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머니를 함무니라거나 할리라고 불렀다. 우울한 날에는 함무니, 보통은 할리였다. 나에게 말을 가르쳐준 사람은 할리였다. 이빨이 빠진 할머니가 내게 처음 배워준 말이 할미였다. 이빨이 없던 어린 나는 할미를 할리, 할리 했다. 이빨이 다 자라고 난 뒤에도 나는 계속 할머니를 할리라고 불렀다.

   꺾어진 골목 벽에 숨어 고개를 살짝 내밀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할리는 내가 보이지도 않는데 오도카니 서 있었다. 나는 골목 안으로 다시 들어가 어여 들어가라고 크게 손을 밀었다. 멀리서 할리가 다시 손을 흔들었다. 생파에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비탈길을 따라 한참을 더 올라가야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할리에게 한 번 더 손을 흔들고 언덕을 쏙 뛰어올랐다. 일 년 중 내가 가장 특별해지는 날이 오늘이었다. 뛰는 걸음이 사뿐했다. 해가 지는 모습이 어쩐지 따뜻했다.
   부랴부랴 도착한 술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잠깐 삐쳤는데 기지배들이 생일이라고 서프라이즈를 한 거였다. 촛불 켠 케이크를 술집 입구에서부터 들고 오는 건 좀 쪽팔렸지만 나쁘지 않았다. 나는 준비한 애들을 위해서 일부러 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주었다. 지들이 더 좋아하기는. 생일 주에다가 늦게 왔다는 벌주라며 김또가 연거푸 잔을 채웠다. 내 앞으로 오는 술을 사양치 않고 다 받아 마셨다. 내가 원샷 할 때마다 오, 오, 감탄사가 나왔다. 기꺼이 마셔주었다. 나님이 세상에 온 날이었으니까. 스물, 진짜 어른이 되었으니깐. 꽐라가 되어 노래방에 갔다. 첫 곡은 왜 태어났니, 였다. 음정 박자 무시하고 다 같이 얼굴도 못생긴 게 왜 태어났니, 했다. 김또와 문또는 술에 취해 서로 또라이라고 손가락질하며 깔깔댔다.
   “또라이들 완전 고마워! 자, 이제 짠해요. 유후.”
   나는 거침없이 들이켰고 발광하며 노래했다. 역시, 생일은 신나야 제맛이었다. 우리는 노래방 앞에서 갈라진 목소리로 헤어졌다. 취했겠다, 생일이겠다, 택시를 잡았다. 기사 아저씨는 차에다 토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아저씨가 백미러로 계속 힐끔거려서 속이 더 울렁거렸다. 짜증 나서 확 다 토해버릴까 했지만 잘 참았다. 택시는 버스 정류장까지만 들어왔다. 길이 없어 더 들어갈 수도 없었다.

   새벽길을 걷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흙에 섞인 돌조각들이 닳아빠진 운동화 밑에서 소리를 냈다. 발걸음마다 자박자박 공간이 만들어졌다. 물 위를 걷듯 발길이 닿을 때마다 잔잔한 파동이 온몸을 울렸다. 그리고는 살살 나를 흔들었다. 언덕을 내려오면서 남의 집 담벼락에 마신 술을 전부 토했다. 목이 부어올랐지만 나는 흥얼거렸다. 손끝으로 담벼락을 쓸며 걸어 내려왔다. 손톱에 닿은 낡은 시멘트벽은 살비듬 떨어지듯 흩어져 내렸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생일이니까 하루쯤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몸이 기우뚱했다.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자기 전에 잠깐 달을 보고 싶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을 끔뻑거리며 달을 찾았다. 달 대신 새벽의 적요만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부러 길게 하품하며 일어섰는데 안쪽에서 조용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면 바로 수도꼭지가 있고 약간의 턱을 두고 방이 있었다. 부엌이라고 따로 있는 것도, 방이라고 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신발을 벗고 올라서는 약간의 턱이 그나마 경계라면 경계였다. 할리는 그 턱에 앉아 작은 몸을 움직이며 새벽기도를 했다. 할리의 기도 소리에 나는 다시 쪼그려 앉았다. 할리는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똑같은 기도를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똑같이 했다. 나는 할리의 기도를 외울 정도였다. 먼저 간 자식들을 포함해서 팔 남매의 이름이 온전히 다 불리고, 그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 다음에 내 이름이 불렸다. 우리 선주 노오또, 노또되게 해주세요. 술이 확 깼다. 할리의 입에서 나오는 노또라니 괜히 뜨끔했다. 김또와 문또가 나를 노또라고 불렀기 때문이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뱉어졌다. 며칠 전 할리, 나 로또 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 라고 한 걸 기억하고 노또, 노또 하면서 기도하는 것이었다. 여든아홉의 꼬꼬 할매가 손지딸이 농담 삼아 한 말인 줄 모르고 성심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나름 경건한 할리의 기도를 욕되게 한 것 같아 약간 미안했다. 담배를 꺼내 물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시죠? 할리는 로또가 뭔지도 몰라요.

