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는 칠레와 브라질, 스위스와 사우디아라비아, 키프로스와 르완다 등등 여러 곳을 거치고 부탄에 머물다가 중국에 도착했다. 그중에는 슈가 소속된 나라도 있었고 외국인 신분으로 심사를 거쳐 몇 년간 체류한 나라도 있었으며 여행자로서 단기 여행을 다닌 나라도 있었다. 슈는 일곱 개의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국경을 넘나드는 걸 구애받지 않았다. 스스로를 구애하지도 않았다. 슈는 요리사였다. 3개월 이상 머물 곳에서는 요리사 일을 구해 생활했다. 열일곱 살에 일본식 레스토랑에서 양파 까는 일부터 시작한 후로 26년 동안 요리사로 살았지만 새로운 일터에서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거리낌 없이 또 양파를 깠다. 슈는 최고의 요리사 같은 칭호는 어쩐지 부당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최고의 예술가나 최고의 아버지라는 칭호도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슈에게는 은행 계좌가 없었다. 열아홉 살이 되던 해부터 낙타 가죽으로 만든 납작한 주머니에 돈을 보관했다.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했다. 혼자 있을 때면 책을 읽었다. 수학과 물리학에 호기심이 있었고 빛의 수수께끼라는 포켓북을 지니고 다녔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인터넷으로 뉴스기사를 보는 편이었다. 불발된 수류탄이나 망가진 소총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 잠자리에 누워 눈물을 흘렸다. 기도는 하지 않았다. 슈에게는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고 자는 습관이 있었다. 왼쪽 눈에서 나온 눈물방울이 오른쪽 속눈썹을 적시면 슈는 조용히 욕을 뇌었다. 슈는 세계 공용어로 욕할 수 있었다. 공용어는 일상적인 표현 정도를 하는 수준이었다. 자신이 소속된 7개국의 언어는 쓰고 말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일곱 나라를 오가며 살았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말이 익숙해지기 전에 다른 말을 배웠다. 그렇지만 일곱 개의 언어들 중에는 슈가 모국어처럼 쓸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대화를 하던 상대가 뭐라고 물으면 슈는 딸꾹질을 하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한번 딸꾹, 한 후에야 대답할 수 있었다. 반짝. 찰나의 딸국질이었다. 슈는 아무런 불편도 느끼지 못했다. 모국어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누군가가 슈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으면 어느 지명을 말해야 할까, 고민하는 잠깐이 모국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그때에도 나의 뿌리는 어디란 말인가, 같은 의문은 아니었다. 다만 모국이 무얼까, 자신에게 모국이라는 단어가 어떠한 감정도 환기시키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산들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듯 생각할 뿐이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밤색 곱슬머리를 흩날리며 슈는 자신이 거쳐 온 도시 중 하나를 말했다. 모국이라는 것과 저 자신을 잇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슈는 자면서 꿈을 많이 꾸는 편이었다. 보통은 낮에 있던 일들의 되풀이였지만 가끔씩 묘한 꿈을 꾸었다. 슈는 기묘한 꿈을 즐거워했고 특히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자주 꿨으면, 하고 바랐다. 제 나라의 언어가 뒤섞인 꿈을 꾸기도 했다. 여러 언어로 이루어진 하나의 문장들이었다. 그러나 잠에서 깨면 무슨 문장들이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이 뒤섞인 말들로 꿈을 꾸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슈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혼자 살다 죽자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다. 제 명의로 된 자동차를 소유한 적이 없었다. 운전면허증서는 있었다. 어디에서건 납세를 했다. 세금이 쓰이는 용도에 대해서 불신을 가지고 있었으나 울분이나 박탈감 때문은 아니었다. 박탈감에 대해서라면 정부가 아니라 신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러나 말하고 싶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을 믿는 이들과 비슷한 이유였다. 슈는 자신의 존엄이 신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유지된다고 생각했다. 지갑에는 콘돔 세 개가 있었다. 대체로 그렇게 지니려고 노력했다. 이 년 전 17개월 동안 사귀던 애인과 헤어졌다. 열아홉 살 때에 남자와 잔 적이 있었고 그 뒤로는 없었다. 슈에게는 삼 주에 한번꼴로 떠오르는 여자가 한 명, 빈번하게 떠오르지는 않지만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여자가 또 한 명 있었다. 지금, 슈는 베이징에 있다. 막 공항에서 나오는 참이었다. 긴 비행을 마친 슈는 당장 무어라도 먹어야 할 정도로 허기를 느꼈다. 커다랗고 낡은 배낭 안에 간식거리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3월이었다. 나는 긴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다. 중편을 예상했지만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었다. 주인공은 롤랑 슈이치로 반이라는 남자였다. 모두가 그를 슈라고 불렀다. 슈는 다중국적자였다. 나는 슈에게 일곱 개의 국적을 가지게 할 생각이었는데, 일본과 프랑스 말고는 확실히 정해놓은 나라가 없었다. 슈는 국적과 상관없이 움직일 것이었다. 나는 경계를 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넓히는 것에 대해 쓸 수 있기를 바랐다. 이 세상에 없는 이야기라고 해도 좋았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당연해서 기이하고 기이해서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슬프고 슬픔이 당연한 모험담 말이다.
   나는 슈를 에이와 만나게 할 작정이었다. 에이는 20대 후반의 아시아 여자였다. 국적은 정하지 못했다. 분명한 건 에이가 생애 처음으로 타국에 왔다는 것이었다. 그녀와 슈 사이의 공통점이란 같은 시간 같은 도시에 있다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어떤 순간을 함께 보내야 했다. 슈가 그녀에게 말하는 장면을 넣고 싶었다. 두유노디스워드? 데스티니. 중반부쯤 나오게 될 담담하면서도 유쾌한 장면. 그 장면 후에는 그들의 삶이 조금 달라질 것이다.
   첫 문장을 썼다가 지웠다가 하면서 나는 슈에 대한 에피소드를 구체적으로 상상했다.
   그랬다. 나는 상상하고 있었다.

