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아침부터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바다가 가까워 늘 습한 바람이 피부에 달라붙는 곳이지만 한동안 잠잠하더니 전날부터 다시 몰려왔다. 야유나무는 간지럼 타는 아이들처럼 이파리를 제각각 까불어댔다. 바람의 마을이란 이름 퐁(風)에 잘 어울리는 날씨였다.
   엄마는 밤마다 잠투정을 하는 동생에게 바람의 신 이야기를 해주었다. 바람의 신에겐 다섯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신은 그 다섯 아들에게 마을 하나씩을 나눠주었단다. 다섯 아들 중 가장 인물이 좋고 마음씨 착한 둘째 아들에게 바람의 신은 퐁니 마을을 주었지. 그래서 두 번째 바람이란 뜻의 퐁니라는 이름이 생긴 거란다.
   경계도 모호하게 붙어 있는 다섯 개의 마을 중 논도 넓고 1번 국도 옆에 있는 퐁니가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엄마는 늘 말했다. 퐁니퐁니퐁니, 엄마는 동네 이름을 노래처럼 이어 부르기도 했다.
   그날, 늦잠을 잔 나는 꿈에서 엄마를 보았다. 애타게 엄마를 부르다 쉬어버린 내 목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좀 깨워주지.
   나는 죄 없는 이모에게 투정을 했다. 꿈에서 본 엄마를 떠올리자 공연히 슬퍼진 때문이었다. 등에 진 대바구니에 하얀 왜가리 한 마리를 넣은 채 푸른 논길을 걸어가던 엄마. 그런데 갑자기 들판으로 안개가 몰려오더니 엄마의 뒷모습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먼저 유난히 검은 머리가 지워지더니 다음은 발부터 다리와 엉덩이가 지워졌다. 마침내 엄마는 왜가리를 진 등만 남아 안개에 떠밀려가고 있었다. 엄마! 아무리 불러도 엄마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엄마가 깨우지 말라고 했어. 더 자야 키도 큰다고.
   이모가 마당을 쓸다 말고 들판을 바라보았다. 허리가 아픈지 왼손을 옆구리에 대고 배를 쭉 내밀었다. 이모의 배는 매일 달처럼 차올랐다. 배 속의 아기가 발길질을 한다고 했다. 나는 아기의 발길질이 궁금해 전날은 열 번도 넘게 이모의 배를 쓰다듬었다. 손바닥을 부채처럼 펴서 배를 둥글게 쓰다듬는데 갑자기 손바닥에 무언가 불쑥 와 닿았다.
   깜짝이야!
   나는 이모의 배에서 얼른 손을 뗐다. 개구리 같은 것이 나를 툭 건드리는 것 같았다. 발길질이라고 해서 아기가 축구를 하듯 발로 힘껏 찰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웠다.
   아가야, 탄 언니야.
   나는 이모의 배에 다시 손을 올렸다. 이번엔 단단한 나뭇가지라도 들어 있는 것처럼 딱딱한 게 잡혔다.
   이모, 이건 뭐야?
   나는 툭 불거진 왼쪽 배에 손을 댄 채 물었다.
   팔꿈치인가.
   이모가 배 아래 쪽에 내 손을 다시 대 주었다. 나는 아기도 아침엔 일어나기 싫어 팔을 굽힌 채 엎드려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아가야, 언제 나와?
   나는 이모의 배에 대고 물었다.
   두 달 후면 만날 거야, 언니.
   이모가 손가락을 야무지게 펴 보였다.
   언니래, 이모!
   나는 진짜 배 속의 아기가 한 말인 듯 설렜다. 2남 2녀의 형제에 이모의 첫아들인 사촌 동생도 있지만 나는 식구가 더 생기는 게 좋았다. 그것도 여자 아기가 나오길 바랐다. 여동생이 없는 나는 친구들처럼 동생의 머리도 묶어주고 소꿉장난도 같이하고 싶었다. 이모를 닮아 이마가 넓고 둥그런 여동생이 생기면 매일 업고 다녀야지, 마음먹었다. 엄마는 이제 더 이상 아기를 낳을 수 없다고 했다.
