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역 밖으로 빠져나오자마자 은하는 길 건너편에 위치한 패루를 사진에 담았다. 차이나타운의 입구 역할을 하는 구조물인 패루는 지붕과 중화가(中華街)라고 적힌 현판, 네 개의 기둥으로 구성돼있었다. 거대한 성벽의 입구 부분만 뚝 떼어 세워 놓은 듯 삼층 건물 높이를 웃도는 위용에, 짙은 붉은 색과 번쩍이는 금빛으로 감싸인 색감이 이국적인 화려함을 뽐냈다. 저 입구를 넘어서면 미지의 세계가 펼쳐지기라도 할 것만 같다고 은하는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횡단보도를 건너 패루를 지나면서 은하가 갈등했던 것은 극히 익숙한 것, 지금껏 살면서 수 없이 고민했던 것이었다.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간밤에 SNS에서 수많은 이들의 차이나타운 방문기를 둘러본 바로는 짜장면을 선택한 사람이 월등히 많았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간짜장이나 계란프라이를 얹은 옛날식 짜장면 사진이 끝없이 이어졌다. 살짝 경사가 있는 길을 따라 중국음식점이 즐비한 골목을 걸어가면서 은하의 마음도 조금씩 짜장면으로 기울었다. 그러면서 일행이 두어 명 더 있어서 짬뽕에 탕수육, 혹은 깐풍기까지 먹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 입맛을 다셨다.
   집에서 출발할 때의 계획은 차이나타운을 전체적으로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 점심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화덕에서 구워낸다는 만두를 시작으로 길거리 음식이 차례차례 시선에 들어오자 급격히 허기가 졌다. 공갈빵, 닭꼬치, 풀빵과 멘보샤까지 노점에서 파는 음식의 종류도 다양했다. 정문을 활짝 열고 영업하는 대만식 과자점 안으로는 갖가지 종류의 월병과 펑리수도 보였다.
   눈에 띄는 군것질거리마다 전부 맛있을 것 같았으므로 은하는 그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여러 개를 먹으면 짜장면을 먹기 전에 배가 찰 게 빤했다. 은하는 돌연 결심한 듯 눈앞의 중국 음식점에 들어갔다. 공들인 업스타일로 머리를 매만진 점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을 때 한번 더 망설였지만 결국에는 짬뽕의 유혹을 물리치고 옛날식 짜장면을 주문했다.
   잠시 뒤 은하 앞으로 놓인 짜장면은 검은 소스 위에 샛노란 옥수수알과 오이채를 얹은 모습이었다. 은하는 끄트머리를 튀기듯 익힌 계란프라이를 그릇 한쪽에 밀어놓은 뒤 면과 소스를 골고루 비볐다. 그런 다음 계란의 가운데를 터뜨려 흘러나온 노른자로 코팅된 면을 입에 한가득 물었다. 면 요리는 입안에 가득 욱여넣어야 제대로 먹는 기분이 난다는 게 평소 은하의 지론이었다. 다음 젓가락도, 그다음 번에도 듬뿍듬뿍 면을 들어올린 것은 그러니까 그 이유가 가장 컸다. 평소에 먹던 짜장면과는 과연 차원이 다른 맛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애매했다. 분명 맛이 있기는 한데 특별할 점은 없는 것도 같았고, 감칠맛과 촉촉함의 조화가 좋기는 하지만 그 점은 사실 계란 노른자의 역할인 것 같아서였다. 알쏭달쏭한 느낌은 뚝딱 한 그릇을 비운 뒤 포만감을 느끼며 음식점에서 나올 때까지도 계속됐다.
   스쳐 지나가는 꼬마 아이 손에 들린 고기만두를 흘끔거리면서 은하는 다시 한번 방금 먹은 짜장면이 이 동네의 길거리 음식을 몽땅 포기할 만큼 존재감을 지닌 한 그릇이었는지 반추했다. 아쉬움에 머리를 긁적이던 그때 눈에 띈 것이 노점에서 파는 포춘쿠키였다.
