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 공항에 도착한 건 현지시간으로 새벽 2시였다. 비가 왔었는지 땅은 젖어 있고 공기는 푹했다. 네 시간 반 만에 땅을 디디자 샌들에 닿는 딱딱한 질감이 반가우면서도 낯설었다. 정말 와버렸구나. 나는 고개를 젖혀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 천천히 공항으로 걸어들어갔다.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은 나를 앞서 걸어갔다. 역시 덥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러나 기내에서 추웠던 나는 오히려 베트남의 밤공기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공항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길게 줄지어선 입국수속 줄이 보였다. VIETNAM, ASEAN, FOREIGNER로 구분되어 있었다. 여행 후기 블로그를 통해 어느 줄이든 상관없이 입국수속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가장 우측 줄을 섰다. 앞뒤는 물론이고 주변 모두 같은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뿐이었다. 대부분 들뜬 목소리로 무람없이 떠들어댔다. 주의하지 않은 그들의 큰 목소리를 통해 나는 그들이 한국의 어느 도시에서 살다왔는지, 저치들은 전공은 무엇이고 현재의 직업은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원하지 않아도 어느 대가족은 어떤 여행사 패키지로 왔는지, 다낭에서의 일정은 물론이고 지난여름에 갔던 보라카이의 일정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으며, 또한 그들 중에 불행하게 생리가 터진 사람의 이름까지도 알게 돼버렸다.
    몸이 자꾸 뻣뻣해지는 것 같았다. 피로한데 긴장까지 한 탓이었다. 서른아홉 살이 되도록 외국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입국수속에 수화물을 찾고, 유심칩을 사는 데만 족히 한 시간은 걸린 듯 했다. 유심칩을 파는 베트남 직원들은 모두 여자였다. 작은 키, 왜소한 어깨, 거뭇한 얼굴에 유난히 동그랗고 커다란 눈망울의 직원들은 모두 밝고 상냥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근 열두 시간 만에 처음으로 얼굴 근육을 움직인 것 같았다. 그들은 한글로 쓴 가격표를 들고 있기도 한 데다 한국말도 곧잘 해 유심칩을 사는 게 어렵진 않았다. 나는 일주일에 5달러, 한화로 8,000원짜리를 구입했다. 일주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여행사 사이트의 카테고리는 비슷했는데, 크게 자유여행과 패키지로 나눈 뒤, 동남아·서남아와 중국·대만·홍콩, 일본, 남태평양, 유럽, 아프리카, 미주, 중남미와 특수지역으로 분류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다낭은 동남아 중에 베트남, 베트남에서도 하노이·하롱베이, 다낭·호이안, 나트랑, 호치민으로 나뉜 범주 중에 하나였고, 다낭과 호이안을 둘러보는 상품과 후에까지 포함한 세 곳을 관광하는 상품으로 또 나뉘었다. 후에를 포함할까 말까를 고민하다 답이 나오지 않으면 나는 카테고리의 한 단계 앞으로 돌아가곤 했다. 베트남이 아니라 태국으로 갈까, 필리핀이나 캄보디아는 어떨까. 라오스나 미얀마는 별로이려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거기서도 막히면 다시 이전 화면으로 돌아가 중국이나 일본, 남태평양을…… 하루는 피지의 상품을 검색하고, 다음 날은 독일과 프라하를 둘러보며, 뜬금없이 모로코나 나이로비를 걷는 나를 상상하기도 했다. 쿠바에서 모히토를 마시지 못할 법도 없을 듯 했다. 그렇게 갈피를 못 잡고 헤매다 결국 다시 돌아오는 화면은 처음 마음먹었던 곳이었다.

    공항을 나서니 베트남 청년이 종이를 들고 서 있었다. 현지 가이드인 모양이었다.
    ㅡ환영합니다. 박형근님 외, 이민주님 외, 송혜림님.
    나는 청년에게 다가가 송혜림이라는 글자를 짚었다. 청년이 환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라고 발음했다. 청년이 이끄는 대로 버스에 올라탔다. 먼저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를 쳐다봤다. 그들의 시선을 이길 자신이 없어, 나는 맨 앞에 앉아버렸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공항은 환했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어둑한 도로가 시작하려는 무렵, 버스가 멈추고 한국인 가이드가 올라탔다. 키가 크고 콧날이 바르며 목소리가 좋은 남자였다.

