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금에게는 몇 가지 취미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낚시였다. 거창하고 복잡한 장비 따위는 필요 없었다. 유금이 낚는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얇고 가벼운 13인치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사람을 낚을 수 있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얼마 전부터 노안 증상이 심해져 되도록 노트북을 이용해 취미 생활을 했다.
   평일 오전인데도 스타벅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유금은 창가 카운터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노트북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유금은 주로 스타벅스에서 낚시를 했다. 집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소규모 카페들을 이용한 적도 있었지만 테이블이 몇 개 되지 않는 그런 곳에서는 주인이나 아르바이트생이 유금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기분이 들어 불편했다. 두어 번 갔을 뿐인데도 그새 낯이 익었다고 붙임성 좋게 말을 붙여오는 것도 달갑지 않았고, 카페 점주의 지인들이 몰려와 몇 시간씩 죽치고 앉아 수다를 떨어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싫었다. 스타벅스는 넓고, 환하고, 시끄러웠으며, 유금을 알은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터넷의 바다에서 사람을 낚는 낚시꾼들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유금 또한 두 가지 방법을 이용해 낚시를 했다. 첫 번째 방법, 직접 글을 작성해서 올리기, 두 번째 방법, 댓글 달기. 전자가 약간의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면, 후자는 타인에 대한 심리적 이해를 필요로 했다. 지어낸 글로 얼마나 많은 논란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짧은 댓글로 얼마나 타인의 기분을 효율적으로 잡치게 만들 수 있는가, 이것이 낚시의 핵심 목표였다. 시간 대비 효율의 측면에서 보자면 후자 쪽이 더 나았고, 진정한 손맛은 전자 쪽에서 느낄 수 있었으므로 유금은 상황과 기분에 따라 적절히 방법을 바꾸어가며 낚시를 즐겼다.
   유금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익명 게시판에 막 올라온 글을 읽는 중이었다. 자신을 30대 후반의 미혼 여성이라고 밝힌 글쓴이는 옷차림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몇 년 사이 체중 100kg에 가까운 고도비만이 되었는데 무슨 옷을 어떻게 입고 다녀야 좋을지 모르겠으니 조언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글 밑에는 두 개 정도의 댓글이 달려있을 뿐이었다. 유금은 빠른 속도로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글에 댓글을 달아야 반응도 빨랐으므로 속도는 중요했다. ‘그 정도로 뚱뚱한데 뭘 입은들 어울리겠어요? 뭘 입어도 안 어울릴 테니 마음 편하게 아무거나 입고 다니세요. 살찐 사람들은 몸에서 안 좋은 냄새가 나는 경우가 많던데 샤워나 신경 써서 잘하시고요.’ 유금은 버튼을 클릭해 댓글을 올렸다. 댓글 말미에 글쓴이를 불쾌하게 만드는데 일조할 이모티콘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금이 낚시를 할 때 지키는 유일한 규칙이랄 게 하나 있다면, 비속어나 욕설은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건 너무 교양 없어 보이잖아, 유금은 생각했다. 게다가 비속어와 욕설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그런 방법으로는 상대를 상처 입힐 수 없었고, 댓글로 인해 비난을 받게 될 경우 시치미를 떼거나 자기변호를 하는데도 불리했다.
   댓글을 올리고 나서 유금은 주문한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얼굴을 알 수 없는 체중 100kg의 여자가 유금이 올린 댓글을 읽으며 잘 발효된 밀가루 반죽처럼 둥글게 부풀어 오른 뺨을 붉게 물들이는 모습을 상상했다. 유금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크림과 시럽을 잔뜩 올린 커피는 아직 따뜻했고, 늘 그렇듯 달콤했다.
   옆 좌석이 비자마자 누군가 곧바로 와서 자리를 채웠다. 노트북 사용자들이 많았으므로 콘센트가 붙어 있는 창가의 카운터 테이블은 언제나 만석이었다. 유금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부스럭거리는 사람을 흘깃 쳐다보았다.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것 같은 남자아이로 유금의 아들 또래였는데 근처 대학에 다니는 신입생인 듯했다. 남자아이는 백팩 안에서 노트북을 꺼내 펼쳤다. 노트북은 한눈에 봐도 두껍고 무거워 보였다. 아이는 워드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과제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유금은 자신의 노트북을 내려다보았다. 고급 사양의 최신형 모델인 얇고 가벼운 하얀색 노트북을.
