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비통한 생각에 잠깁니다. 도로 한가운데에서 해일을 피해 도주하다가 결국 따라잡히는 상상, 물고기들이 부모님의 입에 마구잡이로 처박히는 상상, 물길을 헤쳐가며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상상…… 마침내 숨통이 트일 듯한 기분에 아래를 보면 아스팔트에 덩그러니 남은 것은 제 다리 하나뿐이고 해일은 부모님을 삼키고 썰물처럼 스멀스멀 멀어지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것은 저뿐입니다. 잘살아 보겠다고 살아남은 것은 저 하나뿐입니다. 휴일에는 대체로 그런 상상을 하며 거리를 걷고 카페에 들어가 잘 조리된 만 육천오백 원짜리 달걀을 먹습니다. 반달형으로 곱게 접힌 달걀 위에 살사소스가 얹어져 나옵니다. 같이 나온 수제 소시지와 새싹 샐러드까지 곁들여 먹으면 제법 포만감이 듭니다. 사실 만 육천오백 원이나 주고 먹을 만한 달걀 요리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카페 안에서 흐르는 감미로운 곡조와 따뜻한 느낌을 주는 목제 인테리어, 햇빛이 잔뜩 들어차는 통창에 비친 저를 보노라면 나름 제값은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달걀은 이 비통한 상상을 멈추게끔 하는 효능이 있는 셈입니다. 필수 아미노산, 칼슘, 비타민, 철분, 뭐 이런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제 몸에 좋으면 얼마나 좋다고. 진짜 제게 좋은 것은 열두 살 때부터 저를 둘러싸던 바래진 회색 벽지를 벗어나고 늘 마루 절반에 못 미치던 태양 광선을 벗어나고 전날 먹다 남은 밥으로 김치볶음밥이나 해 먹자는 엄마의 태평한 낯짝을 벗어나서 이렇게 품위 있는 달걀 요리를 먹는 것입니다. 간혹 이 돈이면 커피가 몇 잔일까 계산하게 되지만 며칠 정도 탕비실 커피를 마시면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니 주제넘게 소비한 건 아닙니다. 잘살아 보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오랜만에 동생이 지방에서 올라왔습니다. 엄마는 일주일 전부터 저를 닦달했습니다. 어디 괜찮은 곳 없니. 오랜만에 동생도 오는데 좋은 식당 있으면 한번 알아봐. 맨날 네 친구랑 다니는 데 있잖아, 그런 데처럼. 오일로 피부 화장을 녹이며 곰곰이 상상했습니다. 한글로 되어있어도 무슨 음식인지 모를 메뉴판을 마주할 우리 가족, 거기서 열심히 설명하다가 그나마 담백할 음식을 고를 나, 그렇게 신중하게 고른 음식이 나왔어도 먹다가 나직하게 ‘너희는 이런 게 맛있니? 라고 물을 부모님. 억센 손길로 세수를 해도 상상이 멈추지 않아 축축한 얼굴 그대로 거울을 바라보았습니다. 해가 지날수록 엄마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발견이 어떤 때는 괴롭고 어떤 때는 기쁩니다. 오늘 같은 날은 영 좋지 않습니다. 턱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손등으로 훔치고 욕실을 나왔습니다. 어쨌든 이후에 엄마가 말한 ‘그런 데’를 찾아 예약 문의를 여기저기 남겨보았으나 연말이라 그런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별수 없어. 전날 신중히 발톱을 깎고 있던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원래 이맘때는 한 달 전에 예약해야 해. 사람들이 얼마나 발 빠른지 알아? 그냥 집에서 밥이나 먹자. 오랜만에 삼겹살 사다가 구워 먹으면 좋잖아. 엄마가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너는 항상 이런 식이더라.
   또독, 또독, 또독.
   우리가 가자고 하면 또 귀찮지?
   또똑, 또독, 또독.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습니다. 쓸데없이 솔직해질 필요는 없기에 살살 구슬리며 말했습니다. 아니, 생각해봐. 별수 없잖아. 이미 예약이 다 찼다는데 어떡해. 다음에 미리 말해주면 더 좋은 곳 알아볼게. 엄마가 발톱을 모으며 말했습니다. 그것도 시간이 맞아야 가는 거지. 발톱을 버리느라 잠시 굽어진 등이 얄미워서 입술을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쩌라고.
   다음날 동생을 역에서 태우고 늦은 점심을 위해 일산 외곽에 있는 갈빗집으로 갔습니다. 소갈비와 돼지갈비를 두루두루 주문하고 반찬으로 나오는 샐러드를 두 번 리필했습니다. 절인 양파와 고기 두 점을 상추에 올리며 우리 가족은 김장김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동생은 이번 김치가 맛이 들수록 별로라고 말했고, 엄마는 네 집으로 보낸 건 우리집 김치가 아니라 고모네 김치라고 말했습니다. 아빠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아니, 지금 우리집 냉장고에 두고 먹는 김치가 작은 누나네 김치 아니야? 그사이 불판이 새것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우리는 잠시 침묵했고 엄마는 입을 달싹거렸습니다. 저는 상추 위로 구운 마늘과 고기 한 점을 올리며 말했습니다. 내가 알아. 우리집에 있는 김치가 고모네 김치고 연주한테 보낸 김치가 우리집 김치야. 연주 말이 맞아. 이번 김장김치는 망했어. 말을 끝내자마자 입에 쌈을 넣고 꼭꼭 씹었습니다. 엄마는 입을 달싹이다 말고 샐러드를 집으며 ‘아닌데. 아닐 텐데. 이상하네.’라며 연신 중얼거렸습니다. 저는 이 모든 상황이 고리타분해서 진력납니다. 우리 가족은 매번 이런 식입니다. 대화에서 마늘 냄새가 나는 것만 같습니다. 꼭꼭 씹던 입 운동을 멈추고 코를 한 번 훌쩍였습니다. 뭐야, 진짜 나는데? 아, 내가 씹고 있던가.
   이왕 바깥에 나온 김에 어디라도 들렀다 가자는 동생의 말에 우리는 후식으로 나온 쌀과자를 씹으며 다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빠의 눈엔 이미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지만 별다른 말없이 자판기 커피를 홀짝였습니다. 데이트 장소를 추천해주는 앱을 켜서 주변에 갈 만한 곳을 찾다가 전시회 정보를 봤고, 저는 그곳이 영화관에 가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오늘 같은 날이 부모님에겐 달걀 요리를 먹는 하루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하여 저는 다시 상상했습니다. 하얀 석재 건물로 들어서는 우리 가족, 전시관에 들어가기 전에 적막을 두르고 숨을 죽이는 나, 천천히 작품을 살펴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면 목조 같은 얼굴로 감상에 빠져있을 엄마와 아빠. 그들을 보며 저는 생각에 빠집니다. 관조하는 시선 속에 엄마와 아빠가 무엇을 감각하고 있을지 가늠하면서, 그러니까 이런 곳이야말로 제가 열렬해지는 곳이므로, 잘살아 보고 싶을 때마다 달려오는 곳이므로, 그들의 감상이 무척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를지도 모릅니다. 일 인분에 만 팔천 원하는 갈빗집에서 오갔던 김장김치에 대한 논의와 견줄 수 없는 대화를 기대하면서, 그러면서 오래도록 부모님의 관조하는 얼굴을 바라보다 오는 겁니다.
   미술관은 생각보다 멀었습니다. 차 안에서 잠시 졸았습니다. 눈을 떠보니 창밖으로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바깥에는 울코트(혹은 무스탕)를 입은 젊은 여성들과 남성들이 가로수 사이를 걸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서러워 보이고 어떤 이는 경쾌해 보여서 연말이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유독 이맘때면 사람들의 표정이 대비되는 게 보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곧 새로이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홀가분함에 사무치는 부류도 더러 있겠지만, 저와 같은 부류는 하염없이 비통해지기 쉽습니다. 올해도 아무것도 해낸 게 없다는 죄악감은 주변에 대한 부채감으로 변질되어서 어쨌든 또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압도되기 때문입니다.
   또 살아남아야 한다는 게, 또, 또. 염병할, 그놈의 또.