   모두 재개발이라면 지긋지긋, 끝없이 지겨워했다. 서울의 마지막 남은 재개발 지역이라고. 그래서 동네가 재개발된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힘차게 손뼉 쳤다. 기쁜 소식인 것 같아 나도 덩달아 손뼉 쳤다. 왜 때문에? 개발이라면 다들 환장했으니까, 많은 사람이 환호하는 건 좋은 거니까. 새것을 갖는다는 건 좋은 일이 분명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동네를 떠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지자 나는 조금 불안했다. 이 골목 열 집 중에 이제 할리와 나만 남았다. 그 덕에 눈치 보지 않고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되었지만. 여튼, 우리도 이사를 가야만 했다.

   답답한 마음에 할리에게 로또 얘기를 한 것이었다. 꼬꼬 할매가 참 기억력도 좋았다. 한숨에 섞여 나온 담배 연기가 길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늘부로 내가 반쪽짜리 어른이 아니라, 온전한 성인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어른은 확실히 직장을 구할 때 선택의 폭이 넓었다. 어쩌면 구두를 신고 사무실에 출근하게 될지도 몰랐다. 앞으로 알바인생은 빠이, 짜이찌엔.
   할리의 기도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할리는 항상 주기도문을 세 번 반복하고 기도를 끝냈다. 하날에 계신 우리 아바지, 이름이 거룩히 여어김을 받으시오매…… 주기도문에 붙은 리듬이 불경 외는 소리같이 들리기도 했다. 하나님 섭섭한 소리 하고 있네. 담배 끝을 튕겨서 총알을 뺐다.
   “함무니, 나왔어. 깨우면 안 돼.”
   나는 문을 열자마자 신발을 벗었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얕은 턱을 건너 방바닥에 벌렁 누웠다. 발을 비벼 양말을 벗겨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시간만 맞으면 닥치는 대로 알바를 했다. 호프집 알바가 시급이 좀 더 나았기 때문에 주로 했고 떡볶이, 피자, 편의점에서 땜빵이라도 불러주면 무작정 달려갔다. 학교 다닐 때부터 여기저기 기웃거렸기 때문에 아는 사장님들이 좀 있었다. 내가 일 하나는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 덕에 이번 달은 백이십만 원 정도 벌었다. 통장에 잔액은 삼백만 원이 안 됐다. 이 돈으로는 갈 데가 없었다. 보증금이 천만 원은 있어야 지하라도 얻을 수 있었다. 이사는 더 미뤄야 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고는 있지만 고졸에 자격증도 없고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나 같은 건 뽑지 않으려고 했다.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다고 하면 더 그랬다. 지들은 뭐 처음부터 잘했나, 다 배워가면서 하는 거지. 이제 나는 이십 살, 할리는 팔십구 살. 아, 어떡하지. 몰라, 씨발. 다 귀찮았다.

