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사람의 두통



   두통은 어디서 오나.
   어느 차디찬 극지에서 오나.
   아니면 순식간에 바람에 날려 바다에 툭 떨어진
   낡은 모자나 혹은 구멍 난 호주머니 속에서 오나.
   함께 했던 시간 내내, 두통이 오는 길을 되짚어 가
   잠시 물러간 두통들이 모여 잠든 곳을 찾아다녔던 사람.
   옆 사람의 두통 하나도 나는 치료해 줄 수 없다.

   내가 사랑하는 옆 사람은 늘 두통에 시달린다.
   적어도 의사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습관적인 두통에
   시달리다가, 시들어가는 옆 사람이 문득 혼자 있다는 이유로
   이유 없는 눈물을 흘릴 때,
   그 두통이나 외로움의 눈물 모두, 냉골인 내 방이 녹아 흐른 것일까.
   어디서 떨어져 나온 지 모를 죄책감이 유빙처럼 떠다니는 방에 나는 둥둥 떠 있다.

   두통 때문에 내 얼굴도 잘 못 알아보는 옆 사람은
   데이트를 위한 임시처방으로 아주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마치 뜨거운 감자를 삼키듯 단번에
   꿀꺽 삼킨다.
   그러면 그 순간 잠시 두통이 씻은 듯 사라진다고 한다.
   그제야 옆 사람은 빙긋이 힘없이 웃으며
   오랜만에 날 알아보고는 눈처럼 새하얀 손으로 내 뺨을 어루만진다.
   신기하기도 하다, 정작 마주 앉아
   같이 아이스크림을 삼킨 나는, 정수리에
   도끼가 내리꽂힌 얼음덩이가 된 듯 얼얼하다.
   눈 앞 옆 사람의 얼굴이 조금씩 천천히 완전히 흐려진다.

   안타깝다.
   옆 사람은 얼음덩이가 된 내 입술을 입김으로 녹이고
   나는 옆 사람의 아이스바처럼 하얀 손을 주머니에 넣어 녹이고
   그렇게 시간이 멈춘 듯 흰 밤, 검은 밤, 흰 밤, 검은 밤
   마다 어느새 나는 기절해 있다.

   언제 들어왔는지 모른다.
   얼음장 같은 빈방에 쓰러져 잠들어 있다.
   일어나보면 언제나 옆 사람은 없다.
   더 정확히는, 옆 사람 옆에 내가 없다.
   내 옆이 아닌 곳에서 혼자, 옆 사람이 울고 있다.

   옆 사람은 아침으로 늘 주먹밥 같은 아이스크림을 삼킨다.
   깜박 늦잠을 잔 날이면, 각얼음 두 개라도 알사탕처럼 깨물어먹고 나간다.
   그래야 두통이 잠시나마 가시고 오늘 살 세상이 눈앞에 보인다.
   금세 흐려지겠지만.
   그러나 그 잠깐 사이 눈으로 보아버린 슬픈 일들 때문에,
   그래도 죽지 않고, 산다.

   옆 사람이 무릎을 꼭 껴안고 웅크려 울면
   옆 사람의 몸이, 어린아이가 시린 손으로 굴린 눈덩이처럼 둥글어지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옆 사람의 몸에 달라붙어 같이 얼어가는 흙모래를 애써 털어내는 일.
   옆 사람의 작게 웅크린 몸을 끌어안고 내 얼굴을 올려놓으며, 잠시나마 함께 눈사람이 되는 일.
   다음날 해 지고 헤어질 때면 우리가 같이 세상에서 녹아 사라지는 일.

   결국 두통에 다 녹아버려서 옆 사람은 이제 얼굴이 없다.
   나는 옆 사람을 깊이 사랑한 만큼, 옆 사람의 얼굴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기억의 주머니 가장 깊숙이 빠뜨렸다.
   그래서 지금 옆 사람의 얼굴이 까마득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마치 마음처럼,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눈과 사람의 시작



   바라본다.
   태어나자마자 아가가.

   바라본다.
   이별을 통보한 애인이.

   바라본다.
   고집스레 고개도 돌리지 않는 아들을
   죽기 며칠 전의 아버지가.

   나를 바라본 적 있는 눈들은
   지금 어느 길에 젖은 자갈처럼 흩어져 있나.
   나를 담은 적 있는 눈들은
   지금 어느 길에 물웅덩이처럼 흘러넘쳐 있나.

   마주 보고 싶다.

   나를 바라본다.
   버려진지 모르고
   골목을 수일간 배회하던 강아지가.
   지금껏 나를 본 모든 눈동자가
   새까맣게 겹쳐진 눈으로.

   단단한 빛에
   깨진 검은 단추같이 빛나던 눈동자들이
   내가 나를 벗어버리지 못하게 단단히 채워왔다.

   그 검은 눈동자들 하나하나 떨어져 나간다.
   눈송이들이 한꺼번에 후드득 떨어진다.
   순식간에 검은 눈을 흰 눈이 덮는다.

   나는 나도 못 알아볼 창백한 얼굴 발가벗은 몸으로 혼자 서있다.
   해가 쨍하고 뜨면 흥건한 길가 물웅덩이를
   엘리베이터처럼 타고 지하로 내려갈 것이다.

   그곳은 눈과 사람으로 가득 찬 베개가
   구름처럼 쌓인 하늘이다.

   눈사람은 그곳에서 깊이 잠든 사람이다.

김중일

아직까지 시만 겨우 쓰는 사람

2019/05/28
1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