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거도 포구 앞 〈달래네〉에서는 고등어조림과 구이, 갈치조림과 구이, 객주리조림, 성게미역국, 해물 뚝배기, 잡어 매운탕, 자리물회를 팔았다. 회는 없고. 공깃밥은 무한 리필. 배달은 인근 〈산고농협〉까지 가능했으나, ‘달래네 인근’은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를 기준으로 산출되어서 산고농협 지나 〈스머프부동산〉이나 〈물결공방〉까지는 가도 〈피렌체부티크호텔〉엔 가지 않았다. 뜨내기는 뜨내기로 상대하고 단골은 단골로 대접했다는 얘기. 말하자면 달래네는 블로그 맛집이나 인스타그램 멋집이 아니라 현지인 추천 식당 같은 곳이었다.
   달래네 1대 사장은 홍은숙, 현재 사장은 최용연이다. 둘은 모녀지간으로, 은숙은 마흔에 작은 골칫거리였던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죽은 이는 야속하겠으나 은숙은 장례 내내 ‘국 없는 아침 밥상’을 생각했다―섬으로 왔고, 육지 살던 용연은 마흔에 차거도 포구로 돌아와 한복희를 만났다. 복희가 용연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용연이 복희의 마음을 받아들이기까지는 2주일이 걸렸고 교제한 지 석 달 만에 둘은 달래네 아래, 방 둘, 화장실 하나인 집에서 뜻한 바대로 살림을 꾸렸다.
   언제든 떠날 수 있게 방세간은 단출하게 장만할 것. 용연과 복희가 연인 사이라는 걸 은숙은 죽은 뒤에야 알았다. 그래서 어느 밤에 그들을 불쑥 찾아왔다(아! 은숙은 비명횡사하지 않고 살던 대로 살다가 웃는 상으로 세상을 떴다. 호상이다, 복 받았다, 남긴 게 많지 않아서 아쉬움도 적겠다는 소릴 들으며). 용연과 복희는 그날따라 이른 저녁을 먹고 곯아떨어져서 각자 꿈을 꿨다. 그들은 꿈속에서도 종종 만났는데, 이번엔 갈 길이 달랐다. 용연은 죽은 사람을 만나야 했고, 복희는 산 사람을 만나러 갔다. 그렇게 두 갈래로 나뉜 길 위에서 용연은 울고 복희는 웃었다. 은숙은 그 광경(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살아 있을 적엔 이렇게 한 이불을 덮고도 다른 꿈을 꾸지. 다시 오지 않을 생의 묘미를 느끼는 듯 굴다가 두 사람을 흔들어 깨웠다. 너무 멀어지기 전에.
   은숙은 몽롱한 상태로 앉은 용연과 복희에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요는 자기를 그런 것도 받아들이지 못할 사람으로 여겼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진즉에 알았더라면 우리 셋 사는 게 훨씬 더 재밌었을 텐데. 은숙의 말에 용연은 과연, 설마 했고 복희는 그러게요, 그렇죠 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복희의 장단에 힘을 얻은 은숙의 이야기는 구구절절 흘러 이쯤 되면 끝날 법도 하다는 용연의 기대와는 다르게 자기는 이승에 미련이 없고 죽었다는 게 너무 좋다는 얘기로까지 흘러갔다.
    그에 용연은 사람은 역시 안 변하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일어섰다. 복희는 밥상을 펴고 술을 가져왔다. 은숙과 복희가 주거니 받거니 안주도 없이 술 석 잔을 연거푸 비우고 새로 잔을 채울 즈음 용연이 무슨 깡술이냐며 한치볶음을 내왔다. 은숙이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이었다. 세 사람은 매콤하고 달고 부드러운 것을 서로의 앞접시에 올려주며 청하 두 병을 가뿐히 비우고 남은 양념에 소면까지 비벼 먹었다. 열두 시였고. 누울 사람들은 눕고 가야 할 귀신은 갔다. 신데렐란가. 복희의 농담은 복희만 자주 웃는 농담. 그렇지만 이번에는 용연도 웃고. 두 사람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잠이 들고 꿈을 꿨다.