   양말을 벗기다 스르륵 잠이 들려는데 할리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아야, 저것이 뭣이다냐? 도깨비불 마냥 호롱호롱 한 것이 뭣이여?”
   잠결에 집에 하나뿐인 창문을 보았다. 가로등도 없는 곳인데 할리 말처럼 호롱호롱 빛이 일었다. 깜짝 놀라서 창문을 열었다. 목화에서 불이 나고 있었다. 우리 골목 끝자락에 목화가 있었다. 목화는 다방이었다. 동네 놈팡이 할배들이 주된 손님층이었는데 거길 지날 때마다 큼큼한 지하실 냄새가 났다. 할배들이 떠난 지금도 영업하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다방이 거기 있다는 것만 알았다. 그 목화 다방에서 시작된 불이 바람 때문에 우리 집 쪽으로 번지고 있었다.
   할리에게 신발을 신기고 가벼운 이불을 씌워서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집 밖으로 나오니 약간 마음이 놓였다. 불구경 나온 사람들이 적잖았다. 나는 아직도 사람들이 꽤 남아 있단 것에 좀 놀랐다. 어둑새벽에 불구경 나온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아무도 불을 끄지 않았다. 눈빛들에선 불안과 희열이 동시에 번들거렸다.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는 사람은 늙은 여자 한 명뿐이었다. 아마 목화 다방의 사장인 것 같았다.
   좁고 긴 골목에 소방차가 들어오기는 어려웠다. 대원들이 호스를 잡고 길게 길게 늘어섰다. 소방차가 들어오기까지 애먹인 것에 비해 불길은 쉽게 잡혔다. 불이 너무 쉽게 꺼져버렸다. 어두운 동네에 환하게 일렁이던 불꽃이 진짜였는지 의심이 들었다. 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론 맥이 빠졌다. 팽팽하게 당겨진 낡은 고무줄이 그냥 그대로 늘어져 버린 기분이었다. 불 꺼진 동네는 다시 어두워졌다. 사람들이 흩어지는 모습은 마치 바퀴벌레 같았다. 순식간에 모이고 재빨리 숨어버리는 바퀴벌레.
   할리는 전혀 놀라지 않은 것 같았다. 춥지 않은지 묻는 내게 안 추와. 하고는 한곳을 보았다. 남은 건, 재를 담고 뚝뚝 떨어지는 검은 물방울과 더는 손님을 받을 수 없는 목화 다방 늙은 여사장이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목화에서 떨어지고 있는 검은 물방울 때문에 잘 수가 없었다. 할리 혼자 있다가 무슨 변이라도 생긴다면. 덜컥 겁이 났다. 호프집 알바가 짭짤했는데 이마저도 그만둬야 할 상황이 답답했다. 아니다, 나가자. 빨리 나가자. 할리는 늙어서 뛰지도 못했다.

