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는 지옥에 가다가
숨이 차서 돌아온
악마



   난 네게 다시는 돌아오지 말란 말을 전하기 위해
   많은 양을 죽였다 답장 대신 한 걸음 더 디뎌라
   양피지에 쓰고 있다
   나의 벗이여 이곳엔 돌아온 이들이 너무 많다
   더 두려운 건
   내가 어디를 가다가 멈추었는지 혹은
   돌아오는 중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
   난 나의 걸음마가 기억나지 않는다





   은박지를 씹으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고개를 숙여야 하는 사람에 대하여
   신이 준 우기에 대하여
   인간이 끝내야 하는 우기에 대하여

   어금니로 은박지를 씹으며
   빛나는 것을 구겨 씹는
   지독한 주조를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타일 위로 유리를 떨어뜨리는 실수에 대하여
   관대한 실수에 대하여
   많은 것을 깨뜨리며 빛나는 실수에 대하여

   깊숙한 데생을 멀리하고
   여백에 머무르는 비겁한 고독과
   동지와 후세에 써둔 유언장과
   도망칠 때마다 불어나는 은빛 토르소에 관하여

성동혁

원고료를 받으면 새 신발을 살 거다. 검은 로퍼다. 봄엔 그 신발을 신고 걸을 거다. 그렇게 걸으며 본 풍경이 또다른 글이 되겠지. 다행히 이런 순환 속으로 다시 들어왔다.

2018/03/27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