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는 유튜브 ‘빠더너스 BDNS’ 채널에서 발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배달음식을 주문해놓고 오기 전까지 혼자 또는 게스트와 함께 좋아하는 것들 혹은 주변 신변잡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먹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는 컨셉으로 첫술을 뜨는 순간 영상은 끝납니다.



내가 유튜버가 됐다니

유튜브…… 왠지 입에 잘 붙지 않던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비로소 사람들 입에 안착시킨 첫번째 플랫폼이 유튜브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음악을 한다고 하면 음악인이지 ‘멜로너’가 아니고, 영화를 한다고 ‘메가박서’가 되는 것은 아닐 텐데 유튜브는 유튜브에서 작업물을 공개하는 모든 작업자의 직업을 ‘유튜버’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내 직업이 ‘유튜버’라는 이름으로 납작해져도 그렇게 억울할 것도 아니다. 유튜브는 수많은 창작자가 고민하던 수익화라는 지점을 해결해주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튜브 이전의 세상에서 기타리스트들은 곡 작업이나 세션, 레슨 같이 자신의 재능에 한두 번의 쿠션을 넣어야만 수익을 낼 수 있었다면 유튜브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쿠션 없이, 그러니까 기타 연주와 커버를 찍어서 올리는 방식으로도 수익을 낼 수 있게 됐다. 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우리 팀이 만든 영상—시간과 땀과 자부심과 아쉬움이 묻어있는 그 자식 같은 결과물—들로 할 수 있는 일은 우리에게 제작비를 지원해줄 수 있을 것 같은 회사에 포트폴리오 형식의 메일을 보내는 일 말고는 없었는데, 유튜브에 영상을 업로드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지자 마침내 그 자식들이 돈을 벌어오게 된 것이다.
  많은 작업자가 꿈꿔왔던 ‘내 작업물로 돈을 벌 수 있다!’라는 가장 영예롭고, 자아실현에 가장 가까운 행복한 상상을 유튜브는 현실로 만들어줬다. 나만 하더라도 내 작업물로 버는 돈이 특별히 더 가치 있게 느껴지는 건지 그 돈 앞에서는 경제관념이 희미해진다. 생계를 위해 해야하는 얄궂은 일의 월급은 250만원도 한참 모자라다는 생각이지만, 내 작업물로 돈을 버는 경우는 50만원만 되어도 어떻게 해서라도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그 희망. 그 희망이 아주 달콤했다. 부모님도 허락해주지 않고 세상도 인정해주지 않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꿈을 역설적으로 유튜브가 이루어준 것이다. 물론 그 달콤함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유튜브에서는 모두가 동종업계 종사자

유튜브 밥을 먹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경쟁자들과의 전선이 기하급수적으로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예전에는 동종업계 종사자들만 신경 쓰고 질투하고 참고하면 됐는데, 유튜브라는 거대한 비빔밥 그릇에서는 기타리스트 유튜버의 경쟁자가 먹방, 여행, 시사, 코미디 채널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원래 같았으면 옆 합주실 기타리스트가 어땠다더라, 옆 밴드에 기가 막힌 기타리스트가 새로 영입됐다더라 정도의 소식만 신경 써도 됐지만 이제는 공사다망한 주식 투자자들처럼 모든 뉴스가 섬네일의 키워드이자 호재로 다가오게 됐고, 심지어는 평생을 멀리하고 싶던 정치 뉴스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기타리스트가 마음 편히 기타 연주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로 결정했을 때 이런 상황까지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이유의 신곡 기타 커버 영상이 〈아이유 신곡 뮤비 촬영장 여행 VLOG〉라는 제목의 여행 유튜브, 내지는 〈아이유 뮤비에 나온 케이크 직접 먹어봤습니다!〉라는 먹방 채널과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이 상황을 오래 고민해왔고 이에 대해 자주 욕을 하곤 했다. 나는 내가 촬영할 코미디 대본의 소재를 생각하고 구조를 짜기에도 24시간이 부족한데, 왜 하필이면 유튜브는 장르를 구분해놓지 않아서 조회수 높은 동영상이나 ‘인기 급상승’에는 내가 인정하기 싫은 장르의 영상들이 넘쳐나는 것인지. 나는 내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것들을 신경 쓰게 됐다.