   아직 낮이었지만 급한 마음에 자고 있을 호프집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마트로 면접 보러 가는 길이었다. 시장통 건물 지하에 있는 마트였다. 사장은 새벽의 일을 안 믿는 눈치였다. 괜찮다면서 짜증 내는 꼬라지가 딱 그랬다. 어쩌라고, 씨바라. 나도 어쩔 수 없다고.
   “죄송해요, 가끔 땜빵 해드릴게요.”
   계산원을 뽑는다기에 낮에 하는 일이라면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찾아간 것이었다. 마트 조끼를 입은 아저씨는 신원보증을 서 줄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이건 또 뭔 개소리야. 돈 만지는 일이라 그렇다고 했다. 나는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이고 나왔다. 그리고는 문또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나 신원보증 좀 서 줄 수 있냐?”
   “병신아, 신용보증은 니가 등쳐먹었을 때 대신 갚아주는 건데, 내가 돈이 어딨냐?”
   나는 우물쭈물하다 전화를 끊었다. 넌 아는 거 많아 좋겠다, 이년아. 호프집 사장에게 급하게 전화한 게 후회되었다. 갑자기 할리가 보고 싶었다. 둘이 누워서 배나 긁었으면.
   한숨을 붙들고 시장통을 걸었다. 두붓집에선 뭉근하게 고소한 냄새가 났다. 세탁소를 지날 때는 목욕탕 하수구 냄새가 났고, 생선가게는 비린내가 올라왔다. 나한테는 어떤 냄새가 날까. 나는 티셔츠 끝을 잡고 옷을 털었다.
   터덜터덜 걷던 길 끝에 할리가 보였다. 할리가 나를 보고 웃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할리에게 뛰어갔다.
   “할리, 내가 좋아? 나만 좋아? 에잇, 기분이다.”
   할리를 위한 봉투를 꺼냈다. 할리가 좋아하는 흰 봉투, 돈 봉투. 나는 편지 봉투에 천 원짜리로 오만 원을 넣어 할리에게 주었다.
   “한나, 두울, 서이, 너이, 다삿, 녀삿, 닐곱, 야닯, 아홉, 얄.”
   할리는 열 개씩 세서 차례대로 방바닥에 놓고 두 번이나 더 돈을 세 보았다. 나는 할리의 행복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잠깐 비켜주었다. 저렇게 돈을 다 세고 나면 다시 봉투에 넣어서 장판 밑에 넣어둘 터였다. 어릴 때 몰래몰래 빼 쓰던 걸 생각하면 하나도 아깝지가 않았다. 어머, 나 철들었나 봐. 골목 깊숙이까지 햇볕이 들었다. 나는 아무 돌멩이 위에 앉아 볕을 쬐었다. 엉덩이가 따뜻했다.

   골목 안으로 뚱뚱한 여자가 걸어왔다. 검정 스판 티셔츠 가슴께에 박힌 큐빅이 야무지게 반짝였다. 기우뚱, 뚱. 여자가 뒤뚱거릴 때마다 뱃살이 출렁거렸다. 손에는 흰 비닐봉지에 담긴 참외가 들려 있었다. 목화 다방 늙은 사장이었다. 별로 할 말이 없는 나는 슬쩍 자리를 피했다. 아줌마는 할리에게로 곧장 가더니 신세를 한탄했다. 할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목화 다방 이야기를 그라제, 그라제 하면서 들어 주었다.
   “일부러 그랬다고도 하는데…… 다 타버렸으니 이제 미련 없이 떠나겠네요. 오래 사세요, 할무니……”
   나는 목화 아줌마의 울음 참는 목소리를 들으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햇빛 좋은 맑은 날 텅 비어 버린 동네가 낯설었다. 불구경하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에 살고 있는 걸까. 바퀴벌레처럼 꾸역꾸역 모여들어 밤을 견디고 낮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 그 사이에 할리와 내가 있었다.
   이십 살. 어른이 되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다. 취직도 쉽게 하고 이사도 척척 해내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내가 생각했던 스무 살은 그런 것이었다. 근데 왜 맘처럼 안 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재개발한다고 좋아라 손뼉 쳐대던 게,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나. 목화 아줌마도 떠나고 우리에겐 불안하고 긴 밤들이 계속될 것이었다. 문득 불길에 번뜩이던 살아있는 눈빛들이 그리웠다. 미련 없이 떠나, 고 싶다. 목화 아줌마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길바닥에 퉤 하고 크게 소리 내서 침을 뱉었다.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뒤통수가 간지러웠다.
   인기척 없는 길을 걸으면서 가게들을 둘러보았다. 유리는 성한 게 없었지만 간판은 그대로들 붙어 있었다. 현 미용실 앞에 섰다. 현 미용실 아줌마는 할리의 머리카락이 길게 자랄 때마다 공짜로 깎아주었다. 문을 열었다. 가게 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 흙먼지만 잔뜩 있었다. 걸음마다 발자국이 남았다. 돌아 나오려는데 뭔가 반짝였다. 숱 가위였다. 쓸 만해 보였다. 할리의 머리카락이 길어진 걸 생각하고 먼지를 닦아 주머니에 넣었다. 대로변 가게를 다 훑고 집으로 돌아오니, 목화 다방의 늙은 뚱아줌마는 가고 없었다.
   할리는 참외를 반으로 갈랐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참외 씨를 살살 긁어 호로록 삼켰다. 씨 부분을 먹고 속을 한 번 더 긁어서 과즙을 먹고 나면 껍질을 깎았다. 이빨이 없는 할리가 참외를 먹는 방법이었다. 나는 할리가 건네는 씨가 없는 속 빈 참외를 먹었다. 씨가 없어도 참외는 달았다. 내일 할리의 똥에는 참외 씨가 박혀있겠지.