   아빠는 2년 전 남베트남군으로 전쟁에 나갔다가 지뢰를 밟고 죽었다고 했다. 그 후 엄마는 호이안에 살던 이모를 불러 우리를 맡기고 다낭으로 장사를 다녔다. 엄마가 바구니에 지고 나가는 것은 늘 달랐다. 운이 좋으면 새우를 가져갔고 땅콩이나 옥수수를 지고 가는 날이 더 많았다. 정 팔 게 없는 날엔 죽은 아빠가 입던 바지를 가져가기도 했다. 물건을 다 팔고 오는 날엔 엄마는 햇볕에 까맣게 타 유난히 희게 보이는 이를 다 드러내며 마루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엄마의 허리춤엔 우리 사 남매와 이모네 두 식구가 겨우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돈이 꼬깃꼬깃 접혀 있었다.
   얼른 이거 먹어.
   이모가 손바닥만 한 반뗏을 주었다.
   디엔이 가져온 거야.
   우리 집에선 진작에 다 떨어진 반뗏이 디엔네는 보름이 되도록 남아 있었다. 설날 제사상에 올리느라 엄마는 고기도 없이 바나나만 넣은 반뗏을 정성껏 만들었지만, 식구가 많아 그날로 동이 나 버렸다. 바나나 잎에 싸인 길쭉한 찹쌀떡은 보기만 해도 침이 고였다. 디엔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죽은 후 매일 논에 가서 벼들에게 다정한 이야기를 해주고 풀도 뽑아주곤 했다. 벼가 마치 할머니인 듯 매일 쓰다듬고 흰머리를 뽑듯 잡풀을 뽑았다. 그 할아버지 덕분인지 디엔네는 먹을 게 모자라지 않았다. 아니 디엔에겐 다낭의 목재소에서 일한다는 아빠는 물론 할아버지도 있는 데다 식구마저 적은 탓인지도 몰랐다.
   입안에 찐득하게 달라붙는 반뗏을 나는 유난히 좋아했다. 찹쌀의 끈적한 질감을 음미하며 씹으면 찹쌀 안에 숨어있는 고기나 바나나 향이 입안에 번졌다. 나는 혀를 말아 이에 붙은 반뗏을 말끔히 떼어 물소가 되새김질이라도 하듯 오래오래 씹었다. 유난히 반뗏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이모가 남겨둔 것이었다.
   이모가 불단에 가서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향을 올렸다. 아무리 포격과 총소리가 들려도 이모나 엄마는 불단에 바치는 향을 잊지 않았다. 아니 그럴수록 더 지성으로 바치는 것 같았다. 전날저녁에도 엄마는 불단은 물론 길에도 향을 꽂아 두었다. 엄마는 세상 모든 곳에 신이 있다며 그 신들에게 매일 향을 올렸다. 야유나무 앞엔 사람들이 바친 타다 만 향들이 추수가 끝난 벼 포기처럼 늘 삐죽삐죽했다. 동네 사람들은 명절은 물론 수시로 야유나무 아래에 가서 기도하고 향을 피웠다. 이모가 아기를 가졌다는 걸 알게 된 날도 엄마는 이모와 나를 데리고 야유나무로 가서 향을 한 움큼이나 피우고 절을 했다. 엄마는 아빠가 죽은 것이 기도가 모자라서라는 듯 필사적으로 향과 꽃을 바쳤다.