‘먹방 왜 안 함? ㅋㅋㅋ’

그래도 몇 년의 시간이 흐르자 나는 이를 유튜버가 내야 하는 세금 정도로 받아들이고 소화하며 넘기게 됐다. 사실은 소화하지 않을 방도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맞닥뜨려야 할 진짜 스트레스는 이것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내 외모에서 비롯되는, 사람들의 먹방에 대한 기대였다. 내가 맞서야 하는 상대는 무자비한 유튜브 알고리즘만이 아니라, 구독자—나는 짓궂은 댓글 쓰는 사람들이 내 구독자가 아니길 바라지만—들의 ‘먹방 해주세요 잘할 것 같은데 ㅎ’ 내지는 ‘먹방 왜 안 함? ㅋㅋㅋ 직무 유기 아님?’ 같은 반응들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먹방 해주세요’라는 댓글들에 과민반응을 하게 되고 그 댓글들을 인질이자 무기로 휘두르게 되었다.
  먹방이라는 거대한 장르와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을 그냥 무시하고 넘길 수는 없었다. 내 신념이라며 먹방을 하지 않는 것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시청자들을 먹방으로 놀리고 싶었다. 먹방에 대한 막연한 거부반응이 어느 정도로 심했냐면, 그냥 먹방을 하지 않는 수준으로는 거부감을 잘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앞으로 먹방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선언해놓고 나만의 유행어처럼 가지고 놀았다. 그래. 먹방이라는 키워드가 알고리즘의 선택을 잘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이용해보자. 먹방처럼 오늘 먹을 메뉴들을 제목으로 적겠지만 한입 넣는 순간에 영상은 끝날 거야. 약 오르지?
  억하심정이라기보다는 장난스러운 느낌이었던,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의 시작이었다.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

음식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단순히 맛있게 먹는 것에만 탐닉해왔다면, 나는 음식을 좀 더 깊이 사랑해서 음식을 기다리는 과정과 먹는 시간까지 통째로 좋아하려고 했다. 식당으로 치자면 입장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음식을 즐기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만약 먹는 상상만으로 뇌에서 무슨 무슨 호르몬이 생성된다면 아마 나는 족히 두세 시간은 그 호르몬이 나올 것이다.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순간부터 첫술을 뜨는 순간까지 그 음식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다양한 주제의 넋두리를 해보자는 것이 처음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이하 〈오당기〉)의 기획 방향이었다.
  나는 이 분야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공감각적 표현과 비유들을 강박적으로 쏟아내던 내게 〈오당기〉는 배출구가 되어주는 컨셉이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음식을 기다릴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감을 보태는 것은 너무 쉬웠다. 어떤 노래만 들어도 그때 갔던 포장마차가 생각나고 영화의 한 장면만 봐도 먹고 싶은 것들이 생각나는 내게는 ‘페어링’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것이, 부어라 마셔라가 아니라 한 모금 한 모금을 소중하게 마시는 분위기가 되는 것이 반가웠다.

유튜브 빠더너스(BDNS)의 프로그램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의 2022년 12월 25일 방송분으로, 문상훈이 카메라 앞에 혼자 앉아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던 중, 가수 김형중의 노래 〈남겨진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화면 속 자막에는 “이걸 조금 들어보고 가사도 조금 보면요”라는 문상훈의 말이 적혀 있다.
〈오당기: 문상훈과 함께 오지 않는 마르게리타를 기다리며〉 2022년 12월 25일