   어릴 적에 어느 외국 소설을 읽다가 접하고 어떤 모양인지 궁금했던 포춘쿠키를 실제로 마주친 것이다. 연갈색의 조그마한 캐스터네츠를 연상시키는 포춘쿠키는 가격도 저렴했다. 하나에 육백 원, 두 개는 천 원. 은하는 망설임 없이 두 개를 구입했다. 그 안에 든 메시지는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확인해 볼 요량이었으므로 행여 깨질까 봐 가방 안쪽에 넣었다. 그러고는 자유 공원 방면으로 난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계단이 상당한 높이에까지 이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보기보다 몇 배나 가파르게 느껴지는 것은 평소의 운동 부족과 배가 부른 것, 어느 쪽의 혐의가 더 짙은 것일까. 헉헉대며 산책로와 이어지는 계단의 2/3지점까지 오른 은하는 잠시 숨을 돌리기로 하고 걸어온 방향을 향해 돌아섰다. 그러자 마른 나뭇가지와 조금 전에 지나온 거리 풍경 너머 멀리로 인천항이 보였다. 공원 정상에 오르기도 전에, 이렇게 금방 바다를 볼 수 있다니. 지난 한 주 동안 인천에 이사 왔다는 사실을 이토록 생생하게 실감했던 순간이 없는 것 같았다. 느긋한 기분이 된 은하는 가까이 자리한 벤치에 앉았다. 그러자 반가운 발견이 한 가지 늘었다. 벤치가 놓인 산책로의 양옆을 촘촘하게 둘러싼 나무들이 벚나무라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봄이 되면 길게 뻗은 가지에 피어난 벚꽃이 터널을 만들고 바람이 불면 꽃비가 내릴 터였다. 그 핑계로 민주에게 인천에 놀러오라고 해봐야겠다고 은하는 생각했다.

   몇 달 전의 일이었다. 은하가 “인천은 살기에 어떨까?”라고 혼잣말하듯 물었을 때 “왜 하필 인천이야?” 하고 되묻던 민주의 어투는 날카로웠다.
   “그렇게 별로야?”
   “솔직히 지금 같아서는 추천은 못 하지.”
   “무슨 일이 있었어? 나 애들 시험 준비하느라 요새 뉴스를 좀 못 봤거든.”
   “좀 된 일이긴 한데. 내가 얘기 안 했었나? 인천에도 퀴어 페스티벌 한대서 갔었거든. 그때 반대 세력 쪽 기세가 살벌했어. 시청 광장에서도 많이 보긴 했지만 느낌이 또 다르더라고. 악에 받친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막, 니들 다시는 인천 땅에 발도 들이지 말라고, 여기서는 이러는 거 용납 못 한다고 그러면서 어린 학생들한테도 고함치고 삿대질하고 그러는데, 눈빛에 살기가 어려 있는 거야. 나도 식은땀 나던데 십 대 애들이 얼마나 무서웠겠니. 그래서 좀 정이 떨어졌지. 뭐 인천이 감리교가 맨 처음 들어온 곳이라서 어쩔 수 없다,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람들도 있던데, 난 그런 말 들을 때마다 귀가 다 썩는 거 같아. 어떤 편견이 강화될 법한 맥락을 살피는 거랑,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치워 버리는 건 완전 다른 얘기지 않니? 누구 좋으라고 그런 얘기를 하냐고. 속 터져 정말.”
   “그야 그렇지.” 은하가 동의했다. “그날 고생 많았겠다.”
   “응. 거기에서 나오고 나니까 진이 빠져서 뭐라도 좀 먹어야겠는데 그 근방 가게에 들어가기가 좀 그런 거야. 나도 싸잡아서 인천 시민들한테 거부감 가지고 싶지는 않은데 당장 그날은 기분이 그렇더라고. 그래서 굳이 우리 동네까지 와서 먹다 보니까 어때? 빈속에 들이부은 거잖아. 그래서 미영 언니가 맥주 몇 잔에 뻗어버려 가지고 데려다주느라고 죽을 뻔했어. 나 그러고 몸살 났었잖아.”
   “미영씨? 너 설마 그 언니랑 다시 만나는 건 아니지?” 은하는 민주의 손목까지 잡으며 물었다.
   “세상에, 날 뭐로 보고. 한 번 바람피웠으면 아웃이지. 그냥 굳이 마주치면 쌩까지는 않는 정도야. 원래 그런 말이 있거든. 구여친 한 명쯤 마주치고 해야, 아, 내가 퀴어 페스티벌에 왔구나 하는 거라고.”
