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슬리퍼를 가지런히 놓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었다. 앞코를 잃어버렸고, 엄지가 추운 계절이었다. 현관은 따뜻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돌아가는 것이 현관에 많은 것이다. 맨발로 나간 동생이 비싼 구두를 신고 들어왔을 때, 그것을 신고 잃어버리는 상상을 했다. 신발장은 발바닥으로 가득 차 있다.

   아침은 다른 이름의 슬리퍼. 발자국을 잃어버리기 쉬웠다. 그것들을 모아 재활용 봉투에 넣었다. 부풀고 상해버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저녁에는 모은 발자국들을 정리하는 일을 했다.

   문고리를 돌렸다. 문고리를 돌리면 변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문고리는 그대로 있는 것부터 시작했다. 조금 변하기 시작했다.

   현관에는 도망갈 발자국들이 많아서 우리는 거울을 근처에다 두었다. 그것이 도망치는 모습을 스스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신발은 방향을 잃었다. 신발의 좌우를 보면서 나는 암수를 구별하지 않기로 했다. 문고리는 돌아가면서 제자리로 돌아올 궁리만 했다. 그것을 밀면서 슬리퍼를 신고서 앞으로 나아갔다. 제자리는 돌아오는 성질을 갖고 있다.



  구제

   등기라든가, 빨간 딱지라든가. 아픈 구절을 반복해서 읽었다. 흔한 아픔은 주기적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길들여질 시간이 필요하다.

   구제시장에는 헌 옷들이 무더기로 쌓여져 있다. 영혼을 들춰보는 것처럼 헤집어본다. 딱 맞던 옷이 줄어드는 경험치를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버렸던 옷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 모르는 옷들이 이곳에 있다. 변색된 옷은 누가 사랑했던가.

   사람보다 많은 의자가 놓여 있다. 의자를 발음하다가 꼭 의지를 묻게 될 때가 있었다. 빈 의지 위에 앉아서.

   간호사가 실수로 나를 놓쳤다는 사실을 기억해낸다. 오래된 핏덩이 같은 그것은 언젠가 버릴 옷처럼. 트램펄린처럼. 바닥을 튕겨나오는 힘으로 무더기 옷 속에 숨었다.

   수많은 손이 이곳을 지나가고, 누군가 나를 집어든다. 가장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뱃속에 숨은 아이를 끄집어내기 위해. 캥거루 산부인과에서는 산모들에게 가죽 주머니를 선물한다. 산모들은 숨어서 지낸다. 아무도 산모가,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단추가 없는 옷은 단추가 없는 채로. 찢어진 옷은 찢어진 채로 있다. 어릴 때는 잘못하면 울었다. 용서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잘못을 챙겨서 이제는 집에 돌아온다.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다. 계절이 지나도 버리지 못한 옷들을 꺼내 본다.



김가람

그리고 얼음은 녹았다. 입속에서 얼음을 굴리다 보면 머리가 아픈 일도 있었다. 아프고 녹는 일이 당연한 거라면, 아무도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죽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본다고 생각해야겠다. 그래야 뭐든 덜 할 것만 같다.

2018/08/28
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