   저녁 아홉 시 무렵에 그 뉴스를 들었다. 걷고 있었다. 발바닥이 뻐근해 길에 발바닥을 툭툭 치며 걸었다. 학원은 집에서 30분가량 걸어야 하는 곳에 있었다. 저녁밥을 먹었는데도 일이 끝나면 허기가 졌다. 가방도 무거웠다. 가방 안에는 화장품 주머니와 랩톱이 전부였는데 랩톱만으로도 무게가 대단했다.
   
   -잘 돼가?
   뉴스를 전해준 건 시 쓰는 선배 언니였다. 언니와 나는 닷새에 한 번 정도로 통화하고 있었다. 8년 전 시인이 된 언니의 시집이 출간된 직후였다. 우리는 달마다 몇몇과 어울려 술도 마셨다. 술자리에는 한둘을 빼고 매번 동일한 사람들이 참석했다. 목적이라고 한다면 술을 마시는 게 목적인 간단한 술자리였다. 그런데도 언니와 나는 며칠 간격으로 전화를 해 그날의 안부를 묻고 답했다. 우리의 오늘이 무사하다는 것에 안심하거나 우리의 오늘이 어떻게 무사할 수 있느냐고 의심했다. 시시한 농담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언니도 알았다.
   -잘 몰라. 첫 문장 쓰고 있어.
   -제목은 정했어?
   -롤랑 슈이치로 반. 아니면 슈에 대해서. 아직 못 정했어.
   -원장은 계속 그래?
   나는 앉을 데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가까운 건물의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애들 국어 점수가 쉽게 오르나? 원장은 공대 출신이라 뭘 몰라.
   남자아이들이 비상구 계단에 모여 앉아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긴 나무 의자가 있었지만 거긴 텅 비어 있었다. 아이들은 까만 머리통을 맞대고 잠잠히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나는 의자 끝에 엉덩이를 걸쳤다. 의자는 딱딱했고 약간 끈적거렸다. 랩톱이 든 가방을 내려놓자 쿵 소리가 났다. 아이들의 책가방은 계단 아래에 쌓여 있었다.
   -괜찮아. 나랑은 다른 국어 선생님이 한 명 더 들어왔어. 꽤 예쁘거든.
   나는 작게 낄낄거리다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별일 없어?
   -지진이 났다는데.
   -어디에서?
   -텔레비전.
   아이들은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막 승부가 난 듯 몇 명은 야유했고 몇 명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얼굴을 보니 5학년이나 6학년쯤 되는 초등학생 같았다. 곧바로 다른 아이들이 게임을 이어나갔다. 비상구가 다시 조용해졌다.
   -텔레비전? 강원도 쪽인가?
-아니.
   -여긴 괜찮은데. 먼 데, 부산인가?
   -일본. 엄청난 해일이 밀어닥치고 있어.
   그다음은 이제 인터넷 검색만 하면 모두가 알 수 있는 그 사실이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표준시로 두 시 46분경. 지진 규모 9의 초강력 지진이 발생했다. 진원지는 태평양의 해저 산리쿠 해역. 대규모 쓰나미가 아오모리현,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이바라키현, 지바현 등 6현 62시읍면을 덮쳤다. 후쿠시마에 위치한 제 1 원자력 발전소에서 냉각시스템이 파괴됐다. 잇따른 원전 폭발. 방사능 유출.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
   도시가 얼마나 끔찍해졌는지 해일이 얼마나 엄청난지, 언니는 텔레비전을 보며 설명했다. 나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휴대폰을 거쳐 오는 언니의 목소리는 건조했고 기복이 없었다. 통화를 끝내며 언니가 짧게 덧붙였다.
   -무섭구나.
   느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깜짝 놀란 건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서 우르르 소리를 냈다. 우르르 책가방을 무너뜨려 제 것을 찾아 메고 순식간에 밖으로 뛰어나갔다. 건물 입구에서 노란색 학원 버스가 시동을 켜놓은 상태로 아이들을 태우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또 다른 아이들이 노골적으로 나를 훑어보며 엘리베이터를 향해 왔다. 나는 가방을 들고 건물을 빠져나오며 혼잣말을 했다.
   -무겁구나.
   랩톱은 구입했을 당시에도 최신 제품이 아니었다. 이전에 나는 랩톱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었고 그렇게 값나가는 물건인지도 몰랐다. 당선 상금의 절반으로 대출받았던 대학 학자금 일부를 갚았다. 그리고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도록 휴대용 컴퓨터가 필요할 것 같았다. 전자제품대리점의 직원은 예상 비용을 말해보라며 나를 구슬렸다. 그 남자가 건네준 구형 랩톱을 한쪽 손에 들고 매장을 걸어다녔다. 압력밥솥을 지나 세탁기까지 가는 동안 팔이 아파졌지만 괜찮았다. 아쉬움 없이 그걸 샀다. 상금이 남았다. 그 돈으로는 하고 싶던 것을 하고 싶었다. 내 키의 반만 한 배낭을 샀다. 나는 배낭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때 산 랩톱이 가방 안에서 어깨를 짓눌렀다. 발바닥으로 땅을 툭툭 치며 나는 다른 쪽 어깨로 가방을 옮겼다. 그리고 슈의 배낭을 떠올렸다. 길고 깊은 배낭. 낡고 구겨진 배낭. 슈는 열다섯 살 때부터 그 배낭을 썼다고 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에서 슈를 찾았다. 낯선 숫자들로 정렬된 국제전화번호. 집으로 가는 내내 연결 버튼을 눌렀지만 매번 세 번까지만 신호음이 울렸다. 그러다 끊어졌다.