   “얘, 승주야. 내리지 않고 뭐해.”
   “언니, 내려. 이상한 생각 그만하고.”
   “이상한 생각 안 했어.”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차, 싶었습니다. 시작부터 예상과 달랐습니다. 차가 있으니 지하 주차장에서 곧바로 로비로 올라간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동생이 자리에 멈춘 저를 흘겨보며 지나갔습니다. 제 상상대로라면 눈발을 맞으며 이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하얀 석재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야 하는 건데. 그랬어야 하는 건데. 벌써 무언가 어긋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동생이 잔뜩 심각해진 제 이마를 밀었습니다. 표정 왜 그래. 되게 웃겨. 농담할 기분이 아니어서 웃지도 못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쪽에 기댄 아빠의 얼굴은 이미 권태로웠습니다.
   로비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오는 길에 예매해뒀던 입장권의 큐알 코드를 보여주고 바로 전시관으로 내려갔습니다. 총 여섯 개의 전시관을 관람하는 코스였습니다. 아빠가 거침없는 걸음으로 먼저 첫 번째 전시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입구를 막고 있는 하얀 휘장을 걷으며 숨을 삼켰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한쪽 벽면을 채우는 거대한 스크린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여자의 접사 촬영된 얼굴이 내레이션과 함께 비치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서거나 앉아서 그 영상을 관람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거대한 스크린을 그들과 함께 올려다보며 반대쪽 벽에 등을 기대었습니다.
   여자의 거친 피부결과 밝은 갈색 눈동자, 뭉툭한 쇄골과 주름진 목, 귓등 바로 뒤에 생긴 쥐젖과 붉은 반점이 새겨진 이마, 하얗게 각질이 일어난 종아리와 마디 하나가 전부인 새끼손가락까지. 여자의 신체 곳곳이 천천히 스크린에 상영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감상하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가만히 지켜보기도 하고 눈을 감고 여자의 내레이션에 귀를 기울여보기도 했습니다. 미술관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챙겼던 팸플릿을 펼치면서 첫 번째 전시관의 작가가 누구인지, 이 작품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꼼꼼하게 살펴 읽었습니다.