   이 물건으로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유금은 이따금 생각했다. 낚시를 위한 글줄 따위를 써 갈기는 것 말고, 대학 시절 그랬던 것처럼 소설을 쓴다든지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유금은 S를 떠올렸다. S는 유금을 제치고 그해 대학 문학상에 소설이 당선된 독문학과 여학생이었다. 학보에 실린 심사평을 읽었을 때, 유금은 자신이 투고한 소설이 아깝게 당선을 비껴갔음을 알았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심심풀이 삼아 썼던 글이었다. 직업적 글쟁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전공은 문학과는 무관했으므로, 독문학과 재학생인 S가 당선된 것이 당연하다고도 생각했다. 과제물로 제출한 리포트를 제외한다면 누군가 유금이 쓴 글을 읽어준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유금은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그해 대학 문학상의 당락은 같은 학번의 동갑내기이자 졸업 예정자였던 두 사람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적어도 유금은 그렇게 생각했다. 대학 졸업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유금은 S의 이름을 신문지상에서 발견했다. S는 주목받는 신인 작가가 되어 있었다. 올챙이가 자라서 개구리가 되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은 아니겠지만, 대학 문학상을 받았고 이후로도 꾸준히 글을 썼을 S가 작가가 된 것은 꽤 자연스러운 일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이제 오십대로 접어든 S는 이름이 알려진 중견 문인이었다.
   괜찮았다, 유금이 젊었을 때에는. 자신의 앞에 놓인 삶의 행로를 걸어가는 데만도 바빴으므로 S를 떠올릴 겨를도 없었다. 그러나 얌전히 숨어있던 바이러스가 신체 면역력이 떨어지면 활동을 개시하듯이, 더 이상 젊지 않은 유금이 어디쯤에서부터인가 자신의 삶이 틀어져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S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S를 떠올릴 때마다 유금은 날카로운 물체가 심장을 휙 긁고 지나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죽을 만큼은 아니었지만 예리한 통증이었다. S의 인생, 그것은 유금의 것일 수도 있었다. 원래 자신의 몫이었던 운명적 기회를 S가 나타나 뻔뻔하게 가로채 가기라도 한 것처럼 유금은 분한 마음이 들었다.
   식품영양학이 전공이었던 유금은 졸업 전 응시한 영양사 국가고시에 가볍게 합격했다. 졸업 후 대기업에서 오 년가량 근무했고, 결혼을 하면서 그만두었다. 식단을 짜고 위생교육을 받는 것도, 식재를 발주하거나 재고조사를 하는 것도 모두 지겨워서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 일은 관뒀지만 영양사 면허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 유금은 그 애들을 먹이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정성을 다했다. 유기농 식재료를 사다 날랐고, 성장 발달에 필요한 영양분을 세심하게 고려한 식단을 짜서 아이들을 먹이고, 먹이고, 먹였다. 최선을 다해서 키웠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지?
   유금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조금 전 달아놓은 댓글 밑에 익명의 누군가가 유금에게 훈계조의 글투로 시비를 걸고 있었다. IP주소를 확인했다. 끝 번호가 187인 익명의 사용자. 언제나 입바른 소리를 해대는 바로 그 여자였다. 글쓴이가 필요로 하는 조언을 줄 수 없다면 댓글을 달지 말고 그냥 지나치라는 내용이었다. 거기까지였으면 유금도 굳이 대꾸를 더 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마지막 한 마디가 유금의 비위를 거슬렀다. 그렇게 살지 마세요. 얼굴이 뜨듯해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때문인지, 갱년기 증상 때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유금은 187의 댓글 밑에 반격을 위한 또 다른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의 일화가 말해주듯, 유금에게는 글재주라 할 만한 것이 있었다. 인생에 별다른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던 그 재능을 다시 꽃피우게 만들어 준 계기가 있었다. 유금 자신이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사고가 그 시발점이었다. 사 년 전, 유금의 아파트 근처 상가에 일식당이 생겼다. 개업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유금은 딸과 함께 그곳을 방문했다. 남편은 출장으로, 아들은 수학여행으로 동시에 집을 비운 날이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처럼 삼시 세끼에 간식거리까지 만들어대야 할 시기는 벗어났으므로 식사 준비가 귀찮을 때면 유금은 혼자서도 외식을 하곤 했다.