   여권을 만들고 비자를 받고 배낭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가이드북을 읽었다. 한 달간의 여정이었지만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도 몰랐다. 여행지는 네팔로 정했다. 나는 가족을 설득해야 했다. 아빠는 위험하지 않겠느냐 저녁마다 물었고 엄마는 미국에 다녀오라고 밀어붙였다. 오빠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서로 왕래할 만한 여유가 없어 유학 간 아들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격하게 여행을 막은 건 오빠였다. 오빠는 규칙의 바깥으로 나가거나 의외의 상황에 놓이는 걸 꺼리는 편이었다. 미지의 나라와 배낭여행이라는 것이 오빠에게는 무질서로 생각되는 모양이었다. 연이은 반대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2007년 8월 말, 나는 카트만두 공항에 있었다.
   공항에는 각기 다른 피부색을 가진 여행객이 가득이었고 다들 거칠어보였다. 내 배낭을 찾기 위해 긴 시간 줄을 서며 나는 겁을 먹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머뭇대다가 한 남자와 부딪힐 뻔했는데, 쏘리 쏘리 쏘리, 남자는 유연하게 나를 스쳐가며 중얼거렸다. 멍청하게 서 있던 나는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남자의 배낭은 머리통을 가릴 만큼 우뚝했고 커다랬다. 그 배낭을 뒤따르기만 해도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총총히 멀어지는 배낭을 바라보며 나도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택시에서도 욕이 나왔다. 도로는 걷고 뛰고 오토바이를 탄 네팔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택시 기사는 영어를 유창하게 했는데 이상하게 내 말만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기사는 창문을 내린 채 달리다가, 멈추어 창밖의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다가, 다시 달리다가 멈추기를 되풀이했다. 나는 기사의 뒤통수를 향해 타멜 시장, 타멜 시장, 이라고 소리쳐야 했다. 며칠이 지난 후에야 기사가 시장 주변을 뺑뺑 돌며 요금을 올렸다는 걸 깨달았다.
   시장에서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구불구불한 길에는 그을린 여행자와 호객하는 네팔리가 구분 없이 다녔고, 비슷비슷해 보이는 물건을 진열한 이국적인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중심 도로와 골목길은 거미줄처럼 엮여 있어서 한참 걷다보면 다시 같은 곳에 와 있었다. 다행스럽게 아무것도 사지 않는 여행자에게도 네팔리들은 친절했다.
   가이드북을 보고 찾아간 게스트하우스는 아담한 곳이었다. 도미토리에는 침대 네 개가 있었고 이불이 깨끗했다. 창문이 커서 방 가득 환한 빛이 들었다. 창에서 가장 가까운 데에 내 몫의 침대가 있었다. 나는 옆 침대 밑에 부려진 낯익은 배낭을 발견했다. 공항에서 보았던 배낭이었다. 침대 위에는 티셔츠와 세면도구 따위의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널려 있었다.
   도미토리로 그 남자가 들어왔다. 동부 아시아 사람임이 분명했는데 정확히 어느 나라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어서 나는 쭈뼛거렸다. 그때까지 누군가와 변변한 인사도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유코리안? 아임코리안.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며 그가 말을 걸었다. 내가 동그랗게 눈을 뜨자 그는 농담이라며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왼쪽 윗입술 안으로 덧니가 보였고 둥근 볼에 보조개도 있었다. 아임재패니즈. 그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엉겁결에 그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의 어깨 위로 작은 물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퍼스트타임인네팔? 나는 해외여행 자체가 처음이라고 답했다. 그는 네팔에 온 것만 두 번째라고 했다. 티벳에 있다가 이곳에 왔고 인도로 떠날 예정이라고. 그는 나에게 갈만한 곳과 조심해야 할 것들을 말해주었다.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일본어로 된 가이드북을 펼쳐놓고 긴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어떤 단어들은 한국어로 말하기도 했는데 오래전, 어떤 한국인과 친하게 지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바로 슈였다.

