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면
   등 뒤에 대고 엄마가
   공부 잘하고 와

   수업 시간에 잠시
   딴생각하고 있으면
   뒤통수 갈기며 선생님이
   공부 안 하고 뭐 해?

   친척들 모임에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이모부 모두 다
   공부 잘하지?

   안녕하세요?
   공부 잘한다며!
   동네 어른들
   동문서답

   내가 공분지 공부가 난지
   진짜 헷갈린다





   파스 사기



   학교 끝나자마자
   사촌 동생 슬기 데리러 초록유치원으로 간다
   다른 애들 다 유치원 차 타고 집으로 가고
   텅 빈 교실에 남아 혼자 놀고 있을 슬기
   모습이 아른거려 발걸음이 빨라진다
   문 열면 놀다가도 얼른 고개 돌리는 슬기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안기는 슬기 때문에
   친구들과 놀고 싶어도 놀 수가 없다
   친구들과 카톡이라도 하고 싶은데
   김 공장에서 퇴근한 엄마 에구 무릎이야
   공사판에서 돌아온 아빠 에구 허리야
   고장난 스마트폰 바꿔 달란 말이 쏙 들어간다
   슬기 보느라 애썼다며 고모가 퇴근해서
   쥐여주는 천 원 어떨 땐 이천 원
   파스 사다 엄마 무릎에, 아빠 허리에 붙여드릴까
   모아서 스마트폰 살까
   오락가락하는 내 맘 따라 비도 오다 그쳤다 한다
   오려면 오고 말려면 말지 날씨 참 쪼잔하네
   우산 집어들고 약국 향해 냅다 뛴다

김애란

『난 학교 밖 아이』를 시작으로 청소년 시를 쓰면서 무엇보다 청소년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가정이나 학교에서 또는 일터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에 집중한다.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청소년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제 역량과 기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평등한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시를 읽기를 바라고 있다.

2022/07/26
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