   일식당의 외관은 깔끔했고 내부도 젠 스타일로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다. 인테리어에 들인 돈만 해도 상당할 것처럼 보이는 업소였다. 종업원이 유금과 딸아이를 개별실로 안내했다. 널찍한 탓인지 실내는 조용했고, 종업원은 친절했다. 두 사람은 인당 7만 원의 코스 요리를 주문했다. 컵에서 희미하게 비린내가 났고, 튀김이 기대했던 것보다 덜 바삭했던 것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높은 점수를 줄만 한 음식점이었다. 문제는 그날 새벽에 발생했다. 구토와 함께 심한 복통과 설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두 시간 동안 열 번도 넘게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고 복통과 오한으로 몸을 떨던 유금과 유금의 딸은 결국 날이 밝기 전 택시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가야 했다. 식중독이었다. 딸은 비교적 증상이 경미했고 젊어서 그런지 회복이 빨랐지만, 유금은 염증 수치가 높아 나흘간 입원을 해야 했다.
   퇴원 후 유금은 일식당에 항의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택했다. 업주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고, 음식점에서 배상을 해준다 한들 화가 누그러들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금은 보건소에 신고를 했다. 공익을 위해서라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매일 접속하던 지역 기반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게시판의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자신이 일식당에서 겪은 일을 차분차분 써내려갔다. 유금이 쓴 글의 내용 중에서 사실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룻밤 사이에 많은 댓글이 달렸다. 유금만큼 심하지는 않았지만 그 식당을 이용한 뒤 비슷한 증상을 겪었다는 사람도 몇 명 나타났다. 종업원들이 매우 불친절한데다 화장실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었다는 댓글도 있었고, 인테리어만 그럴싸하지 가격에 비해 음식의 질이 형편없다는 댓글도 있었다. 본인이 이용했을 때에는 괜찮았다는 댓글들은 다수의 성토 분위기에 묻혀 힘을 얻지 못했다. 사흘 뒤에는 일식당의 업주라고 밝힌 사람이 글을 올렸다. 업주는 우선 정중히 사과했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기 전에 먼저 업소로 연락을 주지 않은 것은 유감이며, 만약 그랬더라면 필요한 조치와 함께 충분한 배상을 했을 것인데, 지금이라도 반드시 연락 주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글을 써놓았다.
   물론 유금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자신이 올린 글에 사람들이 이토록 관심을 갖고 호응을 해주는 것이 놀랍고 뿌듯했으므로 사태를 빨리 일단락 짓고 싶지 않았다. 당황한 업주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모종의 성취감에 도취된 유금은 비록 고생은 했지만 입원을 했던 일마저 보람차게 여겨졌다. 식탁에 앉아 병후 보식을 위해 만든 전복죽을 떠먹으며 유금은 많은 양의 댓글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다 읽었다. 쫄깃한 전복과 참기름에 볶은 고소한 쌀을 씹는 동안 유금은 잃어버렸던 식욕을 되찾았다.
   그로부터 반년 뒤, 일식당은 폐업을 했다. 출입구에 자물쇠와 체인이 걸리고 실내조명이 다 꺼져 어두컴컴하게 방치되었던 공간은 몇 달 후 스테이크 전문점이 되었다. 일식당이었던 스테이크 전문점 앞을 오갈 때마다 켕기는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크게 유금의 심금을 뒤흔든 것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인터넷 게시판에 쓴 글 하나로 식당 하나쯤은 폐업시킬 수도 있는 힘을 지닌 존재였던 것이다.

   유금은 재킷을 벗어 걸고 거울 앞에 섰다. 얼굴 정면과 측면을 번갈아 살펴보다가 손빗으로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 헤어숍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오십 만원에 가까운 가격을 치른 데다 네 시간이나 걸렸는데 결과물이 이따위라니. 유금은 짜증스러웠다. 주문한대로 헤어스타일이 나오지 않았고, 염색된 컬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예약을 하고 갔는데도 20분이나 유금을 기다리게 만들지 않았던가. 내가 만만한가? 단골인데도 이따위로 취급하다니, 동네 장사를 하면서 이러면 안 되지.