   두 살배기 조카는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종일 조카를 돌본 엄마도 텔레비전 앞에 누워 허리를 꼬부리고 잠들었다. 텔레비전의 푸른 빛이 두 사람의 얼굴 위에서 일렁였다. 미국계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오빠 부부는 주말에만 자기들 집으로 딸을 데리고 갔다. 퇴직 후 다른 일을 구하지 못한 아빠에게 생활비를 드릴 수 있고 쓸쓸해하는 엄마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오빠의 생각이었다. 나로서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텔레비전의 모든 채널에서 뉴스가 나왔다. 다시 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 세 번 신호음이 울리고 그만이었다. 나는 조카와 엄마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슈에 대해 생각했다. 슈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했다. 첫 문장을 생각했다. 첫 문장을 써야 했다.
   낙타 가죽 주머니는 단순한 돈주머니로 설정된 게 아니었다. 열아홉은 슈에게 중요한 나이였다. 슈가 경제적으로 자립한 시기이기도 했지만 일곱 개의 국적과 상관없이 거주지를 옮겨가며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정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자라온 환경을 상상하면 슈에겐 거창한 결심이 없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계기는 필요했다. 나는 슈가 자발적인 선택을 하길 원했고 슈의 의지가 자신의 삶 대부분에 작용될 수 있기를 원했다.

   반년간 양파 껍질 벗기는 일만 시키던 셰프가 슈를 불렀다. 양파를 뺀 다른 채소를 다듬으라는 지시였다. 채소 보관실에서 또 반년을 보내자 슈에게 주방으로 들어오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슈는 식기를 닦고 바닥을 청소하고 조리 기구를 정리했다. 다시 반년이 지났다. 드디어 식전 수프를 끓이라는 셰프의 말을 듣게 된 날, 슈는 무척이나 기뻤다. 그 말은 모두가 퇴근한 뒤에는 주방의 한 부분을 사용해도 좋다는 암묵적인 허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스시는 레스토랑의 대표메뉴였다. 슈는 아무도 없는 주방에서 스시를 만들었다. 새벽녘 고요한 그곳에서는 밥알끼리 들러붙었다가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생선용 칼을 잡는 것은 금지된 일이어서 붉은 토마토나 노란 파프리카를 저몄다. 조도가 낮은 조명과 상앗빛 조리대, 나무통 속에서 시큼한 향을 풍기는 밥. 찬물에 담갔다가 뺀 붉은 손으로 만지작거리던 흰 밥알. 저릿하면서도 따뜻한 감촉을 슈는 좋아했다. 여섯 달이 흐른 후 셰프는 슈에게 생선 살 바르는 법을 손수 가르쳤다. 슈의 이름을 건 스시가 정식 메뉴로 나가게 된 날, 디너 시간이 끝나갈 무렵에 셰프는 슈를 데리고 레스토랑 내부로 나갔다. 슈의 스시를 주문한 테이블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슈를 소개했다. 모든 이들이 슈의 데뷔를 축하해주었다. 마지막 테이블에서 슈는 낙타 가죽 주머니를 가지고 다니는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갈색 면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는 평범한 외모였지만 한눈에 띄는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긴 다리를 테이블 밑으로 쭉 뻗고 앉아 있는 태도는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초로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묶은 머리카락도 단정치 못했다. 뭐랄까, 레스토랑에 오는 비슷한 연령의 남자들은 그와 같은 차림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의 특별함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슈에게 말했다. 축하합니다. 잘 먹었어요. 훌륭합니다. 당신은 더 훌륭한 요리사가 될 겁니다.