   그 후로 은숙은 용연과 복희를 종종 찾아왔다. 두 사람은 그 만남을 기쁨으로 삼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은숙이 보름달이 뜨는 밤에만 나타난다는 사실을 깨치곤 부러 그날에 맞춰 밤마실을 나가기도 했다. 애쓰고 싶지 않아서였다. 부모와 자식으로 사는 동안 그리 애썼으면 되었다. 은숙도 비슷한 심정이어서 서운할 것도, 속상한 것도 없었다.
   덕분에 용연과 복희는 가벼운 마음으로 포구에 돗자리를 깔고 담요를 펼치고 호롱 랜턴에 힘입어 책을 읽고 때론 야간 수영도 즐겼다. 달빛이 잔잔하게 깔린 바다에 누워 물결에 몸을 맡기고 있노라면 비로소 자연에 속한 느낌이었고 그들은 그 감각이 전해주는 위안과 자유를 느긋하게 받아들였다. 그 감흥에 취해 차별금지법 제정의 당위에 관한 얘길 꺼내는 것이 복희 스타일이고, 투쟁 삼창을 외치는 건 용연의 몫. 두 사람은 함께 물에 들어가고 같이 물에서 나와 서로의 몸을 수건으로 닦아주고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튜닉을 걸친 후에 무화과가 박힌 빵을 나눠 먹으며 육지와 섬 생활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용연의 육지 이야기는 대부분 먹고살기 위한 얘기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일했던 물류센터가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었냐면, 서울과 고양을 오가는 통근 버스에서 잠이 들었다 깰 때면 늘 죽다 살았네, 하고 중얼거렸어, 그러다가 센터에 불이 났는데, 불이 나서 사람이 죽었는데, 통근 버스에서 잠은 안 자고 책을 읽던, 재수 없네, 가엾네, 부럽네 마음이 가던, 내 옆 라인에 있던 사람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사실이 괴로워서 아니 무서워서 통근 버스를 탈 수 없었어, 불에 탄 사람이 그 와중에도 일하겠다며 거기 있을까 봐, 그게 보일까 봐 관뒀어, 아니 관두게 됐지. 그런 이야기 끝에 용연은 휘파람을 불고. 휘파람을 불기 전엔 꼭 어젯밤에도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노래하고.
   복희의 섬 이야기는 대부분 용연에 관한 얘기였다. 시청 투쟁 텐트 앞에서 문화제 할 때 내가 너한테 먼저 말 걸었잖아. 기억나? 난 그때 노래도 기억해. 〈사랑은 그런 일〉이었는데. 강다솔님이 모쪼록 우리의 사랑이 그런 일이길. 발언을 끝내고 기타를 치기 시작했는데 시청 쪽에서 전기를 끊어버려서 스피커가 나갔잖아. 다 같이 소리 지르고 손뼉 치고 다솔님이 작지만 크게 불러볼게요, 우리는 모여 있으니까. 노래를 다시 시작하고. 네가 휘파람을 불고. 5월 17일 저녁이었는데. 봄바람이 불고 입술을 동글게 모은 네가 내 눈에 들어왔지. 그런 복희의 이야기가 끝날 때면 용연은 크다 사랑이 아주 커. 그리곤 어젯밤에도 불었네……
   두 사람이 휘파람 불고, 홍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노래하며 해변에서 노닥거리는 날에 은숙은 뭘 했느냐면, 텔레비전을 봤다.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은숙에게는 국내 최초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기동찬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찬이 어매―하며 구성지게 소리를 뽑으면 은숙은 절로 무릎을 치고 벙긋 웃음을 띠었다. 울음이 아닌 게 어딘가. 사람이 울면 사람이 울게 되지만, 귀신이 울면 하늘이 울게 되나니. 하늘이 울면 세상 누군가가 귀신이 되고.
   귀신의 팬질이란 거칠 것이 없어서 은숙은 동찬 오빠를 찾아가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발그레해진 볼이 진정될 때까지 잠든 동찬 오빠 옆에 앉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동찬은 가위눌려 버둥거리고. 은숙은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워했다. 용연과 복희는 멋있으면 다 오빠라는 은숙을 귀여워하면서도 동시에 조금은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들 마음속에는 홍경 오빠가 저장되어 있어서였다.