   자신이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상호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어디인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만들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웃는 낯으로 팁까지 넉넉하게 주고 나왔으니 불만을 가진 고객이 유금이라는 사실을 미용사는 짐작도 못 할 것이었다.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섞어서 게시판에 올릴 이야기를 적당히 조립하면 된다. 이런 경우에는 남자 문제를 조미료처럼 치면 댓글 수가 많아지기도 했다. 남성 고객들에게만 유난히 친절하게 군다, 남편을 데리고 갔더니 눈웃음을 치고 머리를 감겨줄 때 몸을 밀착시켜서 불쾌했다, 등등. 거짓이었지만, 같은 경험을 했다는 동조자와 목격자가 반드시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미용사는 조만간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고가의 스웨터를 망쳐놓고 오리발을 내밀던 세탁소 주인도, 유금을 향해 ‘아줌마’ 소리를 남발하던 제과점 주인도, 뭘 물어도 뚱한 표정으로 제대로 대꾸하는 법이 없던 치과의 간호사도, 미혼의 젊은 여자들에게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교습을 해주던 문화센터 수영 강사도 유금은 모두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다. 평판이 나빠진 업소들은 매출 하락으로 힘겨워하다가 오래지 않아 문을 닫았고, 간호사와 수영 강사는 바뀌었다. 그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본인이라고, 적어도 자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유금은 믿었다.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유금은 거실로 나왔다. 집에 있을 게 분명한데도 딸아이의 방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 밥도 안 먹고 자는지 점심때 식탁 위에 올려 둔 샌드위치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방학이 시작된 지 열흘이 넘었는데 낮밤을 뒤바꾸어 지내며 날이 저물 때까지 잠을 자고 있다니.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토플 학원이라도 다닐 텐데 취업 걱정은 하지도 않고 밤새도록 게임이나 해대는 딸이 유금은 지긋지긋했다. 보다 못해 야단을 치면 버릇없게 굴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꺼. 도대체 뭘 스스로 알아서 한다는 말인가? 딸아이가 서울 끄트머리에 있는 대학이라도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유금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해온 덕분이었다.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아이였다면, 임신을 했다고 실토하는 일 또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유금은 울먹이며 불안해하는 딸을 다독여 병원에 데리고 갔다. 일주일 동안 미역국을 끓여 먹였다. 남편 모르게 모든 일을 처리하느라 애를 먹었다.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런 일까지 하게 만들었으면서, 어째서 나한테 이렇게 함부로 굴 수 있는 거지? 유금을 무시하고 잉여 인간 취급을 하는 건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은 차갑고 이기적이었다. 그나마 제 누나하고는 비교할 수 없이 공부를 잘해서 의대에 진학해 준 덕분에 주변인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게 만든 존재이긴 했지만.
   유금은 딸아이의 방문을 마구 두드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식탁 앞에 앉았다. 식탁 맞은편 벽면에 벽시계가 걸려 있었다. 무소음 벽시계였지만 유금의 귀에는 초침 소리가 들렸다. 환청이라기에는 매우 선명했다. 귓가에서 재깍재깍 울리는 그 소리는 뭔가를 따져 물으며 유금을 질책하고 비난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있던 유금은 의자에 놓아둔 숄더백을 열어 노트북을 꺼냈다. 전원을 켜고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그 전에 잠깐 뭐라도 써서 올려야 기분 전환이 될 것 같았다. 익명게시판에 막 올라온 글 하나를 클릭했다. 자폐증인 다섯 살 남아를 키우고 있다는 여자가 올린 장문의 글이었다. 게시판의 팔 할을 차지하는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자기연민으로 가득 찬 글, 우울증을 호소하며, 처지를 비관하고, 징징거리며 신세 한탄을 해대는 내용이었다. 여자의 글 밑에 유금은 댓글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골똘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주시하며 손가락을 놀리는 사이 날이 저물고 있었다. 노트북 액정에서 흘러나오는 LED의 하얀 불빛은 어둑해진 실내에 홀로 앉아있는 유금을 비추는 유일한 광원이었다.

   남편이 딸아이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따귀를 후려쳤다. 한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기어이 사달이 났다. 밤늦은 시각 귀가한 남편이 딸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비상시에만 쓰라고 아이에게 건넨 신용카드의 사용 내역서에 게임제작사 이름으로 이백만 원이 넘는 금액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딸은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대신 말대꾸를 했고, 결국 남편의 손이 올라갔다. 고함을 치며 손찌검을 하는 남편을 뜯어말리려다 엉겁결에 팔꿈치로 눈두덩을 세게 얻어맞은 유금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물리적 고통 때문이 아니라 수치심 때문이었다. 손으로 눈을 감싸며 거실 바닥에 주저앉은 유금은 애원하듯 말했다.