   그날 슈를 따라 일본식 레스토랑에 갔다. 나는 낯선 도시에 혼자 있었고 여행 정보가 필요했고 친절한 여행자를 만났다. 슈는 자신을 요리사라고 소개했다. 주말에도 쉴 시간이 없는 형편이라서 2년에 한 번씩 긴 휴가를 받는다고 했다. 슈는 나보다 세 살이 많았고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고향에 살고 있다고 했다. 하나뿐인 누나는 고향 근처의 도시에서 전통 의상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일본 사람들은 영어를 잘 하는가 보다. 나는 영어를 잘 못 해. 슈가 자기 고향 친구는 아이러브유 외엔 한마디로 못한다는 농담을 했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자기 아버지는 아주 부자이고, 자신은 열다섯 살에 아버지에게 떠밀려 뉴질랜드로 유학을 다녀왔다고 덧붙였다. 부럽다고 말할 수도 그렇다고 안됐다고 말할 수도 없어서, 나는 먹고 있던 우동을 가리켰다. 맛있다. 정말 맛있다. 이거 진짜 맛있어.
   며칠 후 저녁으로 먹을 빵과 우유를 사러 나갔다가 나는 길을 잃었다. 해가 지고 나서야 먹다 남긴 빵을 들고 도미토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자기 침대에 누워 손바닥만 한 책을 보고 있던 슈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거리며 괜히 슈에게 다른 말을 걸었다. 무슨 책이 그렇게 작아? 시간과 공간에 관한 책. 슈가 대답했지만 나는 그 말을 알아들을 정신이 없었다. 뭐라고? 작은 앞표지에는 일본어로 된 제목이 적혀 있었다. 내가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글자였다. 이를테면 우리가 지금 이곳에 같이 있다는 사실 같은 거 말이야.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다른 곳에 따로 있을 수도 있다는 가정 같은 거. 슈의 말을 잘 듣지도 않았으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러웠다. 침대에 눕자 밑으로 푹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도미토리에 들어서기 전부터 울상을 짓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갑자기 슈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너 발에서 피나. 왼쪽 발가락을 적신 피가 먼지와 섞여 검붉게 굳어가고 있었다. 엄지발가락을 끼우는 싸구려 슬리퍼를 신고 나갔는데 발가락 사이가 찢어진 것도 모르고 헤맸던 것이다. 슈는 제 물건을 뒤져 연고와 반창고를 건넸다.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어린애처럼 훌쩍거리다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슈는 발가락이 나을 때까지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발의 불편은 견딜 만했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었다.

   나는 슈에 대한 생각을 멈추려고 노력했다. 아니, 일곱 개의 국적을 가진 슈가 아니라 나의 친구 슈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롤랑 슈이치로 반의 열아홉 살에 대해 상상했다. 슈는 끝나지 않는 여행을 할 것이다. 나는 슈에 대해 더 상상해야 했다. 슈는 어떻게 그토록 긴 여행을 시작하게 됐을까.

   실례가 아니라면 이걸 선물하고 싶군요. 남자의 손에는 밝은 황갈색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슈는 자신의 거절이 정중하게 보이길 바라며 고개를 저었다. 대단한 건 아니에요. 낙타 가죽 주머니입니다. 30년 전 인도를 떠나올 때부터 지금까지 지니고 다녔지요. 기다랗고 투박한 손가락에 쥐어진 주머니를 보다가 슈가 물었다. 인도에서 태어나셨나요? 남자가 빙그레 웃었다. 아닙니다. 나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에요. 인도는 내가 당신처럼 어린 나이일 때 처음으로 떠난 이국이지요. 그 뒤로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지냈어요. 당신이 젊은 요리사이기 때문에, 이 주머니에 무얼 넣으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기 때문에, 나의 긴 여행이 이 도시에서 끝나기 때문에, 주는 선물이에요. 주말에 나는 고향으로 갑니다. 슈는 선물을 받지 않았다. 그렇지만 남자의 말은 슈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슈는 로비 밖으로 사라지는 남자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흘 후 남자가 저녁을 먹으러 왔다. 슈는 직접 스시 접시를 들고 나갔다. 30년의 여행에 대해 더 듣고 싶어요. 남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일을 마친 슈가 약속한 술집에 들어섰다. 남자는 슈가 정말로 올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던 터라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놀랍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둥글고 작은 테이블에 앉아 슈와 남자는 대화를 나누었다. 습관인 듯 남자는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자신의 삶에 대해 말했다. 그가 살아온 나라마다 전혀 다른 상황들이 펼쳐졌다. 어떤 에피소드는 슈가 지나치는 바람으로도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에피소드가 이어질수록 남자의 머리가 점점 헝클어졌다. 남자는 종종 혼돈에 빠졌다고 했다. 혼돈의 흔적 같은 것들이 그의 육체와 정신에 차근차근 쌓이고 얽혔다. 어느 시점에 이르자 나조차도 정의할 수 없는 인간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뒤섞여버렸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지요. 남자가 말했다. 새벽이 깊어갔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그가 뒤섞인 인간이 될수록 슈에게는 그의 주변이 점점 넓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남자는 평생 네 남자를 사랑했노라고 말하며, 슈에게 하룻밤을 청했다. 두 사람은 남자가 묵고 있던 호텔로 갔다. 남자가 슈의 몸을 만지는 동안 슈는 남자의 몸에 패인 주름과 흉터 들을 만졌다. 날이 밝자 남자는 낙타 가죽 주머니를 남기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주머니 안에는 슈가 레스토랑에서 1년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지폐가 있었다. 슈는 궁금했다. 남자는 어째서 여행을 멈추려고 하는 걸까. 남자의 고향은 뒤섞인 인간이 살 수 있을 만큼 넓은 곳일까. 남자는 대체 어떤 사람이 된 걸까. 슈는 끝없는 여행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살려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낙타 가죽 주머니에 돈을 넣어가며 슈는 셰프에게 요리를 배웠다. 이년 후엔 배낭을 메고 다른 도시로 이주했다.

