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소묘



   검은 주머니에 묶어둔 주홍빛 끈을 푼다
   경계가 허물어진 공중에 모래알을 산란한다
   볼 빨간 꼬마들 숨소리가 떠도는 놀이터
   별별 모래알이 미끄럼틀을 타고 하강한다
   흰수염고래 꼬리지느러미를 눈동자가 따르는 저녁
   긴 미끄럼틀에서 내려와 도약하는 방법을 익힌다
   회화나무 순 군락에서 큰 날숨을 쉴 때마다
   모래가 도약하는 놀이터로 바람이 깃들고
   텅 빈 모래알은 아무도 모르게
   바람 돛배에 세밀하게 조각된 몸을 싣는다
   평형대에서 모래가 모래 손에 깍지를 끼고
   까칠한 모래끼리 맞닿은 손은 따뜻하다
   흰수염고래 자리가 푸른 물기둥을 내뿜으면
   검은 몽돌로 터를 닦은 조개껍데기 지붕 아래
   모래를 닮은 파도 포말들이 마중 나온다
   흰수염고래 한 마리가 놀이터로 잠영하고
   텅 빈 모래를 검열하는 낮은 자세를 취하며
   한때 가장 즐거운 바다에서 한 톨로 떠돌다가
   다시금 빛나는 흰수염고래 자리를 반갑게 만난다
   파도가 이끄는 대로 나부끼는 산호초에
   고래 비늘이 반짝 시계 초침처럼 꿈틀거린다





   소년이 노래한다



   식물성 구름은 파란 풍선을 인도하는 별이다
   소년은 별빛 징검다리를 눈에 새기며
   씨앗처럼 잠든 풍선에 숨을 불어넣고 있다
   피아노 건반을 춤추던 손으로 풍선을 고정하고
   하얀 건반과 검은 건반이 그리던 음표를
   구름 오선지에 새겨질 식물성 다짐을
   이제 깨어나는 풍선에 불어넣고 있다
   먼지 덮개를 감싼 건반처럼 무표정하던 소년이
   음표가 꿈꾸는 세계대로 표정을 바꾸고 있다
   하얀 무표정에 묻어나는 꽃잎의 표현형
   피어나는 꽃잎이 바람 꽁무니를 따라나선다
   자꾸만 소년의 꿈결에서 난장을 부리던
   붉은 바늘 족장 이야기를 무찌르고
   소년은 어린 염소를 보호하는 얼굴로
   마지막 악보가 될 피아노 건반을 외운다
   구름의 세계에서 은빛 리듬이 발을 모으고
   어느덧 풍선은 발레리나를 닮은 몸짓
   파란 풍선 둘레 너머로 햇무리가 번진다
   식물성 구름이 불러들인 굵고 푸른 뼈대
   구름 아랫마을로 평화처럼 여우비가 내린다
   소년은 젖은 풀잎처럼 포효하고 있다

황석현

나는 먼지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가 먼지로부터 다시 출발할 수 있는 위대한 가능성을 느꼈다. 나는 원형의 세계 어디쯤에 와있을까.

2018/05/29
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