    패키지여행을 선택한 건 한창 유행 중인 예능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방송 프로그램일지라도 쾌적한 숙소와 일정 수준의 식사, 매너 좋은 가이드와 알찬 일정이 긍정적인 인상으로 바꿔줬다.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내 시간을 쓰지 못하는 여행 일정, 가욋돈을 요구하는 불친절한 가이드와의 불화, 호갱으로 취급 받으며 의무적인 쇼핑몰에 끌려다녀야 한다는 등의 선입견을 바꿔줬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숙소와 식사에 대한 신경을 안 써도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냐고, 인터넷에 없는 정보 없다며 서칭만 하면 된다고 말한 건 은수였다. 아이를 갖기 전까진 부부끼리 종종 해외여행을 다니던 은수로서는 외국 경험치가 전혀 없는 나의 불안함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다낭? 대세를 따른 거냐?
    은수 말처럼 소위 뜨는 지역인 듯싶었다. 그러나 다낭에 대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처음 들어가본 여행사 사이트의 첫번째 팝업창, 첫번째 클릭으로 만난 첫번째 지역이었을 뿐이었다.

    최소 출발 여덟 명이라고 했는데, 호텔 로비에 모인 사람은 나를 포함해 다섯 명밖에 안 되었다. 나를 제외한 네 명은 일행이었는데, 사오십 대 자매 셋과 그들 중 맏이의 이십대 딸로 구성된 팀이었다. 가이드에 의하면 원래 세 명 팀이 하나 더 있었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출발을 못했다는 것이다. 젊은 부부와 어린아이 한 명이라고 했는데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애가 아픈가보네, 라며 누군가 혀를 찼다. 가이드는 이럴 경우는 원활한 진행을 위해 다른 팀과 합류할 수 있다며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선택관광 인원을 맞추기 위해서 그렇게 변동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전 설명이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벌써 새벽 3시네요. 다들 피곤하시죠. 일단 좀 쉬시고요. 내일 오전에 식사하시고, 11시에 여기 이 자리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레스토랑은 아까 말씀 드렸죠? 호텔 8층이고요, 같은 층에 수영장이 있으니 오전 수영을 즐기실 분은 편하게 이용하시면 됩니다. 좋은 밤 되시고요. 다시 한번 비엣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가이드가 허리까지 숙여가며 인사를 했다. 긴팔 셔츠에 로퍼를 신은 남자 가이드의 몸에 배인 친절과 연출된 듯한 사무적인 미소가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내가 첫번째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인도의 타지마할에 가겠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십이 년 동안 무덤을 지은 한 남자의 사랑의 증표를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새 연애가 시작될 즈음일 터였다. 한창 연애가 물올랐을 때는 매일 몰디브나 하와이, 보라카이와 세부 등을 알아보곤 했다. 야자나무, 투명한 바닷물과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모래사장 사진을 클릭하면서 연애의 종지부를 결혼으로 맺게 되길 상상해보곤 했던 것이다.
    노르웨이나 핀란드 여행 후기를 찾아 읽을 땐 첫째 동생이 결혼을 한 무렵이었다. 사 년간 준비했던 공무원 시험에 붙자마자 결혼까지 후딱 해치운 동생은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가버렸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공무원 하나 만들겠다고 부모님과 나까지 공을 들여 뒷바라지를 한 동생이었다. 덕을 보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발령을 받은 지 반년도 되지 않아 결혼을 하겠다할 땐 어쩐지 배신감까지 들었다. 매제 될 사람이 행정도시에 특공으로 분양 받은 40평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차린다 했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났다. 엄마는 동생에게 네가 알아서 하라고 했지만 결혼자금은 고사하고, 학자금대출도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숟가락 하나 제 돈으로 사지 않고 결혼을 해버린 셈이었다. 혼수비용은 모두 주택담보대출로 해결했다. 그 과정을 지켜봐야 했던 내 속도 편할 리는 없었다. 답답할 때마다 오슬로 미술관의 그림들을 검색하고 헬싱키의 트램 사진을 찾아보곤 했다. 엄마는 나에게 집안 사정 뻔히 아니까 말한다며, 급한 불부터 끄자고 했다. 대출이자를 함께 부담하자는 것인데, 당연한 듯 청유형으로 말하는 엄마의 뻔뻔함이 나는 너무 싫었다.
    “다 소용없는 일이란 거 알지?”
    은수는 한번 더 확인했다. 밥통같이 그러겠다고 한 건 아니지!
    “많지도 않은데도 그러신다.”
    “많든 적든! 그걸 왜 네가 보태냐고. 첫째 주면 막내 결혼할 때도 내놔야 할 거 아냐. 그럼 동생들이 우리 언니 누나 고맙다고 챙겨줄 거 같냐? 꿈 깨.”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엄마에게 적금통장을 깰 수는 없다고 한 참이었다. 대출이자를 보태는 건 내가 아니라 첫째여야 했으므로 생활비도 더 못 드린다고 못박았다. 그 일이 결국 첫째와 틀어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자기 결혼에 도움 안 준 언니에 대한 노여움을 부리는 모양인데 나는 이해가 안 됐다. 도대체 공무원이 된 게 무슨 유세라도 떨 일인가. 그래서 무너진 집안을 일으켜세우길 했나, 집안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길 했나. 그저 저 하나 좋을 직업을 얻은 걸, 그것도 온 식구들 수발 다 받아가면서 본 시험이면서 제 콧대만 세우는 꼴이 아주 밉살스러웠다.