   현 미용실에서 가져온 숱 가위를 깨끗하게 닦았다. 닦아놓으니 새것 같았다. 가위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경쾌했다. 골목 가운데 벽돌 두어 개를 놓고 할리를 앉혔다. 할리의 목에 분홍색 보자기를 두르고 빨래집게로 고정했다. 햇빛을 받은 보자기가 환했다. 수건을 물에 적셔 머리를 닦고 빗질을 했다. 이리저리 빗질만 이십 분을 넘게 했더니 결국 할리가 한마디 했다.
   “대고 막 깎아 부러야.”
   그래? 에라 모르겠다. 할리의 말에 용기를 얻어 생애 첫 가위질을 시작했다. 사각, 머리카락이 보자기를 타고 바닥으로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할리, 아까 뚱땡이 아줌마 뭐래?”
   “몰러……”
   “몰라?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끄덕거린 거야? 이 할매, 웃기네?”
   할리는 대답이 없었다. 사알착 보니 할리가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꺼뻑꺼뻑 조는 할리를 그대로 두고 머리카락에 다시 집중했다. 잔잔하게 늦은 오후가 지나가고 있었다.

   둥근 달이 환했다. 낮에 할리가 앉았던 벽돌 위에 앉아 달을 보았다. 나는 달이 좋았다. 오래도록 쳐다보고 있으면 몸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달 속으로 쑤욱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달 위로 뱉어진 담배 연기가 달무리처럼 보였다. 바람이 불었다. 살랑, 불었고 휘익, 불기도 했다. 달무리가 바람에 씻겨 가고 멀리 파도 소리가 났다. 공터에 있는 밤나무에서 나는 소리였다. 가지도 많고 잎은 더 많은 밤나무. 밤나무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치만 상관없었다. 바람이 불면 그 많은 나뭇잎이 파도 소리를 냈다. 나무가 들려주는 파도 소리는 왠지 쓸쓸했다. 모두가 떠나면 밤나무도 곧 잘려나갈 것이다. 파도가 바닥에 내려앉은 할리의 은빛 머리카락을 실어갔다. 둥실둥실 떠가는 은빛 머리칼에 손을 뻗었다. 새하얀 머리칼은 손가락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병원에 들어서면서부터 발은 허공으로 떠올라 가라앉지 않았다. 발바닥이 거꾸로 천장에 붙어버릴 것만 같았다. 할리의 손을 잡았다. 거죽뿐인 검고 늙은 손이 아직 따뜻했다. 나는 함무니, 함무니……만 했다.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조금만, 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은 더 나오지 않았다. 다들 호상이라고 울지 말라고 했다. 나는 어흑, 어흑 숨만 삼켰다.