   
   참가자들 사이의 불화와 팬들 간의 폭로전 그로 인한 두어 차례의 휴방 끝에 경이 결선 진출에 실패하고 동찬이 탑3까지 오르는 동안 달래네 맞은편에 〈만선횟집〉이 들어섰다. 들어섰다는 말보단 들어다놨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새단장과 신장개업이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큰바람 불면 날아가게 생겼네. 으리으리하네. 역시 돈이 최고다. 이 만선횟집이 어떤 횟집이냐면, 하는 소문이 돌고 돌았다. 용연도 알아봤다. 그랬더니 이 만선횟집이라는 데가 어떤 횟집이냐면 해안 도로를 따라 돈 놓고 돈 먹기지 하는 식으로 가게를 차리고 인근의 식당들을 모조리 잡아먹은 곳. 이번에는 차거도 포구가 목표래.
   쌍놈의 새끼들.
   은숙이 뜨내기들이 꼬이면 식당도 뜨내기 식당이 되는 거고 돈으로 승하면 돈으로 멸하는 거라고 말을 이었다. 용연은 은숙을 엄마로서 그리고 전 사장으로서 자랑스러워했고 복희는 죽은 사람 말씀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 소릴 믿었다. 그래서
   엄마, 죽으면 로또 당첨 번호 같은 건 쉽게 알 수 있는 거 아니야?
   용연은 청하 한 잔을 꺾어 마시며 물었고,
   나도 장사해볼까?
   골뱅이와 진미채를 한꺼번에 집어먹으며 말한 건 복희.
   영감이 한 명 생겼다.
   누구의 기대에 부응하지도, 상황에 딱 들어맞지도 않는 말을 꺼낸 건 다시 은숙이었다. 말마따나 만선횟집은 돈 들인 만큼 맛집과 멋집으로 유명해져서 낮술을 팔고 밤술도 팔았다. 차거도 포구는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루며 흥청댔다. 밤이면 포구 옆 동굴에 와 노닐다 가던 사월할망, 구월애비, 이월바람이 그곳을 찾지 않게 된 게 그때부터이고. 풍어 시절이 지나간 줄 모르게 지나갔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토박이들이 굿판을 벌였으나 어획량은 회복되지 않았다. 물빛이, 섬 빛이, 사람 빛이 점차로 생기를 잃어갔다. 인근 단골들의 발길도 눈에 띄게 뜸해졌다. 당연하게도 포구 대부분의 식당 매출이 반토막 났다. 하나둘씩 폐업하고. 폐업 전에 만선횟집 사장에게 가게를 넘긴 아니 뺏긴 이도 여럿이었다. 피렌체부티크호텔까지 오가며 근근이 버티던 달래네 사장 용연에게도 제안이 들어왔다. 시세보다 조금 더 쳐줄 테니 가게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맡겨놨어. 내놓긴 뭘 내놔.
   쌍놈의 새끼들.
   근데 엄마, 왜 자꾸 쌍놈이 아니라 쌍놈의 새끼들이라고 해.
   싸잡아서 욕하는 거지. 그런 놈이 어디 그놈뿐이야.
   옆에서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복희가 끼어들었다.