   그 농담을 들은 은하는 묘한 기분이 되었다. 삼십 대 중반이 다 된 지금도 은하에게는 전여친뿐 아니라 전남친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연애’에 가까운 관계를 가져 본 것도 이미 십 년쯤 지난 시점이었으며, 상대가 적극적으로 대시해서 몇 차례 데이트를 한 기억이 전부였다. 은하를 보면 주체할 수 없이 상기된 얼굴로 긴장한 티가 역력하던 그의 표정은 몇 번 만나지 않아 시들해지더니 “저만 은하씨가 좋은가 봐요.” 하는 한마디를 끝으로 연락이 끊겼었다.
   그 일로 은하가 느낀 감정은 서운함보다는 은근한 죄책감에 가까웠다. 자신에게 먼저 호감을 보인 사람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하거나 쌀쌀맞게 군 적이 없는데도 그랬다. 한번은 부싯돌이 빠져서 헛돌아가기만 하고 불이 붙지 않는 라이터를 흔들며 신경질 내는 민주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그 라이터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감정을 불꽃처럼 타오르게 하는 결정적인 뭔가가 결여된 존재인 것만 같아서였다.
   지금껏 그런 사정을 털어놓은 상대는 민주뿐이었다. 민주는 은하의 고백을 듣고 “아니 무성애자면 그냥 무성애자인 거지. 네가 왜 불량 라이터야.” 하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굳이 사물에 비유하자면 은하는금세 타올랐다가 꺼져버리는 라이터라기보다 주변에 은은한 빛을 나누어 주는 가로등 같은 사람이라고 민주는 말했다. 컴컴한 길을 떨며 걸어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가로등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명확하게 안다고도 덧붙였다. 그러고는 괜한 죄책감이나 자기 비하의 감정이 들거든 읽어보라며 몇 권의 책을 빌려주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네 책 가지고 나온다는 게 깜빡했다. 인천 가기 전에 돌려줘야 되는데. 나 실은, 인천으로 이사 갈지도 몰라. 아니, 갈 거 같아.” 은하는 말을 꺼내는 그 순간에 비로소 결심이 서는 것만 같았다.
   
   “너 학원 옮긴다던 게 아예 지역을 옮긴다는 얘기였어?” 이번에는 민주가 은하의 어깨를 잡으며 되물었다.
   “그럴까 하고. 사실 우리 외가가 동인천에 있거든. 큰이모는 쭉 거기 사시고 작은이모가 작년에 사별하시고서 사촌들 데리고 오셨어.”
   “이모들이랑 그렇게 친했어?”
   “이모 보고 결정했다기 보다는, 작은이모네 이사할 때 와서 보더니 엄마가 좀 흔들린다고 할까 부러워하는 게 보여서, 그럼 이 기회에 나랑 새 출발하자고 그래 봤지. 집값을 좀 살펴보니까 내가 어떻게든 우리 둘 살 집 보증금은 마련할 수 있겠더라고. 그럼 아예 그 집에서 공부방을 여는 것도 생각해보고 그랬어.”
   “세상에, 그럼 뭐야. 이번에는 너희 엄마 진짜 이혼하시는 거야?”
   민주의 질문에 은하는 고개를 저었다. 이혼을 언급하는 엄마에게 아빠는 이번에야말로 새 사람으로 거듭나겠다는 각서를 써주었다고 했다. 텃세 부리는 노인들만 우글거리는 촌구석에 자신만 버려두고 떠나면 자살하는 수밖에는 없다는 협박도 따라붙은 모양이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산 사람을 죽일 수야 없지 않느냐고 엄마는 말했다. 아빠가 엄마에게 귀촌을 강요할 때는 지상낙원처럼 일컫던 곳이 촌구석으로 강등된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게 익숙한 패턴이었다. 언젠가 큰이모에게 전해 듣기로 자살 운운하는 협박은 아빠가 처음 엄마에게 구애하던 때부터 이어진 모양이었다. 자라면서 은하는 이따금 은밀하게 자신이 엄마보다 아빠를 좀더 닮은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그렇다면 차라리 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고는 했다. 만약 그랬다면 아빠의 협박에 맞서 진짜 죽을 마음도 없는 주제에 쇼한다고 이죽거리고, 고함을 치면 더 큰 목소리로 성내며 엄마에게서 떼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은 대상 역시 지금껏 민주뿐이었다.