   첫 문장을 적었다. 낙타 가죽 주머니는 배낭 깊숙이 있었다. 다음 문장을 쓰기 위해 베이징에 있는 배고픈 슈를 상상하려고 했다. 공항버스에서 내린 슈가 어디에 있는지, 노점 앞에서 기름 솥 속 부풀어 오르는 밀가루 빵을 보고 있는 것인지, 고급 레스토랑에 앉아 메뉴판에서 전통 요리 목록을 읽고 있는 것인지, 상상하려고 했다.
   도무지 문장이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두 번째 문장을 떠올리다가 처음 문장까지 지워버렸다. 아침이 되도록 랩톱 앞에 앉아 있었지만 한 문장도 쓰지 못했다.
   그랬다. 내 머릿속을 채워가고 있는 건 소설 속의 슈가 아니라 실제의 슈였다.
   발가락이 거의 아물고 있었다. 원숭이가 사람만큼이나 많았던 사원을 다녀오면서 슈와 나는 오랫동안 걸었다. 목적지 없이 걷다 보니 네팔리만 살고 있는 동네에 들어와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아무도 우리에게 호객을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이름 모를 신을 모신 작은 사원들. 공동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고 머리를 감는 여인들. 붉고 푸르고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집들.
   슈와 나는 조그만 간판이 붙은 식당을 발견했다. 테이블이 하나였다. 요리는 주문을 받아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 놓은 열 가지 중에서 골라 먹어야 했다. 내 눈에는 열 가지 요리 모두 카레처럼 보였다. 그러나 주인은 하나하나 재료를 설명하고 다른 조리법을 말했다. 그중 하나를 짚으니 넓고 납작한 쇠 접시에 따뜻한 밥과 함께 담아주었다. 네모난 테이블에는 우리 말고도 손님 한 명이 더 있었는데, 그 남자는 주인과 합세해서 우리를 놀렸다. 현지인만 오는 곳이라 숟가락을 두지 않는다는 말에 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슈는 문제없다며 어느 손을 써야 하나 그들에게 물었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는지 그들은 실컷 웃다가 숟가락을 내주었다. 남자와 주인이 웃고 떠들며 식당 밖으로 나가자, 초록색 콩이 가득한 카레를 떠먹으며 슈가 말했다. 두유노디스워드? 디스이즈데스티니. 나는 내가 먹던 카레에서 초록색 콩을 골라내 슈에게 보여주었다. 예스, 디스이즈데스티니. 우리는 소리 내어 웃었다. 이국의 말들이 노랫가락처럼 문틈으로 들어왔다.
   슈가 나를 초대하겠다며 디지털카메라를 꺼냈다. 일본에 와. 너는 내 집에 머물 수 있어. 검정색 가죽 소파가 있는 방이었다. 한 남자가 소파에 앉아 처음 보는 물건을 입에 물고 있었다. 물담배야. 상체만 찍힌 남자는 돌덩이처럼 단단해보였고 덩치가 컸다. 내가 누구냐고 묻자 아이러브유만 할 줄 아는 자기 친구라고 했다. 두 다리가 없는 고향 친구라고. 친구는 두 다리가 없고 자신은 불알이 한쪽뿐이라고, 슈가 말했다.
   중학생 때 슈는 수영선수였다. 그때에도 슈의 아버지는 부자였고, 슈에게는 비싼 오토바이가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놀다가 사고가 났다. 슈가 병실에 누워 있는데도 슈의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냈고 유학준비를 서둘렀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친구가 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슈는 제 몸만큼 커다란 배낭을 지고 쫓겨나듯이 뉴질랜드로 갔다. 열다섯 살이었다. 외로웠다고 했다. 같은 보딩하우스에 머물던 한국 여학생이 없었다면 어떻게 견뎠을지 모를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4년을 지냈다. 4년 후 아버지가 슈를 불렀고 슈는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많은 사업체 중 레스토랑 하나를 슈에게 맡겼다. 슈가 태어난 기념으로 문을 연 레스토랑이었다. 슈는 지금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났고 아버지는 늙었고 지금은 병에 걸렸고 힘이 다 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아버지가 두렵다고 했다.
   네팔리들의 긴 골목을 빠져나오며 우리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 말하기 어려운 것들. 슈의 검정 스웨터에 묻은 흰 얼룩. 내 왼쪽 어깨에 남아 있는 동전만 한 흉터. 작은 구멍 속으로 빠져버린 비밀 같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며칠을 지내다가, 곧 다시 만나자 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예정대로 슈는 인도로 떠났고 나는 방콕행 비행기를 탔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슈에게 소포를 받았다. 몸체가 분홍색 가죽으로 되어있고 가죽 가운데 붉은 보석이 박힌 볼펜이었다. 무엇이든 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던 시기였다. 통장에는 몇십 만원이 다였지만 오래지 않아 가벼운 랩톱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금방 두 번째 배낭여행을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일본을 여행지로 삼았더랬다. 순전히 슈 때문이었다. 한국적인 선물의 목록을 만들었다. 정말이지 나는 곧 일본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곧 슈에게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작은 기념품 하나 주지 못했다.