   장사합시다. 그렇게 다음 그다음 보름달이 뜰 때쯤 복희는 가게를 열었다. 간판은 없고.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곳을 복희네라 하거나 달래네 아래 복희네라 이르고. 복희네는 단일 품목으로 반건조 오징어를 취급했다. 도소매로 거래했고 3만 원 이상 구매하면 전국 어디든 택배 운송이 가능했다. 예상대로 시작은 미약했고 끝은 창대한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복희 사장이 불투명한 미래를 염려할 새도 없이 괴이한 말이 돌았다. 그 먼저 간 엄마라는 사람과 저 딸 둘이 남자 셋을 잡아먹었다는 말이었다. 복희가 그 말을 잡아서 끌고 거슬러 가보니 시발점에 만선횟집 사장이 있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개업 떡은 잘도 받아 처먹더니. 두꺼비같이 생긴 게. 두꺼비는 무슨 죄야. 두꺼비는 건들지 말자. 복희와 용연은 씁쓸해했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사실을 이기는 거짓은 있어도 진실을 지우는 거짓은 없으니까. 그들은 은숙이 이곳에 있든 없든, 남편이 있으나 없으나―실은 없었으므로―그녀가 이룩한 것을 귀하게 생각했다. 이를테면 달래네라든가 용연이라든가 노래 교실 친구들과 4박 5일 동안 장가계로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일. 무엇보다 복희를 딸 대하듯 대한 일. 그런 자부심으로 용연은 우리 엄마가 오래 산 건 아빠를 먼저 보내서야. 농을 칠 줄 알고, 부모 둘을 일찍이 떠나보낸 복희도 그럼 나는 너랑 오래오래 살겠다 맞장구치며 웃을 줄 알았다. 새벽부터 여자들이 웃으면 복되나니. 국 없는 밥상머리에서 이런 주문을 쓱 읊을 줄도 알고. 그렇지만 인생은 주문대로 되지 않아서 달래네와 복희네는 폐업 위기에 처했다. 위기라는 말은 상황을 지나치게 미화한 말이고 두 집 모두 장사해요? 라고 묻는 분위기가 아니라 장사 안 하죠? 라고 확인하는 을씨년스러운 기운을 풍겼다. 덕분에 길고양이가 한 마리, 두 마리씩 모여들었다. 급기야는 그 고양이들이 새끼를 낳고 낳아서 드나드는 사람보다 드나드는 고양이가 더 많아지고. 복희와 용연은 각각의 고양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이름을 한번에 부르면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고양이를 개, 돼지, 소라고 부르게 된 이유에 관해 용연에게 물으면 용연은 통합적인 사고의 결과로써 하고 말을 시작했고 복희에게 물으면 통섭적인 사고의 결과라고 말을 끝맺었다. 통합이든 통섭이든 외기 쉽고 부르기 쉽고 잘 잊히지 않는 이름 때문인지 열두 마리의 고양이는 늘 무리 지어 다녔는데 그게 화제가 되어 이 ‘십이묘’는 차거도 포구의 명물이 되었다. 명물이 있으면 또 찾아오는 이들이 늘고. 그래도 달래네와 복희네는 공치는 날이 더 많았다. ‘십이묘-만선횟집’이 또 코스가 되고. 죽 쒀 개 준다고, 쌍놈의 새끼들 좋은 일만 시켜줬네. 은숙은 안 되겠다 싶어서 십이묘를 앉혀두고 대화를 시도했는데 개중 가장 말이 잘 통한다 싶던 묘가 선착장 뒤에서 만선횟집 사장과 접선하는 광경을 목격한 후부터는 묘 대신 술을 찾았다. 그렇지만 술은 사람이 좋은 개냥이로서……

   사람 손을 너무 많이 타서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해 되고 다시 자축인진사오신이 될 무렵 복희네 택배 주문 건수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젠틀맨 트로트」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임승남이 혼자 살며 반건조오징어를 안주 삼아 1일 4캔을 하는 모습이 방송을 타고, 그 반건조 오징어가 복희네 반건조 오징어라는 사실이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알려진 것이었다. 위대하다, 자랑스럽지. 복희와 용연은 네티즌 수사대에 경의를 표하고 그 기세는 꺾이지 않아서 용연은 달래네 문에 임시 휴업을 써붙이고. 복희와 용연은 인생 알 수 없네. 알 수 없어.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점점 더 늦게 잠들고 더 일찍 깼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현실에선 대화할 수 없어서 꿈에서 만나 복되게 살자 하니 복이 온다, 복희야. 용연은 웃고. 용됐다, 우리. 복희는 용연을 다시 웃게 하고 웃는 용연을 보며 복희는 계속 웃다가 꿈에서 깨도 웃자. 웃을게. 둘은 꿈에서는 늦게까지 잤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승남에게 넙죽 절할 텐데 복희와 용연은 승남 대신 경에게 마음을 전했다.―사실 그들은 승남을 미워했다. 경이 승남과의 라이벌 대결에서 패해 결선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임승남도 좋아하는 복희네 반건조 오징어’라는 문구를 적어 경의 소속사로 택배를 보낸 것이다. 그런데 (알 수 없네) 그게 또 (알 수 없어) 일을 냈다. 경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그 조공품을 찍어 올리자 그걸 본 승남이 ‘#복희네_부들부들’이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8캔 사진을 올리고 그게 또 그 세계를 유랑했다. 그 일련의 과정을―복희는 선순환이라고 불렀다―거쳐 좀 오네 싶던 주문이 밀려왔고 밀렸고 누가 주문을 좀 말려줬으면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마침내 복희네 반건조 오징어는 원한다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 게 되었다. 복희와 용연도 자주 먹지 못했다.
