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트



   나의 전생은
   커다란 식빵 같아

   누군가 조금씩 나를 떼어
   흘리며 걸어가는 기분

   그러다 덩어리째 버려져
   딱딱하게 굳어가는 기분

   배고픈 개가 킁킁거리며 다가와
   이빨로 살살 갉아댈 때까지
   나는 있다, 최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반갑겠지, 그렇게라도 말을 걸어주어서
   심지어 사랑이라고 믿을 수도 있겠지
   궁지에 몰렸었다고 말하면 그뿐
   나를 속이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으니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질 때마다
   털실 뭉치에 끼워진 코바늘을 생각한다
   그건 마치 겁먹은 짐승의 눈을 들여다보는 일 같다

   잘 짜이고 싶은 것은 아니야, 그보다는
   불안을 사랑하는 쪽이 좋지
   살아 있으니까,
   내 삶에도 주술이 필요했노라고 말하면 그뿐

   물주전자가 물을 담기 위해 만들어졌듯
   있겠지, 내가 담을 것과 내게 담길 것

   때로는 길을 잃기 위해 신발을 신는다
   오겠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에
   진짜 이름을 붙여줄 날





   거인의 작은 집



   거인에게는 집이 한 채 있네

   한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그 집은 빛으로 둘러싸여 있고

   언제나 갓 지은 밥 냄새가 난다네

   창틀에 끼어 있는 좁쌀 같은 집

   눈을 크게 뜨고 찾아야만 볼 수 있는

   거인은 밤마다 그 집으로 걸어 들어가 몸을 누이는 상상을 하네

   모자처럼 집을 머리에 쓰고 산책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네

   그곳은 호수를 품은 집, 호수의 영혼인 듯 헤엄치는 물고기를 바라보며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너를 보면 은빛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될 것 같아

   이쪽의 슬픔을 간신히 저쪽으로 옮겨보기도 하는

   그러나 아무리 몸을 접어도 발가락 하나 들여놓을 수 없는 집

   눈물 한 방울 땀 한 방울에도 허물어지는 집

   거인이라고 해서 마음까지 거대한 것은 아니어서

   거인에게도 언덕은 언덕이어서

   눈앞의 하루를 오르고 또 오르며 작은 집으로 들어갈 수 없는 스스로를 한없이 원망해야만 한다네

   창과 방패, 창과 방패, 세상에는 평행선처럼 영원한 것이 아주 많다고

   아침은 밤을 삼키고 밤은 다시 아침을 삼키며

   떠나고 또 되돌아오는

   깃들기 위한 집, 거인이 거인일 때에만 작은 집일 수 있는 집

   실은 집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네, 집의 영혼인 거인을, 매일 환하게 불을 밝히고 식탁을 차리네

안희연

마감일이 다가오면 요리를 한다. 시를 쓰는 삶이 좋기도 힘겹기도 하다. 정말 원하는 시는 아직 쓰지 못했다는 변명으로 시간을 유예하며 산다. 어쨌든 봄이라서 좋다.

2018/04/24
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