   이메일을 찾았다. 마지막으로 슈에게 이메일을 받은 건 5개월 전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하우아유, 로 시작하는 안부 메일이었다. 잘 지내느냐, 보고 싶다, 나는 아주 바쁘지만 네가 여기에 온다면 널 위해 우동을 끓여줄 것이다. 내가 보낸 답장은 없었다. 보내야지 하면서 사실은 귀찮아서 답장을 보내지 않았었다. 나는 회신 버튼을 눌렀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하우아유, 라고 썼다. 그리고 아이미쓰유, 라고 적었다. 슈의 메일 주소를 적고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종이비행기 아이콘이 생겼다가 없어졌다.
   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예 신호음이 울리지 않았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엇에 대해 억울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슈가 무사한 것인지 알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알기에는 슈와 내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지냈다. 나는 슈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기껏해야 이름과 거주지의 주소, 가족 관계, 휴대폰 번호와 이메일 주소가 다였다. 그것들로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슈에 대해 기억하는 것들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슈에 대해 상상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소설 문서를 열고 롤랑 슈이치로 반이라는 제목을 지웠다. 대신 내게 남아 있는 슈에 대해 적어 내려갔다. 그럴 도리밖에는 없었다.

   <슈에 대한 모든 것>

   일본 사람. 남자. 이름은 오우에 슈이치로. 너는 자신을 슈라고 부르게 했다. 너는 펍 레스토랑의 사장이자 요리사이고 때문에 매일 바쁘다고 했다. 레스토랑의 간판은 봇짱. 휴일 없이 문을 여는 봇짱에서 네가 즐겨하는 요리는 전통적인 일본식 요리.
   뭐든 만들 수 있어. 그렇지만 손님들이 주로 주문하는 건.
   네가 트레디셔널이라고 했을 때, 그건 아마도 모리오카식 요리. 일본에 가본 적이 없는 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 하는 모양으로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동을 만들어줄게. 언젠가 네가 일본에 온다면.
   진짜로?
   네가 사는 곳은 혼슈섬의 이와테현, 그 중에서도 모리오카시. 산이 많고 눈이 많다. 예전부터 많았다. 그러니 겨울에 오는 게 좋겠다, 고 너에게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태평양이 가까우니까 여름도 좋을 거라고 했다. 그 말도 기억한다.
   너는 덧니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다. 너의 왼쪽 입술 너머로 보이는 뾰족한 덧니. 둥근 얼굴형. 끝이 둥그런 코. 양쪽으로 길게 뻗은 눈. 오른쪽 턱 밑, 거기가 아니라면 왼쪽 턱밑에 붙은 깨알만 한 점. 헝클어진 짧은 머리카락.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습관.
   너는 우동을 좋아하잖아.
   슈의 전통적인 우동이 먹고 싶어, 진짜로.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네가 많이 하는 말은 땡큐. 그리고 쏘리.
   디지털카메라 속에 있던 너의 레스토랑 간판. 레스토랑에서 몇십 발자국 떨어져 있다는 집. 소파에 앉아 물담배를 피우던 친구. 나는 그 남자를 보고 슬프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남자의 얼굴이나 이름은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물담배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언젠가 네가 일본에 온다면, 이것 모두를 줄게. 모든 것은 프리다.
   진짜로?
   너는 봇짱에서 마음껏 먹을 수 있고, 내 집에서 마음껏 지낼 수 있어. 그래도 너에겐 모든 것이 프리.
   진짜로, 진짜로?
   우리는 함께 웃었다. 공짜. 아니면 자유. 만약이 아니라 언젠가.
   우리가 처음 만난 건 2007년.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은 전부 합쳐 한 달 남짓.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건 2009년 가을 대한민국 한복판. 세 시간 삼십 분.
   너의 검정색 스웨터. 스웨터에 묻은 얼룩.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고 다니던 포켓북. 붉은 끈이 달린 등산화. 찌그러진 배낭.
   네가 사랑했던 한국 여자. 한 개 남은 불알. 병든 아버지. 봇짱의 요리사가 되기는 싫었다는 너. 너와 내가 함께 보았던 네팔의 풍경들.