   설마(은숙이었고), 그러게요(복희였다).
   용연은 원목 접시에 노릇하게 구운 반건조 오징어 두 마리와 청하 한 병을 내오며 으스댔다. 돈 있어도 못 먹는 거는 거야, 엄마. 이런 시시한걸. 말해놓고도 은숙은 술을 홀짝홀짝 기분 좋게 마셨다. 복희의 뺨도 붉어졌다. 용연은 그런 광경(얼굴)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고. 그런 용연을 보던 은숙이 이때다 싶은 얼굴로 지난번에 말했던 영감이 말이지,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을 꺼냈으나 용연은 우리 사장님 또 시작하려고 하네. 시간 얼마 안 남았어요. 말을 똑 자르고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엄마, 영감님이랑 같이 한번 오세요. 복희는 오징어 다리 하나를 은숙의 입에 물려줬다. 은숙은 역시, 복희다. 마음속으로 되뇌고. 그즈음 복희도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소릴 자주 들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물 들어오실 때 노 저으셔야죠. 듣도 보도 못한 곳에서 사업 제휴가 빗발쳤다. 각종 축제와 대학 행사에서도 제휴를 가장한 협찬을 문의해왔다. 심지어 대한어버이협회 산하 태극강철부대라는 곳에선 복희를 초청하기도 했다. 태극기 봉으로 때려죽이려고 부르는 건가. 복희의 농담은 복희만 자주 웃는 농담이지만, 용연이 웃으며 대꾸했다. 이도 성치 않은 양반들이. 근데, 사업이라는 게 가게랑은 다르네.
   그러게. 대꾸하는 복희란 어릴 적 여성농민회 회원 사업을 해본 게 전부인 복희. 그러나 그런 복희가 또 어떤 복희냐면, 그 옛날 허순임이 전여농 소식지에 연재하던 ‘언니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를 한 회도 빠짐없이 스크랩하여 지금까지도 보관하고 있는 복희였다.
   담당자가 시간이 없다고 하는 사업은 절대 하지 말 것. 네, 말씀처럼 물이 들어와서 잘 흘러가보려 합니다.
   복희는 언니의 충고대로 총 일흔 일곱 군데에 답장을 보냈다. 한동안 복희는 그런 메일을 받고 답장하는 일을 반복했다. 일손이 간절해졌고. 메일은 끊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한 글자 한 글자를 적어 보냈는데 어느 순간부턴 복붙의 달인이 되어 문구를 바꿔 써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물살이 너무 세어 노가 부러졌습니다. 그렇게 노가 부러지기 직전에 ‘보낸 사람 정경원’이라고 적힌 메일을 받았다. 정경원은 자신을 정경이라고 소개했다.
   정경은 산고농협 인근에서 일 년 전부터 〈작은 책방〉을 운영 중인데 벌이가 들쭉날쭉 신통치 않아서 책방 휴무일에 할 수 있는 아르바트를 찾고 있다고 했다. 복희는 메일을 다 읽고 망설임 없이 내일 저녁에 복희네로 와주세요. 답장했다.
   순임 언니의 소개로 메일을 보냈다는 정경의 편지에는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다. ‘일할 사람을 구하신다고요? 제가 일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복희는 그 구절을 읽자마자 이 사람이랑은 일해야겠네 싶었다고 훗날 정경에게 고백했다. 회원 사업을 막 시작할 때의 자신을 머릿속에 그리며 새삼 인사할 수 있었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덕분에 떠올렸어요. 전여농 소식지 통권 38호. 여성은 연결될 때 완성된다.
