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구두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면도를 할 때마다 깎여나가는 감정들이 있다
   나는 거울을 보며 턱을 쓰다듬는다
   입술이 시리다
   부드러운 계절은 갔다

   지하에 있는 장례식장
   빛과 함께 열기가 흘러나온다
   형광등 빛이 면사포처럼 내려와 사람들의 얼굴을 노랗게 물들인다
   벽에 비친 그림자들이 흐리게 일렁인다

   몇은 낙엽처럼 웃고
   몇은 메마른 가지처럼 몸을 떤다

   웃음과 울음이 섞인 얼굴로 우리는 이야기를 하고 술잔을 건넨다
   마주앉은 사람의 표정에서 나의 표정을 떠올린다
   가끔은 갈라진 목소리를 가다듬느라
   입을 다문다
   말은 얇은 막이 되어 우리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자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얼굴을 가린다

   신발을 바꿔 신고 간 사람은 있는데 신발 주인은 나오지 않는다
   그는 실내화를 자기 신발이라고 착각하고 택시 안에서 그 사실을 불현듯 깨달을지도 모른다

   구두 속에는 이상한 공기가 흐른다
   발을 밀어넣을 때 삐져나오는 음모들

   낙엽이 구른다
   가벼운 낙엽이다
   무거운 낙엽은 바닥에 붙어 있다
   물기를 머금은 채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있다

   장례식장 앞 교회의 첨탑이 먹구름을 찌르고 있다
   조금만 구름이 가라앉으면 먹물이 주르륵 쏟아질 것 같다

   불 꺼진 약국 앞에 서 있었다
   세상에는 저렇게 많은 약이 있지만
   그만큼 많은 병이 지금도 계속 생겨나고 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발끝을 보고 걸었다
   거기가 세상의 끝인 것처럼

   젖은 신발이 문 앞에 놓여 있다





   침묵의 미로



   통화 중에 금방 전화할게, 하고 전화를 끊은 네가
   다시 전화를 하지 않는다
   나는 전화기 옆에서 서성대다가
   열없이 창밖을 바라보다가
   책상의 모서리를 손끝으로 따라가다가
   다시 전화기를 본다
   검은 액정 화면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나는 약속이 있고 시간을 어기지 않기 위해 이제는 씻어야 하지만 전화가
   오지 않는다 양치질하는 동안 전화가 오지
   않는다 입가에 치약 거품을 묻힌 채 전화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샤워기의 물을 틀기까지 또 몇 초간 기다린다
   미지근한 기다림이 계속된다
   수도꼭지를 돌리니 샤워기에서 물줄기가 떨어지고
   비누칠을 하기까지 몇 분간 나는 덩그러니 욕조에 서 있었다

   교통사고라도 난 걸까
   노트북에 커피라도 쏟은 걸까
   행인에게 갑작스럽게 폭행을 당한 건 아닐까
   피가 흥건한 단도가 햇빛 가득한 보도 위에 반짝이고 있다

   샤워를 마치고 젖은 몸으로 욕실화를 신은 순간
   다시 전화가 온다
   미끄러운 손가락으로 간신히 전화기를 부여잡는다
   무슨 일이야? 큰일이라도 난 거야?!

   아니야, 그냥 전화했어.
   담장에 장미가 많이 피었어.

   거울 속에 눈물이 가득차 쏟아질 것 같다
   붉게 달아오른 피가 온몸에 장미 문신을 그려놓는다
   빠져나가지 못한 그을음이 목구멍을 가득 메운다

신철규

계절이 접어들면서 부고를 종종 받는다.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와 나의 거리를 가늠해본다. 뾰족한 슬픔이 온몸을 뚫고 나오려고 한다. 먼지가 뿌옇게 앉은 검은 정장을 조심히 꺼낸다.

2017/12/26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