   마당 입구에는 노란 매화가 아직도 꽃을 피우는 중이었다. 아빠가 죽은 후 엄마가 친구 집에서 얻어와 키우기 시작한 나무였다. 엄마는 그 나무에 노란 꽃이 피지 않으면 집안에 나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며 정성을 들였다. 아니 설에 피는 이 노란 꽃들이 한 해 동안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엄마는 거름을 주고 매일 아침 물을 주었다. 기특하게도 설날 사흘 전부터 매화는 노란 꽃봉오리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설날엔 엄마가 백합도 한 단 사 와 제사상에 올렸다.
   전쟁 중에도 꽃을 파네.
   이모가 엄마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꽃을 좋아했다는 엄마에게 이모는 늘 꽃을 살 돈으로 고기를 사 오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말없이 배시시 웃곤 했다. 엄마의 가무잡잡한 볼에 우물이 파였다. 엄마가 제일 예쁘게 보일 때였다. 아침부터 엄마가 보고 싶어 나는 매화의 노란 꽃잎을 따서 입안에 넣어보았다. 달큰한 맛이 나쁘지 않았지만 향이 나진 않았다.
   엄마한테 이른다.
   지나가던 오빠가 눈을 흘겼다.
   그럼 오빠가 어제도 한국 부대에 가서 깡통 주워 먹었다고 이를 거다.
   나는 오빠에게 혀를 쏙 내밀었다. 엄마는 동네 아이들이 미군 부대나 새로 온 한국군 부대 주위에 몰려가 그들이 버린 빈 깡통에 남은 고기나 과일 따위들을 긁어먹는 걸 질색했다. 죽기보다 싫어했다.
   네가 거지야?
   오빠는 부대 담장 너머로 던져진 깡통에 든 닭고기를 주워 먹고 구슬을 담아 요란한 소리를 울리며 빈 깡통을 집에 가져온 바람에 엄마에게 회초리로 맞았다. 하지만 운이 좋으면 따지도 않은 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해 그날은 동네 친구와 오빠를 따라 같이 가 보았다. 캔은 보이지 않고 부러진 담배 두 개비만 눈에 띄었다. 돌아오는 길에 오빠는 국도변을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담배를 팔았다.
   헤이!
   담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우리를 한 한국 군인이 불렀다. 도망치려는데 그가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가 나를 향해 손가락을 펴 보였는데, 아무래도 몇 살인지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손가락 여덟 개를 펴 보였다. 그가 눈가에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오라고 했다. 나는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그가 주머니에서 초콜릿 하나를 꺼내주었다. 어쩌다 아이들이 얻어먹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군인의 손에 들린 초콜릿을 탐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고만 있자 그가 다시 한번 초콜릿을 내밀었다. 어서 가지라는 뜻이었다. 입안에 고인 침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된 나는 얼른 초콜릿을 움켜쥐었다. 물컹한 감촉이 손바닥에 생생했다. 온 세상이 달콤한 향기로 물드는 것만 같았다. 그때 갑자기 군인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눈앞에 내밀었다. 사진이었다. 흑백의 작은 사진 속에는 성인 여자와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뻣뻣이 서 있었다. 흰 블라우스에 짙은 멜빵 치마를 입은 아이였다. 앞머리를 일자로 자른 단발머리가 나와 비슷했다. 군인이 손가락으로 아이를 짚더니 다시 한 번 나를 가리키며 손가락 여덟 개를 펴 보였다. 아이가 나와 동갑인 모양이었다. 갸름한 얼굴에 눈은 작지만 키는 나보다 더 커 보였다.
   정아,
   군인이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의 이름인 모양이었다.
   탄,
   나도 이름을 알려주었다.
   탄, 탄.