   “엄마는 안 오게 됐지만, 이 기회에 생각해보니까 사실 이제는 내가 꼭 서울에 살 필요가 없더라고. 볼일 있으면 종종 나오면 되고. 너한테도 이따금 바람 쐬러 오라고 하면 먹히겠지 싶었는데, 인천이 그런 비호감을 샀는 줄은 몰랐네. 그건 좀 망했다.”
   그러자 민주는 조금 전까지 울분을 쏟아내던 태도를 180도 바꿨다. 우선 수도권 중에서 집세 걱정이 덜한 곳이라니 그게 얼마나 큰 강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초의 개항지이니 만큼 근대 문화유산 볼거리가 많은 데다 레트로 콘셉트로 재단장한 카페나 문화 공간들이 속속들이 생기는 것 같더라는 말도 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식 짜장면과 쫄면의 발상지이자 냉면 맛집도 많다며 가게 이름을 줄줄 읊었다.
   “동인천역 근방에 헌책방 골목도 있잖아! 거기서 토지의 박경리 작가님도 직접 책방 하셨었대!”
   숨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정보를 쏟아내는 민주의 모습에 은하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민주 또한 은하를 따라 웃으면서도 민망한지 자꾸 왜 웃느냐고 물었다.
   “아니, 사회학과 석사는 태세 전환을 해도 정보 주면서 참 고급스럽게 하는구나 싶어서.”
   “아이고 고급지기는요, 외가 분들 모여 사시는 줄도 모르고 실례가 컸습니다요. 쇤네가 사정도 모르고 깝쳤습니다요.” 장난스런 어투로 굽실거리던 민주가 말했다. “전에 빌려준 그 책은 그럼 이사 선물로 줄게. 허겁지겁 읽을 책이 아니니까 두고두고 읽어 봐.”

   배를 꺼트릴 겸 산책로를 빙 둘러 걸은 뒤에 은하는 미리 조사해 두었던 카페로 향했다. 자유공원에서 오 분 거리의 카페는 전면과 후면이 모두 넓은 통유리창으로 이루어져 개방감이 돋보였다. 커피를 받아들고 2층에 자리를 잡자 학교로 보이는 건물, 주택들 사이로 우뚝 솟은 하얀 십자가 너머 인천항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시야의 끄트머리에 살짝 걸쳐있는 형태가 아니라 탁 트인 모습이었다. 은하는 통유리창 앞으로 가서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하루에 몇 번이고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절로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듯했다.
   비록 풍광이 좋은 만큼 좌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말소리가 실내를 울리지만 당장은 그 점마저 좋았다. 남들이 쉴 때 같이 쉬고 있다는 실감이 나서였다. 커피 맛도 마음에 들었다. 은하는 양손으로 머그잔을 감싸 온기를 느끼며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옆 테이블에서 창밖 풍경을 찍는 찰칵거리는 소리에 눈이 떠졌을 때, 까무룩 잠이 든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은하는 알지 못했다. 다만 목이 뻐근하고 창밖을 비추는 햇볕이 한결 은근해진 것을 보면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은하는 식은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켜 입안을 축이면서 이런 소음 속에 용케도 잠이 들었구나 싶어 쓴웃음을 지었다. 카페의 테이블을 차지한 사람들은 한 주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전부 말로 털어놓아야겠다는 듯 맹렬하게 잡담을 이어가고 있었다. 여유 있게 카페 놀이를 하는 데 있어서는 확실히 평일에 쉬는 게 나았다. 가끔 병원이나 은행 볼일이 있을 때도 그랬다.