   이상하게 고집을 피웠다. 비가 오는데도 굳이 목욕하겠다고 했다. 나는 추워서 계속 안 된다고 했다. 비 그치면 하자는데 어쩐 일인지 할리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미워서 한마디 했다.
   “아주 그냥, 감기만 걸려봐. 가만 안 둬!”
   껍질뿐인 앙상한 등을 세게 밀었다. 가죽만 이리저리 밀릴 뿐 때는 나오지 않았다. 머리를 감기고 보니 자른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삐뚤었다. 내가 봐도 참 형편없었다. 그래도 은발, 백발의 할리는 나름 귀여웠다. 나는 그제야 웃었다. 내친김에 할리의 손톱, 발톱까지 깎아주었다. 할리는 가지런히 잘린 손톱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나는 치, 하며 할리를 흘겨봤다. 할리는 장판 밑에서 봉투를 꺼내 누레진 천 원짜리 다섯 장을 내밀었다.
   “빠다나 먹고 자와.”
   나는 그 길로 바나나를 사 왔다. 우리는 다시 오붓하게 누워 바나나 한 송이를 다 먹어치웠다. 바나나는 향긋했다. 나는 할리의 배 위로 다리를 얹었고 할리는 팔을 내 가슴 위로 얹었다. 우리는 사이좋게 잠을 잤다. 긴 밤, 어두운 방 안에서 들려오는 할리의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달았다. 다음날 할리는 요강에 작고 길쭉한 똥을 누었다. 몽키 바나나 같았다.

   알코올 냄새가 훅 끼쳐왔다. 입관식에서 마지막으로 본 얼굴은 할리가 아니었다. 몸이 물에 불린 것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할리의 부은 몸 어디라도 잘못 누르면 길고 긴 오줌이 하염없이 나올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알코올 솜으로 닦은 얼굴 위로 하얀 크림이 발라졌다. 손을 뻗어 만져보려 했지만 허옇고 멀겋고 퉁퉁 부은 얼굴에서 한기가 흘러나왔다. 처음으로 나는 할리가 무서웠다.
   할리가 삼베옷을 입었다. 버선을 신고 속바지, 속치마, 겉치마를 입었다. 속저고리와 겉저고리, 두루마기를 도포를 차례로 입었다. 마지막으로 종이로 만든 신을 신었다. 할리는 평생 몸뻬만 입고 살다 죽어서야 다 갖춰 입었다. 기름을 발라 빗어진 머리가 단정했다. 바람에 날아가던 할리의 은빛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숨을 삼켰다. 목구멍이 오그라져 붙어 버렸다.

   밥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밥 대신 술을 마시고 장례식장 화장실에서 토하고 담배를 피웠다.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손가락질하는 걸 알고 있었다. 어차피 나는 애미, 애비도 없는 년이니까 상관없었다. 하지만 외로웠다. 또라이들이라면 적어도 나한테 손가락질은 안 하겠지. 문또와 김또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오랫동안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꼬부라진 혀로 중얼거렸다.
   “씨발, 진짜로 외톨이가 되었네.”
   사촌 선경이가 내 옆에 붙어 다녔다. 나 보다 다섯 살 더 많은 선경이는 어려서부터 잔정이 많아 가끔 만나도 나를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그래서 내가 예외로 선경이 말은 좀 듣는 편이었다. 잠을 자야 한다고 했다. 식장 한편 쪽방에 나를 눕히고 옆에 선경이가 누웠다.
   “슬프지? 울지도 말래고.”
   선경이가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번에 할머니가 우리 집에 며칠 있다가 갔잖아. 둘이 앉아서 옥수수를 먹는데 방바닥에 옥수수 씨가 떨어져 있는 거야. 내가 흘린 줄 알고 하나하나 집어 먹었다, 근데 바닥에 씨가 안 줄어. 이상하네, 했지. 그러고 나서 할머니를 쳐다봤더니, 글쎄 씨를 투투 뱉고 있지 뭐야. 할머니는 옥수수 씨가 안 씹히니까 뱉고, 나는 내가 흘린 줄 알고 주워 먹고. 할머니 뭐야! 했더니 되게 미안해하더라고. 그날 얼마나 웃었는지.”
   그래, 그렇게 씹다가 씹다가 결국 안 씹히는 껍질은 뱉어냈지. 방바닥에 뱉어진 미끈거리는 알갱이 껍질과 잇몸으로 씹을 수 없던 작은 씨들이 떠올랐다. 합죽이가 된 주름진 입술에 붙어 있던 노란 씨들을 나는 한 번씩 떼먹었다. 여리고 붉은 잇몸으로 옥수수를 오물거렸을 할리를 생각하며 나는 웃었다. 맑고 노오란 달빛이던 작은 씨앗. 나는 그렇게 할리의 입술에 붙은 작디작은 반달을 따먹었었지.
   “맞아, 옥수수 씨가 달처럼 샛노랬어.”
   뱉어놓고 보니 말이 무색했다. 할리가 죽고 없는데 낭만이라니. 뻘쭘해 가만히 있는 나를 두고 선경이는 말을 이어갔다.
   “그랬구나…… 할머니가 그러더라.”
   선경이는 할리의 목소리와 말투를 흉내 내며 말했다.
   “우리 선주는 잠도 안 자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야. 그러코롬 한참을 하늘만 봐 쌌는디, 고것이 뭔 생각으로 오도카니 하늘만 보고 있을 끄나……”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문밖에 쪼그리고 앉아 새벽 한기가 들 때까지 달을 보곤 했다. 할리가 보고 있는 줄은 몰랐다. 멍하니 달만 쳐다보고 앉아있는 나를 보며 할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수많은 밤을 왜 모른 척 보고만 있었을까. 팔을 얼굴 위로 올렸다. 소매가 조금씩 젖었다. 선경이의 작은 한숨이 들렸다.
   선경이가 잠든 걸 보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사진 속에서 할리가 나를 보고 있었다. 할리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어두웠지만, 무작정 길을 걸었다. 가끔 지나가던 차들이 경적을 길게 울렸다. 야 이, 미친년아. 깜짝 놀랐잖아! 사람들이 지나가고 나서야 욕하는 줄 알았다. 그래도 나는 계속 걸었다. 버스 정류장이, 좁고 긴 골목이, 낮은 담벼락이 보일 때까지.