   제발 목소리 좀 낮춰, 당신. 동네 창피해서 못 살겠어.
   이 모든 소동의 와중에도 유금의 아들은 거실 소파에 앉아 축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흐느껴 우는 딸, 천장을 바라보며 성난 얼굴로 씨근거리는 남편, 저 혼자 다른 세상인 양 텔레비전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아들. 평균적으로 3개월에 한 번씩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유금은 세 사람을 한데 묶어 거실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버리고 싶었다.
   이튿날이 되자 눈가의 멍은 더욱 짙어져 보라색이 되었다. 눈동자도 붉게 충혈되어 아무래도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유금은 오전 11시로 예정되어 있던 전시회 관람을 취소하고 병원에 갈 채비를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여자를 마주쳤다. 목줄을 채우지 않은 요크셔테리어가 여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개는 유금을 향해 낮게 으르릉거렸다. 한밤중에도 신경질적으로 짖어대 유금의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개였다. 여자는 목례를 한 뒤 유금의 얼굴을 흘끔거렸다. 비가 오는데 선글라스를 끼셨네. 여자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아, 결막염이 심해서요. 유금도 미소를 지었다. 품 안의 개가 언젠가 여자의 입이나 목덜미를 물어뜯기를 바라면서. 지난번 관리사무소를 통해 층간소음에 주의해달라는 인터폰을 받게 된 것도 저 여자 때문일 것이다. 이웃에 민폐 끼치는 개를 키우는 주제에 층간소음으로 민원을 넣다니. 날이면 날마다 소란을 벌이는 것도 아니잖은가. 사람이 살다보면 시끄러운 일도 더러 생길 수 있는 거지, 이 정도 문제없는 가정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다고. 게다가 저 여자는 내가 남편한테 구타를 당한다고 믿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유금은 다짐했다. 아래층 여자는 오늘 저녁 유금이 쓰게 될 글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글 속에서 아래층 여자는 경우 없고 몰염치한데다 타인의 사생활이나 염탐하는 이상성격자로 그려질 것이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어서인지 스타벅스 안은 한적했다. 유금은 며칠 전 서점에서 구입한 책을 꺼냈다. S의 신간 장편소설이었다. 왼쪽 책날개에 작가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유금은 안대를 하지 않은 오른쪽 눈으로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뒷짐을 지고 붉은 벽돌 담벼락을 배경으로 선 S는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러고 보면 S가 웃고 있는 사진은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유금은 깨달았다. 주문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책갈피를 끼워둔 부분을 찾아 책을 펼쳤다. 완독까지 이제 삼십여 페이지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지금까지 발간된 S의 저작들을, 유금은 단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모두 읽어왔다.
   딱 한 번 S를 실제로 본 적이 있었다. 학교 정문 근처에 있던 카페에서였다. 맞은편 자리에 홀로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단발머리의 여학생. 그 여학생이 S라는 것을 유금은 금세 알아보았다. S는 학보에서 보았던 사진에서처럼 화장기 없는 민낯이었고, 한물간 디자인의 블라우스와 청바지, 낡은 단화를 신고 있었다. 같은 과 동기들과 수다를 떠는 사이사이 유금은 S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해서 그녀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두 시간쯤 책을 읽던 S는 유금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갔다. 같은 과 동기였다 하더라도 말 한마디 섞고 지냈을 것 같지 않은 스타일이라고 유금은 생각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장을 덮었을 무렵에는 빗발이 오전보다 약해져 있었다. 유금은 잠시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노트북을 열었다.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접속한 뒤 검색창에 S의 소설 제목을 입력했다.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독자 서평은 아직 많지 않았다. S가 이름이 알려진 작가라고는 해도,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대형작가는 아닌 것이다. 유금은 독자 서평란에 S의 소설에 대한 감상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독자인 자신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으며, 전작의 자기복제에 지나지 않는 것 같고, 소설 속 그 어떤 인물에도 공감하기 힘들었으며, 후반으로 갈수록 밀도가 떨어져 독자를 지루하게 만든다고 썼다. 특히 인물은 평면적이고 사건 전개는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해 낡은 느낌을 준다고도 덧붙였다. 유금은 별점 두 개에 마킹을 했다. 오타가 없는지, 적확하지 못한 표현이나 잘못된 문장은 없는지 훑어보고 글을 올렸다. 누군가는 유금이 쓴 평을 읽고 책을 구입하려는 의사를 포기하기를 바라면서.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서평란을 들여다 볼 S가 상처입기를 바라면서.