좋아하는 노래를 소개하는 일이 요리의 주된 재료를 고르는 일이라면, 이 노래가 왜 좋은지를 설명하는 일은 양념을 고르는 일이었다. 좋은 재료를 고르는 것은 당연하고 양념을 어떻게 쓰는지가 음식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했을 때 노래 중 어떤 부분의 가사가 좋은지를 설명하는 일은 오늘 먹을 음식의 풍미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나는 이 과정이 문학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문학이란 작가가 적어놓은 단어들을 내 기억 속의 어떤 부분으로 치환해 그때 느꼈던 감정을 극대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연우 씨의 〈나는 사랑이 뭔지 모르나봐요〉를 이적 씨가 라디오에서 라이브로 부른 버전을 소개하면서, 나는 ‘사랑을 아는 사람은 사랑이 뭔지 모른다고 하고,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는 사람은 어쩌면 사랑을 알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때 시켜놓은 음식은 해물탕이었다. 해물탕과 사랑에 대한 메타인지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 싶겠지만 그때는 날이 점점 선선해지고 가을 느낌이 물씬 나기 시작할 때의 그 감정을 극대화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스치는 밤바람의 기온이 낮아졌다는 것이 문득 생각날 때, 나는 습관처럼 소주 한 잔이 생각나고, 그 소주에 어울리는 얼큰한 해물탕이 떠오르고, 그 첫 잔이 목을 타고 지나가며 찌르르할 때, 왠지 모르게 센치해지는 그 순간을 극대화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준비운동처럼 사랑 노래를 찾아 들으며 잠시 덮어뒀던 기억들을 헤집어 꺼내놓는 것이다. 그런 기분을 충분히 끌어올린 다음 노래를 들으면서 소주를 마시면 같은 술도 더 의미 있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오당기〉의 정수였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의 끝에는 늘 시가 있었다. 나는 음식과 술의 풍미를 더 깊게 하기 위해 준비운동을 했지만, 불콰하게 취한 뒤에 생각나는 이름들은 늘 김소연, 이규리, 김행숙, 권혁웅 같은 시인들이었다.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오당기〉는 2020년 9월에 첫번째 에피소드가 올라갔고 2024년 3월 현재까지 56개의 에피소드가 올라갔다. 시즌 1은 주로 혼자 이야기하는 컨셉이었다. 처음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들어줄 사람을 찾는 느낌이었는데 한 영상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나는 이것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대충 기억을 더듬어봐도 꽤 오랜 시간 고민하고 울고 다짐하며 깨닫게 된 단편들을 쉽게 풀어놓다보니 할 이야기가 금방 동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랑에 대한 생각, 부모님과 정서적으로 분리하는 법, 동경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 같은 오랜 고민은, 고민했던 그 긴 시간이 무색하게도 5분 남짓이면 영상에 다 담겼다.
  생각을 털어놓는 것이 버거워져서 노래나 영화, 시 추천으로 분량을 채우기도 했지만 그건 그것대로 아쉬웠다. 누군가 내가 열심히 만들어낸 딸기 생크림 케이크의 맨 꼭대기에 있는 딸기만 따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맥락을 열심히 설명하면서 이 노래는 어떤 계기로 좋아하게 됐고 특히 가사의 어느 부분을 좋아하는지를 소개하고, 다들 그 루트대로 즐겨줬으면 하는 마음과는 정반대로, 문상훈이 추천하는 노래 목록이나 추천 영화처럼 단편적인 정보만 쏙 빼서 가져가는 경우를 자주 봤다.
  그런데 이건 이것대로 참 고약한 것이, 내가 만들었다고 믿었던 딸기 생크림 케이크도 사실 내 것이 아니다. 내가 만들어낸 작업물들도 아닌데 내가 추천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이걸 골라서 딸기만 따갔네 마네 하는 것들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 생각들은 접어두고 작업자들에 대한 선망의 마음을 담아 아낌없이 소개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자주 꺼내놓고 싶은 것들은 시였다.

유튜브 빠더너스(BDNS)의 프로그램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의 2022년 1월 16일 방송분으로, 문상훈과 시인 나태주가 카메라 앞에 앉아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라는 프로그램 제목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화면 속 자막에는 “오지 않는 당신이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라는 나태주의 말이 적혀 있다.
〈오당기: ‘풀꽃 시인’ 나태주 님과 오지 않는 떡국을 기다리며〉 2022년 1월 16일