    생각보다 깊은 잠이었다. 낯설고 두려워서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을까 염려했던 스스로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커튼 틈으로 햇빛이 새어들어왔다. 나는 벌떡 일어나 시간부터 확인했다. 겨우 7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주 오래 잔 것 같았는데. 커튼을 걷자, 터지듯이 아침 햇볕이 쏟아졌다. 해변에는 까만 점들이 가득이었다. 뭔가 싶어 미간을 찌푸려 자세히 보니, 모두 사람들이었다. 이 새벽부터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이라니! 설마 저 많은 사람들이 다 관광객은 아닐 테지. 나는 창문에 이마를 대고 창밖을 한참 쳐다봤다. 호텔 앞의 대로를 건너면 곧바로 미케 비치라 불리는 해변이었다. 도로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가득인데, 바로 건너 바다에는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이 가득이었다. 줄지어다니는 오토바이를 보니, 이국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아침 빈속이지만 G7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얼마나 달고 진한지 커피를 삼킬 때마다 온몸이 지르르 떨렸다.

    은수는 무조건 많이 먹고, 선택관광도 어지간한 건 다 해보라 했다. 다음달이 산달인 은수는 앉지도 눕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자세로 소파에 기대어 있었다. 은수의 눈 밑에는 기미가 가득했다. 친구의 첫 출산 선물로 고른 건 고급 수분크림과 에센스였다. 은수는 아이 용품을 안 내민 건 나밖에 없다고 했다.
    “네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아는데, 요 녀석이 뭘 좋아하는지는 내가 아직 잘 모르잖아.”
    나는 은수의 배를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봤다. 생각보다 딴딴했다.
    “짐은 다 쌌어? 내일 출발한다고?”
    “응. 백 년 전에 다 싸놨지.”
    “우린 뭐가 바빠서 같이 여행도 못 다녔을까.”
    “그거야 네가 남자들이랑만 다녀서 그렇지.”
    “웃기네. 네가 돈 번다고 나랑 안 놀아줘서 그렇거든?”
    “누가 들으면 수억 번 줄 알겠다.”
    “그런 거 아니었어?”
    “맞아. 그러니 너만 알고 있어라.”
    실없이 웃어대던 은수와 나 사이에 갑작스런 침묵이 이어졌다.
    “아기는 건강한 거지?”
    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 칠 년 만에 생긴 아이였다. 내년이면 마흔이 되는 은수와 나는 뭔가 큰 변화 앞에서 쩔쩔매는 중이었는데, 서로에게 그걸 드러내고는 싶지 않아 오히려 더 허둥거리는 것인지 몰랐다.
    “별일도 없는 거지?”
    은수의 두 눈이 어느새 눈이 빨개졌다.
    “별일 있어도 없어야 해. 괜찮아. 여행이나 잘 다녀와. 가서 커피 많이 사와.”
    “넌 먹지도 못할 거면서?”
    “쟁여놨다가 먹으면 되지!”
    “갔다 와서 들를게.”
    “닷새 뒤에 다시 출국한다며. 나 보러 올 시간이 어디 있니. 몸 잘 추리고. 자주 연락하고.”
    “어? 우리 영영 이별하는 사람들 같다?”
    “네가 안 보러 오면 영영 이별 맞지만, 영영 이별해도 너 나간다니까 오늘은 신나야지. 내가 다 가슴이 뛴다. 정말 잘 다녀와.”