   군인이 내 이름을 두 번이나 더 불러보았다. 그가 사진을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고 손을 흔들며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란 말이 입안에서 구슬처럼 굴러다니고 있었다. 구슬이 입안에서 점점 부풀어 곧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 나는 입을 앙다물었다. 앞에 가는 오빠 역시 말이 없었다. 얼굴은 희미하지만 언제 나를 업어주었는지 마룻장처럼 딱딱한 등의 감촉으로 남아 있는 아빠. 나는 친구 호아의 아빠가 온 얼굴에 주름이 번지며 호아를 쳐다볼 때면 논에 돌멩이를 던졌다. 흰 왜가리 한 마리가 무논에서 지렁이를 잡아먹다가 놀라 날아갔다. 그럴 때마다 맹렬히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는 한국 군인들에게 유난히 친절했다. 말도 안 통하는 외국 사람들이지만 아빠와 같은 편이니 형제 같은 사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는 엄마가 1번 국도에서 만난 한 군인에게 달걀을 줘버려 나를 속상하게 만들었다. 내가 키운 암탉 응옥이 그날 아침 처음으로 낳은 알이었다. 나는 그 달걀을 꼭 엄마에게 주고 싶었다. 병아리 때부터 먹이를 주고 응옥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준 닭, 그 첫 달걀을 엄마에게 선물로 주었다. 혹시 파는 계란에 섞일까 봐 엄마가 장사꾸러미를 다 꾸릴 때까지 기다린 후 나는 온기가 식지 않은 알을 내밀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 달걀을 먹지 않고 바구니 속에 넣어버렸다. 응옥의 첫 알은 다른 달걀들과 섞여버렸다. 나는 바구니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국도까지 엄마의 뒤를 따라갔다. 엄마가 달걀을 군인에게 줘버리자 곧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군인은 들고 있던 총 모서리로 달걀의 양 끝에 구멍을 낸 다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입안에 털어 넣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야유나무를 찾아갔다. 엄마는 왜 알지도 못하는 군인에게 응옥의 알을 줘 버린 걸까? 나는 품에 쏙 들어오는 나무를 안고 물었다. 바람이 불었다. 야유나무 잎사귀들이 우우우,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야유나무는 팔이 천 개나 된다는 부처님처럼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그 나뭇가지 끝에 달린 무성한 이파리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야유나무가 등을 쓸어주는 것 같았다. 참았던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나는 나무의 거친 몸통을 껴안고 조금 더 울었다. 밤이면 아이들과 몰려와 귀신 놀이를 하던 나무는 향냄새가 배어 진짜 귀신 나무 같았다.

   그날, 처음 총소리를 들은 것은 반뗏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였다. 쫀득한 반뗏 속에 숨어 있던 바나나가 물컹, 혀에 닿는 순간 들려온 총소리에 나는 혀끝을 씹었다. 송곳니에 찔린 혀가 얼얼했다. 바로 옆인 듯 가까운 총소리였다. 들고 있던 반뗏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슨 소리야?
   이모가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나왔다. 디엔과 사촌 동생을 데리고 놀던 오빠도 유리구슬을 손에 쥔 채 달려왔다. 언니와 남동생도 튀어나왔다. 모두들 당황한 표정이었다. 국도변 끼엠루 초소엔 퐁니퐁넛 출신 군인들이 많아 우리 동네는 안전하다고, 엄마와 이모가 여러 번 말했었다.
   어서 들어가.
   공포에 사로잡힌 우리에게 이모가 방공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바닷가의 게들처럼 순식간에 방공호로 숨었다. 어두운 곳에 들어오니 안심이 되었다. 한참을 숨죽이고 있었지만 총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훈련 중인 모양이야,
   이모가 흔들리는 목소리로 나가자고 했다.
   내가 떨어뜨린 반뗏엔 그사이 검은 개미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반뗏이라도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다. 동생은 마당에 떨어진 반뗏을 주워 개미를 털어버리더니 하마처럼 입을 벌려 한입을 베어 물었다. 오빠와 디엔, 사촌 타오도 뒤꼍으로 다시 사라졌다. 나는 언니와 함께 마당에 그려진 사방치기를 했다. 번번이 지기만 하는 놀이였지만 언니와 떨어지기 싫어 내가 먼저 졸랐다.