〈오당기〉의 원관념인 먹방은 어떻게 보면 ‘시’와 거리가 가장 먼 개념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시가 가진 ‘한번 곱씹고 되뇌며 소화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문학적 성격은 ‘짧고 빠르게 소비되고 부담 없이 휘발되는 요즘 문화’ 같은 먹방과는 다른, 각자의 상징성이 있는 것이다. 플라톤도 시를 쓰고 공자도 시를 썼다는 역사적 배경은 차치하고, 현대 문화 콘텐츠의 갈래 중 하나로서 시와 먹방을 관념적으로 비교해봐도 묘하게 반대 성격의 지점인 부분들이 있던 것이다.
  예컨대 먹방은 삼키는 것이고 시는 뱉어내는 것. 먹방은 소화하는 것 시는 채 소화가 되지 못한 것. 먹방은 음식이 식기 전에 빠르게 해야 하는 것 시는 한 김 식히는 것. 먹방은 있는 대로 펼쳐놓고 많이 먹을수록 좋은 것 시는 조심히 꺼내놓고 줄여나갈수록 좋은 것. 먹방은 가장 밝은 조명 앞에서 시는 어두움을 찾아서. 이런 반대되는 것들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오당기〉에서는 ‘오늘 먹을 음식과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자’ 정도만 가지고 말을 하다보니 말들이 길어지고 두서 없이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래도 〈오당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도리어 그것이 매력이었다고 생각한다. 할 말을 구체적으로 정해놓지 않은 대화들. 정돈된 말들보다는 진짜 혼자 하는 말처럼 계속 말들을 고쳐가며 하는 자취방에서의 분위기가 사람들에게 가닿았던 것 같다.
  반면에 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들이 그 말들을 아껴 적은 글 같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계속 고치고 고쳤겠지만 결국은 지우개로 전부 다 지우고 펜으로 조심스럽게 옮겨 적은 생각들. 그래서 띄어쓰기 하나, 온점과 반점 하나가 전부 깊은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시만이 가진 의도된 의뭉스러움이 묘하게 느껴져서 어릴 때부터 시를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특히 시 행간을 내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내 기억을 대입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를 좋아했다. 나는 〈오당기〉라는 프로그램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에 살을 붙인 그 지점들을 시청자들과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시에 대한 해설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한 행을 읽고 소주 한 잔 마시고 나서 “크……” 하는 표정으로 되뇌는 순간들이 즐거웠다. 나는 〈오당기〉의 초기 기획 방향, 즉 요즘 꽂힌 노래를 듣고 최근의 고민을 두런두런 털어놓는 예열 과정이 음식을 맛있게 먹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그것들이 모두 시를 향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유튜브 빠더너스(BDNS)의 프로그램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의 2024년 3월 24일 방송분으로, 문상훈과 가수 아이유가 카메라 앞에 앉아 그간 아이유가 작사를 하면서 고민해온 것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화면 속 자막에는 “요거를 그대로 내밀면 물에 빠지는 사람이 많을 수 있으니까”라는 문상훈의 말이 적혀 있다.
〈오당기: 아이유와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 2024년 3월 24일

내가 유행 같은 먹방이라는 장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것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말할 수 있는 창구를 찾았던 것도, 공감각적인 비유를 강박적으로 즐겨 써왔던 것도 모두 시를 향해 가던 과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들이 시를 위한 것이었다는 건 아니다. 유튜브라는 행성의 한가운데에서 지금 내 판단이나 취향이 나조차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시선을 돌렸을 때, 늘 그곳에 시가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작업자가 자신의 분야가 아닌 유튜브라는 새로운 행성에 발을 들이고 난 후, 원래 몸담았던 행성과는 중력과 대기가 모두 달라 힘들어하고 있을 때 나는 유튜브의 비법처럼 여겨지는 ‘먹방’의 탈을 쓰고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시를 조심스레 꺼내놓았다. 이 과정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유튜버라고 납작하게 범주화되는 것이 싫었고, 취향이나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 우후죽순 유행 따라 만들어지는 컨셉들이 싫어서 장난처럼 나는 내 방식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음미해볼래’라는 취지로 만들었는데, 이제는 그게 ‘빠더너스’라는 코미디 채널의 백미 같은 프로그램이 되었다.
  내가 웃음을 만드는 작업을 해오면서 마음속에 늘 새겨왔던 것이 있다. 음각과 양각도 기준이 되는 면이 있어야 돋보이듯이, 웃음의 정반대에 있는 감정도 웃음만큼 다룰 줄 알아야 더 값진 웃음이 된다는 사실이다. 왠지 모르게 울컥하고, 왠지 모르게 눈을 감고 한숨을 내뱉으며 생각해보게 되는 시 구절들을 콩트의 소재만큼이나 귀하게 두 손 모아 수집하고 다녔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배달을 시켜놓고 무슨 이야기를 해볼지 고민하게 된다.

문상훈

빠더너스라는 코미디 크루에서 출연자인 코미디언으로 활동중. 코미디언의 백미는 연기도 직접 하고 글도 직접 쓴다는 것에 있다는 점에 있다고 믿으며 여러 창작을 향해 오늘도 항해중.

2024/06/05
6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