   커피잔을 마저 비우면서 은하는 고작 그 정도의 장점을 하나하나 손에 꼽으며 5년 내내 주말에 못 쉬고 일하던 나는 얼마나 부리기 쉬운 사람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학부모의 사소한 클레임을 전할 때도 고압적으로 굴다가 시험 기간만 되면 애걸하다시피 매달리던 원장의 얼굴도 떠올랐다. “은하 쌤도 잘 알잖아, 여기서 10분이면 목동 가는데, 우리가 그 동네 상대로 버티려면 한 타임이라도 더 봐주는 수밖에 더 있어? 여기서 애들 더 줄면 우리 진짜 문 닫아야 돼.” 협박에 가까운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다 보면 못하겠다는 말을 도저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고작 월요일 하루 쉬고, 그 하루조차 시험 기간에는 사수하지 못한 채 일하던 지난날. 저녁 식사는 김밥과 햄버거로 때우면서 어떻게 5년이나 버텼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니, 실은 모르지 않았다. 사교육 업계에서 일하기 전에 몸담았던 공연 업계가 육체적으로 몇 배나 고되고, 보수도 더 낮았던 탓이다. 근무 시간이 늘어나는 상황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기색을 보이는 관리자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체질이 바뀔 정도로 몸을 혹사 시킨 후 경력 하나 없이 학원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불편과 불합리를 만날 때마다 전에 비하면 이쯤이야, 하며 속으로 삭이는 버릇이 들었던 것이다. 은하는 돌아오는 주말에 사촌들을 만나면 사회생활을 시작한 업계의 노동 환경을 일터의 기준으로 삼지 말라고 전해주는 일을 잊지 말자고 되뇌며 카페를 나섰다.

   지도에서 봤을 때 신포시장까지 가는 길은 채 십 분도 걸리지 않았고, 은하는 그곳에서 닭강정을 사 가지고 일찍 집으로 가서 쉴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도 어플의 안내에 따라 대로에서 골목길로 꺾어들어가야 하는 시점에 길이 막혀 있었다. 카페 앞까지 돌아와서 처음부터 다시 길을 찾아보았으나 한 번 더 실패한 끝에 은하는 마주 오는 행인에게 길을 물어물어 시장을 찾아갔다.
   그렇게 닿은 신포시장의 닭강정 집 앞으로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 지점에서 은하는 줄 끝으로 향하기를 포기하게 됐다. 입소문을 듣고 닭강정을 사러 왔을 뿐, 실상 아직 배가 고프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불현듯 떠오른 것이 동인천역 근방에 있는 헌책방 골목을 이야기하던 민주의 목소리였다. 인천에서 보내는 첫 번째 주말에 자기 자신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은하는 오랜만에 전통시장에 와서 빈손으로 나가는 섭섭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공갈빵 하나를 사고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시간 뒤에 은하는 다시 어느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얇아서 가볍게 씹히는 공갈빵을 먹는 동안 동인천역과 마주한 대로를 향하는 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 역사 안으로 들어가 지하상가에 발을 들인 게 패착이었다. 미로 같은 지하상가 안을 20분쯤 헤매고 나자 방향 감각이 흐려지는 것만 같았다. 은하는 도로 역사 밖으로 나왔고, 때마침 스마트 폰의 배터리가 6%밖에 남지 않은 것을 보자 그만 의욕을 잃어버렸다. 인천 안에 있는 명소라면 꼭 오늘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포동 번화가 방향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던 은하를 잡아 세운 것은 딸기의 유혹이었다. 큼지막하게 그려진 딸기 에이드가 돋보이는 입간판을 보자마자 은하는 빨려들어가듯이 카페의 문을 열었다.
   메뉴판을 살피지도 않고 주문한 딸기 에이드가 나오자마자 은하는 단숨에 절반을 비웠다. 톡 쏘는 탄산감이 좋았다. 달콤함 뒤에 은은한 로즈마리향이 감도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한숨 돌린 은하는 실내를 둘러보았다. 창가에 앉아서 소곤거리는 커플과 구석 자리에서 코바늘뜨기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까지 오브제로 보일 만큼 아늑한 공간은 여러모로 먼저 방문한 카페와 대조적이었다. 화이트 톤에 통유리창으로 개방감이 돋보이던 그곳에는 라운지 뮤직의 비트가 깔렸고, 작은 창에 잔을 받친 코스터까지 우드 톤으로 통일돼 있는 이곳에는 드뷔시의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은하는 바 카운터 옆쪽의 벽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가판대형 책장 앞으로 가보았다. 책장의 한가운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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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는 안내가 있었다. 그 아래 붙어있는 낡은 지역 신문 기사는 방금 안내문에서 본 것과 같은 이름을 가진 성지서림의 주인 내외를 인터뷰한 것이었다. 인천 토박이라는 부부는 미소 지은 얼굴의 눈매와 입매가 남매처럼 닮아 있었다. 인터뷰 말미에서 그들은 차이나타운을 언급했다. 젊은 시절에 즐겨 찾던 차이나타운의 중국집에 어느 순간 발길이 뜸해졌지만, 좀더 세월이 흐르자 어린 자녀들이 가보고 싶어해서 다시 가게 되더라면서. 그처럼 대를 잇는 추억의 장소로 자리매김하는 책방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것이 두 사람의 소망이라고 적혀있었다.