    은수는 기어이 눈물을 흘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차라리 사라져버리라고 말했던 거 은수였으니까, 나는 안 울기로 했다. 물론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조식은 10시까지라 했고, 나는 8시 반쯤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어제의 그 일행들은 이미 식사 중이었다. 어젯밤과 달리 편한 복장에 민낯이어서 그런지 피로가 안 풀려서인지 모두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나도 그렇게 보이나 싶어 괜히 마른세수를 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뭐든지 많이 먹으라던 은수의 말이 떠올라 핸드폰을 꺼냈다. 두 시간 시차라 했으니 한국은 10시 반일 터였다. 내 테이블에 차린 음식들이 한 장에 담길 수 있도록 여러 각도를 조절해봤지만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위에서 찍는 것이 가장 그럴싸했다. 동그란 접시 안에 가지런히 담긴 팬케이크와 계란프라이, 베이컨과 소시지, 익힌 채소와 과일이 정물화처럼 찍혔다. 얼음이 둥둥 떠 있는 아이스커피엔 사진을 찍는 내가 비쳤다. 레스토랑의 풍경 사진까지 몇 장 더 찍어 은수에게 보냈다. 나 잘 도착했고, 잘 지내고 있으며, 잘 지낼 예정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익힌 채소부터 먹었다. 은수는 좀처럼 확인하질 않았고, 엄마에게 잘 도착했다는 메모를 남길지 말지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무미에 가까운 밍밍한 청경채와 당근을 우물거리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자매들 중 맏이였다. 남은 세 명이 나를 둥글게 둘러싸는 모양새가 되었다.
    “혼자 다녀도 잘 챙겨먹고. 알았죠?”
    자기네는 오늘 따로 움직일 예정이라고 했다. 첫날 일정은 오전 자유시간 후에 호이안 관광이었다. 소쿠리 배를 타고 공예 마을을 둘러본 뒤에 투본 강 보트 유람, 씨클로로 호이안 시내 관광 후 석식, 그 이후는 호이안 야간 투어까지 이어진 일정이었다. 얼마나 읽었는지 일정표에 적혀 있는 그대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마치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패키지인데 나 혼자만 남아 일정대로 움직이는 것이 부담이 될까봐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깍듯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던 가이드의 말끔하게 닦인 로퍼가 떠올랐다.
    “그럼 오늘 뭐 하실 계획이세요?”
    다들 서로를 마주보며 실금실금 웃으며 대답을 안 했다. 실례되는 질문이었나 싶어 금세 후회했다. 무안하기까지 했는데, 다행히 아가씨가 분말 비타민 한 포를 건네며 낮게 속삭였다.
    “엄마랑 이모들이 좀 주무시겠대요.”
    “넌 이 언니랑 같이 다닐래? 그래, 늙은이들 수발들지 말고 그래라”
    그 순간 가이드와 나 혼자 다니는 것과 이 아가씨와 함께 다니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어색하고 불편할지 가늠이 안 되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아가씨도 엄마와 이모들과 남겠다 했다. 그럼 저녁때 봐요, 우린 식당으로 직접 찾아갈 거예요. 네, 잘 쉬시고요. 낯선 이들의 친절이 오지랖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여기가 이국이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았다.