   언니에게 연달아 세 번을 져 돌멩이를 마당에 집어 던진 직후였다, 갑자기 고막이 찢길 듯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탕탕탕. 연달아 세 번의 총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엄마를 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탄!
   언니가 어느새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이모가 부엌에서 뛰쳐나왔다. 뒤꼍에서 달려온 타오가 이모의 품에 안겼다. 오빠와 디엔이 방공호로 뛰었다. 반뗏을 다 먹고 방안에 누워있던 동생도 튀어나왔다. 총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어디선가 사람의 비명이 들려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돼지와 닭들의 비명 소리도 총소리에 뒤엉켰다.
   언니가 멍하니 앉아 있는 나를 일으켜 방공호로 뛰었다. 미군의 폭격에 대비해 아버지가 지어놓았다는 좁은 땅굴이었다. 나무로 문을 만들고 그 위를 넓은 바구니로 가려놓았지만 평소엔 우리의 숨바꼭질 놀이터였다. 이모가 오빠와 타오, 디엔을 제일 먼저 방공호로 들어가라 했다. 언니가 동생과 내 손을 잡고 들어갔다. 이모가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방공호 안으로 들어오자 안은 빈틈없이 꽉 찼다. 길이가 짧아 모두 최대한 몸을 줄여 앉았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꼭 잡은 언니의 손톱이 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홈이라도 파일 것처럼 아팠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침 삼키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총소리가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소란스럽게 들리더니 거친 발자국 소리가 집안으로 다가왔다. 문을 발로 차는 소리가 들렸다. 총소리와 동시에 항아리 깨지는 소리도 들렸다. 지난가을, 엄마가 담근 생선 젓갈 항아리인지도 몰랐다. 젓갈을 담은 후 뿌듯해하던 엄마를 생각하니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봄이 되면 시장에 내다 팔 거라고 했다. 언니의 손톱이 더 날카롭게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갑자기 내 등껍질처럼 밀착해 있던 오빠의 심장 뛰는 소리가 기차 바퀴 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바깥의 군인들에게 들릴 것만 같아 가슴이 졸아들었다. 동생의 침 삼키는 소리도 동굴 속처럼 울렸다. 모든 소리가 바깥을 향해 확성기를 갖다 댄 것만 같았다. 언니의 손톱이 마침내 부러지며 내 손바닥을 긁었다. 피가 나는지 쓰라렸다. 그 순간이었다. 총을 든 군인 셋이 방공호로 들이닥쳤다. 모두 숨을 멈추었다. 허술한 대나무 덮개를 종잇조각처럼 던진 후 우리를 발견한 군인이 소리를 질렀다. 깨진 유리처럼 날카로운 소리였다. 남쪽이든 북쪽이든 베트남 군인들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경우란 없었다. 그렇다고 노란머리에 키가 큰 미국 군인들도 아니었다. 아니 그들 중 한 명은 틀림없이 엄마에게서 내 달걀을 받아먹었던 한국군이었다. 그는 나를 기억하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두 명의 군인이 더 뛰어와 모두 다섯 명이었다. 내 달걀을 먹은 군인이 토굴 속에 있는 우리에게 총을 겨누며 소리를 질렀다.
   이 사람들은 네 아빠와 같은 편이야. 그래서 달걀은 네 아빠에게 준 거나 마찬가지야. 달걀을 군인에게 준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엄마가 여전히 입이 나와 있는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그런데 왜 아빠와 같은 편이라는 이들은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단 말인가, 나는 엄마를 붙잡고 소리쳐 묻고 싶었다.