   
   약속 당일 정경은 책방 문을 조금 일찍 닫고 복희네로 향했다. 향해 가면서 왜인지 모르게 섬에서의 생활을 되돌아보았고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을 두고 애써 빙 둘러 가며 잠시 무락해변을 걸었다. 날이 맑아 모처럼 제대로 된 일몰을 감상할 수 있었다. 정경은 일몰 속에서 옛 추억에 젖었다. 왜냐하면, 다시 돌아온 싸이월드를 열어보았기 때문.
   여행객이었던 정경은 산고 〈사거리 백반집〉에서 여행객이었던 강석구를 만났다. 그와 동행하며 하루를 보내고 여행 마지막날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석구가 나타나지 않았고,
   “알고 보니 둘이 약속 장소를 다르게 기억했다?”
   복희였다.
   “불의의 사고로 석구가……”
   용연이었다.
   “아뇨. 문자를 받았죠. 십오 분 정도 늦을 것 같다고.”
   그렇게 정경과 석구는 다시 만나 함께 비에 젖은 숲길을 걷고 2년 동안 연애하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육지 생활을 정리하고 섬으로 왔다?”
   복희였고,
   “살다 보니 사랑은 식고……”
   용연이었다. 복희는 정색하며 용연을 힐끗 쳐다보고 그런 복희 때문에 정경은 웃으며,
   “아뇨, 헤어졌죠. 육지 떠나기 전에. 자기는 그곳으로 여행은 가도 살지는 못할 것 같다고 해서. 그래서 저 혼자 산고로 와서 한 1년 동안 사거리 백반집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거기 사장님이 지금의 책방 자리를 소개해주셔서, 퇴직금이랑 1년 동안 모은 돈이랑 올인.”
   “잘 돼야 하네. 무조건.”
   “그러게. 무조건 무조건이다.”
   “근처에 사진 맛집만 들어오면 되는데……”
   밥과 술을 겸하는 수다 도중에―용연은 이런 게 말로만 듣던 압박 면접인가 했고, 정경은 제가 약간 날로 먹은 거 같은데요 했고―복희는 책방 휴무일인 월, 화, 수 10시부터 4시까지 일하자고 정경에게 최종적으로 제안했다. 지금까지 복희를 복희쌤이라고 하던 정경은 그때만큼은 네, 사장님, 했다. 그리고 물었다. 그나저나 쌤, 순임 언니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순임 언니를 처음 만난 게 〈최연옥 노래 교실〉에서였는데……”
   “노래 교실이요?”
   “네.”
   “그 노래 따라 부르면서 손뼉도 치고 옆에 있는 사람도 치고 막 웃고 그런데?”
   “네.”
   “순임 언니가 거길 다녔다고요?”
   “다닌 정도가 아니라 순임 언니가 거기 찐. 율동을 얼마나 잘하는데요. 몸짓패 출신이라서.”
   “세상에.”
   “네, 세상에. 거기서 순임 언니가 조직을 했어요.”
   “역시.”
   “그쵸? 순임 언니가 거기에서 청소하던 저한테 접근해선 창신리 이장 출마를 권했어요. 여기 언니들이 다 도와주기로 했다고. 젊은 피 어쩌고 하면서.”
   “계획적이다.”
   “계획적이죠?”
   “그래서요?”
   “출마했죠. 제가 그땐 순임 언니만 보면 눈이 그냥 하트가 돼서.”
   “됐어요?”
   “됐겠어요?”
   “설마.”
   “네, 설마가 사람 잡잖아요. 됐죠. 이장이. 그 이장 선거라는 게 남자, 어르신, 지역 유지, 알력과 맞서는 싸움이거든요. 박이 터졌는데, 순임 언니가 또 투쟁에서 진 적은 있어도 밀린 적은 없는……”
   “뭐야, 순임 언니 말술인 줄만 알았더니. 술자네. 기술자.”
   꽃게 라면을 내오며 용연이 끼어들었다.
   “순임이가 최고지.”
   “어머 깜짝이야.”
   마침 은숙이 정경을 놀라게 하며 나타났다.

   그리하여서 달래네 아래 복희네에서는 여자 셋이 일하고, 때가 되면 여자 넷이 모여 술을 마셨다. 술자리가 재밌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찾아온 이는 역시나 전설의 순임. 순임은 은숙을 유일하게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서 은숙을 보자마자, 언니, 저승 가더니 더 고와졌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그 말을 놓칠 은숙이 아니라서 그래서 내가 영감 하나를 만났어. 어매―. 한 건 또 순임이고. 좋겠다. 한 건 정경. 과연. 한 건 용연. 건배합시다, 하며 술병을 들고 빈 잔들을 채운 건 복희였다.
