찬 눈망울, 나는 제자리에 온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진찰을, 그런데 뭐였을까요, 다시 돌아가면 발견할 수 있을까요 그 애는 그때 정말이지 멀쩡했습니다

   질문을 삼키며 반죽을 치댄다
   수제비 드셔보셨는지, 익으면 떠오르는

   화가 나더군요 나는 왜 로자를 버리고 여기에 왔을까 아니요, 나는 로자를 버린 적 없습니다 그런데 소년의 몸뚱이에 상처가 아니 그럴 리가요, 갑자기 상처였습니다 내 손바닥보다 컸어요 울긋불긋하게 꽃이 피었어요, 벌레가 들끓더군요 징그러웠어요

   더 잘해도 이별은 오듯이 그러나
   새로 살아도 또한 죽어야 합니까

   어서 도망가야 했습니다 의사를 믿는 그 가족들의 선한 표정으로부터 나는, 선함은 언제나 조건부라는 걸 알잖습니까 그들이 무서웠어요 소년은 가망이 없었습니다 내가 보지 못했으니까요 아니, 아니에요 상처는 없었습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도대체 왜, 누가 대답해줄 수 있죠

   아무도요, 어쩌면 당신만이

   가방을 챙기고 창밖으로 뛰어내렸습니다 코트를 마차에 던졌어요 입을 겨를도 없었습니다 못 견디게 춥더군요 말들은 제멋대로 질주했습니다 마차 뒤에, 코트가 걸려 있는데 손을 뻗어도 뻗어도 닿지 않았어요 가도 가도 눈밭이었습니다 아아, 여기는 어디입니까

   죽어본 사람의 방입니다 그러니 안전해요

   그릇을 싹싹 비운 그는
   처음으로 처음처럼 잔다

   당근을 부러뜨리듯이 나는
   그의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들을
   똑 똑 분지른다

   눈밭에는 눈이 계속 내리고

이석경

연비가 형편없는 1인승 스포츠카. 일상이 버겁지만 책을 읽을 때는 세상 행복하다. 많이 먹고 오래 자고 찔끔찔끔 내 맘대로 쓴다.

2018/06/26
7호

1
카프카, 「변신」
2
카프카, 「단식 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