   응옥의 알을 먹은 군인과 또 한 명이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이모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소리를 질렀다. 밖으로 나오라는 말 같았다. 이모가 온몸으로 우리를 막아서며 비명을 질렀다. 달걀을 먹었던 군인이 그 달걀보다 조금 더 큰 수류탄을 토굴 속으로 던지려 했다. 이번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이모가 연신 손을 저으며 밖으로 나갔다. 따라 나가려던 사촌 동생을 이모가 다시 토굴로 밀어 넣었다. 곧이어 한 발의 총성과 비명이 총알처럼 고막을 뚫고 들어왔다. 사촌 동생의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모의 뱃속에 든 아기가 떠올랐다. 툭하면 팔꿈치를 내밀거나 발길질을 하던 아기는 엄마가 쓰러진 것을 알까. 뱃속에서도 이 총소리를 들었을까. 나는 밖으로 튀어나가 이모의 배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안심하라고, 너는 이 소리를 들으면 안 되니 귀를 막고 있으라고. 하지만 그 순간 군인들이 내 손을 꼭 잡고 있던 언니와 타오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울보 언니는 용케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언니가 내 손을 놓지 않으려 했지만, 군인의 완력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언니가 끌려나가고 타오가 벼포기처럼 들려 나갔다. 엄마를 부르는 타오의 울음소리가 귓바퀴를 파고들었다. 언니가 눌렀던 손톱자국이 송곳으로 찌른 것처럼 움푹 패었다. 패인 자국이 여전히 얼얼한데 두 발의 총소리가 들려왔다. 침 뱉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차례는 오빠와 디엔이었다. 오빠가 나를 쳐다보았다. 소리도 내지 못한 채 흘린 눈물로 얼굴이 번들거렸다.
   오빠!
   줄곧 풀로 붙인 것 같던 내 입술이 그제야 겨우 벌어졌다. 달리기를 잘하던 오빠의 다리가 야유나무 가지처럼 흔들렸다. 오빠는 나를 외면하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와 총소리들이 뒤따랐다. 나는 온몸을 구부리고 눈을 감았다. 차라리 이 토굴에 누군가 흙을 덮어 무덤을 만들어주면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오빠는 어떻게 된 걸까. 동생을 셔츠로 감쌌다. 제발 그들이 동생과 나를 잊어버리고 지나간다면, 차라리 개미로 변신이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머릿속은 고장 난 환등기처럼 뒤섞였다. 개미의 발자국 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침묵과 팽팽한 긴장이 작은 방공호 안에 가득했다. 마침내 그들이 돌아왔다.
   셋은 어디로 갔는지 두 명의 군인이 마지막 밥그릇을 비우듯 나와 동생을 끌어냈다. 햇빛이 야유나무 잎사귀에서 반짝였다. 갑자기 동생이 마당 입구에 쓰러진 이모에게 달려갔다. 세 발짝도 가지 못해 총소리가 들렸다. 다섯 살 동생이 짚단보다 가볍게 쓰러졌다. 가슴에서 피가 튀었다. 이모는 왼손으로 배를 감싼 채 매화나무 옆에 쓰러져 있었다. 사촌 동생은 이모와 서너 발짝 떨어진 곳에서 두 팔을 뻗은 채 엎드려 있었다. 이모에게 달려가다 총을 맞은 모양이었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모래흙 속으로 계속 스며들고 있었다. 오빠는 어디로 간 걸까, 오빠를 찾아 고개를 돌리는 찰라, 뒤에서 총알이 날아와 왼쪽 옆구리를 관통했다. 나는 두 다리를 꺾으며 쓰러졌다. 피가 흐르는지 왼쪽 배가 서늘했다. 아니 옆구리가 찢어지고 무언가 뭉텅이째 흘러내리는 것 같았지만 더 이상 꼼짝할 수 없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누워 있었다. 사라졌던 군인들 셋이 돌아왔다. 군인 하나가 지붕 위로 불이 붙은 막대기를 집어던졌다. 그때 죽은 줄 알았던 이모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괴성이었다.
   안 돼!