   듣자 하니 은숙이 만나는 영감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후 세계에선 신생아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이승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울음의 주된 원인은 이승에 남겨 놓고 온 것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달이라고 이름 붙인 수석이 눈물 버튼이었다. 돌이 돌이지. 은숙이 아무리 얘길 해도 듣질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어쩌겠니. 은숙은 자기 앞에 나란히 앉은 자매들에게 다음에 올 때까지 그와 비슷한 돌을 하나 구해달라고 청했다. 검은 돌 가운데 초승달 무늬가 있는 돌이라고 했다. 거기선 돈도 아니고 돌로 마음을 사는구나, 좋네. 그러게. 용연의 말끝을 뒤이으며 복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돌쯤이야(정경). 어매― 순임은 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돌이면 돌, 술이면 술, 노래면 노래. 차거도 포구 자매들이 은숙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한 덕분에 달 영감은 이승에 두고 온 것들에 미련을 버리고 눈물을 그쳤다. 그쳤는데, 이제 연애를 좀 해보는가. 은근히 기대하던 은숙의 뒤통수를 쳤다. 처음엔 너무 울어 탈이더니 이번엔 너무 웃어 탈이었다. 달 영감은 돌은 잊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고양이에게 애정을 쏟았다. 은숙이 보니 그 저승의 묘란 게 꼭 이승의 묘 같고. 그 묘를 보노라니 불쑥 이런 말이 떠올랐다. 적은 가까이 두고 내 편은 멀리 둔다. 그래서 은숙은 자기 집에 묘의 자리를 마련했다. 달 영감이 자주 찾아왔다. 묘는 그에 맞춰 밤마실을 나가고. 나가서 보니 만선횟집은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별관의 별관을 차리고 바다 뷰 맛집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고 급기야 산고 시내에 배달 전문점을 차리며 노를 세차게 저어 갔다. 그렇게 세차게 노를 저었음에도 노가 부러지기는커녕, 결국에는 추진한 바대로 어리바리한 육지인들에게 본관과 별관과 별관의 별관 그리고 배달 전문점을 나누어 팔았다. 시세보다 딱 세 배 더 비싼 값이었다. 그들 말로 선순환이라고 하는 것이 진행되는 동안 동네 십이묘 중에 남은 고양이는 자신이었다. 두 고양이는 늘 꼭 붙어다녔고 사람을 보면 재빨리 숨었고 간혹 변신하고 나타나 취객들을 골탕 먹이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그 섬에서 두 발로 걷는 고양이에 관해 횡설수설 떠드는 이를 만나거든 자신의 이야기군요. 대꾸하면 되겠고. 자신이 있으나 없으나 복희네 반건조 오징어의 인기는 점차로 시들해졌다. 복희도 달래도 다시 가게 주인이 되었다. 다행이라고 둘은 안도했다. 정경의 작은 책방 옆으로도 드디어 〈사진 맛집〉 카페가 생겼다. 정경도 덩달아 바빠졌다. 기다리던 바였고 원하던 것이므로 정경은 그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쳤다. 복희는 정경에겐 뜨내기를 단골로 만드는 힘이 있다고 했다. 그걸 일러 정경의 마음이라 했고 그걸 또 줄여서 정경심이라 했다. (이제 잘 아시겠죠?) 복희의 농담은 복희만 자주 웃는 농담. 어쨌든 정경심으로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정경은 책방 휴무일을 줄이고 복희네론 하루만 출근했다. 용연은 새 마음 새 기분이 되어 달래네 외벽을 새로 칠하고 내부를 재단장했다. 상호까지 바꿔서 다시 한번 개업하려 했으나, 속을 사람은 속아도 속지 않을 사람을 속이면 안 된다. 은숙이 막아섰다. 그래서 달래네는 예나 지금이나 달래네. 