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지를 위한 기도



   우리는 팀으로 태어났다. 마루를 기어다녔다. 마루 끝에서 끝까지 그림자가 자랐다. 우리는 수행원. 몸집이 큰 미용사. 서로의 그림자를 자르고, 잠들 때까지 빗겨주고, 잠든 쪽을 위해 깨어 있었다.

   저녁에 우리는 기관지를 위해 기도했다. 우리는 먼지가 꽉 찬 기계였다. 숨을 털어넣고 차가운 가루를 삼켰다. 젖은 발을 끌며 마른 걸음으로 걸었다. 책 속의 먼지를 읽어주었다. 우리는 녹음한 목소리. 인질이 다니는 길.

   죽은 변성기를 흉내내던 꿈속에서 우리는 여러 사람처럼 거대한 입김을 뿜었다. 커다란 바구니가 필요합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빈 하늘을 선물한 적 없었다.





   맞노크



   구월은 자꾸 시험에서 떨어졌다
   머리숱이라고 말하면 머리통은 덤불 속에 빠졌다
   구월을 주의할수록 털이 이마에 달라붙었다
   면허학원에 가려면 기찻길을 건너야 했다
   철로 옆으로 난 좁은 통행로를 따라 걸었다
   상행과 하행을 구분할 수 없었다
   기찻길 주변에 길게 자란 풀꽃이 많았다
   구월의 기차는 더운 바람을 일으켰다
   가슴팍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걸었다
   녹슨 난간에 사선으로 페인트를 칠해두었다
   노랑은 주의하라는 뜻인데
   참기 힘들 때 숨을 급히 몰아쉬라는 뜻인데
   건널목에 붉은 신호가 깜빡거렸다
   조금씩 해가 지고 있었다
   그만두라는 뜻인데
   기차는 너무 커서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기차를 좋아하게 되었다
   저렇게 긴 바람을 맞고서
   무참히 어떤 사람이 되고 마는 걸까
   시험에 또 떨어졌다
   다시 기차가 지나갔다
   멀리 떨어진 건널목에서 쇠공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기계는 기차가 오기 전부터 쇠공을 내리쳤다
   쇠공의 안팎을 노크로 채우며 기계는
   기차와 너무 가까운 사람을 불렀다
   머리, 하고 부르면 목을 잘라 덤불에 던져넣는
   이제 구월
   팔뚝에 닿는 건조한 바람을 맞으며
   나는 소름 돋은 길을 걸어갔다

금찬영

휴학. 독립출판사 근무. 강릉. 커다란 바다. 바다 위에 파도가 떨어진다. 파도 위로 비 쏟아진다. 군인은 초소에서 내려다본다. 도로를 따라 운전한다. 나는 무관하다.

2018/03/27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