   서점은 사라지고 책장 하나만 남았으므로 부부의 꿈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루지 못한 꿈일지언정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인천을 배경으로 한 소설 『경애의 마음』,『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괭이부리말 아이들』 이 놓인 맨 위 칸을 비롯하여 시집과 교양 과학서, 여행 에세이까지 진열된 책이 두루두루 마음에 들어서 은하는 한 평 서점의 책장을 통째로 이사한 집에 옮겨 놓고 싶은 기분이었다.
   고심 끝에 은하는 책장 맨 아래 칸에서 인천 지역을 집중 탐구한 독립 잡지를 골랐다. 그러고 계산을 위해 카운터 앞으로 갔을 때 또래로 보이는 카페의 오너에게 카드를 건네며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분명 처음 오는 장소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건만 친밀한 관계처럼 낯이 익어서였다. 지금껏 “우리, 전에 만난 적이 있던가요?” 하며 말을 건네는 상황은 괜한 수작임이 분명하다고 여겼던 은하는 지금까지 자신이 편협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반성했다. 그러다 카드를 돌려받으며 눈이 마주친 순간에 그런 느낌이 든 연유를 깨닫게 되었다.
   “저기 기사 사진이 부모님이신가 봐요. 아버님이랑 엄청 닮으셨네요.”
   “진짜요? 평소에는 엄마랑 닮았다는 얘기를 더 많이 들었거든요.” 오너가 가벼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저희 집 처음 오셨죠? 이 근처 사세요?”
   “이번에 이사 왔어요.”
   “사실 저도 인천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어요.”
   그녀는 잠시 말을 고르는 듯했지만 이내 기사 속의 부부를 번갈아 연상케 하는 미소를 지으며 “아무튼, 두 배로 반갑습니다. 자주 오세요.” 하더니 은하가 고른 잡지에 엽서 한 장을 끼워 주었다. 인천의 백 년 전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으로 만든 엽서였다.
   자리에 와서 잡지를 넘겨보던 은하는 역사적 명소를 망라한 기사를 보며 민주를 떠올렸다. 기사의 초입에 1930년대 인천의 방직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 2천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노동 쟁의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짤막하게 소개하며, 여성 노동 운동의 시발점이 된 곳이 바로 이곳 인천이라고 명시했기 때문이었다. 민주에게는 벚꽃길보다 이 같은 이야기가 훨씬 더 흥미를 끌 터였다.
   민주에게 그 사실을 전하기에 앞서 은하는 한 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올해도 인천에서 퀴어 페스티벌이 열리려나, 하는 점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민주와 그녀의 옛 연인 사이에 끼어서 슬쩍 한번 함께 나가볼까 싶었다. 대신 두 사람이 여기까지 온다면 인천 최고의 냉면집에 데려가겠다는 공약을 걸 수 있도록 사전 검증을 해둘 셈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집 근방에서 지인들을 만드는 게 좋겠다고 은하는 생각했다. 혼자 가면 수육과 만두까지 맛볼 수가 없으니까. 게다가 금방 냉면이 당기는 계절이 올 테니까.
   민주에게 그와 같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을 때 배터리는 고작 2%가 남아 있었다. 은하는 카페의 오너에게 충전을 부탁하기 위해 일어나기 전에 에코백의 안주머니를 뒤졌다. 그러고 그녀에게 휴대폰을 맡기며 오늘 산 포춘쿠키 하나를 건넸다. 지금은 사라진 책방의 소망을 간직한 카페에 오래도록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면서.

은모든

삼십 대 중반쯤 되면 무슨 일을 하고 어디에서 얼마를 벌며 누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갈지 삶의 축을 구성하는 여러 방면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냅니다. 이때의 어느 정도란 실제로 얼마만큼이 될까요? 변화와 선택의 여지를 더듬다 은하·민주·성지라는 세 인물과 만났습니다. 세 인물이 매번 조금씩 다른 양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써나갈 예정입니다.

2021/03/30
40호