   세상에 있는 짐승이 아닌 것 같았다. 모래보다 거칠고 칼보다 날카로우며 벼락보다 광포하게 터지는 괴성이었다. 아니 비명이었다. 검은 용의 목소리가 저토록 기괴할까. 나는 엄마가 이야기해 준 하늘의 검은 용이 떠올랐다. 마음이 착한 사람에겐 천국의 불을, 악한 사람에겐 지옥 불을 뿜는다는 검은 용. 이모는 어깨에 총을 맞고 기절했던 모양이었다. 깨어난 이모가 불을 던지려는 군인에게 바로 달려들었다. 지붕 위로 불붙은 나뭇가지를 던지려던 군인이 기우뚱했다. 그가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옆에 있던 군인이 총에 꽂혀 있던 칼로 이모의 배를 찔렀다.
   나는 눈을 감고 숨마저 멈춘 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살아있는 것을 들키면 끝이라는 생각 때문에 통증을 느낄 새도 없었다. 마침내 그들이 떠나는 소리를 듣고 눈을 뜨자 지붕에서 불꽃이 치솟기 시작했다. 아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모의 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언니는 마당 끝에 반듯하게 쓰러져 있었다. 입안에 총을 넣고 쏘았는지 턱이 다 날아가고 얼굴이 뭉개져 있었다. 평소 맑은 샘물처럼 눈물이 솟던 눈도 한쪽은 보이지 않았다. 언니의 흰 셔츠가 온통 붉은 피로 젖어 있었다. 총을 입에 물고 벌벌 떨었던 언니의 표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불이 지붕으로 거침없이 번지고 있었다. 야유나무 잎을 흔들던 바람이 우리 집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한손으로 터진 배를 틀어막았다. 몹시도 목이 말랐다.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찢어진 틈으로 창자들이 흘러내렸다. 옆구리를 단단히 틀어막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언젠가 논둑에서 본 옆구리 터진 뱀처럼 필사적으로 기었다. 사람들이 지나 다니는 큰 길로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논둑길 중간쯤이었다. 1번 국도가 신기루처럼 아득히 보이고 마을 앞 논은 총성에 아랑곳없이 푸르기만 했다. 논바닥에 한 여자가 처박혀 있었다. 흰옷을 입은 그녀의 등 뒤로 핏빛 자국이 선명했다. 아무리 눈을 다시 떠보아도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에 익은 검은 바지를 입고 설 무렵 다낭의 시장에서 샀다는 노란 머리핀으로 유난히 검은 머리를 묶은 한 여자, 엄마였다.
   엄마, 엄마!
   나는 온몸으로 기면서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대답은커녕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그녀의 뒷모습은 이미 깊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 아직 돌아올 시간도 아닌데 엄마는 왜 논바닥에 처박혀 있는 걸까. 나는 논으로 뛰어들 듯 기었다. 그때였다.
   탄, 오지 마. 어서 여기서 나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의 신을 이야기해 줄 때처럼 가늘고 높은 엄마의 목소리.
   탄!
   정신 차려!
   소리가 집요하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 채 누워있는 내게 엄마의 목소리는 하늘과 땅, 산과 바다, 나무와 들판을 지나 어딘가로 파도처럼 나를 떠밀어내는 것 같았다.
   탄, 탄!
   엄마는 쉬지 않고 나를 불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

* 이 소설에 나오는 ‘바람의 신’은 고경태 기자의 <1968년 2월 12일>에서 참고하였음.


김이정

지난겨울,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 일어났던 퐁니퐁넛 마을에서 생존자 응우옌 티 탄을 만났다. 그녀와 함께 위령비로 가는 길, 나는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난 듯 그녀의 허리에 손을 감고 걷다가 무심코 닿은 손바닥의 감촉에 당황했다. 울퉁불퉁 깊게 팬 그녀의 상흔이 지나치게 선명히 손바닥에 전해졌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는 그녀를 안았다. 차마 미안하다는 말도 나오지 않아 나는 그녀의 등을 몇 번이고 쓸어내렸다. 그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동갑내기 친구 응우옌 티 탄.

2018/04/24
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