   “엄마도 얼마 전에 쥐젖 생겨서 싹 뺐잖아, 날 잡아서.”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엄마가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저거 놔두면 커진다. 너도 있으면 바로 가. 나름 진지한 충고였지만 대답하기 싫어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엄마는 다시 뒤로 등을 젖히고 스크린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빠는 보이지 않았고 동생은 입구 쪽에서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울코트(혹은 무스탕이거나)를 입은 젊은 여성들과 남성들은 카메라를 켜고 사진을 찍거나 자리를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이 묘하게 안심이 되어 속삭였습니다. 우리도 그만 나가자. 엄마는 미련도 없는 얼굴로 휘장을 걷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첫 번째 전시관을 벗어나 두 번째로, 두 번째 전시관을 벗어나 세 번째로, 세 번째 전시관을 벗어나 네 번째로 향했습니다. 전시관 하나를 둘러보는 데 오 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I will alive’라고 적힌 설치 작품 앞에서 네 개의 얼굴을 빼곡하게 맞대고 셀카를 찍기도 했지만 내키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다음 전시관으로 넘어갈 때마다 걸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지나가면서 언뜻 본 유리창에는 제 얼굴이 불투명하게 뭉그러져서 고약한 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따라오는 가족들의 얼굴도 저와 다를 바는 없었습니다. 차라리 이번 전시관이 마지막이라면 좋으련만. 아직 둘러봐야 할 곳이 이곳을 포함하여 세 곳이나 남았다는 사실이 괴로웠습니다. 이런 것을 원한 게 아니었는데. 저는 그저 잘 조리된 달걀 요리를 먹는 하루 같은 날을 원했습니다. 스파이더맨이 개봉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VOD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까. 아니, 정말 그렇잖아요? 분명히 지난주에 엄마가 말했습니다. 화장실 문기둥에 기대어 오일로 얼굴을 문지르는 저를 보며 ‘그런 데’ 좀 가자고 말했습니다. 남색 체크 목도리를 두르고 울코트를 입고 긴 부츠를 신은 제가 휴일마다 달걀 요리를 먹기 위해 가는 성수동 일대를, 엄마는 분명 데려가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영화관을 데려갔지. 그냥 스파이더맨이 빌딩에 딱 붙어서 투명한 거미줄이나 뿌리는 것을 보고 왔지. 무엇 하나 상상대로 흘러가는 게 없었습니다.
   이번 전시관에서는 긴 벤치형의 의자가 홀 가운데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곳에 듬성듬성 앉아 있는 사람들이 피로한 얼굴로 핸드폰을 하거나 작품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입구부터 천천히 돌면서 작품들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벽에 새겨진 해설을 한참을 읽다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아무도 제 주변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둘러볼 필요도 없이 벤치로 걸어가 예상대로 앉아 있는 그들의 곁에 앉았습니다. 아빠가 다리를 꼬고 눈을 굼뜨게 깜박이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제게 깍지를 끼고 손등을 부드럽게 쓸며 물었습니다.