만선횟집의 폐업 아닌 폐업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계속 달래네. 태풍 록시나로 인해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는 낡은 현수막이, 네온사인 간판이, 유리문이, 집기가, 예언대로 만선횟집이 통째로 다 날아가고 만선횟집 있던 자리가 공터가 될 때까지 달래네는 달래네였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달래네도 달래네 아래 복희네도 태풍 피해를 보았다. 복희와 용연은 집을 나와 피란체부티크호텔에서 머물렀다. 달래네를 원상 복구하는 데에는 꼬박 5개월이 걸렸고 달래네 아래 복희네는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첫 살림과 첫 장사의 설렘과 낭만과 추억이 깃든 그곳을 어떻게든 되살려보고자 애썼으나 헛수고였다. 괜한데 힘 빼지 말고(은숙), 물에 잠겼던 집에는 사람이 사는 게 아니래요(정경), 결정적으로 순임이 한 방 날렸다. 번 돈 뭐에다 쓸래. 두 사람은 달래네 아래 복희네를 영등할망에게 휴게실로 제공하고 순임이 소개해준, 차거도 포구와 산고농협 사이, 지은 지는 오래됐지만 지을 때 잘 지어서 속이 튼튼하다는 2층 건물을 샀다. 복희 사장은 그 건물 1층에 달래네 아래 복희네를 열고, 용연과 복희는 2층에 각오한 바대로 두 번째 살림을 꾸렸다.
   방세간은 단출하게 장만할 것. 당연하게도 개업식과 집들이를 겸하기로 한 ‘개집데이’에도 보름달이 떴다. 은숙이 선물이라며 들고 온 건 돌이었다. 푸른 돌의 중심에서 희고 둥근 무늬가 빛났다. 수월이라고 했다. 물에 비친 달. 우리 사장님 돌을 줬더니 돌을 주네, 돈도 아니고. (말한 건 누구일까요?) 복희는 밥상 두 개를 내와 나란히 붙인 후에 살얼음이 낄 정도로 차갑게 해둔 청하 두 병을 냉동실에서 먼저 꺼내왔다. 정경이 시 사랑 정치 자연이 새겨진 에코백에서 꺼낸 건 아닌 밤중에 커피였는데, 책방 옆 사진 맛집 사장 김병운이 챙겨주었다고 했다. 꼬셨어? (말한 건 누구일까요?) 혼자보단 둘이 좋은 거야. 둘보단 셋이 좋고. 내가 쟤네 둘이 사랑하는 사이란 걸 진즉 알았더라면 얼마나 더 행복했겠니. 또 말한 건 은숙이고. 설마, 과연, 그러게요, 그렇죠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드디어 잔칫상이 차려졌다. 사람은 안 변해. 순임 언니가 노래 교실에서도 단골 지각생이었어요. 맨날 노래를 중간 부분부터 배웠는데, 그런 사람 알죠? 그런데도 처음부터 따라 배운 사람보다 잘하는 사람, 그게 순임 언니였어요. 어찌나 노래를 자기 멋대로 부르는지. 복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언니, 죄송해요, 시간도 없는데. 순임이 들어섰다. 순임이 입은 조끼에는 여성 농민 도의원 비례대표 후보 허순임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네 명이 동시에 조끼를 보자 순임은 두 손을 내밀며 손 한번 잡아주이소, 하며 웃었다.
   맑은 술이 담긴 잔이 돌고 돌고 노래할 사람은 노래하고 춤출 사람은 춤추고 갈 사람은 가지 않고 이승에 미련이 없는, 가야 할 귀신이 가고 싶지 않아 해서 산 사람들이 어르고 달래서 저승문 앞까지 배웅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용연은 휘파람을 불고 복희는 용연의 동그란 입술을 보다가 용연의 손을 꼭 잡았다. 오늘밤에도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순임은 외투 호주머니에서 반건조 오징어를 꺼내 씹으며 따라불렀다. 정경은 달 봐요, 달. 병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월할망, 구월애비, 이월바람, 영등할망이 동굴에 모여 앉아 잔을 높게 들며 건배하는, 바다에 큰 달 뜬 밤이었다.

김현

술집 〈수월〉을 아는 이들에게. 그 섬의 친구들에게. 장편을 쓰겠습니다.

2022/05/31
5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