   집을 비운 일주일 사이에 거의 모든 집이 헐려 있었다. 불이 났던 목화 자리의 흔적도 없어져 버렸다. 부서진 기둥과 벽돌, 흩어진 기왓장들이 낮은 산을 만들었다. 높은 데부터 낮은 지대까지 서로서로 이어져 있던 골목과 촘촘하게 붙어있던 집들은 사라져버렸다. 사라지는 건 이렇게나 쉬웠다. 포클레인이 집들을 밀어내는 게 보였다. 벽은 녹듯이 무너져 내렸다. 한낮의 공사 현장이, 오면 안 될 곳을 온 것처럼 낯설고 두려웠다. 그렇대도 나는 돌아와야 했다. 갈 데가 없었다. 아니, 어디든 갈 수 있겠지. 이제는 아무 데라도 상관없었다.
   할리가 죽으면서 선사해준 흰 저고리를 벗어 곱게 접었다.
   “손자들 대표로 네가 입어, 선주야. 할머니 마지막 선물이야.”
   고모가 붉은 눈으로 말했다. 나는 입을 벌리고 고모가 입혀주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복치마 속에 입은 추리닝의 무릎이 헐거워져 튀어나왔다. 일주일 전 병원을 가면서부터 입었던 바지였다. 추리닝의 밑단을 당겨 무릎을 넣으며 쓸어내렸다.

   몸이 무거웠다. 나는 누운 채로 장판을 뒤집었다. 누런 봉투가 여러 개 나왔다. 오래 눌려있던 헌 돈이 빳빳했다. 이제는 크게 울어도 되는데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주 오래된 기억처럼 할리의 텅 빈 눈동자가 어른거렸다. 할리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숨에 귀를 대고 안도하며 보낸 밤은 끝이 났다. 그런데 왜 나는 자꾸만 그 밤들에 숨어들고 싶을까. 먼 데서 아득하게 담장이 허물어지는 소리가 났다. 무너져가는 것들 틈에서 간간이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잠이 쏟아졌다.

모은영

좁은 방, 종이 한 장 펼쳐 놓고 내가 뭔가를 쓰기 시작하면 할머니는 옆에서 무릎 괴고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나의 어머니이자 나였고 내 딸이었던 그녀에게 안녕의 인사를.

2018/05/29
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