   숙제라도 끝마친 듯한 홀가분한 마음으로 유금은 케이크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을 더 주문했다. 케이크를 조금씩 잘라 먹으며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순례하던 유금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데 셋째 아이를 임신해서 고민이라는 내용의 글을 발견했다. 고민이라고? 네 식구가 남편이 벌어오는 200만 원 남짓한 돈으로 살고 있다면서 그게 고민할 거리나 되는 일인가? 유금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욱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사람이 세상에 나면 저 먹을 것은 가지고 나온다는 속담을 들먹이거나, 신이 주신 귀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라는 무책임한 댓글들이 여러 개 달려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댓글을 남긴 사람들이야말로 자신보다 한층 레벨이 높은 악의를 가진 낚시꾼들이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길게 쓸 의욕을 잃은 유금은 딱 한 줄짜리 댓글을 남겼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보다 번식력 하나는 더 좋은 법이죠. 의도적으로 ‘번식력’이라는 표현을 골라 쓴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유금의 댓글에 발끈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중에 IP주소 187도 있었다. 도대체 뭐 하는 여자일까. 유금과 마찬가지로 187도 게시판에 거의 하루 종일 상주하는 것 같았다. 당신이 얼마나 불행한 사람일지 충분히 짐작은 갑니다만, 그래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세요. 187이 유금을 겨냥해 남긴 댓글이었다. 유금의 입에서 실소가 새어 나왔다. 187에게 대거리를 하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렸다. 유금의 얼굴이 점차 발갛게 달아올랐다.
   187과 한창 말다툼을 벌이던 중이었다. 갑자기 키보드의 글자들이 정상적으로 입력되지 않기 시작했다. 당황한 유금은 성마른 손놀림으로 난타하다시피 키보드를 계속 눌러댔다. 자음은 입력되는데 모음이 입력되지 않는 증상을 보이다가 곧 아무런 글자도 쓸 수 없게 되었다. 노트북을 재부팅 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저기, 죄송한데……
   유금이 노트북을 앞에 두고 낭패한 얼굴로 앉아있을 때, 카운터 테이블 옆 좌석에 앉아있던 여자아이가 말을 걸었다. 근처 대학의 재학생일 거였다. 앳된 얼굴의 여자아이는 말을 걸어놓고도 난처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더니 혹시 생리대가 있느냐고 물었다. 유금은 생리대를 갖고 있지 않았다. 폐경 진단을 받았던 것이다. 어쩌죠, 없는데. 유금의 답변을 듣고도 여자아이는 얼른 다른 방법을 강구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앉아 있기만 했다. 여자아이는 하필 흰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요. 상황을 파악한 유금은 자리에서 일어나 우산을 들고 스타벅스 매장을 나섰다. 횡단보도의 불이 녹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려 길 건너편 편의점을 향해 종종걸음을 쳤다.
   혹시 이것도 필요해요?
   검정색 비닐봉지에 담긴 생리대 패키지를 건네며 유금은 등받이에 걸쳐둔 자신의 여름용 카디건을 가리켜보였다. 여자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금이 건넨 카디건을 허리에 묶어 엉덩이를 가리고 여자아이는 매장 밖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잠시 후 돌아온 여자아이는 고개 숙여 인사하며 비닐 포장에 든 쿠키 꾸러미를 유금에게 건넸다. 안도한 표정이었다. 이런 거 안 줘도 괜찮은데. 유금은 흐릿하게 웃어 보였다. 여자아이가 허리에 두른 카디건을 벗어 돌려주려고 하자 유금은 만류했다. 아뇨, 그래도 어떻게…… 더는 폐를 끼칠 수 없다는 여자아이에게 유금은 말했다. 비싼 것도 아닌데, 뭐. 혹시 다음에 만나게 되면 돌려주든가요, 여기 자주 오니까. 여자아이는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고, 가방을 꾸려 매장을 나섰다. 유리창을 통해, 우산을 받쳐 들고 자신의 옷을 허리에 걸친 채 멀어져가는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유금은 한쪽 눈으로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아이의 뒷모습이 작아지고 작아져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유금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유리창에서 시선을 뗐다. 여자아이가 답례로 주고 간 비닐 포장 속의 쿠키들이 S의 신간 소설 표지 위에 얌전히 놓여 있는 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어째서인지 마음이 저릿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재부팅되어 빛을 발하는 모니터 앞에 퓨즈가 끊어져 불이 들어오지 않는 전구처럼 어두운 얼굴로 앉아있던 유금은 천천히 노트북을 닫았다.