   한동안 무기력한 상태로 지냈다. 학원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 뉴스를 보았다. 가능한 만큼 볼륨을 내리고 보았다. 새벽이었고, 많이 본 화면이었고, 게다가 조카가 깨면 곤란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기 전에는 이메일을 확인했다. 휴대폰이 울렸을 때에도 랩톱 앞에서 수신 미확인 이메일을 보고 있었다. 나는 약간 긴장한 채로 목소리를 낮춰 전화를 받았다.
   -잘 돼가니?
   언니의 목소리는 물속에 잠긴 것처럼 축축했다. 나는 언니가 술을 마셨을 거라고 생각했다.
   -술 마셨어?
   -아니.
   자다가 깼거나 어쩌면 울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내 목소리도 언니에게 그렇게 들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이니까. 모든 소리가 물에 잠긴 것처럼 낮아진 새벽이니까.
   -언니는 별일 없어?
   -사람들이 내 시를 읽어줄까. 읽는 사람이 있을까.
   출간된 시집 얘기였다. 나는 언니의 사인이 담긴 시집을 다섯 권 가지고 있었다. 함께 술을 마실 때마다 내게 준 것들이었다. 그 시집이 나오는 데 8년이나 걸린 이유를 나는 잘 몰랐다.
   -누군가 읽을 거야.
   -누군가? 그동안 내 시를 몇 명이나 읽었게? 내 애인은 읽었을 것 같아?
   언니는 작게 낄낄거렸다. 그러다 나에게 물었다.
   -소설은?
   -못 쓸 것 같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언니는 말이 없었다. 몇 초가 지났을 뿐인데 애초에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전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쓸 거지?
   대답 대신 나는 이메일 창을 껐다. 소설 폴더로 들어가 슈, 라는 제목의 문서를 열었다. 거기엔 슈에 대한 모든 것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첫 줄부터 지우기 시작했다. 슈의 나라와 이름과 직업이 가장 먼저 사라졌다.
   -롤랑 슈이치로 반은 못 쓸 거 같아.
   -다른 제목도 하나 더 있다고 하지 않았나?
   -슈에 대해서도 쓸 수 없을 것 같아.
   -왜 못 써?
   마지막으로 슈를 만난 건 2009년 9월이었다. 슈가 한국으로 왔다. 높고 낡은 배낭을 메고 공항버스에서 내렸다. 헝클어진 머리는 전과 같았지만 체중이 불어난 것처럼 보였다. 2년 만에 받은 긴 휴가라고 했다. 슈에게 삼겹살을 사주고 커피를 얻어 마시고 공원을 걸었다. 공원 입구와 가까운 벤치에 앉아 잠깐 얘기를 했다. 일상적인 얘기를 하다가, 나는 일어섰다. 학원에 출근해야 할 시간이었다. 미안하다고, 일을 해야 한다고 나는 말했다. 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동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며 슈가 주말에 아부다비행 비행기를 탄다고 말했다. 나는 또 만나자고 하면서도 날마다 학원에 가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슈는 다 알았을 것이다.
   그때 나는 슈에게 무얼 주고 싶어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전통적인 우동과 이와테현이 사라졌다. 슈의 입과 코와 눈도 차례로 사라졌다. 사소한 습관들은 잘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거기서 잠깐 멈췄다. 그러나 정말로 잠깐이었고 그다음엔 모든 것이 재빨리 없어졌다.
   -언니.
   -응.
   -해일에 휩쓸려간 것들 말이야, 어떻게 되는 걸까.
   -하와이 해변에서 발견된 유리병이 3년 전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환타 병이었다는 기사, 본 적 있는데.
   이 언니가 농담을 하는구나 싶어, 나는 웃으려고 했다. 소리를 낮춰 낄낄거리려고 했다. 그렇지만 슈의 스웨터에 이어 슈의 비밀들까지 사라질 때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는 걸 어쩌지 못했다. 그러나 혹시 몰랐다. 3년쯤 뒤에는 쓸 수 있게 되려는지도. 모든 것들이 사라진대도. 내가 기억할 수밖에 없는 슈에 대하여.

정채진

몇 줄 문장으로는 전달되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누군가 그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하면 딱히 반박할 수도 없는, 지칭할 수 있는 단어를 찾기 어려운 무엇입니다. 제가 그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어느새, 이상한 덩어리가 우리 앞에 놓여있기를 바랍니다.

2018/08/28
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