    형님, 형님 하고 부르는 여자애가 나는 영 마뜩찮았다. 결혼은 고사하고, 상견례 때 한 번 본 것 밖에 없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호칭으로 나를 부르는 사람이라는 것이 미덥지 않았다. 엄마는 요즘 애들 같지 않게 붙임성만 좋은데 왜 그러냐며, 시누이 행세할 생각 말라고 더 역정이었다. 나도 지지 않았다. 세상에 누가 시댁 식구들 좋아하냐며, 요즘 사람 같지 않은 것도, 과하게 친절한 것도 의심해봐야 한다고 대꾸했다.
    “너, 남들 앞에서는 그런 말 마라. 동생들 먼저 보냈다고, 혼자 결혼 못하고 부모 옆에 남아서 심술부리는 거라고 의심 받는다.”
    “마음대로 떠들라고 해!”
    그랬는데도 엄마는 또 막내 결혼을 앞두고 적금통장 얘기를 꺼냈다. 집은 못 사줘도 전세 값은 내줘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대학원까지 나오고도 변변한 직장을 구하기가 힘들어 부모 속을 새카맣게 태운 막내였다. 눈을 낮춰서야 겨우 들어간 회사였는데,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결혼하겠다고 여자애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서른넷이면 할 만한 나이였지만 결국 또 집에 손을 내밀었고, 엄마는 또 만만한 나한테 좀 보태라고 눈치를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결혼할 때 걔네들은 나한테 받은 돈 다 토해내겠대? 그런다면 차용증 쓰고 빌려서 쓰라고 해. 그런 거 아니면 싫다니까!”
    “남도 아닌데 어쩜 그렇게 야박하니? 넌 나한테 빌붙어서 살잖아.”
    “왜 이래? 난 꼬박꼬박 생활비 드렸어!”
    이 집에서 빌붙어서 산 건 결국 두 동생들밖에 없었다. 엄마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어떤 자식은 그렇게 애틋하고 안쓰러우면서 왜 나한테만 이래? 야박한 건 엄마 아냐? 나도 내 돈 모으느라 좋은 화장품 한번, 명품 백 한번 못 쳐다보고 살았어. 내 또래 중에서 나만큼 오래 돈 번 애들도 없다고!”
    “네 동생들은 가르친 게 아깝잖아! 네 친구들은 다 시집가서 돈을 안 벌어도 되니까 그런 거고. 까놓고 말해, 넌 돈이 있으면 뭐 하냐, 쓸 수도 없으면서.”
    세 살, 여섯 살 터울 동생들이 사립대에 대학원에 공시생까지 자처했던 건 물론 전적으로 동생들의 선택이었다. 눈치 빤해 형편이 넉넉지 않다는 걸 알고 스스로 지방 4년제보다는 2년제를, 애당초 4년제 편입은 꿈도 꾸지 않고 취직을 한 것도 나의 선택이었다. 엄마가 요구한 건 아니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부모에게 부담을 덜 주기 위해, 되도록 손을 안 벌리는 방향으로 살아온 건 나였다. 그래서 누구를 탓할 수 없다면, 적어도 내가 켜켜이 쌓아온 시간의 흔적만은 인정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 그저 어떻게든 한번 쓰면 좋을 공돈을 쥔 존재로만 바라보는 동생들도, 거기에 휘둘리는 엄마도 환멸스러웠다.
    “그 돈을 다 써버려! 그래야 식구들이 널 안 쳐다보지! 차라리 사라져버려라!”
    “그럼 난? 내 노후는?”
    은수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라고 말했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비치원피스 안에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으로 갔다.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씬 짜오, 씬 짜오. 수영장 스텝들이 친절하게 웃으며 선베드로 안내해주고, 비치타월과 코코넛주스를 갖다주었다. 선베드에 앉아 파란 수영장 물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상쾌했다. 그래도 나이 마흔이 되도록 수영 하나 배워두지 못한 것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수영장 입구에 인기척이 들리더니 현지어로 떠드는 꼬마들이 수영장으로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따라온 부모들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는 명랑한 소음이 수영장에 부드럽게 깔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적당한 햇빛, 발끝에서 찰랑거리는 시원한 물과 유리 펜스 너머로 보이는 미케 비치의 풍경까지, 완벽하게 완벽했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용기를 내어 수영장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찬물이 천천히 온몸을 적셔주는 느낌이 아주 시원했다.