   유금은 이른 아침부터 거실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읽던 책을 배 위에 올려두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화면의 글자들이 잘 보이지 않아 유금은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았다. 눈가의 멍이 옅어져 안대를 풀었지만 시력이 이전보다 나빠진 것 같았다. 노안이 더 진행된 탓인지도 몰랐다.
   노트북 수리를 맡긴 지 이틀이 지났다. 증상에 관한 유금의 설명을 듣고 노트북을 살펴보던 애프터서비스 센터 직원은 하드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으므로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락을 줄 테니 맡겨두고 가라는 소리에 유금은 빈손으로 애프터서비스 센터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외출도 했지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유금이 접속하지 않는 동안 저 넓은 인터넷의 바다에서 시끄럽게 벌어지고 있을 일들이 견딜 수 없이 궁금했다. 아쉬운 대로 스마트폰을 수시로 들여다보았으나, 보는 게 고작이었다. 스마트폰의 작은 키보드로는 긴 글을 쓰기 어려웠다. 오타가 너무 많이 났고, 눈도 금세 피로해졌다.
   왼손으로 스마트폰을 쥐고 오른손 검지를 사용하여 커뮤니티 익명게시판의 스크롤을 내리던 유금은 주의를 끄는 글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그 여자분인 것 같아요’라는 제목으로 한 시간 전에 누군가 올린 글이었다. 제목을 터치해서 별생각 없이 글을 읽어 내려가던 유금은 흠칫 놀라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유금이 배 위에 올려두고 있던 책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유금은 처음부터 다시 글을 읽었다. 얼마 전, 자폐증인 다섯 살 남자아이 혼자 키우고 계시다는 사연을 올렸던 여자분 말이에요. 아무래도 이 기사 속의 인물이 그분 같아요. 신상 정보가 매우 흡사하거든요. 남편과 별거 중이라는 상황도 똑같아요. 그때 너무 안쓰러워서 위로하는 댓글을 남겼었는데…… 글 밑에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신문기사가 링크되어 있었다. 유금은 기사를 읽었다. 오늘 새벽, 37세의 여성 A씨가 본인이 거주하는 25층 아파트 건물의 옥상에서 자폐증인 다섯 살 아들과 동반 투신을 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A씨와 아들 모두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경찰은 처지를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투신 배경과 경위를 알아보기 위해 별거 중인 남편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 중이라고 했다.
   아니, 그럴 리 없다. 동일인물이 아닐 것이다. 유금이 기억하기로 그 여자는 지방에 산다고 했었는데, 이 기사 속의 여자가 투신한 곳은 서울 강북구 소재의 아파트이지 않은가. 유금은 확인을 해보기 위해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으로 돌아갔다. 여자가 올렸던 글을 찾기 위해 검색어를 입력했다. 글이 발견되지 않았다. 검색어를 바꿔 넣어도 마찬가지였다. 당사자가 글을 삭제한 게 틀림없었다.
   지금은 삭제된 여자의 글 밑에 자신이 달았던 댓글의 내용을 분명하게 떠올려보려고 유금은 머릿속을 더듬었다. 긴 시간 무수히 끼적여 댔던 글들이 한데 뒤엉켜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그러다 문득, 낚싯바늘에 걸려 순식간에 물 밖으로 끌려나온 물고기처럼, 기억이 뱉어낸 서너 줄의 글이 유금 앞에 툭 던져졌다. 독가시치처럼 흉한 지느러미가 달리고 피라냐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달린 서너 줄의 짧은 글이.

윤선영

인터넷을 이용해 낚시질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악플을 달아본 적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2018/07/31
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