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미래



   그 누구도 풀지 못한 슬라이딩 퍼즐의 주해서는 단 하나의 빈칸에 관한 유령학이었다.

   그것은 점자 일기였다.

   그것은 사방으로 펼쳐지는 얇디얇은 지도 접책이었다.

   이따금 그것은 하얀 설치 기계의 전시 도록이었다. 그것은 형이하의 것을 형이상의 것으로 부드럽게 밀어올리곤 했다. 동시에 형이상의 것을 형이하의 것으로 치밀하게 끌어내리기도 했다.

   희고 난해한 텍스트에 청보랏빛 압화가 말라붙어 있었다. 형이하와 형이상의 사이에서 이 현실을 가장 좋아한다는 듯이.

   고스트 라이터는 겨울에 더 단단한 달걀을 말하고 싶어 했다. 그후에, 깨진 백달걀의 여름 피 흔적을 말하고 싶어 했다.

   이 세계는 아직 실험 단계로, 차가운 손목의 청보랏빛 맥을 짚는 현대성이 있었다.





   비미래1)



   다가온다는 시간을 기다리면서 양을 셌다

   숲, 하는 숨과 쉿, 하는 숨을 구분하지 않는 심호흡
   어느새 흰 눈 위로 자라나는 검은 숲

   흑백의 긴 꿈을 꾸는 동안, 고단한 생물을 부드러운 풀숲에서 한숨 재웠다
   꿈속에서 잠을 자는 일을 지켜보고 싶어서

   아무도 돌보지 않은 것의 끝이, 비침과 비춤으로 남을 때
   죽은 선한 존재를 양떼가 감싸는 외화면
   유령의 따뜻한 외피들
   투명한 유령의 표피들
   슬퍼서 좋아하는 영화처럼 꿈속이 흔들렸다

   흩어진 양들이 올겨울 첫 꽃을 뜯으며 순하게 독특해지고

   다가온다는 시간을 기다리는 눈사람들

   늙고 젊고 어린 눈사람의 눈석임

   전 존재의 안쓰러움.

안미린

‘비미래’라는, 동일한 제목의 연작시를 쓴 지 오래다. 겨울에는 여름 시를 썼고, 여름에 겨울 시를 썼다. 다음 계절 같은 미래를 감각하면서, 미래의 내부와 외부 사이를 감지하면서, 그 사이의 것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비미래들’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미래가 어떤 형태가 되는지, 천천히, 예감마저 기다리면서.

2021/07/27
44호

1
Inspired by. 〈Robert Bresson’s au hasard Balthaz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