    “드디어 여행을 가는 거야?”
    “한동안만. 돈 좀 써보게.”
    “이야, 송혜림 너 좀 멋지다! 이참에 독립도 해버려!”
    “일단 나도 동생들처럼 손 벌려보게. 지들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더라고. 나도 따라하려고. 돈 다 떨어져서 들어가면 어떻게든 뭐라도 해주지 않겠어?”
    “시원시원하게 무책임하니 더 좋네?”
    은수가 낄낄댔다. 입덧이 겨우 가라앉았다는 은수는 얼굴이 꺼칠했다. 그래도 배 위에 두 손을 올린 모양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래, 질러버려! 인생 두 번 사는 것도 아니고!”
    “그치! 네가 제대로 부채질을 해주니까 더 힘이 난다!”
    그날로 나는 적금을 해지하고, 여행상품을 계약했다. 다낭에 다녀온 뒤로는 60만원짜리 동경, 하코네, 사즈오카 3박 4일, 그뒤로는 160만원짜리 서유럽 9박 10일, 곧이어 180만원짜리 동유럽 6개국 투어를 10박 11일로 다녀온 뒤에는 약 300만원으로 뉴욕, 워싱턴, 토론토, 나이아가라, 토론토, 퀘백, 몬트리올을 일주하는 캐나다, 미 동부 여행 패키지까지 결제를 해버렸다. 물론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었다. 엄마는 그날로 앓아누웠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아직 남은 돈은 많았고, 가고 싶은 나라도 많았다.

    샤워를 마치고 속옷만 입은 채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정성들여 했다. 지난밤 가이드가 말 한 걸로는 요 근래 한낮의 체감기온이 50도씩 오른다고 했다. 새로 산 트로피컬 민소매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틀어 올렸다. 내가 봐도 길쭉한 목이 시원해 보였다. 맨살이 드러나는 목과 팔다리, 발등까지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시간에 맞춰 로비로 내려갔다. 마치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 동동거리는, 데이트하러 가는 여자가 된 것 같았다.
    베트남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는 한국 가이드가 보였다. 오늘은 베이지색 셔츠에 감색 바지를 입고, 보트슈즈를 신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가이드가 대화를 멈추고 나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베트남 청년도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더니 가이드 뒤로 물러섰다. 호텔 로비의 전면 창을 통해 한낮의 햇빛이 환하게 들어차고 있었고, 내 발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가이드가 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마치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처럼 그의 얼굴이 환해 보였다. 나는 허리를 세우고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그러고는 앞을 향해 천천히 걸어나갔다.

김이설

소설 쓰는 사람입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당신에게 얼마나 유의미한 것일까, 를 고민하느라 쩔쩔매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나를 숨기는 것으로 나를 드러내는 작업이 언제까지 가능할 수 있을까, 이미 당신에게 들킨 것은 아닐까, 그걸 또 짐짓 모르는 척 아닌 척하느라 아등바등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여성, 가족, 어쩔 수 없는 현실, 오늘의 여기에 관해 늘 더듬이를 곧추세우며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펴낸 책으로 소설집 『오늘처럼 고요히』 등이 있습니다.

2017/12/26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