   “너는 이런 게 재밌니?”

   맥빠지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상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던져질 질문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항상 이런 식입니다. 너는 이런 게 좋니? 너는 이런 게 즐거워? 너는 이런 게 맛있어? 저의 경험으로 어른들을 끌어들일 때마다 듣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울컥하는 마음으로 따지고 싶습니다. 다 같이 잘 좀 살아보자고 데려왔지. 저라고 매번 즐겁지만은 않은데요. 저도 달에 이 주는 탕비실에 있는 싸구려 블랙커피 물에 녹이면서 살아요. 저도 여자 유방을 가지고 아직도 외설이니 예술이니 따지려 드는 작품 보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아요. 그런데 다들 이렇게 사니까. 격조라는 게 별거 있나요.
   하지만 저는 이번에도 인중만 긁었습니다.

   “우리 이제 다 봤어?”
   “좀 남았는데 그냥 가도 돼.”
   “그럼 그냥 가자. 네 아빠 봐. 졸잖아.”

   그새 아빠의 정수리가 좌우로 획을 긋고 있었습니다. 무안한 마음이 앞서서 저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다들 눈을 멀쩡히 뜨고 있었으나, 아무도 우리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팽창하도록 설계된 공간에서 오래도록 방치된 사람들 같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건조된 먹태처럼 거무튀튀한 안색으로 작품을 보고 있었고, 어떤 젊은 커플은 클림트의 <키스>처럼 서로에게 애틋한 자세로 몸을 맞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승주야.”

   길게 빼놓고 있던 목을 도로 돌렸습니다.

   “우리집 김치 이번에 그렇게 별로니?”
   “갑자기 무슨 또 김치 이야기야.”
   “아니, 생각해보니까 웃기잖아. 분명히 저번달만 해도 우리집 김치 너무 맛있다고 노래를 부르던 애가 느닷없이 올해 김장김치가 망했다고 하니까.”
   “맛이 들수록 이상해지는 건 맞아. 저번에 그래서 꺼내먹으려다가 고모네 김치 꺼낸 거잖아.”
   “그 김치 네가 꺼냈어? 아유,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분명히 나는 우리 김치 꺼내뒀는데, 네 아빠하고 네가 그 소리를 하니까.”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작년보다 별로긴 해도 막상 먹으면 먹게 되어있어.”

   엄마가 번뜩이는 시늉으로 제 손등을 때리며 입을 반쯤 벌렸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작년보다 젓갈을 좀 많이 넣긴 했어.”
   “어쩐지 비리더라.”
   “네 할머니가 옆에서 계속 젓갈 더 넣으라고 그래서. 아유, 내가 그만 넣어도 될 것 같다고 했는데도 그러시니까 긴가민가했지.”

   우리는 잠시 침묵했습니다. 눈앞에 놓인 하얀 석고상 하나를 나란히 응시했습니다. 몸을 최대한 움츠린 채 얼굴을 감싸쥐고 있는 형상의 그가 잠시 파랗게 되었습니다. 아니다. 노랗게 되었습니다. 아, 그것도 아니다. 이번엔 검은색이었습니다. 엄마는 그 석고상을 진중한 눈으로 한참이나 관조했습니다. 저는 그제야 앞서 했던 상상대로 엄마의 이목구비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싱싱했습니다. 뽀로통한 입술과 찡긋대는 콧등과 연신 솟다가 꺼지기를 반복하는 미간이 아가미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더 자세히 비유하자면 파도에 떠밀려 모래사장을 뒹구는 물고기의 아가미라고 해야 하나. 죽음을 예감했을 때 팔딱대는 흉통 같은 것. 지난 수십 년간 악착같이 지켜온 생기가 기어코 얇은 두 뺨의 붉은빛으로 유출된 듯한 그런 생기 말입니다. 그 생기를 매달고 엄마는 대체 어떤 상상에 뒤덮여 있는 걸까요. 그의 상상 속에서 우리는 어떤 역할로 생존하고 있을까요. 비통한 상상은 저로도 족하니 그의 상상은 오래도록 즐거운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빳빳했던 심중이 그렇게 한창 눅눅해질 때쯤 엄마가 쯥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달싹였습니다.

   “젓갈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
   “뭐라고?”
   “김치말이야. 생각해보니까 설탕을 너무 넣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됐다, 됐어.”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뒤도 안 돌아보고 걸었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뒤에서 엄마가 아빠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저씨, 일어나요.”

   안 봐도 뻔합니다. 끔벅. 아빠의 늘어난 눈언저리 가죽이 가늘게 떨릴 겁니다.

   “이제 가자고.”

   엄마의 말에 아빠가 주섬주섬 일어나 바지를 한 번 추켜올리면 엄마는 민망하다며 등을 한 번 밀겠죠. 안 봐도 당연합니다. 그게 저희가 살아온 방식입니다. 오늘의 전시는 이만 보는 게 좋겠습니다. 정말 그게 낫겠습니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로 나왔습니다. 빨갛고 하얀 불빛들이 가득했습니다. 어느새 푸른 저녁이었습니다. 차의 속도는 인도에서 걷는 사람들의 보폭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습니다. 아까처럼 눈발이나 흩날리면 좋으련만. 갑갑한 기분에 창문을 열고 잠시 바람을 쐬었습니다. 울코트를 입은 제 또래들이 횡단보도 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어딘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아주 세찬 걸음이었습니다.

   “나 저 앞에서 내려줘. 친구 만났다가 들어가게.”

   엄마는 차에 구비된 자일리톨 껌을 씹으며 그렇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잠시 뒤에 차가 멈췄습니다. 저는 문을 열자마자 달렸습니다. 제 또래들이 서 있는 횡단보도를 향해서 거침없이 달려갔습니다. 오늘 같은 날의 비통한 상상은 평소보다 훨씬 거대하고 외로울 예정입니다. 옆으로 따라붙은 여자와 남자도 그런 제 예감에 동의하는지 같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갈색과 검은색과 아이보리색의 울코트가 인도를 빼곡하게 채운 채 펄럭였습니다. 우리는 저 멀리 빌딩 사이로 거센 해일이 덮쳐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 둘, 셋, 넷…… 세기도 어려운 해일이 사방에서 덮쳐올 것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서로 엉겨붙어 달렸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중얼거렸습니다. 잘살아보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잘살아보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잘살아보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남궁지혜

제 생각이 심해처럼 그윽해질 때마다 누군가와 엉겨붙어서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래도 저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 그런가 봐요. 저는 제 세대에게서 간혹 애틋함을 느낍니다. 잘살아보고 싶어서 썼습니다.

2022/01/25
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